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567
추천수 :
42
글자수 :
159,433

작성
23.02.12 20:15
조회
30
추천
1
글자
9쪽

17화. 첫 만남 (1)

DUMMY

앨리스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이정성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의 옆에서 역시 접시에 요리를 담기 시작했다. 이가 그녀를 몇 번 힐끗 쳐다봤지만 눈치를 챈 건 아닌 듯 했다.


“여긴 양고기가 참 부드럽더군요.”


거의 40년 만에 그에게 건 첫마디였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았으나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류의 말들 뿐이었다.


‘지금은 참자, 좀 있으면 기회가 많다.’


“네, 연길에서는 가장 잘한다더군요. 아까 식당 매니저에게 듣기로는 저 연길관 대표가 오늘은 직접 요리를 했다는군요. 그 나이 80이 훨씬도 넘은 사람이 아직도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좋아하던데.”


이정성은 그 맛을 잘 안다는 듯이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그는 서 있는 채 젓가락으로 오리고기를 한점 들더니 입에 넣었다.


“아, 김성룡씨 말씀이신가요?”


앨리스는 옛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어, 당신 혹시 우리 민족이신가요?”


‘우리 민족이냐니? 갑자기 무슨 소리지?’


“아뇨, 저는 한국인이에요.”


급작스레 이가 한 엉뚱한 질문에 그녀는 살짝 당황했다.


“아니, 신기하네요. 그분을 어떻게 아시죠? 연길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데. 저도 은퇴한지 오래되어서 어머니한테 들은 얘긴데요.”


‘아차!’


그 말대로 김성룡은 80년대 초중반쯤에 한참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앨리스, 아니 이경옥은 당연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정성이 한참 성장하던 1990년대에 이는 연길에 없었으니 그 맛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연길에 돌아왔을 때 김은 은퇴한 상태였고.


이경옥이 몇 년 전 국제펜클럽 행사 참석차 서울에 다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한번 대림동 밥집에 점심을 먹으러 들렀을때 그녀는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보따리 장사꾼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자기 스스로 마당발이라던 정이란 성씨의 이 장사꾼은 연길 소식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옛날 유명했던 김성룡까지 말이었다. 이 정가 말로는 김은 그 시점에서 은퇴한지 거의 20여년이나 되었다. 그러니 웬만큼 오래전부터 이 동네에 들락날락거린 한국인이 아니면 김을 아는 사람은 나이 좀 있는 조선족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좀 있으면 뒤집어질 거, 벌써부터 분위기를 이상하게 끌고갈 필요는 없다.


‘내가 또 괜히 아는 체를 했군. 벌써부터.’


“젊었을 적부터 일 때문에 자주 왔다갔다 했어요. 연길은 제 고향이나 다름 없는 곳이에요. 웬만한 곳은 거의 통달했다고 볼 수 있죠. 특히 연길관은 90년대 초부터 올 때마다 항상 들렀던 곳이에요.”


“아, 그때부터 오셨다면 알 수 있겠죠. 하기야 여긴 반도인들도 워낙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서. 그러고 보니 올해 30년이죠. 남조선, 아니 한국과 국교 재개한지. 그때부터 들르셨다면 뭐 알만하겠군요. 아니면 그때 북조선 분 아니신가요?”


“아, 그때는 북조선 맞아요.”


“그러면 뭐 더 일찍부터 왔다갔다 한 분들도 많긴 하죠. 그런데 실례지만 연령대가 어느 정도 실까요?”


“사실 이제야 50은 넘었네요 하하.”


“어휴 정말요? 그 나이 같아보이지 않으신데. 놀랍군요. 제가 아는 사람이 생각나는군요. 연령대가 비슷했는데.”


“선생님은 한국 분은 아니시겠죠?”


“아니 전혀요. 여기가 원래 고향이죠.”


“요 근래는 연길에 안계셨나보죠?”


“어렸을 때는 어머니 일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살았어요. 내몽고였어요.”


“먼데서 사셨군요.”


“멀기만 하나요? 요즘은 거기도 개발을 많이 해서 정주 여건이 개선되었다지만 제가 거주했던 시절은 지금처럼 발전되지 못했어요. 전기도 자주 끊기고 사막 지역에다가 춥기도 하고. 여기가 훨씬 좋죠. 사실 지금도 연길이 아니라 다른데 살고 있지만.”


“아 그러시군요. 어디신가요?”


“심양이죠.”


“먼데서 살고 계시는군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겠는데요.”


“뭐 북경에서 오는 것보다야. 고철(고속철도)이나 항공기로 오면 그만이에요. 직장에서 보조금도 주니까 이동할 때 여건은 나쁘지 않아요. 사는 것도 여기보다는 나아요. 한국과 접하긴 해도 연길은 아직도 발전이 덜 됐죠. 북경은 더 많이 발전했고 호구가 있으면 확실히 혜택이 많은데 뭔가 살아가는데 불편한 구석이 좀 많아요. 심양은 경제 여건도 좋고 북경만큼 이것 저것 제약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편하죠.”


“그래요? 하긴 북경은 당 중앙 행사가 있을 때마다 통제하는게 많죠. 인원 동원에다가 환경 오염 줄이겠다고 주방 기기 사용도 통제하고.”


“잘 아시는군요. 뭐 안전을 위해서 그러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이게 살다 보면 생각없이 편한 게 좀 낫더군요.”


“그런데 뭘 하시길래 심양에? 사업하시나요?”


