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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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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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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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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25.

DUMMY

*

 

옌 쩻 티아마는 다소 난감한 처지에 처해 있었다.

 

22년, 5월 25일. 수요일.

 

오후 4시 반을 조금 넘고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의 시간이 기준이었고, 그녀는 남한의 서울에 있었다. 성북구 성현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그녀의 빌라에서, 옌은 원하지 않는 불청객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여어, 윤민혁을 리더로 둔 범죄자 팀의 2인자이자 점퍼 추적술의 대가인 옌 쩻 티아마, 24세(한국 나이로)가 아닌가. Hey, isn’t it, 24 years old (Korean age), Yen Zet Tiama, the second in charge of the criminal team with Yoon Min-hyuk as the leader and the master of jumper tracking?”

 

이런 미치광이 같은 인사말을 건네는 사람은 분명 제정신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옌이 그런 정신이상자를 맞이한 건 그녀의 빌라 방 안이었다.

 

최근의 일상대로 오후 지나서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평범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작은 빌라 전체가 그녀의 소유였고 그녀는 개중에서 가장 높은 층의, 가장 넓은 집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5층에 다다라 한 번 더 현관을 열었고, 신발을 벗었다. 신발장과 내부를 가리는 가림막을 슬쩍 밀어 열고 집의 거실에 발을 디뎠다. 걸쳐 입은 재킷을 벗으며 적당히 거실 소파에 누워 쉬려고 할 때 안방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였다.

 

옌은 근래 들어 자신이 자주 놀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담이 작은 편이기도 했으나, 이건 그녀의 담의 문제는 분명 아닐 것이다.

 

자신의 집에서 모르는 인간이 튀어나온다면 누구나 놀래게 마련이다. 그것도 그 얼굴이 어딘가에서 스쳐 지나가듯 마주친 인간이라면. 그녀는 그의 인상착의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폐공장에서, 그녀와 팀을 쫓아낸 무지막지한 점퍼였다. 훤칠한 키에 약간 붉은 기가 도는 검은 양복을 입고 다니는 인간. 인상이 부드러운 한국인 청년이었다.

 

어느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면 눈웃음이라도 지으며 친절한 미소로 인사를 주고받고 지나칠 수 있었을 것이다. 미남이기도 했고, 대체로 미의 기준이라는 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법이었으니. 국적에 상관 없이.

 

그러나 그녀에게 그 미남은 집안을 침범한 괴한이었고, 동시에 그녀를 추적해온 정체불명의 조직의 싸움꾼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본인의 신상명세를 다 알고 있는 협박자이기도 했다.

 

옌은 잠시 고민을 했다. ’혼절을 해버릴까.‘ 그다지 좋지 않은 선택지였다. 눈앞에 있는 자가 지독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기절한 그녀를 데리고 치료를 해서라도 본인의 목적을 이룰 테였다.

 

그리고 옌은 우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놀랄 때 비명을 지르는 건 제법 괜찮은 습관이었다. 완전히 퓨즈가 끊어지듯 정지한 사고를 다시 돌리는 준비 운동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놀랐을 땐, 놀란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내면을 드러내면서 다시 평균 회귀를 하는 법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그를 맞이하고 냅다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보면서, 괴한, 홍인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비명을 지르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야. 차분하게 대화를 하는 걸 골라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옌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었다. 놀라게 하질 말던가. 설령 그녀의 신변을 위협하는 비밀 조직의 일원이라고 하더라도 이것보다는 조금 더 좋은 등장 방법이 있었을 테였다. 이런 식으로 나타나다가 심장 마비로 본인이 쓰러지기라도 했다면 어쨌을 뻔했는가.

 

그녀가 지내고 있는 빌라 집의 내부는 깔끔하고, 단출한 편이었다. 별다른 가구도 없고, 그저 건축 당시에 기본적으로 내장된 인테리어에서 손댄 것 없이 그대로 둔 모양이었다. 흰 톤과 민트색에 가까운 포인트로 이루어진 실내. 몇 가지 빌트인 된 목재 가구가 있었고, 그녀가 사들인 건 누워서 쉴만한 소파 정도였다. 안방에는 작은 침대가 하나 있다.

