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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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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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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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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11.

DUMMY

2.


“이런··· 씨.”


낡은 폐공장.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건물이다. 노후화가 되어서 사람들이 오지도 않는 파주의 어느 공장.


부지와 낡은 건물을 사들인 이들은 개발이나 사업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모일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따뜻한 온기도, 안락한 인테리어나 환경도 필요 없었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삶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살아가는 그런 삶에 구경꾼이 한 명 끼어들었다.


5월 3일 화요일.


본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의 수는,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8명이었다. ‘그들’이란 그 부지와 건물을 매입한 젊은 부자들이었다. 그들의 수가 7명. 그리고 그들이 하려고 하는 모종의 계획과 일에 도움을 줄 외부인이 1명.


오늘은 그런 꿍꿍이속을 가진 한 팀, 7명과 1명의 외부인이 만남을 가지기로 한 날이었다. 우선 공장에는 7명이 있었다. 계획을 주로 세우고 팀을 이끄는 리더는 외부인의 사정을 짐작하기 위해 머리를 한 켠으로 굴렸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했던 조력자는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동아시아의 뒷 세계에서, 세력을 일구며 온갖 악행들에 능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범죄단의 리더였다. 소수의 팀인 그들과는 달리 수 많은 인원들이 있었고, 그만큼 큰 규모의 자본을 굴릴 수 있었다.


7인팀의 리더는 그런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와 만나 조금 더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도모해 볼 생각이었다. 7인팀은 하나같이 특별한 능력을 공유하는 존재들이었고, 그들이 공유하는 능력이 있다면 적은 수로도 대형 조직과 연계를 이루어 많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 그랬었다. 7인팀의 리더, 대머리에 잔주름을 가지고 선글라스를 낀 인물은 다른 한 켠으로 나머지 모든 머릿속을 동원 해 고민을 해야만 했다.


나오기로 한 외부인은 없었고, 팀의 한 놈은 연락이 끊긴 채 엉뚱한 인간이 와 있었다. 그는 아주 안타깝게도, 새롭게 등장한 인간의 신원을 짐작할 만큼 연륜이 있었다. 한국에서 나름대로 연차가 오래 된 점퍼였던 그는 이미 만났던 단체의 일원이라는 걸 깨닫고 저도 모르게 신음처럼 소리를 뱉었던 것이다.


엉뚱하게 대신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사내였다. 훤칠하고, 체격도 좋고, 잘 다린 고급 양복을 입은 청년. 홍인수라는 이름의, 코드 네임 소드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갈까, 늬들이 올래?”


간단한 말이었다. 7인팀의 인원들 중 리더를 제외하고는, 저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이들은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욕심 많고, 체력이 좋은 젊은이들. 자신의 능력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그 사이에 타인의 불행이나 불이익이 걸려도 넘어갈 만한 자들을 모아서 자신이 일방적으로 이끄는 것이 팀의 실체였다.


다른 이들은 아직 ‘두려움’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것들을 겪기 전에 사내가 앞서서 위험한 현실을 제거하고, 눈을 가린 탓이었다. ‘점프’라는 능력은 젊은이의 머리를 안 좋은 방향으로 돌게 만들기 충분한 특별함이었다.


리더가 생각하기에 최악은 그것이었다. 눈앞에 마주친 저 사내에게는 그 특별함이 조금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다양한 능력을 쌓아온 리더의 관점에서도, 명백하게 그의 통제력을 벗어난 인물이었다.


“······당신 누구?”


7인팀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는 목 정도로 내려오는 단발머리를 부드럽게 웨이브로 만들고, 솜씨 좋은 메이크업을 받고 온 여성이었다. 20대 중반 즈음 되어 보이는 외모. 하이힐에 여느 회사에서나 일할 때 입을 법한 단순하고 차분한 색감의 옷이었다. 베이지색 면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비슷한 톤의 갈색 재킷을 걸쳤다.


외모적으로 튀는 곳은 왼쪽 귀걸이 정도였다. 큼지막하게 만들어진 링 귀걸이였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것이 그녀의 개성을 드러낸다.


