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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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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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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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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쪽

220

DUMMY

리아는 냉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따스하게 미소를 지어냈다.



“저는 양다리 걸치는 분은 좀 별로네요. 용납하지도 않을 거고요. 그러니 잘 생각하세요. 오대신이 강림하는 거라구요? 괜히 절 섬기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은 싫잖아요?”


언뜻 상냥해 보이면서도 재촉하듯 퇴로를 차단한 회심의 말이었다. 아쉬움이 남아 있다면 결코 쉽사리 대답하진 못하리라. 무조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분명 그러하건만······



“당연히 이스피리아 님을 선택할 겁니다만?”


레비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극히 당연하다는 태도로, 어째서 묻는 것인지조차 모르는 듯한 반응이었다.



“자, 잠깐. 제대로 이해하셨나요?! 오대신―― 창조신들이라고요? 그들이 강림하는 거라구요!”

“물론 창조신들은 감히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거룩하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스피리아 님이 뒤처진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왜소한 인간으로 태어나 창조신들과 나란히 서신 점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선택에 망설임이 생기지 않을 만큼.”

“전혀 나란히 서지 않았는데요······.”


직접 대면했으니 안다. 루시아스의 그 끝이 없는 신력에 비하면 확실히 어림도 없다. 겨우 발밑 정도를 간신히 따라잡은 정도에 불과하다.


더불어 무엇인지조차 모를 그들의 권능까지 생각해 보면······ 암만 좋게 쳐줘도 옆에 섰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레비아의 안에서는 이미 확정된 모양이었다. 전혀 들어먹질 않는 것을 넘어, 겸손하다면서 존경의 눈빛이 돌아온다.


모든 게 마음에는 안 들지만, 결과는 났다. 레비아, 그녀는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내심 바랬었던 결과가 아니라 기분마저 나빠진다. 그렇지만 레비아의 행동에선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섬긴다는 것은 진심으로, 아마 무언가를 시킨다면 바로 시행할 거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의문도 없이.


‘한 번 정한 걸 바꾸긴 싫지만 좀······.’


치직――


일렁거리는 시야. 여느 때보다도 압도적으로 선명한 시야에 비치는 건 하늘을 통째로 가리는 거대한 마물형의 고래. 그 고래가 지상을 향해 포격을 날리고 있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마력이 담긴 일격들로, 지상은 금세 초토화가 되어간다.


리아――나――는 그 광경을 현장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피해는 없다. 은빛이 선명한 보호막을 주변에 두르는 것만으로 모든 포격을 막아냈다. 허리에 팔을 올린 모습에서는 여유로움마저 있었다.



“구태여 다 때려 부수는 신경 머리라니······. 이젠 별 미친 순교자가 다 꼬이는군. 노리는 건 여일 텐데 말이야.”


제법 성숙한 목소리로 리아――나――는 질색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평온한 목소리와는 달리 제법 화가 난 상태였다. 마력이 격발이라도 한 듯 크게 요동친다.


정말 언제 폭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이윽고 움직였다.


곧장 시간이 멈춘다. 세계는 오직 적과 청색만이 남았다. 그리고 이내······ 세상은 새하얗게 변했다.


마치 하얀 캔버스 내지는 핵폭탄이라도 터진 듯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또렷하였고, 리아――나――는 하늘을 싸늘하게 노려봤다.



“이만 퇴장하거라, 신에게 놀아난 불쌍한 자여. 이 여가 바라는 세상에 네가 있을 무대는 없다.”


살짝 연민이 담긴 말을 끝으로 시야가 롤백 됐다.


결과까지 전부 못 봐서 아쉽다. 그렇지만 태연자약한 태도로 짐작건대 어찌 됐을지 너무 뻔했다.


‘음음. 백의 세계로 진입하는 게 굉장히 깔끔했지. 마력의 움직임도······. 다른 미래의 나도 제법이야.’


평소 자주 있었던 일이기는 했지만, 오늘은 한층 선명했다. 덕분에 많은 참고가 됐다.


솔직히 꽤 감탄했다. 암만 같은 자신이라 할지라도 분명 여러 조건이 달랐을 텐데. 잘도 저 경지까지 올라갔다. 오히려 어느 부분에서는 지금의 리아보다도 훨씬 세련되기도 했다.



“그나저나 묘한 인연이로군. 아니, 필연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좀 안타깝기도 하네. 누군가를 섬기려는 그 삶의 방식이······. 각자의 성향을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 권리는 없지만서도.”


어깨를 으쓱인 리아는 뒤를 돌아봤다.


이번에도 곧장 이변을 알아차린 에르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에르, 결계 좀 풀어 줄래요?”

“이제 된 거야?”

“네.”


리아는 안심하게끔 방긋방긋 웃었다.


걱정이 떠나가지 않던 에르였지만 눈을 깜빡이고는 [차원단절]을 해제했다.


모습이 드러나고,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다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어찌 결론이 났는지 궁금하다는 눈치다.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루데릭과, 그 옆에서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세스도 관심 없는 척하나 빤히 본다.


기분은 알겠지만 먼저 할 일이 있다.


‘미리 끼어들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 주길 잘했네.’


현명했었다고 생각하며 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비아 씨, 따라오세요.”

“예!”


레비아는 아무 의심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그것을 보며 리아는 큼지막하게 난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밖으로 사뿐히 뛰어내렸다. 꽤 예의 없는 짓이지만 어쩌랴. 집을 박살 낼 수도 없는 노릇인데.


리아는 소리도 없이 따라 내려선 에르에게 말했다.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게 해주세요.”

“신이라도 말이지?”


단박에 하고픈 말을 알아준다. 더불어 무슨 일을 하려는지도 짐작한 듯하다.



“맡길게요.”

“응. 여파는 신경 쓰지 마.”


한껏 걱정하면서도 근심을 덜어주듯 응원해 준다.


그 자상함에 리아의 입꼬리는 살며시 호를 그렸다.


에르라면 괜찮을 거다. 정말 오대신―― 운명의 신이 끼어들어도 간접적이라면 거뜬할 것이다. 직접 강림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버는 것 정도야 간단할 테니 걱정도 없다.


