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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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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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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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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2.

DUMMY

22년 5월 19일.


야가미 소우타는 마음을 다칠 것 같았다.


그는 한국계의 비율이 많은 점퍼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점퍼였다. 자신이 점퍼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갖은 공상을 펼치며 세계를 위해서 무언가 해보려 했지만, 어느 순간 알고 찾아온 조직원들에 의해 회유되어 일한 지가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조직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듣고, 또 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깨나 연차가 높아서, 어느덧 중견 정도의 위치에 있는 처지였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35세. 아래로는 그의 뒤를 따르는 후배들이 있었고, 위로는 이제는 다소 숫자가 줄어든 선배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자신이 이런 일을 맡게 된 건, 그다지 싫은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자신이 하는 게 나쁘진 않았으니까. 조직의 점퍼들의 사정과 생리는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에 능숙한 자를 꼽자면, 그가 순위에 꼽힐 것이다.


그는 근 10여일 간 대부분의 시간을 누군가의 등에 손을 얹은 채로 보내고 있었다. 달콤한 연인간의 관계라고 하더라도, 억지로 손을 붙여 놓고 떨어지지 못하게 해둔다면 괴로울 법도 한데. 그가 손을 얹은 채로 지내야 하는 자와의 관계는 그런 달콤한 관계가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관계조차 아니었다. 그는 조직에서 대기를 타고 있다가, 근래에 현장 임무를 뛴 지가 좀 되었다는 걸 빌미로 전속 감시조로 배치가 되었다. 점퍼 조직에서 전속 감시조라는 건, 살짝 위험한 단어였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배정받지 못하고 주구장창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보통 기지 내에 점퍼 범죄자가 들어왔을 때, 그들의 신변 구속을 위해서 ’도약 재밍‘을 24시간 대기하며 걸고 있어야 하는 처지를 말한다.


그가 맡은 건 장년의 나이대로 접어드는 한 사내였다. 체격이 크고, 인상이 사납고, 드잡이 질을 한다면 쉽게 제압할 수 없을 것 같은 남자였다. 대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군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굳이 조직 내에서 비슷한 인물을 찾자면, 그래, ’코치‘인 김만철이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한국군에 적을 둔 적이 있는 듯한 모습. 공교롭게도 그 남자 역시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가장 뒤늦게 끌려 온 범죄 팀의 리더라는 점을 들었을 때, 또한 이 자를 잡기 위해서 조직의 ’리시버‘가 깨나 고생을 했다는 소식을 미루어 봤을 때, 상당한 용력勇力을 가진 양반이었다.


야가미 소우타는 그런 남자를 계속해서 제압하고 있었다.


물론 몇 겹의 보안장치가 설정되어 있는 특수한 수갑, 족갑 따위를 끼고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처지라지만 전투에 잔뼈가 굵은 용병으로 보이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긴장을 풀 수 없는 일이었다. 야가미 역시 근접 전투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리시버나 소드 마스터처럼 스페셜리스트까지는 아니었다. 대체로 현장 임무를 맡을 때도 보조 역할을 맡는 편이기도 했고.


아주 지독한 며칠이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생식 활동, 생리 활동은 보장해줘야겠지만 그 모든 순간 몸에서 손을 뗄 수 없다는 건 구속을 하는 쪽도 괴로운 일이었다.


조직의 시설 중에서도, 점퍼 중에서 극악한 범죄자가 나오고 이 자의 제어를 위해 며칠 동안 기지 내에 구류시키는 상황을 상정해 만든 설비가 있었다. 대개 교도소 따위의 물건과 비슷해 보이는 설비였다. 손을 작은 구멍에 내어놓고 일을 보아야 하는 화장실이나, 샤워실 따위였다.


“여기 손 올려.”


그 역시 적당히 하고 싶은 괴로운 절차들이다. 손이 묶인 남성이 볼일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건 말이다. 정해진 화장실 부스에 가서, 먼저 바깥과 연결된 창구에 손을 넣도록 한다. 수갑에 묶인 채로 널찍한 구멍에 손을 두면, 위에서 아래로 닫는 마개를 내려 조금의 틈도 없이 만든다.


마개, 곧 덮개는 화장실 문의 내부 면에서 올리고 내리는 것과 외부 면에서 조작하는 두 가지가 있었다. 안쪽의 것은 피구속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것이었고, 외부 면은 피구속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덮개를 내려서, 내부쪽으로 손을 빼거나, 외부에서 안쪽을 바라볼 수 없도록 하곤 문을 닫는다.


