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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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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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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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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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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3화. 시비 -1-

DUMMY

장경수는 역시 약속한 시간에 맞춰 왔다. 이렇게 시간관념이 철저한 중국 노인네도 드물 것이다. 그가 데리고 간 공원로 앞 저녁 식사 장소에도 역시 얄궃게도 한국 음식은 없었다. 점심때와 똑같은 논리였다. 어차피 한국 음식을 계속 먹어온 판에 여기에서라도 중국 음식을 먹는게 좋지 않겠냐며. 동북식 요리로 차려진 식탁은 화려할 지언정 그래서 앨리스에게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긴장되나?”


장경수가 숟가락으로 두부를 한점 떠서 입에 넣었다.


“될 것도 없는데요.”


“다 잘 될거야. 혹시 안되면 뭐 어쩌겠어. 죽으면 되는거 아닌가?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는데.”


노인의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남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랐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장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앨리스와 철혁은 걷기로 했다. 어차피 호텔로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이 또 있었다. 마침 식당 바로 건너편은 인민공원이란 이름의 녹지였다.


두 사람이 입구에 다다랐을 때 커다란 안내판이 눈 앞에 놓여있었다. 철혁은 안내판을 보며 그 내용을 중얼거렸다.


‘인민공원은 청나라 광서 33년(1907년)에 건설되어 변강사무감독 오록정이 제의하여 건설하였고 지금까지 1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으며 초기 건설면적은 약 5헥타르였다.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하던 기간, 공원내에는 일본신사, 공자묘 등을 설립하였다. 1953년에 정식으로 <연길시인민공원>으로 명명하였다. 건국이후, 여러차례의 확견을 거쳐 공원의 총 면적은 32.7헥타르에 달하고 공원에는 현재 동물원, 아동놀이터, 화초감상구, 휴식공간등 구역이 있다 2008년부터 무료로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현재 종합성적인 레저공원으로 되었다.’


“이게 사실인가요 앨리스?”


“글쎄요, 어렸을때는 역사에 대한 그런 생각 안하고 그냥 놀았죠. 아무리 그래도 이걸 가지고 거짓말하지는 않겠죠.”


겨울 바람에 나무에서 이파리는 몽땅 바닥에 떨어지고 없었다. 오직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 무리들만이 그 비어버린 낭만의 자리를 대신 메꿀 뿐이었다. 계단을 따라, 길을 따라, 다리를 따라 하염없이 걷던 둘이 다다른 곳은 작은 동물 우리들이었다. 초록색 쇠창살로 둘러쌓인 콘크리트 바닥에 사슴,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맥없이 늘어져있었다. 그 중에는 호랑이도 있었다. 이 맹수의 우렁찬 강인함은 포효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쇠창살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는 울어봤자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체념해 똥과 오물로 범벅된 바닥에 이내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다시 눈 앞에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동상이 보였다. 비록 자애로운 당의 치적을 찬양하는 선전물이었지만 모자의 모습은 너무도 애틋해보였다. 앨리스는 한참이나 그 동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눈 앞에 보인 것은 체육 시설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할 일없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근육을 움직이면서 이 얼어붙는 겨울바람을 이겨보자 애쓰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앨리스에게 참으로 익숙한, 그러나 촌스러운 전통 민요가 왱왱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광장무를 추고 있었다. 과거에는 그것밖에 놀거리가 없어서,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더 즐거운 무언가를 할수도 없는 노인들이 할 수 없는 유일한 여흥거리였다. 두꺼운 겨울 복장에도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무 벤치에 앉아 그걸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둘이 벤치 근처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때 바로 그 옆에 앉아있던 적어도 80은 훨씬 넘어보이는 사내가 앨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누군가에게 입을 열지 못해 좀이 쑤셨던 모양이었다.


“거 아주마이와 청년은 연길 사람이 아니지요? 대도시? 아니면 한국?”


“한국이에요. 어떻게 아셨죠?”


“뭐겠어. 행색 보면 다 알지. 우리 조선 사람들은 그렇게 화려하게 차려입으려 하지 않아. 한국 사람들은 그런데 수수하게 입는다 해도 화려해. 그래. 어디서 오셨나?”


“성진이에요.”


나진에서 회령으로 성진으로 그녀의 입에서 고향은 여러 차례나 세탁되고 있다.


“성진? 성진이면 어디보자 아, 그 제철소 있는데 말이지?”


“맞아요.”


“한국이란 데가 참 연변 이 동네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발전해있어. 건물도 많지, 도로도 잘 포장되어 있지. 어떤 사람들은 문명화가 여기보다 잘 되어있다고 하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고맙다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하거든.”


