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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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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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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9
추천수 :
42
글자수 :
159,433

작성
22.12.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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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1화. 의심

DUMMY

아무리 폐쇄적인 나라라 해도 현대적, 고급스러움이 뭔지는 나름 알고 있다고 할까? 이카루스 호텔의 외관은 어설프게나마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양식과 사회주의 모더니즘 양식을 어떻게든 절충해보려는 모양새였다. 넓직넓직한 한국식 상가를 연상시키는 아랫목이 약 5층 가량, 그리고 그 위로 20여층은 되어보이는 유리 커튼월 건물이 우뚝 서있었다.


입구 회전문에는 빨간색 전광판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열렬히 축하한다.’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송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혁과 앨리스는 태연하게, 그러나 티가 나지 않게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회전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병력 따위는 없었다.


내부도 역시 도문에서 묵었던 호텔과는 확실히 다른 최신형 숙박시설이었다. 70~80년대를 연상시키, 좋게 말해 공산주의적 고전 양식이지 나쁘게 말하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냄새나는 양식이 도문의 유일한 호텔의 정체성이었다면 이 이카루스 호텔은 나름 시대에 부응하겠다고 서구식 로비 건축을 그대로 차용한 모양새였다. 상아색 바탕에 나이테같은 회갈색 무늬가 수놓고 있는 대리석이 벽면을 도배하고 있었고 백색 천장에는 천장등과 화려하지 않은 대신 단순미를 극대화한 현대식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로비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대리석 카운터에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녀 직원들이 투숙객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바로 왼쪽 옆에는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키오스크가 떡하니 놓여있었고 태극무늬 부채와 청자 등 조선식 공예품이 2층으로 놓여있는 간이 전시대 역시 로비를 수놓았다. 왜 하필이면 태극무늬 부채일까? 이 나라에서는 한국과 연관된 것이면 어떻게든 자국민들에게 숨기려 드는데 말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한국 드라마 수입이 금지되고 이 일대 조선족들에게도 고유 문화를 드러내는 행사는 웬만해선 허가를 잘 안해주는 상황에서 이런 전시대가 있는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머리가 벗겨진 한족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 한명이 그 전시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앨리스가 체크인을 마치고 철혁은 가방을 들었다. 그녀가 갑자기 어떤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웃었다. 조식당 바로 옆에 전자 게시판이 놓여있었다. 두 안내 이미지가 송출되고 있었다. 하나는 당 선전물이었다. 붉은 배경에 천안문. 그리고 큰 글자로 사회주의 핵심 가치. 자유, 민주, 조화, 화평 등등 당이 내세우는 키워드. 그러나 그녀가 대상으로 삼은 건 그게 아니었다. 바로 내일, 그들이 타겟으로 삼은 그 행사 안내문이었다. 이미지 따위는 없었고 조금 고급스러워보이는 글자체로 조선어와 중국어가 같이 병기되어있었다.


‘연변주 창립 70주년 경축행사’


‘연변과 사회주의 조국을 빛낸 명사들’


16층 복도는 깨끗했지만 뭔가 소름끼칠 정도로 고요했다. 앨리스가 키를 들고 두리번거리자 철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쪽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돌렸다.


침대는 깨끗했고 TV도 역시 최신식 삼성 제품이었다. 남중국제는 하나도 없었다. 객실문 앞에 인터폰처럼 생긴 화면에는 스위치 없이 불을 키거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앱이 있었다. 침대 옆에도 아이패드 비스무리한 것이 놓여있어 누워있으면서도 자동으로 방의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게 해놨다. 둘은 그런거에 신경쓰지 않고 도문에서 그런 것처럼 장치를 들고 방과 화장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


"믿을만 하겠어요?"


침대 위에 짐을 올려놓고 정리하던 철혁이 앨리스에게 물었다. 그녀는 약간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요?"


"저 노인네 말이에요. 뭔가 알쏭달쏭한 사람이에요. 신뢰를 할 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하는 거는 너무 자신만만하단말이죠."


"원래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래요. 특히 저 세대는. 과장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완벽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 사람 정도면 신뢰는 할 수 있어요."


"다른 연락망은 다 망가졌는데 저 노인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게 솔직히 좀 이상하죠. 저도 작전해봤지만 상황이 뭔가 이상하긴 해요."