 

슬리퍼를 신고 소파에 누웠다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그녀는 홍인수의 말에도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양팔을 붕붕 휘두르거나 입 근처에 대거나, 자신의 얼굴 주변 여기저기를 만지면서 패닉 상태임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아아아악!”

 

아무리 미인이어도 실성을 하는 꼴까지 가는 건 봐주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홍인수는 이번에는, 민서의 집을 침입했을 때와는 달리 정중하게 신발을 벗고 있었다. 그의 신발은 사실 보이진 않지만 그녀가 들어오면 바로 옆에 보이는 신발장 안에 넣어져 있다. 보통은 문이 닫혀 있었고, 그녀 혼자서 많은 신발을 바꿔가며 신는 것도 아니기에 들어올 때 열면서 보지는 않는다.

 

혹시 열었고, 그녀가 조금만 눈썰미가 좋았다면 의심스러움을 느끼고 바로 도주를 선택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고, 정면에서 홍인수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녀가 그 한국인 남성에게 가지고 있는 인상은 충격적이고 선명한 것이었다. 본인들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폐공장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떡하니 나타났고, 7명이나 되는 패거리들 앞에서도 조금의 긴장감도 보이지 않으며 여유를 떨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움직였고, 도리어 그들의 리더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던 윤민혁이 떨게 만들었다. 그녀가 당시 폐공장에서 도망치기 직전에 보았던 장면은, 눈 앞의 남자가 팀의 거구인 일본인 남성을 한 번에 쓰러뜨리는 모습이었다. 그 다음에 리더의 외침이 있었고, 옌은 그 즉시 상황과 장소를 벗어났다.

 

지금 생각을 해본다고 해도 현명하고 빠른 결정이었다. 다만 그녀의 인생 전반적인 흐름 자체가 현명함과 다소 거리가 있었을 뿐이었다. 순간순간,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선택들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그녀가 여태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 다만 인생의 전체적인 흐름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 거국적인 선택들에 대해서는 늘 좋지 않은 길을 선택해왔다. 그랬기에 지금 눈앞에 저런 괴물같은 남성을 두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옌은 물리적인 힘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유일하게 상대를 놀래킬만한 재주인 ’점프‘또한 그렇게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물론 상대의 점프를 느끼는 분야에서는 그녀만큼 예리한 자가 드물었지만, 사용의 영역으로 가면 세계에 존재하는 전체 점퍼의 평균값을 낸다고 해도 평균 아래였다.

 

발로 도망치는 것도, 아마 높은 확률로 추격적을 벌이며 점프로 시간을 버는 것도 좋은 수가 아닐 테였다. 옌은 위기 상황 속에서 생명의 유지를 위해 가까스로 결론들을 내렸다. 말했듯, 그녀는 그다지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배움이 없고 전체 목표를 잘못 세우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홍인수는, 텅텅 빈 넓은 빌라 집의 거실에서 혼자 비명을 지르고 빙글빙글 돌면서 난리를 피우는 아가씨를 일단 진정 시키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최근 들어서는 누군가를 진정시켜야 했던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일은 따져보면 드물었지만, 그가 점프를 사용하고 조직에 들어와서 겪었던 일들을 바라보면 근 몇달 간은 나름 특이한 시간이었다.

 

김민서를 만난 것도 그렇고, 그 주변에서 엉뚱하게 민간인과 또 맞닥뜨린 것도 그러했고. 지금 옌이라는 범죄자 점퍼 하나를 앞에 둔 상황도 그러하다. 보통 그는 임무에 나서면 험악하고, 싸울 의지가 충분하고, 자신만만하게 달려드는 범죄자나 미치광이, 테러리스트들을 상대한다.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그의 특기랄 만한 싸움 실력을 발휘해서 반강제적인 협조와 이해의 단계를 끌어내는 것이 익숙한 그는 눈앞의 아가씨에게 무력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그가 천천히 움직였다. 옌에게 다가서며 말을 한다. “진정을 좀 하는 건 어때요.” 그들이 떨어진 거리는 고작해야, 네다섯 걸음 정도였다. 집의 내부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다. 굳이 잰다면 20평을 조금 넘는 정도. 그녀가 들어오며 켠 거실의 LED 등과, 홍인수가 나오면서 켠 거실 방의 불빛이 실내를 밝혔다. 물론 시간 또한 늦은 때가 아니라 거실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도 쨍쩅하다.