리더의 불안감은 그 순간 치솟고 있었다. 이들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관점에서 저 청년은, 집 안에 들어온 맹수나 다름이 없었다. 리더의 눈에 팀원들은 어린아이였다. 그가 어린아이를 챙기는 보호자는 아니었지만. 어린아이들이 갑자기 나타난 괴수에게 덤비고 있었다. 집안이 파탄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홍인수가 대답했다.


“물어본다면 대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당신들이 이상한 짓거리하는 걸 막으러 온 어느 조직의 비밀 병기입니다.”


우스운 말이었다. 웃음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곳에 모인, (지금은 6명이지만)7인팀의 인원들은 나름대로 험악한 짓거리들을 하며 살아온 부류였다. 점프라는 능력을 사용하고, 망설이지 않는다면 현대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좋았다.


약간의 준비, 팀워크, 경험자의 조언이나 장비가 갖춰진다면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더욱이 한 두 명이어도 그럴진데, 7명이라니.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어느 영화의 주인공처럼 생각을 했다. 아무도 막을 수 없고, 제지할 수 없는 거친 악인들이 나오는 액션 무비의 주인공들.


그리고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영화는 영화였고, 때로 현실은 냉혹하다. 영화에 나오는 악인들조차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키며 세상을 무너뜨리려 한다면, 어느 때인가 제지를 받을지 모르는 법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을 알게 되는 것처럼. 아직 눈에 띄지 않아 내버려 두던 막강한 조정자가 소란을 느끼는 순간 찾아올 지 모른다.


적어도 점퍼들의 세계는 그런 편이었다. 순간 이동이라는 힘을 가지고 한도 없이 날뛰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조직이 있었다. 그들은 순간 이동이라는 힘을 오래도록 가지고 연구하고, 또 갈고 닦아온 전투 집단이었다.


“뭔···. 언제 부터 여기에 있던 거야, 아저씨. 여기는 사유지라고. 나가세요.”


팀의 다른 사내가 말했다. 그는 후줄근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사무용 펀치기로 구멍이라도 뚫은 것처럼 추레한 꼴이었다. 나름대로 훤칠하고 마른 체격이라 어울리긴 했지만,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었다. 그가 입은 것들은 명품이었다.


홍인수는 별다른 말을 않고 그들을 처다 보고 있다. 방긋방긋 웃는 꼴이 사람의 화를 돋구기도 한다. 팀원들 중 조금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 보이는 장정이 있었다. 그 역시 명품처럼 보이는 밝은 색의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 여기저기, 때깔이 좋아 보이는 차림새들이었다. 체격이 큰 사내는 팀의 리더와 같이 대머리였다. 그가 홍인수에게 다가갔다.


“어이, 이해가 안 가?”


자못 위협적인 말투다. 홍인수는 그가 걸어올 때까지 역시 대답않고 주위를 슥 둘러보고 있었다. 6명. ‘송일우’. 그래, 잭 더 나이프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말한 숫자와 일치했다. 그를 포함한 7명의 팀이었고, 30대 후반 정도의 한국인이 리더이다.


그 외의 인상착의나 특징도 대체로 일치했다. 단발머리 한국인 여자, 20대. 마른 체격의 남자, 한국인, 20대. 덩치 커다란 남자, 한국말을 하지만 일본인, 20대. 뒤로 빠져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는 금발 서양인. 체격이 작은 20대, 남자. 마지막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 20대의 동남아시아 계열, 여자 하나.


대충 영어나 한국말 정도면 의사 소통이 가능해 보이는 집단이었다. 홍인수를 바라보며, 넓은 공장 내부의 공터에 빙 둘러 서 있었다. 서로 간의 간격은 약 2m 정도. 그에게 반항을 하며 싸움을 할 만한 인원이 많지는 않았다. 옷으로 가려진 작은 체구에 어마어마한 근육들이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홍인수 역시 그런 편이라, 저들이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거한이 터벅터벅, 홍인수에게 다가왔다. 리더는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대머리에, 체격이 다부진 사내는 말이 없다. 식은땀을 조금 흘리는 것도 같다. 팀의 인원들은 리더의 변화에 민감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뉘었다.