화장실 문의 틈새는 그들이 사용하는 수갑과 맞물리게 되어 있어서, 수갑에서 손을 빼지 못한다면 문의 틈새에서도 손을 빼지 못하게 되어 있다. 용변을 볼 때에는 바깥에서 수갑의 양쪽 중 한 손을 풀어준다. 보통 피구속자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손을 풀어주게 된다.


리더, 장년의 사내, 윤민혁의 경우 왼손의 수갑을 풀어주면 왼손은 화장실 내부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먼저 화장실 내부에서 문을 잠근다. 그리고 풀려난 왼손이 빠진 틈새의 덮개를 내려 밀실을 만든다. 그다음에 자유롭게 화장실을 이용하면 되는 순서다. 번잡하게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비데로 편리하게 볼일을 볼 수 있었다.


내부의 소리를 굳이 듣지 않도록 화장 부스가 있는 룸에는 백색 소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화장실 부스의 자재는 인간이 맨손으로는 흠집도 낼 수 없는 소재로 되어 있어서, 내부에서 일을 꾸미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더군다나 한 손은 계속 도약 재밍을 위해 쥐고 있는 터라 점프로 도망갈 수도 없었고. 다른 수작을 부릴만한 소지품은 조직에 구류된 시점에서 전부 빼앗긴 상태이다. 할 수 있는 거라 해봐야 자해 정도였지만··· 다른 쪽에서 손으로 감각을 느끼고 있는 중에 그런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손에 날카로운 칼날이라도 쥐고 있어야 손쓸 틈 없이 그렇게 일을 벌일 수 있겠다.


그리고 당장 자살이라도 생각할 정도로, 지독한 처사를 범죄자에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절차의 선에서 그들을 구속한다. 그것만 하더라도 당하는 이나 하는 이나 진이 빠지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 내부에서 다시, 문의 잠금을 풀고, 덮개를 올린다. 철컥. 드러난 문의 손 구멍으로 왼손을 내민다. 그러면 외부에서 감시자가 마저 수갑을 채운다. 표면이 거칠지 않은 플라스틱으로 덮인 수갑은 다소 두꺼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내부는 합금으로 다시 강도를 더했고, 더 안쪽은 센서가 있어 정해진 위치를 벗어나면 전류가 흐르는 장치가 있었다.


내부에서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시 감시자가 문을 연다. 부드럽게 열리는 부스의 문이었다. 바깥쪽에서 손을 잡은 채로, 내외부 양면에 있는 덮개를 올려 손을 빼내기 용이하게 만든다. 순서는 바깥쪽 덮개를 열고, 피구속자의 몸체에 몸을 대고 가까이 다가가 내부면의 덮개를 열고, 팔을 빼내면 끝이었다.


그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서 용변을 본다. 몸을 씻는 일도 비슷한 식이었다. 주로 점퍼의 손 한쪽을 구속해둔 채 개인사를 보게 한다.


잡혀온 구류자가 여성일 때는, 점퍼 중 여성 조직원이 이 모든 절차를 감당해야 했다. 조직 내의 여성 비율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여성 점퍼가 범죄자로 잡혀왔을 때 그들이 하는 고생이 상당했다.


구속이 하루나, 이틀 정도에 끝난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이 비정기적인 이벤트였지만 며칠 단위를 넘어가면 정기적인 게 되고 말았다. 밥을 먹는 정도는 피구속자가 수갑을 찬 채로도 먹을 수 있었지만 그 외의 다양한 일들은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기초적인 생식을 위한 활동들을 하고 나면, 남은 시간은 모조리 독방 같은 밀실에 처박혀서 진행되는 신문의 연속이었다. 모든 정보를 토해낼 때까지, 며칠이고 몇 시간이고 계속되는 것이다.


이전에, 스미스가 범죄 팀 중 최초로 잡혀 온 송일우를 향해서 흔들었던 ’점프 무력 장치‘는 단순한 블러핑이었다. 점퍼 조직의 기술력이나 저력을 외부인이 알 리가 없으니, 적당히 겁을 주어서 빨리 끝내자는 요지였다.


송일우는 그것을 알았든 몰랐든 결과적으로 스미스, 송경태의 의도에 훌륭하게 따라주었고 말이다. 리더 윤민혁의 경우는 시간이 좀 길게 걸렸다.


윤민혁과 같이 있던 폐공장에서 잡혀 온 범죄팀의 인원들이 여러 명이었다. 한국인 남성, 여성, 그리고 거구의 일본인 남성으로 셋이다. 조직으로서도 네 명이나 되는 인원을 구류시켜 두는 건 부담이 큰 일이었기에 재빨리 신문을 마치고 적당히 처리했다.


