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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638
추천수 :
219
글자수 :
908,591

작성
22.09.28 00:43
조회
718
추천
10
글자
22쪽

4.

DUMMY



“차-렷!”


조직은 군례軍禮를 따르는 모양이다···


라는 사실을 민서는 아무런 준비 없이 몸으로 깨달아야 했다.


단상 위에서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외치는 사내가 있었다. 짧게 깎은 스포츠 머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육군 훈련소 조교들이 쓸법한 모자를 눌러 쓴 장정이었다. 눈빛이나 인상은 챙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단정하게 입은 정복正服(규정에 따라 입는 예복따위)이나 허투루 움직이지 않는 동작의 절도에서 성격은 짐작되었다.


하얀 방 안.


민서는 ‘조직’의 기지 안이었다. 종래에 보던 하얀 방과는 달리, 깨나 넓이가 큰 방이었고, 실내에 있기 흔치 않은 규모의 공간이었다. 강당이나 파티룸이 연상되는 크기였고, 어느 정도 이상의 인원들이 활동적인 레크리에이션도 할 수 있을 법했다.


취향인지 뭔지 모를 하얀 톤의 방 안에, 전등불이 시야를 밝히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흰색의 단상이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그 위에서 검은 모자를 쓴 사내가 굵직한 목소리로 민서에게 외친 것이었다. ‘차-렷!’하고.


민서는 일단 그대로 상식에 맞추어 따랐다. 단상 아래, 방 안에는 그뿐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군대식의 양반이랑 단둘이서 보내야 하는 몇 시간이었다. 좋은 주말이었다. 민서는 잠깐 꿈인가, 라는 생각을 스쳐가듯 했다가 지웠다. 꿈이라기엔 지독하고 현실적이었다. 꿈이었다면, 근래 겪었던 ‘순간이동’이라는 현상까지 다 허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몇 시간 전, 시간에 맞춰 등장한 예의 청년, 홍인수의 손길에 따라 다시 경험한 ‘순간이동’은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눈 앞의 이 광경도 현실이었고.


“차, 차렷.”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단 어정쩡하게 따라 해보았다. 그는 구령을 복창하며 상식 속의 차렷 동작을 행했다. 군대는 아직 안 갔지만, 간단한 것들은 알 수 있는 법이다.


단상 위의 사내가 민서가 하는 양을 보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교육생! 오늘은 본 교관이 어떤 걸 알려줄 지 혹시 알고 있습니까!”

“······.”


민서는 그 텐션에 맞춰주기 싫다, 라는 생각을 맹렬히 하면서도,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뱉었다.


“모, 모릅니다!”


일단 자신보다 연상인 것은 확실했다. 인상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하관을 보거나 목소리만 들어도 40대는 족히 넘어 보였다. 민서의 나이는 23이었다.


“모른다고 하지 말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겠습니까!”

“······.”


그 말에 민서는 고민했다. 뭘···. 그는 홍인수가 보내는 대로, 이 어딘지도 모르는 지하 기지에 도착해서 인도에 따라 걸어 들어왔다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 뿐이었다.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고,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일단은 알고 있는 걸 뱉어 보았다.


“···저, 점퍼에 대한 대응책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짝짝짝.


모자를 눌러 쓴 교관은 소리나게 박수를 쳤다. 절도 있는 박수 소리였다.


“잘 말했습니다! 오늘 교육은 ‘대 점퍼 전투법’의 기초입니다!”

“······감사합니다!”


한참이나 텀을 두고 민서가 대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왜인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상대의 열정이었다.


“오늘 교육생은 열의가 있어 보여 좋습니다! 끝날 때까지 유지해주기 바랍니다!”

“예, 옙.”


교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별다른 것도 없이 말만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인가, 싶었다.


딱.


그런 찰나에 흔히 마술쇼 따위에서 듣는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경직된 채 서 있던 민서는 교관의 모습이 사라진 걸 인지했다. 바로 다음 순간에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김민서 교육생!”