언제나 재빠르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던 리더의 모습에 서양인 남자, 동남아시아 여자는 이상함을 느끼는 기색이었다. 그들 역시 아무 말을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머지 한국인 셋은 홍인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상상력이 현실에 닿지 않았던 탓이다.


세계의 점퍼들을 통제하는 일을 하는 조직의 전투 요원이 그들에게 왔으리라고는 말이다. 홍인수는, 농담 투로 사실에 가장 가까운 말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거한이 홍인수에게 팔을 뻗어간다. 어깨나, 멱살이나, 적당한 상체 어딘가를 붙잡고 흔들어 넘어뜨릴 생각이었다. 190cm의 키에 옆으로도 거대한 체격인 그가 힘에서 밀리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 농구 선수 출신이었다. 투기 계열은 아니었지만 싸움이라면 기 싸움에서도 진 적이 많지 않았다.


리더는 거한이 홍인수의 어깨에 손을 올림과 동시에 소리쳤다.


“···망할, 도망쳐!”

“어.”


리더의 비명 같은 외침에 동남아시아 여자가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그녀는 듣기는 완벽하지만 말하기는 아직 어눌하다. 놀라기도 했고, 리더의 태도가 이해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반사적으로 말의 내용에 따르기는 했다. 리더의 말에 따라서 여태까지 실패한 적은 없었다. 그들 팀은 여태까지는 나름대로 실패 없이 잘해왔고, 나름의 돈을 얻으며 떵떵거리며 괜찮은 생활을 즐겨 왔다.


개중에 급박한 상황을 넘는 일도 많이 있었다. 일단 정신이 없을 때는, 보통 계획자이자 다양한 경험이 있는 리더의 지시를 따르면 중간은 간다.


퍽.


어딘가 섬뜩한 소리가 났다. 사람의 맨주먹이 사람의 살가죽 위를 때리는 소리였다. 보통은 글러브globe를 끼고 때린다. 몇 온스니, 하는 단위를 따져 가면서. 미세한 그램 단위를 규격화해서 나누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정권으로 다른 사람의 급소를 갈긴다는 게 말이다.


거한, 일본인, 20대 남자가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홍인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자신보다 10cm는 큰 장정의 턱을 맞추었다. 기절을 하고, 뇌진탕을 일으키면 잠시는 점프를 하지 못한다. 어쨌거나, 점프를 하려면 점퍼의 멀쩡한 의사意思가 있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이들은 기절 직전이나 직후에도 도약을 해내곤 한다. 눈 앞의 청년이 그런 부류일 것 같지는 않았다.


큰 체구가 흙바닥에 맥없이 쓰러졌다. 넘어가는 순간에 홍인수가 옷깃을 잡으며 반대 방향으로 누이듯이 길게 끌었다. 한 번에 넘어지면 뭘 물어보기도 전에 그대로 갈 수도 있었다.


리더는, 그대로 도망치기로 했다. 말을 함과 동시에 도약했다. 우웅, 하는 기묘한 떨림은 점퍼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다.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듣고는 하는 전조 증상이다. 그리고 몇 초 이내라면, 도약지 근처에서 감 좋은 점퍼는 누군가가 이동한 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홍인수가 움직인 건 아니었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떨림이 나며 새롭게 도약해왔다. “뭐, 뭐야!” 비명을 지르듯이 팀원들이 소리를 치고, 몸을 떨었다. 한 번에 그들에게 있어서 싸움을 맡곤 하던 사내가 쓰러지고, 그들 외의 점퍼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팀원들은 아직 홍인수가 누구인지 몰랐다. 심지어 점퍼인 줄도. 그들이 폐공장에 나타났을 때, 홍인수가 도약해오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일본인 사내가 쓰러지기까지는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새롭게 나타난 청년이 리더가 만든 도약의 잔향을 읽었다. ‘최길우’였다. 다소 어리게 생긴, 순한 인상의 사내. 어딘가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학생처럼 생긴 남자였다. 그리고 조직에서 도약에 있어서라면 가장 정확하고 솜씨가 좋은 베테랑이기도 했다.