 

옌은 물론 홍인수의 말을 듣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요란스럽게 소란을 떨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들을 해냈다. 도망칠까? 할 수 있을까? 지금일까? 아마 안 되겠지? 나는 잡히는 걸까? 윤민혁은 어떻게 된 걸까?

 

그러다가 발작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발걸음으로 걸은 움직임은 아니었다. 점퍼로서의 움직임이었고, 공간적 개연성이 삭제된 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걸음이 아닌 ’뜀‘이라고 표현한다. 점프.

 

후욱.

 

홍인수가 채 다가오기 전에 그녀는 점프를 해냈다. 빌라의 거실에서, 옌은 한참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팔을 휘두르고 소리를 질러대고, 원피스의 치맛단이 나부끼고 긴 머리가 헝클어지도록 움직이다가 사라진 것이다.

 

홍인수는 눈 앞에서 놓쳐버린 점퍼의 흔적을 훑었다. 점프 에너지JE는 점프의 발동 전후에 미리 등장하고, 늦게 사라진다. 이에 대한 감각이 없는 자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점퍼로서 노련한 이들은 눈에 보이듯이 그것을 잡아채어 심지어 상대가 이동한 자리까지 추격하는게 가능했다.

 

희미한 연기처럼 남아 있는 JE의 잔향에는 상대가 시행한 도약의 데이터 또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수 초 정도의 텀이라면, 그리고 능숙한 자라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홍인수는 물론 누구보다 능숙한 편이었고 말이다.

 

옌이 떠날 때와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서울의 집에서 두 남녀가 사라졌다.

 

*

 

후욱, 하고 옌이 점프를 해온 곳은 어느 바닷가였다. 그녀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장소였다. 본능적으로 어딘가로 도망가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위치 데이터를 사용해서 점프를 해왔다.

 

에메랄드 빛 바다. 그녀가 점프를 이용해서 가본 곳들 중에서 특히나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고향인 태국과 같은 동남아의, 필리핀의 맑고 얕은 바닷가였다.

 

하얀 모래사장의 모래가 사각거리며 그녀의 발에 밟혔다. 그녀는 빌라의 내부에 있다가 이동을 해온 터라 맨발바닥이었다. 고운 모래 입자가 발가락 사이를 흐른다.

 

하얀 모래 너머에 조용하게 파도치는 바다가 있었다. 이곳 해변의 수심은 얕은 편이었고, 제법 먼 거리까지 나가야만 조금 깊다 싶은 물이 모여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틈을 벌리고 점프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온전히 그녀의 운이나, 노력 혹은 능력의 덕분은 아니었다. ’홍인수‘는 눈 앞에서 옌이 사라지려는 걸 보고도 정확히 막지 않았다. 그의 신체적 조건이라면 한 달음에 움직여서, 그 낌새가 나타났을 때 곧바로 몸에 손을 얹고 재밍을 해낼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비단 그 이유는 단순히, 그가 언제든 옌을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윤민혁 정도로 단련되고 노련한 점퍼가 아니라면, 조직의 ’소드 마스터‘로부터 감히 추적전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옌은 전투나 전략에 있어서는 초보에 가까웠다. 그녀는 가진 바 특수한 능력을 활용해서 팀에 도움을 주는 특별한 개성의 멤버였다. 개인적인 활약이나 능력이 뛰어난 존재가 아니다.

 

옌이 도약을 하고, 차마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턱, 하고 그녀의 어깨에 얹어지는 손 하나가 있었다.

 

홍인수는 옌을 일부로 한 번 놓아주었다. 그편이 오히려 더 쉽게 회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압도적인 능력의 차이를 보여준다면 쓸데없는 점프의 소모를 없앨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한 능력의 차이는 여실히 드러났다. 홍인수는 그녀가 낌새를 보였을 때 점프를 준비했고,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위치 데이터를 사용해서 같은 위치로의 도약을 따라 붙었다. 옌이 바닷가에 모습을 드러낸 거의 직후, 그가 모습을 드러냈고 홍인수는 시야가 회복되기도 전에 움직였다. 그에게 중요하고 알 수 없는 변수는 옌의 몸의 방향 정도였다. 그러나 어깨에 손을 얹는 것 정도는 몸의 방향과 상관없이 이룰 수 있는 동작이다.