“예, 억?”


이미 순간이동이라는, 말도 안되는 현상을 많이 겪은 그였지만 체감적으로 적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해나 상리를 뛰어넘은 현상이었다. 눈 앞에 있던 교관도 점퍼였다.


민서는 당황한 듯 헛소리를 뱉었다. 턱. 익숙한 동작이 느껴졌다. 굳은살이 배긴 두터운 손아귀가 그의 왼쪽 어깨를 짚었다.


"...."


그는 다음 순간 어딘가로 이동할 것을 짐작했다. 이들의 손에 닿으면 항상 생기던 일이었다. 갑작스런 순간 이동에 대비하고 어지럼증을 참으려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 민서는 그제야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교관, 모자의 챙 아래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씩 웃어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점프에 끌려가는 경우가 많이 있지. 자네가 먼저 해야할 건, 이런 일에 대비하는 거라네."


연기였나, 싶을 정도로 다소 자연스러운 말투로 돌아왔다. 민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알려주시죠, 라는 눈빛으로 그를 처다 보았다. 민서는 마땅히 질문해야할 바도 알 수 없었고, 그저 정보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는 그를 둘러싼 지금의 모든 상황에 대체로 무지했다.


교관이 말했다.


"우선 점퍼들이 사용하는 도약은 세 가지로 사용된다네. 짐작할 수 있겠나?"


민서는 훌륭한 교육생의 신분을 지키기 위해서, 짧은 머리를 한 번 굴려보았다.


"어... 혼자 이동하는 것과 같이 이동하는 겁니까?"


꾹. 교관이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말했다.


"그렇지! 그 두 가지가 있고 나머지 하나는 뭘까."

"...모르겠습니다."


교관은 어깨에서 손을 떼어 그 두터운 손바닥으로 퍽퍽,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럴 수 있네. '재밍Jamming'이라고 한다네."

"재밍이요?"


라디오 재밍, 전파 재밍 할 때의 그건가. 순간이동이 어떤 에너지나 매질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이 차단이나 방해가 가능하다면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민서는 순간이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도약의 방해를 상상했다.


"그렇지. 직관적인 이름들이야. 첫 번째는 단순한 도약. 정신적인 집중과 목표지에 대한 데이터만 있다면 혼자서 순식간에 할 수 있다네. 두 번째는 단체 도약. 점퍼의 손에 닿은 사람은, 점퍼의 의지에 따라서 같이 도약할 수 있다네. 이건 상대의 능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점퍼의 능력에 의지하지. 사람의 손이 두 개인 관계로, 최대 두 명까지 데리고 도약할 수 있다네."


민서는 그를 처다봤다. '그럼 세번째는 뭡니까.'란 눈빛으로.


"재밍을 도약의 일종으로 말하는 이유는, 엄연히 점퍼가 가지는 도약 횟수를 소모하기 때문이야."

"횟수요?"


횟수라고 한다면, 설명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약은 정해진 횟수가 있고, 그건 하루에 몇 회 정도가 한계인 듯하다. 자정을 기준으로 초기화 되는 모양이다.


"그렇지. 선천적으로 점퍼는 도약 능력을 타고나고, 그건 자정을 기준으로 매일 정해진 횟수 안에서 사용 가능하네. 사람마다 다른데, 적게는 10회에서 많게는 200회 까지도 가능하지. 아무튼, 자네가 배워야할 건 이 '재밍'이야."

"재밍이라니... 저는 일반인입니다."


교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자네는 점퍼가 아니지만, 재밍과 비슷한 건 할 수 있네. 점퍼는 점퍼의 몸에 손을 대고, 상대의 도약을 저지할 수 있지. 자신의 도약 횟수를 1회 소모함으로. 이 때 상대의 도약 횟수도 소모된다네. 그럼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건 뭐겠는가."

"......."


민서는 말없이 그를 처다봤다.