최길우는 나타남과 동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리더를 따라갔다. 도약에는 거리 제한이 없다는 걸 따져보면, 순식간에 저 둘은 지구의 반대편을 같이 몇 번이나 오갈 수도 있었다.


동남아시아 여성도 곧이어 도약을 했다. 우웅, 하는 작은 소리는 의외로 난전 속에서도 잘 들린다. 점퍼들은 그 소리와 진동, 느낌을 잘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목숨이 다음 순간에 달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리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이한 느낌이 먼저 점퍼들에게 와 닿는지도 몰랐다. 점프와 그에 관한 미지의 에너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해석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분야였다. 현대까지에 와서도.


서양인 남자도 리더의 말을 알아듣고 사라졌다. 홍인수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앞에서 멍청하게, 판단력을 잃어버린 두 남녀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한국인이었고, 전투 능력이 높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순식간에 제압하는 것도 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묘사했듯, 그건 점퍼에게 있어서 목숨처럼 들어야 하는 경보음이기도 했다. 적의를 갖고 누군가 도약을 해온다면 곧바로 대응하기 위해서. 점프는 눈을 감았다 뜨는 것보다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공간 안에서라면 그야말로 순간 이동이라는 단어의 참뜻을 제대로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연속으로 사용하면서 전투에 능숙하게 사용한다면, 사람에 따라서 괴물 같은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타이밍에 맞추어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는 펀치를 계속 내지를 수 있다면, 수십 명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완벽한 계산으로 정확한 위치에 이동을 하고, 주먹이 닿을 곳에 상대가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말이다.


홍인수는 이론적 완벽함을 거의 흡사하게 현실에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전투 요원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소드 마스터’라는 유치한 별명으로 불린다. 그런 유치함의 이면에는, 모든 전투 요원들이 그를 위로 생각한다는 경외감도 다소 담겨 있었다.


우웅, 퍽. 기묘한 떨림과 함께 홍인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른 체격의 남자가 먼저였다. 그는 반응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사실 그렇게 느린 편도 아니다. 그냥 반사적인 훈련이 안 되어 있을 뿐이다. 일본인 사내가 넘어지고, 리더가 사라지고, 외부인이 다시 돌입해서 그를 따라가고······ 곧 공장에 홍인수가 두 남녀가 남기까지 몇 초 이상이 걸리지 않았다. 정상적인 사고로 사태를 이해하려고, 잠깐 멍청해질 수 있는 텀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홍인수에게 너무나도 충분하다.


위엣 단에 묘사했듯 홍인수는 망설임 없이 오른 주먹을 궤적에 따라 갈겼다. 그보다 작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며, 마른 데다 구멍이 뚫린 흰 티를 입은 청년의 턱이 돌아갔다. 그 역시 일본인 거한과 똑같이 사이좋게 넘어졌다. 홍인수는 가끔 초인적인 운동 능력을 발휘한다. 온 힘을 실어 친 것도 아니었지만, 깔끔한 훅을 지른 후에 곧바로 금세 회복해서 사내가 넘어지기 전에 같이 넘어지듯 다가가 껴안았다. 잠깐이라도 쓰러지는 몸을 멈춘 다음에 두었다.


서 있는 위치에서 곧바로 맨땅에 머리를 박으면, 운이 나쁜 사람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들 조직은 곧잘 말하고 다니듯 과도한 폭력은 지양하는 편이었다. 어디까지나 압도적인 무력이 있어야 가능한 선처였지만.


털썩, 하고 사내가 낮은 자리에서 넘어지게 두며 홍인수는 그대로 이동했다. 다시 나타난 곳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벅차 하는 여자의 뒤였다. 점퍼로서, 아주 흔한 이동의 위치였다. 상대방의 시야의 사각인 뒤통수는. 그런 면에서, 숙련된 점퍼, 혹은 점퍼로서 오래 살아온 이들은 반사적으로 반응하고는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그가 송일우와 옥상에서 싸울 때, 이동의 전조를 느끼자마자 바로 앞으로 뛰었던 것처럼.