 

홍인수는 시야가 회복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움직여서 옌에게 손을 올렸다. 옌 역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았다. 그녀는 처음에 점퍼로서 능력을 사용 했지만 아는 것이 전무했었다. 그러다 윤민혁을 만나고 다양한 상식과 규칙 따위들을 알았다. 재밍에 관한 것, 단체 도약에 관한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은 사실 자신처럼 점퍼의 존재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

 

그녀 또한 다른 점퍼를 쉽게 찾아내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 볼 때는 한 없이 쉬이 해내는 일처럼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녀 같은 감지의 능력이 없다면 무작정, 추리를 하면서 점퍼가 있을 만한 곳을 들쑤시는 것 외에는 없었다.

 

평범한 점퍼라도 몇 걸음, 몇 미터, 정도의 반경에서 JE가 발생하면 감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처럼 아예 단위가 다른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을 넘어 없는 수준이었다. 고래로부터 지금까지 있어왔던 기록 너머의 수많은 점퍼들 중에서, 그녀와 같은 이가 있었을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생존력이 높지 않았을 테니 그러한 지식이나 정보, 가치가 이는 무언가들이 중간에 누락 되었거나 알려지지 않았을 확률 또한 있다.

 

적어도 확보가 가능한 근대에서 시작되는 모든 점퍼들에 대한 지식들을 뒤져 보아도, 옌 같은 돌연변이는 처음 나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홍인수가 옌을 쫓아온 이유였다. 그는 옌을 필요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조직이 옌을 필요로 했다.

 

최초에 그가 범죄 팀을 덮쳤을 때는, 단순하게 점프를 범죄에 유용하는 질 나쁜 집단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잡아들였고. 가장 중요한 대장을 잡아넣는데 성공했고, 그 외에 전투원처럼 보이는 몇몇을 잡았다.

 

어차피 여러명이 된다고 해도 기지 내에서 동시에 수용 가능한 구류 인원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한 것도 있었다. 범죄 팀은 팀일 때에 극히 거슬리고 위험했지, 해체된 이후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줄어들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당시 폐공장에서, 홍인수의 판단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여자와 백인 남성은 그렇게 큰 배짱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잔챙이는 놓아 주더라도, 중요한 인물들에 집중하자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둘은 팀이 해체된 이후 별다른 사건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있었고 말이다. 다만 윤민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짧은 시간 내에 손쉽게 점퍼 팀을 꾸릴 수 있었던 이유. 그는 오랜 기간의 신문 동안 많은 것들을 토해냈다.

 

개중에 옌에 대한 정보가 있었던 것이다. 점프 능력에 대한 다양한 변용은, 조직에서 가장 간절히 찾고 있는 가능성이기도 했다. 점프 그 자체에 대한 연구의 진보를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효과적으로 점퍼라는 초능력자들을 통제하고 세계 정세의 안정화를 위해서 간절하게 필요한 능력들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단순한 점프 능력만으로 겨루기에는, 너무나 많은 소모가 필요했다. 당장 근접 전투 요원인 리시버나 소드 마스터도, 그들 자체의 전투에 대한 재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것 뿐이지. 조직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다른 점퍼들을 온전하게 제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조직은 다소 불안한 처지였다.

 

언제 태생적으로 강력한 점프 능력, 곧 수많은 점프 횟수를 가지고 강력한 힘을 타고 났으며 배짱을 가진 싸이코 점퍼가 나타날 지 알 수 없었고, 만약 그런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그런 존재가 나타난다면 점퍼 조직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물론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연합에 의존해서, 다짜고짜 화력망을 구축해서 잡아볼 수는 있을 테였다. 굉장히 어려울 테였지만.

 

그런 점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점퍼 요원 수 명과 비 점퍼 요원 십수 명이 필요했다.