"모르겠는 모양이군. 정확히 말하면 '단체 도약'의 거절이네.


점퍼는 일반인에게 손을 대고 단체 도약을 할 수 있지. 기본적으로 거절하지 않는다면 승락으로 취급되어, 점퍼의 도약에 이끌려 목적지까지 따라가게 되지. 그러나 마치 점퍼가 정신력으로 도약을 사용하듯이, 그 타이밍에 맞추어서 명확한 거절 의사를 떠올리면 자네는 단체 도약에 휩쓸리는 걸 거부할 수 있어. 물론 재밍은 아니기에 점퍼 개인의 점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호오.'


민서는 눈을 크게 떴다. 대 점퍼 전투법이니, 점퍼에 대한 대비책이니 하던 것들은 민서로서도 유용한 내용이었다.


"점퍼들이 자신의 능력을 훈련하듯이, 다소의 요령과 반복이 필요하다네. 점프할 때의 미세한 기운이나 전조는 일반인도 감각을 집중하면 충분히 느낄 수 있어. 그 때에 맞추어서 명확한 문장, 혹은 이미지로 상상하면 된다네. 상대의 행동을 권유라고 보았을 때, 그에 대한 거절을 말이지."

"거절이라......."

"자네에게 손을 댄 점퍼를 인식하고, 도약을 상상하게. 그리고 그 도약에 휩쓸리지 않겠노라고, 명확한 거절 의사를 떠올리면 자네는 도약에 참여하지 않게 되네. 일단 이것만으로도 테러나 묻지마 범죄에 당하듯 골로 가는 건 피할 수 있지."


골로 간다, 는 건 사실이었다. 이런 방법이 확립되지 않았을 당시에, 일반인들은 점퍼 중 범죄자들의 악의에 손쉽게 노출되었었다. 그저 몸에 손을 대고, 의지할 것 없는 상공에 점프한 뒤 자신만 지상으로 돌아온다면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는 것이다. 어떤 무기나, 튼튼한 갑옷을 입었든지 그저 몸에 손을 얹는 것 하나만으로.


'그럼 한 번 해볼까.'라며, 교관은 어느새 내렸던 손을 다시 민서의 어깨에 얹었다. 툭, 하고 무거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교관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김만철'이네. 그 외에 기지 내에서 '코치Coach'라고 한다면 나를 부르는 거고. 자네는 소드 마스터가 데려 왔다면서?"


그러고 보니, 말도 안되는 영어 단어가 들린 것 같았다. 경황이 없어 넘어갔지만 민서는 차분히 물었다.


"그러고 보니, 소드 마스터는 뭡니까? 코드 네임 같은 겁니까?"

"아, 웃기게 들리나 보지? 그렇다고 하더군. 어린애들은. 만화나 소설에 나오는 모양이야. 하지만 우리 기지에서 만화같은 일을 주로 하는 녀석이라 어울리는 이름이야. 코드 네임 맞네."

"만화같은 일이요."

"음...."


코치, 김만철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답했다.


"일단 일대일로 그 녀석을 이길 수 있는 점퍼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아. 점퍼 간의 전투나, 외부인의 회유에는 거의 그 녀석이 투입되는 편이지. 점퍼로서도 그렇고, 그냥 인간으로서도 더럽게 강하네. 전에 비슷한 체급의 프로 복서랑 스파링을 해서 이기는 걸 봤지."

"아...."


반쯤은, 농담과 존경을 섞어 부르는 이름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서, 이 '조직'내의 모든 인물들이 홍인수처럼 싸우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민서의 반응을 보던 만철이 말했다.


"뭐... 그 만큼은 아니더라도 웬만해서는 대인 전투가 다들 가능하니까 누굴 놀리고 할 생각은 접는 게 좋아. 도약 능력이 없더라도 다들 자네 정도는 15초면 못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테니까.”

“아······.”