"그러면 저 사람이 고의로 그랬다는 얘긴가요?"


“당신도 소설 쓰면서 많이 조사해봤을거 아니에요. 소위 이중간첩이라고. 무기까지 숨겨놓고. 간부들과 친분도 과시하면서.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도왔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전혀 실수없이 있었다는게 과연 저 사람의 능력 만으로 될지는 모르겠군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심증만으로 그냥 취소하고 갈수도 없고. 지금 이 사람들이 나진에 이미 도착해있다면서요."


"당신 조카는 어떨것 같아요? 어쨌든 혈육이고 어렸을때 친했으니 뭔가 짐작가는 건 있을거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해줘요?"


"네."


"몰라요."


"모른다고요?"


"철혁씨 당신은 이 체제에서 살아본적이 없으니 여기가 정확히 어떤 동네인지 잘 모르겠지요. 일단 이렇게 생각하자고요. 맞아요. 그는 내 혈육이에요. 처음에는 나를 못알아볼지언정 결국에는 내가 그 전투기 장난감을 놀아주던 그 누나라는 걸 깨닫게 되겠죠. 한국인들처럼 여기 연변의 조선인들도 가족과의 유대관계가 강한건 마찬가지에요. 한족들과 달라요. 가족이 곧 생명줄이고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죠. 그러나 한편으로 여기는 사상으로 세뇌하는 곳이에요. 어렸을때 부터 당만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라 가르치죠. 나는 중간에 빠져나왔지만 그 애는 여기서 40년이 넘게 살아왔죠. 거기에 고위 과학자라니. 짐작이 가겠죠. 그것도 참혹한 꼴을 봤는데도 이 자리까지 왔죠. 그래서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나를 본다면 분노할지도 모르죠..."


"분노라면?"


"나의 행동으로 인해 가족들이 풍비박산났으니까요. 나만 여기서 말하는 반동 짓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겠죠. 그러나 나 덕분에 자신의 부모, 조부모 모든 가족들의 삶이 끝장이 났죠.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든 그 악독한 여자가 30년만에 다시 자기 눈 앞에 나타난다? 아무리 가족이래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죠.“


"복잡하군요. 복잡해. 나는 그게 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겠죠."


"어째서요?"


"나한텐 가족이란게 없었으니까요. 27년 평생 친구나 전우는 있을지언정 저는 여태까지 혼자서 살아왔어요.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아무도 없죠. 아마 그래서 나를 이번 작전에 투입시킨거겠지요. 군문을 떠난 사람을 억지로 끌고와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죠. 30년간 나도 혼자로 살아왔으니까요. 나머지 가족들 소식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그나마 알게 된 1명도 이젠 혈육의 정을 나눌 대상이 아니라 작전의 대상이죠.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더이상 아닐지도 모르죠."


"참 재미있네요. 전혀 다를 듯 하면서 사실은 같은 배경을 나누는 남녀라니..."


"이 여정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불과 몇달전만 해도 나는 인생이 또 다른 행운의 3막으로 이어질 거라 상상하면서 런던 거리를 거닐고 있었죠. 이렇게 얽힐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저도 그래요. 군에는 다시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근데 안기부에서 무슨 얘기를 했길래 이 일을 맡을 생각을 하게 된건가요?"


"그런 일이 있었죠. 누구에게나 다 비밀은 있는 법이죠."


"철혁씨는 애인이 있나요?"


"있었죠."


"있었다면 지금은 없다는 얘기군요."


"얘기가 긴데 전 그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는 않군요.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는 법이니까..."


"뭐 그렇게 얘기한다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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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1화. 책임 회피 23.04.30 27 1 7쪽
36 20화. 유혹 23.04.09 27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2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6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8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1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5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40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9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2 1 11쪽
» 11화. 의심 22.12.25 51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7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6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60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4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9 1 13쪽
16 7화. 탄식 -1- 22.10.30 64 1 12쪽
15 6화. 연길 가는 길 22.10.23 66 1 19쪽
14 5화. 조우 -3- 22.10.16 65 1 14쪽
13 5화. 조우 -2- 22.10.10 64 1 8쪽
12 5화. 조우 -1- 22.10.09 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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