너무 든든하다. 이미 남편이지만 재차 반할 멋짐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시작해 볼까?’

『주의. 개방으로 인한 데미지가 축적되어 있음.』


어조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어딘가 아이의 말은 단호했다. 그만큼 기분에 맡긴 막무가내식 개방이 상상 이상의 부담이었나 보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재차 개방만 안 하면 될 뿐이 아닌가.



‘내가 뭘 할지 알잖니. 아마 큰 부담은 아닐 거라 봤는데······ 혹시 내 생각 이상이니?’

『······.』

‘헤~ 굉장하네. 다른 미래의 나―― 하얀 악몽은. 설마 신력을 다루는 수준일 줄이야.’


감탄하는 가운데, 아이가 “푸우.”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거의 안 들릴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거기에 담긴 무겁고 지친 감정을 느낀 리아는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저, 저기――’

『――수락. 현 시간부로 하얀 악몽을 한정 현현함. 시퀀스 개시.』


급작스러운 말에 벙졌지만, 리아는 이내 미소를 그렸다.



‘고마워.’


집중하고 있는지 아이에게서 대답은 없다.


그렇게 바람대로 하얀 악몽을 재현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어 갔다. 정확히 무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머릿속이 바쁘다.


다른 미래의 이스피리아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은 세스에게 계승하고 있다는 소릴 듣고 짐작하고 있었다. 경험과 기술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그 미래의 이스피리아를 모른다면 불가능한 일일 테니 말이다.


더불어 이것을 아이가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도 짐작했었다.


그 결과물이 넘버즈다. 넘버즈는 전원이 만든 자신조차 모르는 여러 지식이 함양된 초고스펙이다. 이것들은 전부 아이의 작품으로, 뭔지도 모를 계승 시스템을 다룬다는 건 자명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당초 아이의 탄생 배경부터가 제어를 위함이었으니. 거기에 더해 본인을 중앙관리시스템이라고 소개했었고.


다만, 여전히 계승 시스템이 미궁 속이다. 그게 없었더라면 제아무리 다룰 수 있었다고 한들, 내용물이 비었으니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을 거다.


당최 어느 이스피리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지······.


‘그 정수라 할 수 있는 혜택을 내가 받는 건 좋지만······, 의도를 모르니 영 찝찝하네.’


지금도 그 혜택을 적극 이용하면서 할 소리가 아니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신경 쓰이는 건 쓰이는 거다.



『알림. 전 프로세스 올 그린. 한정 현현 스탠바이.』

‘오. 금방이네. 나는 가만히 있으면 되려나? 지난번처럼 의식이 날아가거나 하진 않니? 뭐어······, 기억만 남아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


아이는 침묵했다. 역시 정곡이었나 보다.


세인트리안 때의 폭주는 폭주라고 하기에는 뭔가 침착했던데다 길었었다. 인디아도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했었고.


상식적으로도 의식이 날아간 사람이 어찌 움직이기나 하겠는가. 운석을 떨군다거나 할 일은 더더욱 없고.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유추가 됐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움직인 것이라고······.


넘버즈 때와 같은 거다. 다만 소프트웨어를 이쪽 몸에 설치한 것일 뿐.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스피리아 자인 디바오러······. 당최 무슨 연유로 세인트리안의 중책까지 맡게 됐는지 모를 그녀였을 것이다. 어딘가 느긋했던 광경을 보노라면 백방.



‘아아. 딱히 탓하려는 건 아니란다? 그땐 머리에 피가 많이 몰렸었잖니? 가만히 놔뒀으면 나도 그렇고, 주변도 큰일 났겠지. 그러니 막아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

‘진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그보다······ 난 잠시 잠들면 되려나? 같이 의식이 있기에는 서로 어색할 것도 같은데.’

『긍정.』

‘음. 직관이 아닌 건 좀 아쉽지만 제대로 기억이 남는다면야.’


저번처럼 일부러 기억에 구멍을 내지 말라는 뉘앙스로 은근슬쩍 말해두었다.


물론 아이는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육체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다른 미래와 연관 되는 걸 싫어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키지 않음에도 혹시 몰라 밑밥을 깔아두었다.


막말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구태여 이런 짓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뻘짓이 될 뿐이니까.



『프로세스 가동. 카운트다운 10, 9······』


평생에 이런 맥아리 없는 카운트다운은 처음 듣는다. 목소리 자체는 변함없지만 내키지 않아 하는 기분이 거침없이 흘러 들어온다.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리아는 멈출 마음이 없었다.


그만큼 보고 싶었다. 아까의―― 냉혹하면서도 아름답게 다듬어진 전투태세 이후의 장면이.


‘자아. 황제 씨가 그리도 사모하는 자의 실력 좀 볼까?’


입꼬리를 올리며 리아는 눈을 감았다.



『3, 2, 1. 마스터―― 이스피리아의 침묵을 확인. 개체명, 하얀 악몽을 한정 현현합니다.』


머릿속에서 공허한 울림이 퍼지고, 리아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밝다.


뭔가 싶더니 빛이다. 벌어지는 눈가의 틈으로 그것이 세차게 들어온다.


별로 그다지 강하지도 않은 빛이다. 지독하게 내리쬐는 땡볕에 비하면 너무나도 평범한 빛이다. 내려오는 각도와 기분 좋은 스산함은 초겨울 녘의 그것이었다.


실로 오랜만이다. 너무 오랜만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찡그렸다.


습기를 머금은, 제법 쌀쌀하면서도 청정한 공기가 볼 끝을 스쳐 지나간다. 예민한 감각은 지면의 모래와 자갈들의 감촉을 더듬는다. 저 멀리 풍겨오는 불결한 냄새가 화룡점정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너무나도 완벽하다.


깊은 만족감과 느낌과 동시에 마침내 풍경이 보인다······.


머리가 어지러이 복잡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그리운 풍경들을 눈에 넣었다.


――아아. 실로 아름답다.