민서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잠깐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민서는 굳이 따지자면,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급발진을 해서 사고를 치고는 하는 성격이었다. 지나가다 기지 내의 인원들에게 갑자기 다가갔을 지도 모른다. 확실히.


“아무튼 계속하지. 이 소리를 들으면 조심하는 게 좋아.”


딱.


다들 손재주도 좋은지, 손가락 튕기기를 선명하게 잘 해냈다. 민서는 저걸 못 한다.


그와 동시에, 민서는 시야가 암전되는 걸 느꼈다. 눈 앞이 어두워진다. 정전이 되는 것과도 비슷했다. 코드가 끊어진 TV가 꺼지듯이.


그리고 체감상 순식간.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것보다 더 짧은 시간을 두고 다시 시야가 밝아졌다. 그는 네모난 방의 외곽, 아래에서 방의 내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가 눈을 뜬 곳은 처음 코치가 그를 내려다봤던 단상 위였다. 성인 남성의 키보다 조금 낮은 높이로, 단상의 뒤로 계단이 있었고 하얀 색으로 페인트가 칠해진 구조물이었다. 그는 코치가 바라보았을 시야를 눈에 담았다.


"......."


몇 번을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약간의 어지럼증도 있다. 민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걸 거부할 수 있다는 겁니까?"


김만철이 여전히 뒤에 선 채로 답했다.


"그렇지. 일단 이게 기본이라네. 능력을 사용해서 상대를 가장 쉽게 죽이는 방법 중 하나이니, 대처하지 못한다면 목숨은 없는 거라고 봐도 돼. 손이 몸에 닿기만 해도 죽는다고 하면 대항이 성립이나 되겠나?"


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거절... 이라고 하셔봤자 너무 막연한데요.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김만철이 어깨를 툭툭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여러 번의 순간이동을 겪어봤으니, 자네가 예민한 편이라면 벌써 잘 알겠지. 도약의 전후로는 기이한 '에너지'의 흔적이 남는다네. 일반인들도 미약한 공기의 진동이나 소리, 피부에 와닿는 이질적인 느낌으로 알 수 있어."

"그건... 그렇습니다."


민서는 자신이 예민한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도약의 기척은 잘 느끼고 있는 편이었다. 눈 앞에서 벌어진 여러 번의 점프와 자신이 직접 겪은 단체 도약을 통해서.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삶과 구분되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그러면 그 미상의 '에너지'의 움직임으로 자네는 도약의 타이밍을 대충 알 수 있게 되네. 도약을 하는 중간 과정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나?"

"아뇨 전혀...."


민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도약에 참여하는 과정은 기이한 느낌이 일고,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다시 밝아지는 것을 느끼는 일 뿐이다. 그가 무언가 더 알아차릴 만한 건 없었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자네는 보이지 않겠지만... 도약을 하는 점퍼는 강렬한 이미지나 좌표 데이터로 도착지를 계산하지. 점퍼로서의 능력을 오래 사용한 사람은 환상을 본다고도 해. 눈 앞에 가시적인 화면 따위가 보이면서, 정확한 도약을 완수하기 위한 계산식 따위가 떠오른다고. 그리고 미상의 과정을 통해 도착지에 도달하는 순간까지는 점퍼 역시 무감각한 순간이라네. 아주 짧은 순간, 퓨즈가 끊어진듯이 감각을 잃었다가 다시 찾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고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해."


공포나 트라우마라, 그 말을 들으면서 민서는 상상했다. 확실히 자신은 시야에 집중했지만... 몸의 감각 전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던 듯도 하다. 정신적인 공포가 생긴다고 한다면, 확실히 깊은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아주 깊은 물에 잠수한다거나, 순간적으로 전신 마취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점퍼들은 현대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불확실한 현상을 몸으로 겪는 것이다. 그것은 큰 능력이고, 이 현대 사회에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유용한 특기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전모를 알 수 없는 무언가였다.