 

어차피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점프 에너지는 한계치가 있었으므로, 수 명의 점퍼들이 연계를 이루어서 동시 다발적으로 재밍을 걸어대고, 단체 도약을 걸어대고, 상대의 JE를 바닥내고 정해진 위치로 끌고 와서 제압을 하던 화력으로 단숨에 끝장을 내던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가 만약, 극히 드문 확률로 소드 마스터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이제 수많은 사상자나 희생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 단순한 대치의 상황에서 조직에게 새로운 가능성은 언제나 간절하다. 민서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적인 재밍 장치, 혹은 점퍼에 대한 탐지 장치. 옌이나 민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점퍼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고 그들이 함부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자라나지 않도록, 막거나 제어할 수 있을지 몰랐다.

 

옌은 윤민혁과 함께 많은 잘못을 저질렀던 범죄 팀의 일원이었지만, 어쨌든 그 능력은 유용하게 쓰일 만한 건덕지가 있었다. 홍인수는 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다.

 

“윽.”

 

옌은 신음처럼 비명을 흘렸다. 그녀는 바닷가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홍인수는 그런 그녀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서로 마주보지 않고, 한 쪽을 바라본다. 홍인수가 말했다. 바닷가와 두 남녀, 제법 로맨틱한 상황이었지만 그가 건네야 하는 말은 그런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니 빠르게 설명을 해 주지. 태국어는 못하니까 영어로. 윤민혁이 말하던데, 가끔 영어로 설명을 하면 이해가 늦는 면이 있었다고. 못 알아들으면 질문을 다시 해. 몇 번이든 설명을 해줄테니.”

 

그가 이어 말했다.

 

“나는 ’점퍼 조직‘, 이라고 대충 기억하고 있으면 될 어딘가의 일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름 그대로 점퍼들이 모여 있고, 점퍼들의 과도한 반사회적 행동을 막기 위해서 존재하는 집단이지. 너희들은 그야말로 점프 능력을 사회와 공동체의 혼란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마음껏 써주었어.

우리가 사법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대강 현장 판결에 의해서 적당히 결론을 내리고 심각한 수준의 싸이코들에 한해 비슷한 역할을 하고는 있지. 어쨌든 절차도 중요하지만, 눈 앞에서 맛이 간 채로 몇 명이든 죽일 지 모르는 미치광이를 마냥 방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말이야.

그런 점에서··· 뭐 설명하자면 길지만 대강 사법 거래나 비슷한 종류의 제도 또한 있지. 우리는 늘 사람과 능력이 부족하고, 상대해야 할 재난들은 아주 많거든. 네 능력은 그런 거래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얌전히 붙잡혀서, 우리를 위해서 조금 일하지 않겠나?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네가 저질렀던 범죄들은 앞으로의 임무들을 통해서 눈감아 주는 걸로 할테니. 물론 그러지 않는다면, 당신 어깨에 내 손이 올라간 그 순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단순하고 쉬운 방법을 사용해서 다른 결말로 직행을 할 거야.

사이 좋게 네 팀의 리더였던 이와 같이 어딘가의 감옥에 넣어서 생활을 하게 해줄 테지. 점프를 이용해서 벗어나면 폭발하는 구속구 따위를 찬 채로 말야.”

 

바닷가의 물결이 햇살에 비친다. 시간은 한낮이었다. 사람이 얼마 없는 아름다운 해변가. 연인들끼리의 아름다운 밀어를 속삭이면 딱 좋을만한 자리였다. 그러나 옌이 듣고 있는 건 빠르고, 낮고, 거친 영어로 표현하는 협박의 말이다. 제대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감옥에 처넣어지게 생겼다.

 

옌은 왠일로 그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영어는 그녀가 한국어보다는 잘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으므로 종종 놓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극한의 상황 속에서 집중력이 올라가고 히어링hearing(듣기)이 뚫렸는 지도 모른다.

 

그녀는 시야를 회복한 순간부터,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에는 홍인수의 손이 느껴진다. 뒤로는 그녀보다 한참은 키가 큰 남자가 있었고 그가 지껄이고 있다. 태양빛이 아름답다. 지구상에 어디로 가던, 점퍼들은 똑같은 태양과 하늘 아래 선다. 그건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동등한 인생의 무대를 표현하는 듯도 했다. 그들은 초능력자였지만, 한낱 인간이었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다른 처지를 얻는 건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옌은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지나쳐 가는 것을 느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자 오히려 패닉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혹은, 그녀가 마음속으로 즐겨 그리던 바닷가에 다시 와서 그랬는 지도 모른다.