넋을 놓고 무아지경으로 있어 본지가 언제였는지······. 맘 편히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은 도대체 언제였을지······.


이토록 틈을 내보인 건 결심한 이래로 처음이다.



“역시나 세계는 아름답도다.”


흔해빠진 시골의 하찮은 풍경마저도 그러하다. 직접 두 다리로 서서 바라보면 그 웅장함에 인간은 압도되고 만다.


진한 감동의 물결이 전신을 훑는다.


이것에 취해 세계를 잠시 더 지켜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만도 없다는 점이 몹시 짜증 나게 했다.


미간을 모은 리아는 허리에 한 손을 얹었다.



“여에게 생소한 정보들이 주입됐다. 이 기묘한 현상과 더불어, 전부 네년의 짓이렷다?”

『그렇습니다, 하얀 악몽이라 불린 이스피리아.』

“좋은 배짱이로구나. 이 여가 누군지 알면서도 교보재 따위로 취급하다니.”

『당신에게 거부권은 없습니다.』

“호오······.”


조금 위협해 줄 생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채 끌어올리기도 전에 마력의 제어권을 빼앗겼다.


아니, 정확히는 강탈당한 느낌이다.



“그렇군······. 육체의 제어권은 지금의 여―― 리아, 네년, 여의 순이라는 게냐?”

『틀렸습니다. 전체적인 육체의 제어권은 제가 1순위, 마스터가 2순위입니다.』

“······뭐?”

『제가 1순위, 마스터가 2순위라고 했습니다.』

“정신이 나간 것이더냐······? 제 육체의 제어권을 타인에게 넘긴다고?”


아이라는 이름의 이 자가 마법인 것도, 필요로 인해 만들었다는 것도 주어진 정보를 통해 알았다. 기타 다른 정보들도.


그렇지만 정도가 있지 않은가. 어찌 육체를 넘겨줄 수 있는 것인지······.


이건 무모한 것이다. 대담한 게 아니다. 진짜 이런 일은 어디에서도 못 들어봤다. 웬만큼 미친 자들을 다 만나봤다고 자부함에도.



“리아는 여간내기가 아닌가 보군. 진정 감탄했노라.”

『당신의 줏대 따위로 평가당할 마스터가 아닙니다.』

“뭐, 뭐. 그리 성내지 말거라. 여는 순수하게 칭송하는 것이다. 비꼼이 아니니라.”

『······.』


입을 다문 아이에게서 놀라는 듯한 감정이 전해져온다. 예상외로 화는 금방 풀린 모양이다.



“왜 그러느냐?”

『의외여서 그렇습니다.』

“의외? ······아아. 여가 의식을 찾는 순간 격정에 휩싸일 줄 알았느냐?”


대답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의식을 통해 그렇다고 하는 기분이 전해진다.


무리도 아니었다. 반대였다면 완전히 똑같은 걱정했을 터이니. 그 정도로 최후가 별로였다.



“여는 패했다. 제아무리 상대가 신이었다 한들 변명은 추할 따름이노라.”

『아무런 원한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리가. 원통하고 원통하도다. 저기 쳐다보는 루시아스에겐 부아가 치밀고, 배알마저 꼴리느니라. 하나, 여의 패도를 기억하는 이도 없이 공허할 따름이다. 지금의 여는 꿈이 깨진 한낱 계집에 불과하노라.”


그리 말하면서 리아는 하늘을 노려봤다.


정말 썩 유쾌하지 않다. 다른 세상이 되어서도 신의 기척 따위나 느끼고. 하물며 이젠 루시아스다. 무수히 많은 미래에서 얼마큼의 업을 쌓은 것인지 잘도 여러 신들의 관심을 받는다.



“지르크니스······. 그놈은 여전하려나······?”

『······.』


그저 중얼거렸을 뿐이지만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무신, 지르크니스······. 그놈을 떠올리기만 해도 열불이 터진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다고 하는, 지구에서의 속담이 여기에 딱 어울렸다. 정말 괜한 순간에 끼어들어서 모든 것을 망쳐놨다.


그놈만 없었더라면 얼마가 걸리든 반드시 꿈이 이루어졌을 텐데······.



“훗. 우습군. 방금까지 개의치 않는다고 했거늘······.”

『······.』

“인상 펴거라. 어찌 됐든 여의 맹우지 않느냐. 그렇다면 언제, 어느 때건 당당히 가슴을 펴라. 그리고 오만하게 웃어라. 추태 따윈 보이는 게 아니다.”

『역시 당신도 이스피리아군요······. 하지만 하나 정정합니다. 제 마스터는 지금의 이스피리아뿐입니다.』

“결국 그게 그거 아니겠느냐. 잠시라지만 잘 부탁하마.”


‘쯧!’하며, 아이가 혀를 찼다. 꽤 못마땅한가 보다.


아마 상당히 드문 행동이지 싶다. 묘하게 어색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달리 말은 없었고, 리아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상태는 최상······ 같다.


받은 정보에 의하면 꽤 상태가 나쁘다고 하던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몸에 가해지는 부하가 아예 없다. 흐르는 마력의 길도 뻥뻥 잘만 뚫려있다.


억지로 나쁜 점을 꼽자면, 마력의 밀도가 너무 짙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신력이 너무나도 잘 안정되어 있다. 써먹기 불편하게.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면 알아서 옅어진다.


필시 보조를 해주는 것이겠지. 덕분에 뭐 하나 거슬릴 만한 게 없긴 하다.



“만전이 아님에도 여 정도는 담아낸다는 것이더냐? 과연 우리의 모든 게 집약된 완성체······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다만, 육체가 이만한 수준이면서 정작 본인의 수준이 떨어진다니.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사람이 걷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류로, 끊임없는 반복이 아닌, 힘을 얻는 과정에서 이미 통달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걸 못한 게 되레 이상하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날지도 못하는 데다 여러모로 불안정하군. 단기간으로 모든 과정을 넘어선 폐해인가? 뭐, 다 뜻이 있었겠지. 이것만으로도 적수 따윈 손에 꼽을 테고.”