교관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둔한 편인지, 별로 위화감이 없는 쪽이로군. 아무튼 그 감각이 끊어지는 정확한 타이밍이 도약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네. 그 지점에 맞추어서 강렬하게 이미지하도록 해. '거절, 거부'에 대한 의사를 문장화해서 생각해도 좋네. '점프'는 정신에 크게 관여하는 에너지이자 현상이라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파는 우리 생활에 많은 부분 관여를 하면서 익숙하게 사용되고, 실제적인 데이터를 옮기기도 하지. 자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종류의 그런 작용이라고 생각을 해. 단순하게 본다면, 다른 외부 장치 없이 뇌와 뇌, 정신과 정신 간의 데이터가 상호 작용하는 현상이라고 상상을 해도 좋네."


그는 긴 말을 하느라 잠시 침을 삼키곤 다시 이야기했다.


"상대의 뇌파와 정신, 도약을 형성하는 미상의 에너지가 자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자네의 정신과 생각 또한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걸세. 일반적으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점프'라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작용하는 순간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나 와이파이가 점퍼와 자네 사이에 있다고 치세. 그 순간에 자네의 뇌는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력 장치가 되는 거야. 점퍼가 아니기에 추가적인 물리 현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일어나려는 현상을 저지할 수는 있지."


긴 설명에 민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었다. 현대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익숙한 이야기다. '대충... 최첨단 기계로 뇌와 뇌 사이에 와이파이나 블루투스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거지.'하고, 민서는 적당히 납득했다.


"점퍼들이 정신력을 사용하는 요령을 알려주지. 단순하네. 보다 직설적이고, 자극적이며, 선명하게 상상을 해낼 수록 강한 도약 능력을 가진 점퍼라네. 불분명한 상상은, 입력 장치인 키보드를 대충 힘주어 누르는 거라고 생각하게. 확실하게 버튼 하나하나를 꾹 눌러서, 제대로 타자가 입력되는지 확인해야 하지."

"확실한 상상이라..."

"어렵게 생각할 필욘 없어. 자네가 느끼기에 선명하면 되니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의 감각을 떠올려 본다거나...하는 요령이지. 굳이 따지자면 1개를 상상하는 것보다 100개를 상상하는게 더 확실하겠지. '나는 이 현상을 거절한다.'라는 문장을 머릿속에서 짧고 강하게, 수십 번 반복해서 되뇌어도 좋네."


교관의 말대로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평상시에, 화장실을 찾을 수 없는 대중 교통 속에서 강렬한 복통이 느껴질 때 하나님을 찾듯이 간절하게 되뇌면 된다는 것 아닌가.


"설명을 듣고 바로 할 수 있겠나?"


김만철이 물었다.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더라도, 물론 김만철은 반복해서 훈련을 시킬 셈이었다.


"점퍼에게 하루에 주어지는 도약의 횟수는 중요한 자산이고, 전투가 끼어 있다면 목숨처럼 카운팅을 해야 하는 숫자이기도 하지. 자네를 위해서 사용하는 코치로서의 내 도약이 헛되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겠네."


김만철의 말에는 묘한 분위기가 실려 있었다. 옥상에서 그가 목격한 홍인수와 미친 사내의 일전을 떠올려보면, 그가 겪어야 했던 많은 피투성이의 나날들에 대한 소회가 담겨 있을 지도 모른다. 뭐, 민서로서는 사실 전혀 본 바도 없고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 단체의 분위기가 군대를 닮은 면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전투나 전쟁의 나날들에 대해 연상을 하는 건 자연스럽다.


“처음에는 감을 잡도록 타이밍에 신호를 주지. 어깨를 이렇게 세 번 째 두드릴 때라네.”


툭툭 하고 그는 어깨를 쳐 보이며 말했다. 민서가 앞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살짝 손을 뗐다가, 다시 두드린다. 툭, 툭.