여성은 그런 반응을 보이진 못했다. 애초에 전투에 능숙해 보이지도 않았다. 홍인수는 넘어지듯한 자세에서 이동을 했기 때문에, 땅바닥에 엎드리듯 경직된 자세로 이동이 되었다. 다만 그는 축을 조금 비틀고, 여자의 뒤편, 조금 땅에서 뜨인 위치에 이동을 해서 떨어지듯이 그 뒤를 잡았다.


타닥, 하는 소리가 나며 홍인수의 발이 땅에 닿는다. 그와 동시에, 여자가 돌아보기도 전에 그는 주머니에서 전기 충격기를 꺼내 들고 있었다. 제압용으로 아주 쓸 만한 장비였다. 화력전이 예상되면 그는 총도 마음껏 갈겨 대는 편이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손상 없이 제압하는 걸 지향한다. 트르륵, 툭.


“끼야아악!”


여자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혼절하듯 넘어갔다. 주먹으로 맞은 것과는 달리 전신의 근육이 반응하며 튀듯이 발작한다. 바닥이 단단했기에 넘어지는 여자의 옷깃을 낚아채듯 잡아서 잠시 멈춘 뒤에 놓았다.


움직임을 시작하고 30초보다 적은 시간이 걸렸다. 연속 도약에 익숙하다면 한 자리의 상황을 정리하는데 이동 시간이 생략되기에 가능한 작전 수행 속도였다. 홍인수는 주로, 멈춘 상태에서 폭발적인 순발력이나 파괴력을 내는 근력 운동을 반복한다. 급한 상황에서는 순간적인 동작 수행 능력이 모든 걸 결정짓는다.


현대에 익힐 수 있는 무술 중에서는 절권도가 그가 수행해야 하는 움직임에 가장 잘 맞았다. 어떤 상태에서든 곧장 공격이 가능한 상태로 회귀하고 최단 거리로 적을 타격하는 흐름. 굳이 비유하자면, 홍인수는 마치 이소룡처럼 움직인다.


홍인수는 폐공장에 쓰러진 이들을 슬쩍 둘러봤다. 먼지가 쌓이고, 외풍이 숭숭 들어오는 낡은 건물. 고요하고, 주변은 산야라서 짐승 우는 소리 따위나 가끔 멀리서 들렸다. 별다른 조명도 야외에는 없었고, 건물 내부에 오래된 백열등 하나가 있어서 광활한 공터를 비추었다. 공장의 바닥은 그냥 평평한 시멘트였다. 여기저기 균열이 가고 먼지가 잔뜩 쌓인 채의.


어두운 불빛 아래 한국인 남자, 여자, 일본인 남자가 누워 있다. 그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특수 수갑을 꺼냈다. 조직이 사용하는 도구였다. 조직은 순간 이동 능력의 대여를 대가로 각국의 단체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지원 받는다. 현재 사회에 공개되지 않는 실험중의 첨단 기술 따위도 개중 포함되는데, 그 중에서도 간혹 쓸만한 것들이 있었다.


그가 세 개쯤 꺼내 든 특수 수갑이 그중 하나였다. GPS위치 추적 장치가 포함되어 있었고, 함부로 벗기려 들면 전류가 흐른다. 물리적으로 강한 충격을 주면 내부에 화약 장치가 있어서 수갑을 채운 부위가 손상된다. 디지털 패널로 간략한 정보가 뜬다. 회색빛의 외부에 견고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었다. 다소 투박하고, 굵은 수갑이었으나 그것에 들어간 다양한 기술을 따지면 도리어 혁신적으로 얇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단순한 수갑으로서의 기능도 충실해서, 어지간한 절단기로도 잘 끊어지지 않았다. 무게가 그리 무거운 편도 아니었고. 간혹, 그럴 일이 많지는 않지만 수갑을 넣어둔 재킷의 가슴 부위에 타격을 받는다면 방어구가 되어줄 때도 있다. 홍인수가 검이나 총을 맞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점퍼 상대에 특화된 엘리트 병력이나, 혹은 전투에 특화된 점퍼가 아니라면 그의 옷이나 몸에 흠집을 내는 것조차 어렵다.