아무 마음이 안 든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뭐가 됐든 이 힘을 얻은 배경에는 앞서 사그라진 이스피리아들이 존재한 덕분이니까. 세기도 힘든 많은 수가······.


더불어 자신마저도 그 밑거름이라 생각한다면······ 조금 언짢은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쾌하다.


지식을 지녔어도 갈고 닦지 않는다면 그저 무가치한 것. 여기까지 혼신을 다해 아득바득 기어 온 그 노력에 격하게 칭송해 주고 싶다.



“훌륭하도다, 리아여. 그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 여의 심금을 울렸노라. 하여, 너의 오만한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마. 똑똑히 괄목하여 확실히 본인의 것으로 만들도록!”


리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길게 숨을 토해냈다.


이윽고―― 천천히 뜨는 눈꺼풀과 함께 세계는 모든 색을 잃고 빛만이 발광했다.



“실로 기구한 운명이로구나, 어리석은 순교자여. 그러나 모든 건 본인의 선택. 여는 존중하도록 하마. 네 무책임한 선택을.”


리아는 의식을 전환했다.


아까의 나름 친근한 리아는 이제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세계를 차지했었던 패왕이다.



“자! 기뻐하라, 세계여! 이 여가 돌아왔도다!”


외침과 함께 꽁꽁 싸맨 리아의 마력이 해방됐다. 거대한 흐름을 만들며 맥동하는 마력은 그 압력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납 주머니를 떼어낸 듯 상쾌하다.


그러한 리아의 기분을 살피는 것처럼, 대기의 마력이 서로 공명하여 부르르 떨린다. 흡사 두려워하는 듯한 그 떨림은 전염이라도 되는 양 전파됐다. 끝없이 넓게, 넓게······. 최선을 다해 패왕의 귀환을 알렸다.





황제, 칼윈의 집무실은 천연의 요새와도 같이 황성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그곳까지 출입할 수 있는 이도 당연히 적어, 선택받은 극소수만이 허락받았다.


그 선택받은 자 중에서 오늘은 둘이 출입했다. 한 명은 재상인 샤라즈 공작. 다른 한 명은 3대 가문의 일각인 프라바이드 공작이었다.


이들은 한동안 황제와 함께 공무를 처리하느라 진땀을 쏟았다. 그러나 정작 황제는 느긋했다.


함께한다고는 했으나, 본래 공무는 황제 혼자서 본다. 두 공작은 그저 거드는 것이 전부로, 사실 진짜 찾아온 목적은 본인 영지의 문제나 정책에 관한 조언을 얻기 위함이었다.


맨입으로 그런 걸 어찌 듣겠는가. 그래서 불필요함에도―― 되려 황제의 방해임에도 거드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다.


황제는 딱히 나무라거나 귀찮아하지 않았다. 3대 가문은 제각각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엠페라도 황가는 정치에 특화된 가문. 당연히 정치에는 밝고 훤하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분야로 가면 거의 문외한과 다름없다. 다른 두 가문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역할 이외에는 다소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칼윈은 달랐다. 그는 황제 중의 황제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수긍하는 법도 없이 다양한 분야를 탐구, 널리 깨우치기에 이른다. 이는 역대 황제 중에서도 독보적. 비슷하게나마 견줄 수 있는 황제 따윈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압도적인 능력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칼윈은 제국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마법의 멸시를 없애기로 했다. 시작은 재상이었다. 그곳에 마법성 장관인 샤라즈 공작을 앉힘으로써 본인의 뜻을 공고히 밝혔다.


당연히 반발은 없었다. 황제가 직접 지명한 것이거늘 어찌 그러겠는가.


그렇게 칼윈은 제국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마법의 멸시를 조금씩 옅어지도록 했다.


여태 제국을 강고하게 한 것은 틀림없이 무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여 훨씬 높은 효율을 얻고, 이를 배경으로 타국에 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가치가 변하기 마련이다.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마법은 필수 불가결이었다. 언제까지고 멸시한다면 제국은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칼윈은 결단을 내려 본인이 짊어지기로 했다. 후대를 위해, 더 나은 제국을 위해······.


때마침 이스피리아가 타이밍 좋게 거들어줬다.


투기장에서의 일이다. [유성천공], 흡사 마법과도 다름없던 그 일격이 생각을 달리하게 만든 것이다. 극한에 달한 무예는 마법과도 같다고.


더욱이 예상 밖의 인물, 거들떠보지도 않은 폴 파울로가 손을 보태주기까지 했다. 본의가 아니든 그가 펼친 무신류와 검신류가 조화된 무예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심어준 것이다.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나.


처음은 모두가 같은 꿈이었다.


강해진다······.


오직 하나뿐이었던 소망. 대립이니 멸시니, 이 얼마나 하찮은 짓이란 말인가. 하물며 마법인들 어떠랴. 방향성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거늘······.


기회를 보는 것에 능숙한 황제는 그러한 풍문을 슬쩍 흘렸다.


그리고 작전은 성공했다. 전사의 기조가 강한 제국이다 보니 금세 홀려버렸다.


재능있는 자를 시샘할 틈은 없다. 마법에 심취한들 비방할 가치도 없다. 그럴 시간에 본인을 단련하는 편이 이롭다. 한눈파는 사이 자신은 도태되고 다른 자들은 앞서 나간다.


이런 풍조에 휩싸인 제국은 현재 온 영토가 단련 열풍이다. 각 문파를 비롯, 단련에 매진하는 이들을 칭송하며 본인들도 정진하였다. 근처 음식점이나 점포에서는 이들을 위한 요리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본인도 곁들이로 가르침을 얻기도 한다.


건국 이래 이만큼 국가가 건실해지기는 최초다. 이대로만 간다면 제국은 분명 삼국을 넘어, 세인트리안보다도 부강해질 것이 확실했다.


다만······ 너무 건실한 나머지 다른 일에 소홀해졌다.


여러 문제가 산재했지만, 가장 큰 건은 식량이다.


사람은 힘을 쓰는 만큼 많이 먹는다. 세상의 진리이자 법칙이다. 마력레벨이 높아져 강해진다면야 적어지겠지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의미 없는 가정이다.