“아뇨 하하. 스스로 사업 활동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은 안 돼요. 정부 배려로 과학 연구 쪽에 종사하고 있죠. 선생님은요?”


“출판 쪽에 종사하고 있죠.”


“출판이라... 한국 출판사겠네요. 어떤 책을 출판하시죠?”


“뭐 잡지삽니다. 주로 함경북도와 연변 일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죠.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이 지역 동포들도 많이 봅니다.”


“아, 월간 함북이군요.”


“오. 잡지를 읽으시나보죠?”


“그럼요. 이 근방 지역 소식이나 유용한 정보 볼때는 월간 함북을 참고하죠. 사실은.”


이정성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앨리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인민일보, 환구시보보다야 훨씬 믿을만하고 글 읽기가 편해요. 이 지역에서 활동하시니까 아시겠지만 당 중앙 기관지들은 논조나 어투가 좀 공격적이라서요. 거기에 같은 조선어 잡지니 더 읽기가 좋죠. 연예인 얘기도 많이 나오니 좋고. 특히 이번 달 그 여배우.”


“아 태정현 말씀이시군요. 작년에 백룡영화상 받은.”


“그래요. 청룡만큼은 아니겠지만 한국에서는 그 다음가는 영화상이라면서요?”


“그렇죠.”


“그 젊은 여배우가 연기는 참 잘해요. 영화가 나올때마다 꼬박꼬박 봐왔는데. 특히나 그 왜 3년전에 나온 그 항미원조 전쟁 영화. 상감령 전투 다룬 거 말이에요. 참 재밌었는데.”


“상감령이라면 아, 그거? 근데 여기서 그 영화가 개봉이 되고 있나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여기서 개봉할만한 영화는 아닌 걸로 아는데.”


“인터넷으로 봤죠 뭘. 물론 당 중앙에서야 싫어하겠죠. 그런데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은 다 알아요. 진실이 뭔지를. 항미원조는 무슨 항미원조겠어요.”


바로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인이 누구인지를 꿈에도 모르는 듯한 이 불혹의 사내는 다시 한번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풀었다.


“의외시군요. 말씀하시는게 제가 예상해왔던 다른 동포 분들과는 조금 다르시네.”


“그렇죠? 그런데 이 정도 불만도 막 억누른다면 그게 진짜 당과 국가가 할 일이겠소? 아무리 잘 운영되는 사회에도 불만이 없는 데는 없어요. 당도 그 사실은 잘 알겠지. 나도 심양시 공안국 간부들과 아는 사인데 그 사람들과 회합할때마다 나오는 얘기가 볼거 다 보고 욕할 거 다 욕해요. 우리가 그렇다고 선을 넘는 것도 아니고.”


“그러시군요.”


“태정현. 그 배우는 우리 조선족들 사이에서도 참 자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잡지사에서 근무하신다니까 말인데 아시죠? 원래 그 친구도 여기 연변 출신이라고. 룡정. 태어난 곳은 저기 한국의 그 어디냐, 명천이라던데 부모가 원래 우리 동포인데다가 태어나자마자 룡정으로 왔으니 룡정 사람이나 다름없죠.”


“아, 들은 적은 있죠.”


“15살에 한국으로 와서 성공하더니 결국 할리우드 영화에도 진출하고. 여기 조선 동포 사람들도 다 그 여자를 동포들의 자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럴만 하겠네요.”


“얘기가 자꾸 새나가는 것 같은데, 잡지사가 문학 작품도 다루죠?”


“그럼요. 신춘문예라고 일종의 문학 작품 공모전도 함북 도민들과 여기 동포들을 대상으로 매년 하죠.”


“제가 과학자긴 하지만 문학 작품을 좋아했었죠.”


“아 그러시군요. 뭐 때문에?”


“막내 고모 덕분이었죠.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는데. 글쓰고 읽어주는 걸 즐겼었거든요.”


“그 분이 글을 잘 쓰셨나보죠?”


“사실은 잘 기억이 안나요. 제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죠. 제가 그렇게 좋아했다고요. 너무 옛날이라서 어렴풋이 얼굴만 기억나지만. 이젠 만날 수도 없고.”


“그렇게 얘기하신다면 혹시 지금은 안 계신다는 얘긴가요?”


“네, 오래 전에 돌아가셨죠.”


“유감이군요. 어떻게 된 일이길래...”


“물에 빠졌죠.”


“아, 그렇군요. 충격이 컸겠네요.”


“사실 직접 본 건 아니에요. 그렇게 들었죠.”


“그래요?”


“네, 어머니한테 들은 내용이에요. 장례식에도 참석 못했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북쪽 나라의 앨리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4월 말 쯤 연재 예정입니다. 23.04.21 17 0 -
공지 다음주 일요일 쯤 연재예정입니다. 23.04.02 24 0 -
공지 다음 주 일요일 쯤 연재될 예정입니다. 23.03.18 14 0 -
공지 이번주 일요일 연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23.03.03 46 0 -
37 21화. 책임 회피 23.04.30 27 1 7쪽
36 20화. 유혹 23.04.09 27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2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6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7 1 10쪽
» 17화. 첫 만남 (1) 23.02.12 31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5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40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9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2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7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6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60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4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9 1 13쪽
16 7화. 탄식 -1- 22.10.30 64 1 12쪽
15 6화. 연길 가는 길 22.10.23 66 1 19쪽
14 5화. 조우 -3- 22.10.16 65 1 14쪽
13 5화. 조우 -2- 22.10.10 64 1 8쪽
12 5화. 조우 -1- 22.10.09 64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