 

옌은 어차피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로 천천히 끄덕거렸다.

 

“제가··· 어떻게 협조하면 되죠.”

 

순응적인 태도였다. 홍인수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좋은 태도야. 우리는 웬만하면 불법적인 일은 지양하지. 나름대로 보람도 얻을 테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사회를 위해서 일해보자고.”

 

툭, 툭. 하고 홍인수가 어깨에 대고 있던 손을 살짝 떼며 두드렸다. 손가락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옌은 다시 도약으로 도망가는 상상을 했지만, 반 호흡의 반의 반도 안되는 순간이라 도약을 준비하고 실행하기에는 모자랐다.

 

그리고 그 정도의 타이밍은 홍인수도 알고 있었기에 여유롭게 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홍인수가 말했다.

 

“경치가 좋군. 네 선택은 이 광경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도록 네 삶을 이끌어 갈 거야. 멍청한 결정을 하지 않은 걸 축하한다.”

 

어딘지 모르게 신뢰가 가는 음색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도 같았다. 어쨌든, 옌의 선택이 그녀의 삶을 어디로 이끌어 갈런지는 미래가 되어 보아야 알 일이었다. 그 사이에 있는 그녀 스스로의 다시 결정할 수많은 선택들이 영향을 미칠 테였고.

 

조직은 이렇게 점퍼 탐색기를 얻었다. 재밍 장치와 탐색기. 그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점퍼들을 관리하기 위한 인프라를 조금씩 구축해 나갔다. 인프라라고 해보아야, 아직은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겨우 등장한 돌연변이같은, 능력의 변질일 뿐이었다. 한 세대가 지나고 이러한 특이 능력자가 없다면 조직이 구축할 제어망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

 

그 사이에 점프에 대한 연구가 발전해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유용할 수 있는 세대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런 시대가 올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점프라는 능력은 그 자체로 미지의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발견이 되었던 것처럼,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전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홍인수는 그대로 옌의 어깨에 손을 대고, 도약을 했다. 옌은 도약 재밍이나, 단체 도약의 거절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이대로 길고 지루한 추격전을 한들 결과는 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옌은 감정적이었고, 담력이 작았고, 발작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지만 이성의 기능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말했듯, 지식은 적어도 머리 회전이 느린 편도 아니었고.

 

홍인수는 그녀를 데리고 그대로 조직의 기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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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되시며는 피드백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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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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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0. 22.10.20 60 2 14쪽
33 29. 22.10.19 58 2 11쪽
32 28. 22.10.19 69 2 18쪽
31 27. 여름 22.10.19 77 2 21쪽
30 26. 22.10.18 68 2 14쪽
» 25. 22.10.17 79 2 24쪽
28 24. 22.10.17 80 2 15쪽
27 23. 22.10.16 80 2 20쪽
26 22. 22.10.15 97 2 13쪽
25 21. 22.10.15 95 2 15쪽
24 20. 22.10.14 95 2 19쪽
23 19. 22.10.14 101 3 15쪽
22 18. 22.10.14 98 2 17쪽
21 17. 옥상에서의 이야기 +4 22.10.13 131 2 27쪽
20 16.(2) +2 22.10.12 123 3 15쪽
19 16.(1) 22.10.12 118 2 15쪽
18 15. 22.10.11 122 3 25쪽
17 14. 22.10.11 124 3 20쪽
16 13.(2) 22.10.09 139 4 13쪽
15 13.(1) 22.10.08 167 4 13쪽
14 12.(2) 22.10.08 192 4 14쪽
13 12.(1) +3 22.10.07 236 3 15쪽
12 11. 22.10.07 257 4 27쪽
11 10. 22.10.04 277 7 16쪽
10 9. 22.10.03 285 8 12쪽
9 8. 22.10.02 331 7 17쪽
8 7. +2 22.10.02 385 9 22쪽
7 6. 22.10.01 429 10 19쪽
6 5. 22.09.30 535 9 18쪽
5 4. +2 22.09.28 718 1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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