즉, 단련 열풍이 분 제국의 식량 소비량은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많이 필요한 식량의 생산량이 적어졌다. 원인은 역시나 단련으로, 농부들에게도 퍼진 단련의 열풍은 그들의 작업 시간을 줄게 만들었다.


본디 작물은 쏟은 시간만큼 자라는 법. 효율 높게 재배한다면야 다르겠지만 제국에 그러한 기술은 아직 없다.


당분간은 비축분이 있으니 버틸 수 있지만, 이대로 흘러가면 제국은 기근으로 멸망한다.


전조는 훨씬 전부터 있었기에 진작부터 준비를 해오긴 했다. 그렇지만 시기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새롭게 농경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성과를 보기에는 시일이 걸린다.


두 공작이 찾아온 연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악화하여 가는 식량의 축적량. 국토 전역에 발생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황제의 힘이 없고서는 불가능했다.


이에 황제는 간단하게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우리가 없으면 다른 곳에서 가져오면 된다. 뭘 어렵게 고민하나? 바로 옆이 삼국 최대의 식량 생산지이거늘.”


샤라즈와 프라바이드 공작의 진땀은 이 대답이 원인이었다.


말은 쉽다.


중립적인 관계를 취하고는 있으나 엄연히 공국은 적국이다. 거래가 성사되려면 무수히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양보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곳에 식량을 요청하다니 가당키나 하겠는가.



“차라리 농민들에게 특별 포상금을 주어 농경에 집중하도록 하심이 어떠십니까?”


샤라즈 공작의 진언에 프라바이드 공작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지만 칼윈은 단호했다.



“그게 더 손해다. 알고 있을 텐데? 제국은 현재 유례없는 전황을 맞이했다. 구태여 찬물을 끼얹을 바에, 그 특별 포상금으로 갖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편이 이롭다.”

“하, 하지만······.”

“어차피 열풍이라는 건 언젠가 식기 마련이다. 미래를 위한 지출이라 여겨라.”


두 공작은 고개를 조아렸다.


황제의 안목은 의심의 여지조차 없다. 다른 미래를 떠올린 뒤로는 등에 날개마저 단 듯하다.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근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둘에겐 없었다.



“그리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이야기를 해두었으니. ······슬슬 도착할 때이려나?”

“······예?”


무슨 소리인가 싶어 샤라즈 공작이 되묻는 순간 문이 두드려졌다.



“폐하,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알고 있었냐며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황제는 평탄하게 말했다.



“누가 왔지?”

“소베르비아 루 몬테르 공주입니다.”

“고, 공주가 직접?!”

“역시나 지성의 마물이로군. 절대 흐름을 놓치는 법이 없어. 어쩌면 그 일이 벌어진 순간에 현 상황을 그렸을지도······.”


눈을 부릅뜬 신하들과는 대비되는, 즐거운 모습으로 칼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심이 있다면 따라오도록. 허가한다.”

“동행하겠습니다.”


나라의 중대사가 결정되는 논의에 빠질 순 없는 노릇이다. 샤라즈 공작은 곧장 대답과 함께 옆을 봤다. 그 시선을 받은 프라바이드 공작도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는 그리 멀지 않은 귀빈용 응접실로 안내했다.



“어머. 우르르 오셨네요?”


우아한 자태로 차를 마시던 그녀, 소베르비아가 새삼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 뒤에 대기한, 눈에 익은 집사는 정중히 묵례로 인사를 건넸다.


그 외에 딱히 인사도 없이 칼윈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두 공작은 신하로서 뒤에 대기했다.



“별일이어요. 제국의 3대 귀족이 다 함께 있었다니.”

“너라면 이미 다 예측했을 텐데?”

“그건 그런데······”


소베르비아는 말을 흐리면서 대기한 두 공작을 한 번씩 쳐다봤다.



“조금 빨라요.”

“······오차는?”

“400분쯤. 제 예상으로는 저와의 교섭이 끝난 뒤에 두 분이 도착. 그 후 모든 일이 끝났음을 알고 살짝 후련해하시는 것이었죠.”

“짐작되는 원인과 목적은?”

“아직은 모르겠네요. 정보가 부족해요.”

“유의미한 오차라 보나?”

“이것만 보면 전혀. 그렇지만 비슷한 경우가 몇몇 생기고 있어요. 근래 들어 갑자기.”

“누군가의 수작이겠군······.”

“아마 그렇겠죠.”

“네 눈을 피해 가다니. 필시 보통 놈은 아니겠지.”

“가능성은 넓게 보는 게 좋아요. 꼭 도플갱어다 확정하지 마시길.”

“알았다.”


둘은 너무나도 익숙한 듯이 대화를 나누었다. 겉으로 드러난 태도에서도 그러했지만 칼윈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미래에서 소베르비아와 공조하며 의견을 나눈 적 따윈 흔했으니.


소베르비아도 그녀 나름대로 칼윈의 생각을 읽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레 말을 받았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이러한 다른 미래의 기억이 없는 샤라즈와 프라바이드 공작은 무척이나 생소할 따름이었다. 얼떨떨할 정도로······.



“대충 인사도 했으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잔을 드는 그녀에게 칼윈은 그러라는 뜻으로 턱짓했다.



“식료품을 유통해 달라고······ 그것도 많이.”

“공문에 써놓은 그대로다. 약 2년간, 매달 제국에서 소비하는 식량의 20%를 공국에서 충당하고 싶다.”

“말은 간단하지만 방대한 양이예요.”

“공국이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닐 텐데? 금액이라면 염려 말도록.”

“이 나의―― 공국의 재정은 넉넉해요. 돈 따윈 썩어 넘치니까 괜한 탐색은 그만하시죠?”


무례를 넘어서는 직설적인 발언에 두 공작은 움찔했다.


하지만 칼윈에게는 익숙한 일.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진정시키고는 눈매를 가늘게 했다.


소베르비아는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



“원하는 것을 말해 봐라.”

“대금과 더불어, 황제의 칙허인을 주세요.”