홍인수는 그저 무심하게 늘 해오는 일을 해오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넘어진 이들에게 가서 수갑을 채웠다. 철컥, 드륵. 철컥, 드륵. 철컥, 드륵. 비슷한 소리가 박자감 좋게 이어서 들렸다. 뇌진탕으로 쓰러진 이들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 기지 내 인원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기지로 옮겨야 했다. 가능한 한 교대로 감시하면서 최대한 신문을 진행하고 정보를 뽑아내야 했다.


특수 수갑같은, 점퍼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지독한 물건들을 여러 개 갖고 있었다, 조직은. 그리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관련된 단체와 연구소에 주문을 하기도 했고. 갖은 수를 다 써가면서 빠른 시간 내에 끝내야만 했다. 점퍼를 구속하는 건 그만큼 부담이 많이 되는 일이었다. 어떤 물리적 구속도 아랑곳 않고 정신만 차리면 어디로든 사라질 수 있는 존재들을 가두어두고 대화를 한다는 게 참 어지간한 발상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구적인 손상을 육체에 입히지 않고, 인도적이고 회복 가능한 선에서 그들을 상대하다 보니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송일우는 어느 정도 참작을 해서 위치 추적이 가능한 작은 악세사리형 구속구만 채운 뒤 자유를 주었다. 아마 최길우가 리더를 잡아 올 테고, 그가 지금 기절한 셋을 데려갈 테니··· 네 명을 기지에서 유지하려면 적어도 그 네 배의 인원이 기지에서 상시 대기를 해야 했다.


조직의 인원수를 생각한다면, 그 이상은 버거운 일이었다. 그런 탓에 동남아인 여성과 서양인 남성을 잡지 않은 것이다. 그들만으로는 큰일을 벌이지 못하리라는 예감도 있었고. 유약한 신체나 정신을 가졌다면 점퍼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규모가 큰 범죄를 일으키기도 쉽지 않았다. 그들의 힘은 단지 이동일 뿐이므로, 그것을 사용해서 공격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다소의 강인한 의지나 힘, 준비나 조력이 필요했다.


정말로 크게 사고를 칠 정도로 범죄자 점퍼의 몸집이 커진다면 조직과 연관된 모든 단체가 연합해서, 물고기를 몰듯 한 자리에 서서히 몰아넣고 다시 잡게 될 테였고 말이다.


홍인수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허리춤을 짚고 몸을 뒤틀었다. 가끔 고단함을 느낀다. 그다지 결리지도 않는 몸이나, 단련된 정신이었지만 그런 것보다 더욱 깊은 곳에서 어색한 쓸쓸함 따위를 느낄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변화나, 친구가 필요할 지도 몰랐다. 삶의 태도에 대한 전환이 필요할 지도 몰랐고.


최근 연속적으로 임무를 하기에 이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그들이 필요한 일들이 많았다. 홍인수는 이미 쓰러진 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채 1, 2분이 더 지나기 전에 움직였다. 한 명씩 가까이 다가가 기지로 옮긴다. 후웅, 하고 바람이 부는 것과도 비슷한 소리가 났다.


눈 깜박할 사이에 기지의 정해진 방에 정신을 잃은 범법자 점퍼들을 처박았다. 미리 대기를 하고 있던 기지 내 인원들이 받아서 구속한다. 곧바로 점퍼들 특제의, 온갖 물리적 구속구를 장착하고 밤을 세우며 24시간 대기 임무를 시작하게 된다.


피곤한 일이었다. 어쩌면 홍인수는 그런 일들을 하게 될 기지 내 동료들의 심정을 상상하며 과도한 피로감을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하나 둘 셋, 일본인 남성과 여자, 한국인 남성의 순으로 기지의 밀실에 처박았다. 홍인수는 정말 급박한 비상 상황이 아니면 대기 인원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지간한 상황, 혹은 외부에서의 비상 상황에서 소드 마스터만큼 유용한 인원이 많지 않기에 그러하다.


굳이 따지자면 철저한 외근직이었다. 때로 내근직 요원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때로는 고달프다. 그로서도 한계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많이 있기도 하다. 그는 강력하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초인은 아니었다.