‘어디서 갑자기 시비지?’ 앨리스는 속으로 분이 끌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건물이 잘 지어져있고 의상이 좋다 해도 정신은 우리 연변의 조선 사람들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그게 뭐야. 그냥 미국이 조선 반도 사람들 정신을 모두 오염시켜놨어. 뭐 말하는 것도 영어 섞어가면서 말하고 먹는 것도 몽땅 서방식이야. 입는 것도 그렇고 사는 것도 조선식이 아니라 어떻게 미국식으로 건물을 짓고 있어?"


피해 망상이 장광설로 이어진 노인은 입에서 침을 마구 튀겨댔다.


"남조선은 원래부터 미제 식민지였다 치더라도 30년 전만에도 북조선 사람들은 그래도 민족성을 유지했는데 국련군이 이 북조선까지 모두 차지하고 나니까 그 사람들마저 이젠 자주성을 잃어버리고 그냥 미국이 주는 돈에 헤벌쭉 넘어간다고. 북조선 출신들이야 말로 더 나쁜 놈들이야. 어떤 면에선 남조선 애들 부러워서 더 미국 놈들 더 많이 모방을 하고 있잖아? 이제 우리 연변 조선 사람들이야 말로 유일하게 민족 자주성을 유지하는 조선 사람들이야. 우리가 단단히 사상적으로 무장해야지. 그리고 이젠 우리도 조선 반도의 그 문물을 따라가고 있다고. 여기 연길부터 시작해서 온 국토가 말이야. 건설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아, 네네.”


“거기 미군놈들 많지요? 걔네들이 그 반도를 온통 쑤셔대고 있다고. 걔네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체 조선반도 사람들은 그저 좋다고 따라다니고 있어. 미국 놈들 그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조선반도에서 나가라고. 그래야 나는 인정해줄수 있어. 당신들도 조선민족다운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그냥 가죠.”


철혁이 앨리스에게 얼굴을 찌푸렸다.


“왜 듣기 싫어? 난 자네에게 한마디도 얘기 안했는데. 그러면 그냥 가라고. 어차피 말도 들어먹지 않을텐데. 내가 여기 오는 한국 애들에게 여러번 얘기하지만 전혀 말을 듣지 않더라고. 허참.”


이 노인의 시비에 둘은 급히 자리를 피해 공원 반대편으로 향했다. 짜증이 난 것도 있었지만 괜히 시비에 걸렸다가 모든 것을 다 망칠 필요는 없었다.


“괜찮아요 앨리스? 그냥 미친 사람이니까 무시해버려요.”


“저기서 어릴 적 내 모습을 봤어요. 나도 한때는 저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이젠 화나지도 않고 저 사람들이 불쌍해요. 다른 나라들은 시시각각 변하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제 몸으로, 마음으로 깨닫고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아직도 세뇌에 젖어서 저런 말들을 하고 있어요.”


“이상하긴 하네요. 북경에서는 오히려 저런 민족의식을 싫어할텐데?”


“역설적인데 그래서 저 사람들이 더 그러는 게 있어요. 억압받으니까 겉으로는 당에 충성하고 ‘중화민족’ 논리에 수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작용으로 더한 반발심이 생겨나지요. 그리고 그걸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푸는 거에요. 공산당은 그런데 저 발언들이 자기들 정책에 어긋난다는 걸 알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당 중앙이 아닌 한국에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방관하는 거지요. 악순환이에요. 게다가 여기 조선족들 대부분은 한국전쟁 당시 북조선 편에 서서 참전했죠. 그런데 자신들이 그렇게 싸운 소위 자본주의자들이 결국에는 이 한반도를 통일하고 북조선을 쓰러트렸다. 그래서 자기들이 결과적으론 전쟁에서 패배한 셈인데 그걸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거죠. 저 사람들은 그런 열등의식이 있는 거에요. ”


앨리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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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1화. 책임 회피 23.04.30 26 1 7쪽
36 20화. 유혹 23.04.09 26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1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5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7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0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4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39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8 1 9쪽
»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1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6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0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5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59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3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8 1 13쪽
16 7화. 탄식 -1- 22.10.30 64 1 12쪽
15 6화. 연길 가는 길 22.10.23 65 1 19쪽
14 5화. 조우 -3- 22.10.16 64 1 14쪽
13 5화. 조우 -2- 22.10.10 64 1 8쪽
12 5화. 조우 -1- 22.10.09 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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