“무엇에 쓰려고?”

“경계는 사양할게요. 그냥 조합을 하나 열려는 것뿐이니까. 새로운 상인 조합은 아시죠?”

“아! 하얀 악몽의?!”

“썩은 구시대의 고름은 슬슬 짜내야 하지 않겠어요?”


정말 진심으로 사모하다 못해 경외해 마지않는 그녀가 언급되자 칼윈의 엉덩이가 들떴다.


하지만 황제로서 중요 사안을 쉬이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 침착하니 가라앉히고선 소베르비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뭘 꾸미는 게냐?”

“실례네요. 저는 단순히 리아가 하려는 게 뭔지, 그 끝이 보고 싶을 뿐이어요. 그런 게 아니라면 이 내가 자원봉사 따위를 하겠나요?”

“그건······ 확실히 제법 구미가 당기는군······.”

“그렇죠?”


부채를 내려놓은 소베르비아는 즐거이 웃으면서 찻잔을 들었다.


칼윈도 굳은 얼굴을 살짝 편히 하고는 소파에 편히 기댔다.



“리아는 기본적으로 인간 사회에 거리를 두려고 하죠. 그런데 정작 행동은 반대―― 깊이 관련되다 못해, 본인이 없으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게끔 조정하고 있어요. 천천히 차근차근, 그러면서도 가속을 잃지 않고.”

“실제로 행하기에는 가히 신의 안목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실로 경이롭지.”

“네. 솔직히 저조차도 이 기간에 이만한 규모를 완벽히 굴리기란 버거워요.”

“그야 그렇겠지. 결국 우린 비루한 인간에 지나지 않으니.”

“하지만 리아는 해냈죠.”

“당연하다. 그녀는 다른 선상에 있는 존재이니. 그러나 전부 관리하기에는 암만 그녀라 해도 귀찮다.”

“대리인······ 말이군요.”

“소식은 들었다.”


방학이라 돌아온 헤라드와 레스에게서였다. 드물게 직접 보고를 올리겠다고 하여 경악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칼윈은 바로 납득했다. 그녀가 했다면 무엇이라도 믿을 수 있었기에. 만들어진 그들이 자신들을 사도라 칭하는 건 전혀 놀랍지도 않았다.



“그녀의 작품이니 경탄할 능력을 지녔겠지만, 믿을 만은 한 것인가?”

“배신할 염려는 없어요. 다들 리아를 숭배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폐하보다도 더.”

“흐음. 한번 만나보고 싶구먼······.”

“칙허인을 준다면 그럴 수 있어요. 지점을 차린다면 조합장으로서 필히 이곳에 와야 하니 말이죠.”


능글맞게 눈웃음치는 소베르비아.


본인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한 칼윈의 굳건한 눈썹이 움찔거렸다.


아니꼽다. 의기양양한 꼴이 짜증을 유발한다. 그렇지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소베르비아도 그걸 알기에 도발적으로 구는 것이기도 했다.


살짝 인상을 구긴 칼윈은 [수납]의 마도구를 발동하여, 미리 준비한 계약서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을 받아 든 소베르비아는 대충 훑어봤다.



“준비가 빠르시어요. 착실하게 공란까지 놔두고. 아니, 급하다고 해야 할까요?”

“시답잖은 소린 됐다.”

“뭐······ 이만하면 합격점이긴 하네요. 기왕이면 전부 파악하셨으면 했지만. 일일이 쓰려면 손이 아프잖아요?”

“무리인 것을 바라지 마라. 인간이 네 머릿속을 어찌 알 수 있다고.”

“어머. 저도 인간인데요?”

“아직 인간이었나? 이거 미안하군. 미처 몰랐다.”


소베르비아의 얼굴이 뚱해졌다.


그것을 조금 상쾌하게 여기며 칼윈은 펜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서슴없이 공란에 내용을 채워 넣었다. 이스피리아가 세운 상인 조합의 설립을 승인한다고.


나라 간의 이행되는 계약서는 대필자를 통해 깔끔히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상식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예외는 있어, 일부 급한 안건에 한해서는 지금과 같이 즉석에서 작성되기도 한다.


물론 이번 건은 긴급을 요하는 건 아니었다. 식량이 모자란다는 사실은 확정적이지만 당장 오늘내일할 정도는 결코 아니니까. 그럼에도 이리 계약서를 작성한 연유는 그저 바빴기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는 게 영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까지 싫은 일인가 싶어도 둘에게는 제법 진지한 문제였다.


어느 부분이 싫은지는 서로 다르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는 소베르비아도 의견을 같이하는바. 기분이 상해 혀를 차면서도 깔끔한 필체로 계약서에 내용을 써넣었다.


둘은 서로의 계약서를 바꿔 들었다.



“흠······.”

“불만인가요?”

“그럴 리가. 하지만 너라면 은근슬쩍 두루뭉술한 내용을 끼워 넣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칼윈은 채워진 공란을 봤다. 거기에는 공정 조합의 설립을 추진한다는 짧고 간결한 문장이 쓰여있다. 다른 의도 따윈 없다. 단순 명료하여 차후 이상한 주문을 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소베르비아라면 이런 순해 빠진 짓을 할 리가 없을 터. 그리 생각했었던 칼윈에겐 예상외였다.



“과욕은 부리지 않는다는 게 저의 신조라서요.”

“어처구니없지만······ 대충 그렇다 치지. 그보다 이번 건은 어떠냐? 정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나?”

“네. 언제 부패할지 모르는 조합이잖아요? 오히려 인간에게는 짐을 던 것과 마찬가지여요.”

“하얀 악몽이 세상의 모든 물류를 관리하는 것과도 다름없지만, 그녀가 변할 리는 없으니 평생 안정적이라는 건가? 그리고 그건 네게도 큰 이득이라는 게냐. 구태여 잔머리를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그런 거죠. 솔직히 물류 쪽 일이 엄청 귀찮잖아요?”

“음······ 좀만 관리에 소홀해지면 금방 부패하고, 정체되어 골치 아파지지.”