그냥 의외의 재능 두 가지가 합쳐져서 남들이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수준의 능력을 발휘할 뿐이다. 그건 마법도 아니었고, 절대적인 힘도 아니었다. 그냥 우연의 일치로 만들어진 한 가지 재주일 뿐이었지.


홍인수는 일을 마치고 폐공장을 잠시 돌아봤다. 혹시 그가 놓친 흔적이나, 증거품 따위가 있는지. 돌아보아도 별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팀의 리더가 아마 철저한 편이었던 모양이다. 자주 모이는 곳이었음에도 그들의 행적을 증명할만한 어떤 것도 없었다. 깔끔한 상태.


그는 얼마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기지로 돌아갔다. 밤이 늦다. 그 역시 대부분의 요원들처럼 한국 시간을 기준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기지의 방에 돌아가서, 씻고 누워야겠다. 조직은 그에게 많은 걸 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돈을. 그러나 가끔 앞날에 대한 기묘한 망설임을 느끼는 일은 있었다. 이 시대도 그러하고, 점퍼라는 존재들의 삶의 방향도 그러하고, 조직의 앞날에 대해서 그가 확신하는 게 없어서였다.


그는 연차가 제법 쌓인 조직원이고, 강력한 개인 행동권을 가진 구성원이었지만 조직의 리더는 아니었다. 조직의 방향성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점에서 때로 망설임이 생기는 지도 몰랐다.


기지로 돌아가 얼마 지나지 않자 리시버가 돌아왔음을 들었다. 무사히, 큰 어려움 없이 리더를 잡아 와 구속했다고 한다. 최길우는 홍인수가 직접 부딪혀가며 가르친 대인 전투술의 제자였다. 훌륭한 격투 실력을 갖고 있었고, 그의 점프 능력은 점퍼 조직 내에서도 최고였다.


물리적인 점프 가능 횟수의 한계는 홍인수가 더 많았지만, 정밀한 도약과 연속 도약의 텀은 최길우가 조금 더 빠르다. 그가 추적을 할 때 도망칠 수 있는 점퍼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만약 여태까지 조직에서 모아 온 모든 데이터를 무시하는 수준의 괴물 같은 자연 발생의 천재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조직원들의 정예가 모조리 몰려가서 상대하면 될 뿐이었다. 점퍼는 순가 이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고작해야 인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홍인수는 기지의 개인실 침대에 걸터앉아 소식을 기다리다가, 호출기에서 들리는 무사 귀환 문자를 보고서야 장비를 정리하고 씻고 자리에 누웠다. 푹 자길 원했다. 최근 들어 수면 장애가 조금 있었다.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았다. 삶이란 어디로 가는가. 이 조직은 어디로 가는가.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요원들 중에서 선임급이자 가장 막중한 책임을 맡고있는 그로서 적당한 고민일 지도 몰랐다. 아마 그의 조직 내 커리어의 다음 스텝으로는, 직급의 상승과 함께 조직의 수뇌부의 일원이 되거나 조직에서 멀어지거나 둘 중 하나일 테였다.


개인실은 조금 큰 원룸이나 비슷했다. 가장 큰 방도 10평대를 넘지 않는다. 부스처럼 한 자리에 마련된 샤워실을 나와 침대에 누웠다.


위를 바라보면 늘 똑같이 방 안을 밝히는 흰색 LED등이 눈을 비춘다. 실내는 다른 기지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흰 톤이다. 가구들은 갈색이니, 검은색이니 붉은색이니 색조가 좀 있는 편이었다. 그는 그 외에는 개인실의 리모델링에 관심이 없다.


원룸의 구석에 비치된 흰 이불과 매트리스의 침대에 누워, 피곤한 눈빛으로 말을 한다. “소등.” 천장의 LED가 음성을 듣고 저절로 꺼진다. 어둡다. 호출기는 머리맡에 두어서 울리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23:20. 그가 누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21시부터 그 시간 사이가 최길우가 리더를 잡기 위해 드잡이질을 한 시간일 테였다.


아끼는 후배이자 믿음직한 동생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며 그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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