’처리‘라는게 물론 생명을 거두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들이 파악한 자료 조사에 따라 대질 신문을 해보고, 적당히 그들이 저지른 일들의 윤곽이 드러나면 세세한 걸 따지지 않고 대강 토막쳐서 정리하듯이 강도를 정해 수감 시키던, 구속구를 찬 채로 일시적으로 다시 풀어주던, 하는 식이다.


도저히 회유할 수 없고 이미 극악한 사회적 범죄를 저질러서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보통 ’점퍼 감옥‘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기관으로 보내버리는 편이었다. 온갖 종류의 센서가 달린 구속구를 채워 넣고 그곳에서 지내게 한다. 위성으로 인식하는 위치 좌표를 토대로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면 강력한 전류가 흐르거나, 폭발을 해버리는 구속구였다.


그리고 그건 도약에 대한 방비가 없는 현 시점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


흉악한 범죄자들을 가두어 두는 감옥이지만, 그들이 스스로 자해를 하는 건 막을 수 없는 감옥과도 비슷했다. 그래도 보통은, 얌전히 있는 편이었다. 자기들이 차고 있는 수갑이나 발목의 족갑이 어떤 위력을 보이는 물건인지 설명을 해주고, 약간의 시연을 거친다면 스스로 그것을 발동시킬 배짱이 많지는 않았다.


단번에 죽음에 이르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경우 지독한 고통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한없이 길게 느끼고 있어야 할 지 몰랐으니까.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허점이 있는 통제라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잡혀 온 범죄 팀의 인원들은, 일시적으로는 방생 되었다. 위치 좌표를 기록하고 다소의 행동을 제한하는 구속구를 채운 뒤에 말이다.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또한 제한이 되었다. 해당 장소를 벗어나면, 곧바로 조직의 추적자가 쫓아가서 감옥에 쳐넣으리라는 당부를 하고서 말이다.


보통 정해진 지역 도시, 혹은 지방 정도의 범위였다.


그런 나머지 팀원들이 기지에서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남은 게 눈앞의 장정이다. 야가미 소우타는 마지막까지 남은 그를 감시하는 감시조로서, 24시간 중 유용 가능한 대부분을 상대에게 쏟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가 감시하는 윤민혁은 말이 없는 편이었다. 따로 그런 기술이라도 익히고 훈련이라도 받은 건지, 놀랍도록 조용했다. 그가 말을 하는 건 조직의 요원들이 정보를 토해내라고 압박을 할 때 뿐이었고, 그 외에 필요 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친 것일 수도 있겠다. 애초에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여야 구속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식사량도 조절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계의 요원이었으나, 한국계가 많은 조직에서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공부하고 배웠다. 한국어와 영어를 비롯해서 삼개 국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재원이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점퍼 조직에서 주요하게 일하는 이들은 다들 다양한 재주를 익히고 있었지만 말이다.


전 세계적인 단체들과 상대하고 움직이기 위해서 일단 영어 정도는 익혀두는 게 본인에게 있어서도 편리했다. 조직 내의 인원들과 더 깊이 지내고 싶다면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괜찮았고.


윤민혁이 기지에 잡혀 들어온 것이 5월 3일 밤의 일이었으니, 어느덧 16일 째였다. 그 동안 그는 조용히 지냈다. 신문에는 소극적이었지만, 적극적인 반항을 하지도 않았다. 그가 기지 내에서 소란을 피웠던 건 ’코치‘, 김만철을 보고 난 뒤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른 것 뿐이었다.


아마 잘은 모르지만 이전에 조직원과 얽힌 적이 있었고, 당시에 현역으로 활동하던 김만철과 마주친 추억이 있었던 모양이다.


소우타는 잘 알지도 못하는, 험상궃은 한국인 사내와 그렇게 십 며칠을 함께 보내며 고생을 했다. 윤민혁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자신의 과거 행적을 일일이 토해냈고, 그의 언사나 태도가 그리 반항적이지 않고 협조적이며 또 누그러든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최고 수준의 형량을 받지는 않았다.


물론 감옥 내에서의 모습으로 그 형량이 더 길어질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대강 바깥 사회에서 내리는 판결을 참고하여, 그리고 관련한 기관들 중 법조인들이 있는 단체의 도움을 얻어 형량을 정하고 그렇게 윤민혁은 기지에서 나가게 되었다.


야가미 소우타가 마지막까지 그의 감시 요원으로 고생을 했다. 19일 밤, 야심한 시각에 야가미 소우타의 인도에 따라 윤민혁은 어느 무인도에 위치한 특수 점퍼 감옥에 보내져 20년의 형량을 감당하게 되었다.

wilhelm-gunkel-BFb2OqxezRw-unsplas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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