소베르비아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질렸다는 듯이 일그러뜨렸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본심이었다. 지성의 마물이라 할 그녀조차도 물류의 관리―― 담당자의 관리는 꽤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그걸 맡아준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되려 하루라도 빨리 모든 물류를 차지할 수 있게 발판을 놓아주는 편이 여러모로 이롭다.


당연히 리아이기에 할 수 있는 짓이다. 다른 자였으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대충 정리는 된 걸까요?”

“식량은 언제 받아볼 수 있지?”

“오기 전에 먼저 출발시켰으니······ 아마 보름이면 받을 거예요. 대금 쪽은요?”

“준비해 뒀다. 돌아가면서 받아두도록. 칙허는 수리해 놓을 터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기존의 조합은요?”

“짐의 문장을 보고도 허튼짓을 하는 놈은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만, 혹여 어리석은 놈이 나온다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지.”

“뭐, 본인 위신이 달린 문제이니 잘하시겠죠.”


얼추 이야기는 끝났다.


양쪽 다 서로 오래 있을 마음은 전무. 용건이 끝났으니 즉각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대기가 부르르 떨린다.


단순히 폭발이나 마법이 착탄 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상당히 신기한 감각에 소베르비아는 즉각 듬직한 가신을 곁눈질로 봤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레딧츠?”

“······.”


레딧츠는 침묵으로 답을 했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그도 이 현상이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이 현상을 아는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폐, 폐하! 서, 설마 이것은?!”


떨리는 샤라즈 공작의 말에 칼윈은 눈을 부릅뜨고는 서둘러 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쾅!


거슬린다는 듯 거칠게 창문을 열어젖힌 칼윈은 멍하니 밖을 쳐다봤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의 대기가―― 마력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아아······. 이 특징적인 마력의 공명······. 그녀다! 하얀 악몽―― 그 패왕이 돌아온 것이야!”


환희하며 칼윈은 창틀에서 더욱 몸을 내밀었다. 흡사 어린아이가 들뜬 모양새로, 차마 부동제라고 불리는 인물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런 칼윈을 샤라즈 공작이 서둘러 만류시켰는데,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


프라바이드 공작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사실 그는 다른 미래를 전혀 떠올리지 못한 자로, 하얀 악몽이나 여러 이야기를 조금 듣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함께 말리면서도 처음 보는 황제의 격앙된 반응이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혼잡한 장내를 보며 소베르비아는 조용히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


‘리아, 그 계집애는 이번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 하지만 마국의 영토에서라······. 어쩌면 이야기의 규모가 예상보다도 훨씬 클지도 모르겠어.’


안 그래도 다른 미래에서 용왕을―― 신의 대리자를 쓰러뜨렸다는 소리를 공왕에게 들었었다.


그때 온갖 호들갑과 유난을 떠는 그란을 한심하게 봤는데, 우습게 볼 일이 아닌 거 같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이만한 현상을 일으킬 정도라면 말이지······.”


자그마하게 속삭인 소베르비아는 밑을 내려다봤다. 살살 떨리는 자신의 손을······. 자그마한 직감을 느끼며 한동안 시선을 고정했다.










이변을 가장 먼저 눈치챈 건 단연 폴스였다. 그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사도답게 폴스는 주인의 의식이 전환되는 순간에 즉시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만이 유일하게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다. 거의 동시에 눈치챈 자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바로 세스와 루데릭이었다. 둘은 이변을 느끼자마자 곧장 리아가 나간 창문을 넘어섰다.



“어이, 찬크에르!”

“뭐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보는 그대로다.”


루데릭은 눈을 가늘게 했다.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한 어투지만 찬크에르가 무척이나 염려하고 있음을 꿰뚫어 본 것이다.



“많이 위험하냐?”

“아니. 그런 요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러면 리아 아가씨 자체의 문제라는 거로군.”


찬크에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반응을 헤아린 루데릭은 거칠게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뭘 하는 거야. 사람이 걱정하는 줄 알면서.”


막상 불평하긴 했으나 루데릭은 그리 화나진 않았다. 리아는 바보 같지만 중요한 일에서는 단호하며 담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분명 필요에 의한 것이겠지.


그리 생각하면서 루데릭은 물었다.



“그래서 쟤는 뭐야? 우리가 아는 리아가 아니잖아.”

“용케 알아봤군.”

“분위기랑 기백이 다르잖냐. 오라버니가 되어서 그것도 모를까.”

“확실히······. 평소 무해한 느낌의 아가씨와 달리 엄청 묵직해. 어디서 이름 좀 날린 녀석 같달까?”


세스가 상당한 분석과 함께 동의한 때였다. 리아에게서 뻗어 나온 압력이 일행을 덮쳤다.


물리적으로 돌풍마저 몰아치는, 용서 없는 압력은 평범한 자가 감히 버틸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베시온 곳곳에서 오거들의 신음이 울려 퍼졌다.


루데릭도 예외는 아니어서 저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



“괜찮아, 도련님?”


세스가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그냥 막아선 것은 아닌지 루데릭은 상당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힘들면 저기 가서 쉬는 게 어때?”


손가락을 들어 세스는 아까 넘어온 창가 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폴스가 빠르게 펼친 보호막이 모두를 지키고 있었다. 정작 지켜지는 이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있지만.



“아, 아니, 괜찮아. 막아줘서 고마워.”

“그래?”


루데릭은 풀린 허리에 단단히 힘을 줬다.


세스는 잠시 염려된다는 듯이 봤지만 이내 시선을 거뒀다. 그도 쭉 루데릭에게 신경을 쓸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시작하는 것이다. 리아가 나서는 전투가.


어째서 전투를 벌이는지는 모른다. 갑자기 리아가 발하는 기세가 흉흉해져 알아차렸을 뿐이다. 하지만 환수와의 전투가 결코 가벼울 리는 없다. 게다가 리아는 의욕이 넘친다.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루데릭은 걱정되어, 세스는 보다 가까이에서 관람하기 위해 황급히 튀어나온 것이었다. 타인에게 신경을 할애할 틈은 없다.