그리고 두 번째로 어깨에 손이 닿았을 때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우우웅, 하고 공기가 미약하게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현기증의 전조 현상과도 약간 닮아 있었다. 시야가 살짝 일렁인다. 민서는 말과는 다른 코치의 행동에 급하게, 머릿속으로 외쳤다.


‘거절한다. 거부한다. 싫어. 도약에 동의하지 않는다. 점퍼의 능력을 거부한다. 도약하지 않겠다. 나는 이 자리에 머무른다. 동참하지 않는다.’


우수수수, 쏟아내듯이 문장을 뱉었다. 어떤 대상이 있다고 가정을 하고,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하듯이. 점퍼가 발휘하는 도약이라는 능력과 그 능력에 이용되는 미지의 에너지는 의사 능력이 없었지만, 입력 장치를 다룬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Delete키를 누르듯이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다음 순간에 어지러움과 변한 시야를 예상했지만, 눈이 밝아진 순간 보이는 광경은 그대로였다. 단상의 저 아래, 아까까지 민서와 교관이 있던 곳에 교관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모자를 푹 눌러쓴 채다. 코치가 양 팔을 들어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법인데, 라는 제스쳐처럼 보였다.


김만철은 거리가 꽤 있어, 처음에 하던대로 큰 소리로 외치며 말을 했다.


“재능이 있는 친구로군! 집중력과 감각이 좋아! 한 순간에 반응해서 타이밍을 잡다니!”


민서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 저 멀리서 그가 다시 사라졌다. 근처에서 점퍼가 도약을 할 때엔 항상 기묘한 분위기와 소리, 진동이 들린다. 그의 뒤에서 김만철이 나타나며 목소리가 들렸다.


“단체 도약에 대한 거부는 금방 끝났구만. 한 번에 많은 걸 할 필요는 없지. 조금 쉬고, 점심을 먹고 다시 보지. 오후엔 가볍게 몸을 쓰는 일을 해볼 거야.”

“이렇게 금방 말입니까? 점심도 먹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밥도 안 먹는 줄 알았나. 잘 나온다네. 식당 위치도 알려주지.”


코치는 민서의 등을 한 번 툭 쳤다.


“갑작스러운 일에 대처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결국 용기라네. 실제 상황에서 호기로라도 배짱을 부리고, 몸이 굳지 않도록 해. 그 정도의 의식만으로도 죽느냐 사느냐가 갈릴 수 있으니까.”


죽느냐 사느냐, 라는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철이 얘기했다.


“내려가지. 계단은 뒤쪽이라네.”

“어, 예.”


민서는 그의 인도에 따라 단상을 내려섰다. 기지의 시설은 제법 넓은 모양이었다. 몇 명의 인원이 어느 정도 상주하는지, 건물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홍인수가 얘기한 ‘조직’이라는 것이 적잖은 자본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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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야한69리키
    작성일
    22.10.07 20:41
    No. 1

    차렷경레 이런건 초딩때 하는거 아녀요? 체육시간억 했던거 같은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살생금지
    작성일
    22.10.08 00:32
    No. 2

    엄... 거 뭐냐... 예식... 아 제식은 결국 기본적인거라 그걸 군대에서도 쓰고 학교에서 많은 인원 통제할때도 쓰고 다 그런겁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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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6.(1) 22.10.12 118 2 15쪽
18 15. 22.10.11 122 3 25쪽
17 14. 22.10.11 124 3 20쪽
16 13.(2) 22.10.09 139 4 13쪽
15 13.(1) 22.10.08 168 4 13쪽
14 12.(2) 22.10.08 192 4 14쪽
13 12.(1) +3 22.10.07 236 3 15쪽
12 11. 22.10.07 257 4 27쪽
11 10. 22.10.04 277 7 16쪽
10 9. 22.10.03 285 8 12쪽
9 8. 22.10.02 332 7 17쪽
8 7. +2 22.10.02 385 9 22쪽
7 6. 22.10.01 429 10 19쪽
6 5. 22.09.30 535 9 18쪽
» 4. +2 22.09.28 718 1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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