리아―― 리아이면서 리아가 아닌 누군가가 천천히 레비아에게 몸을 돌렸다.


이제 곧 시작한다······.


직감한 세스는 루데릭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거두었다. 어차피 찬크에르가 어마어마한 보호막을 펼쳤다. 절대 다칠 일은 없다.


레비아는 어리둥절해했다. 딱히 긴장감은 없었다. 그저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에 급급했다.


그런 모습에도 자비는 없었다.


밝은 빛의 꼬리를 만들며, 리아는 레비아에게 한순간에 도달하여 깊이 보디블로를 꽂아 넣었다.


쩍――.


리아가 내디딘 땅이 갈라졌다. 그 반동을 고스란히 수용한 레비아는 하늘 저 높이 날아올랐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엄청난 속도로 수직 상승을 하던 레비아는 구름 근처까지 다다르고 나서야 가까스로 멈췄다.


하지만 그 등 뒤에는 리아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ㅈ, 자암――”


늘어지는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레비아의 안면에 리아의 스트레이트가 정면으로 꽂혔다.


펑――!


외부의 충격으로 제어를 잃은 레비아는 소닉붐을 일으키며 저 멀리 날아갔다. 팔다리가 축 처진 그 모습은 흡사 종이 인형과도 같았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됐다.


어떻게든 제동하면 먼저 도착한 리아가 가격―― 변변찮은 반응조차 못 하고 레비아는 다시금 날아갔다. 이따금 멈추지 못하고 추락하기도 했으나, 리아가 무자비하게 발로 차올렸기에 그녀가 땅으로 떨어지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정신없이 이베시온의 상공을 누볐다. 평소처럼. 그저 타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누볐다는 것만이 달랐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활공은 정확히 천 번을 찍고 나서야 끝마쳤다.


여기까지 제대로 목격하는 게 가능했던 존재는 단 넷에 불과했다. 그 외의 자들은 둘의 모습은커녕, 돌연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터진 것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 막 겨우 적청에, 그것도 눈만 간신히 발을 걸친 루데릭도 다르진 않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에 그쳤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레비아는 만신창이였다. 사지가 여기저기 찢겨 너덜거리고, 몸통에도 여러 구멍이 뚫려있다. 의복은 아예 자취를 감춰 처참한 몰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얼굴도 크게 부어오르고 함몰되어 있어, 이국의 아름다운 외모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리아는 그런 모습에 안타까움도 없이 무심히 움켜쥔 레비아의 목에 힘을 담았다.



“흠. 뭘 하는 것이지? 네 저력은 이 정도가 아닐 텐데?”

“커······헉! 어, 어······째서······?”

“호오~? 의문을 품는다고? 여를 섬긴다는 그 맹세는 거짓부렁이었나?”

“거, 거짓이······ 아니······.”

“참이라면 얌전히 처맞거라. 네 녀석은 본래 신의 말에는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느냐? 혹여, 막상 본인이 아프니 새삼 의문이 생긴 것이더냐?”

“그런 게――”

“――아니라면 닥치고 있어라.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겠지만······ 불만이라면 언제라도 덤비도록. 네 자유의사까진 말리거나 하진 않는다.”


말을 마친 리아는 쓰레기를 버리듯 레비아를 위로 던졌다.


스냅을 사용해 가볍게 던지는 것 같았지만 레비아는 간단히 구름을 뚫고 성층권까지 올라갔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는 그녀의 몸 주위로 빛의 분자들이 모여들었다.


리아의 마법―― [광신의 안광]이었다.


하얀 악몽은 대체로 속성에 구애 되지 않고 모든 마법에 능숙했다. 내로라하는 달인과도 견줄 수준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녀만의 고유 마법이 존재하였는데, 그것들은 각각의 속성마다 신의 명칭을 담아 명명되었다.


달리 명칭을 붙인 게 아니라는 듯 그 마법들은 하나 같이 막강했다. 지상에 엄청한 위용을 흩뿌리며, 하얀 악몽의 위용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이었었다.


[광신의 안광]도 그러하다. 초월급의 마법만이 존재하는 빛 속성―― 광신 시리즈의 마법 중에서도 전술급의 마도였다. 그 위력은 10급을 가뿐히 넘어선다.


번쩍――


레비아의 주위로 부유하던 빛이 늘어지는 실루엣을 남기며 안쪽으로 모여들었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빛. 한순간에 덩치를 키운 빛의 덩어리는 금세 밑의 구름마저 밀어내는 거구가 됐다.


오엘문리아에 태양이 강림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태양의 출현을 알리는 듯 [광신의 안광]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존재감을 흩뿌렸다.


지상으로 엄청난 열기가 몰아친다. 한 박자 늦게 몰아치는 폭풍은 굉음과 함께 대지를 찢어발긴다. 생명체들은 여파만으로도 재가 되어 흩날린다. 나무는 바짝 말라 뿌리가 뽑혀 날아가고, 생물체는 종을 가리지 않고 바짝 말린 훈제되어 새까맣게 태워진다.


[광신의 안광]이 떠오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오직 대지만이 용암으로서 간신히 생존할 따름이다.


이만한 천재지변을 무려 단독으로 자행할 수 있는 것이 하얀 악몽이다. 괜히 공포의 권화로서 맹위를 떨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지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용왕. 신화시대부터 이어진 진정한 공포의 권화다. 옛 미래와는 달리, 어떠한 여파도 지상에는 미치지 못하고 막혀 버렸다. 그저 대낮보다 환한 눈부심을 끼치는 것이 전부였다.



“이 광범위한 곳을 모두 감싼단 말인가? 훗. 과연 대단하군. 여파 정도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


만족한 리아는 사그라드는 [광신의 안광]에 시선을 뒀다.


잠시 후 완전히 사라진 빛. 존재 자체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킬 것만 같았던 그곳에는 놀랍게도 한 물체가 남아 있었다.


작가의말

어... 쟤랑 싸우라고요? 제가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라스티아입니다.

다음화도 준비되어 있으니 자세한 인사는 그쪽에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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