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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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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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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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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수 :
15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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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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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8화. 계획 -1-

DUMMY

“예전 일 때문에 그래요?”


철혁이 상념에 잠긴 앨리스의 표정을 보고 넌지시 한마디 건넸다.


“뭐, 그냥 그래요.”


앨리스와 철혁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던 장은 주전자를 쿵 하고 놓았다. 그는 ‘크흠’ 하더니 말을 다시 꺼냈다.


“혹시 내가 이렇게 얘기한다고 내가 한국을 비하하는 것처럼 보지 마시오. 나도 뿌리는 그쪽이니까. 난 조부께서 삼수군 신파에서 오셨지. 함경남도 삼수. 삼수갑산의 그 삼수 말이오. 거기서 보는 압록강 풍광이 기가 막히죠. 거기 90년대 초반에 아직 북조선 로동당 있을 때 잠시 허정숙군으로 불렸었지. 그거 기억나지요 아주마이? 개명한지 한 5년 지났으려나? 로동당 정권이 갑자기 끝장나는 바람에 도로 원상복구 됐었지. 그때면 젊은이는 모르려나?”


철혁이 고개를 가로젓자 장경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을 계속했다.


“여튼 내 조부님이 10살 때 여기 북간도로 오셨소. 그리고 여태까지 여기서 살고 있는거고. 근데 나는 솔직히 또 다른 한쪽은 결국 중국인일 수밖에 없어. 아버지 쪽은 당연히 조선의 피가 흐르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는 한족이시거든. 조선어는 모국어처럼 잘하셨지만 어쨌든 그래. 같은 동네 동포들이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아주 싫어했어. 같은 조선 사람끼리 결혼해야지 왜 중국인들과 결혼했냐 말이지. 그래도 나는 내 조선 뿌리를 사랑해. 내 아들과 딸들은 전부 한국에 살고 있어. 잘 살아. 서울에 사는 장남은 유명 무역회사에 근무하고 둘째 아들은 인천에서 약사를 해. 딸 둘은 청진에 살고 있고.”


“그러면 그냥 한국으로 오시지 굳이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려 하시나요?”


앨리스는 차를 한모금 마시면서 물었다.


“그래. 다들 한국으로 오라고 하지. 살기도 좋고. 저기 공기 좋은 개마고원에 별장 값싸게 사면 부자 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어. 그런데 나는 한편으로는 여기 연변 사람이야. 한국에 갈려고 한다면 갈 수도 있지만 굳이 여기 남아서 이러는 거야. 여기는 내 나라고 내 고향이지. 내가 애향심이 있기에 고향을 위해서라도 공산당을 타도해야 하는 것이고.”


장경수의 말에는 진심이 녹아있었다.


“자 이제 일 이야기나 하지. 그래서 이카루스 호텔에 숙박하려고?”


“네, 이따가 오후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호텔을 둘러봐야죠.”


“뭐. 여기에 머무를 수도 있을텐데. 내일 행사라고 거기 보는 눈들이 좀 많을 텐데 말이야?”


“어차피 여기에 숙박해도 주숙등기(住宿登记)를 해야 하잖아요. 이 집은 숙박업을 하는게 아니니 우리가 직접 공안에 신고해야 하고. 걔네들이 왜 여기냐고 묻지 않겠어요? 의심받으면 굉장히 피곤해지고 발각될 확률이 높아지죠. 설령 안한다 한들 중간에 검문에라도 걸리면 외국인이라 주숙등기 여부를 조사할테고 주숙등기 흔적이 없으면 그것도 체포감이죠. 선생님이 숙박업을 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아는 관계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차라리 호텔 투숙객으로 있으면 의심을 덜 받겠어요.”


철혁은 명쾌하게 장경수의 제안을 반박했다.


“그래, 그 말이 맞네. 당초에 공산당 애들이 이런 거 잡으려고 주숙등기를 하는거잖아. 나도 나이가 드니 여러 방향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좀 좁게 사고를 하는구만.”


“어쨌든 선생님이 호텔을 잘 아신다고 했는데 안에서 검문검색을 할까요? 그게 문제죠.”


“당연히 하기야 하겠지. 영사도 오는데. 그런데 괜찮아. 어차피 당 간부급이 오는 행사가 아니라서. 이 나라에서 보안이 중요한 것은 공산당 고위 간부가 왔을때지 옆나라 영사 따위가 아니야. 내가 도와줄테니까 공안 앞에서 대놓고 이상한 짓 하는게 보이지만 않게 하라고. 그런데 보안은 그렇고 우리가 ‘모셔올’ 그 친구를 설득했다고 쳐. 어떻게 같이 빠져나올 생각이야?”


팔짱을 끼고 둘이 말하는 걸 듣고 있던 앨리스가 대화의 바통을 넘겨 받았다.


“일단 행사는 저녁이고. 받은 정보를 보면 리정성은 우선 호텔에 투숙하고 다음날 아침에 체크아웃해서 회사로 돌아갈 예정이라는군요. 밤 사이에 공안이나 감시자 눈을 피해 같이 빠져나와야죠. 그 사람이 쓸 위장 여권하고 공민증은 마련은 했으니까 그건 문제없고.”


“그러고 나서? 한국 영사관으로 데리고 가려고? 호텔에서 바로 옆이긴 한데.”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사관은 위험할 수 있어요. 라흐만이라고 위구리스탄의 야당 당수 있었죠. 넉 달 전에 그 사람이 북경에 머물다가 일본으로 망명을 시도했는데 실패하고 위륌치로 강제 송환됐잖아요.”


“그래 그 사건. 북경에 사는 내 군 동지로부터 들었지. 그 뒤로 그 정치인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는 사람도 다 짐작갈거 아냐. 위구리스탄이 어떤 동네인데.”


“회사 말로는 그 사람이 일본 영사관 안으로 도망쳤는데 공안이 영사관 안까지 들어가서 끌고갔다는 군요. 제지하던 영사까지 폭행했고.”


“국제법이란 걸 전혀 신경쓰지 않는 놈들이니 전혀 이상할 것도 없어. 그래. 그건 위험하지. 일본 애들한테도 그 짓을 했는데 한국이라고 오죽하겠어? 그런데 이러면 또 다른 방법이 별로 없잖아? ”


“국경까지 차를 타고 가든 어떻게든 여길 떠나야죠. 이것 좀 보세요.”


이번에는 철혁이 핸드폰을 꺼내 지도 앱을 틀었다. 그는 연길 일대의 위성 사진을 확대하며 교외 지역을 손으로 가리켰다.


“만일 아침에 발각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밤 중에 국경을 넘을 때 도문은 약간 거리가 있어서 우리가 대응하기에 위험할 수 있어요. 인파에 살짝 껴서 가는 방법도 생각해봤는데 그 시간대면 어차피 주변 일대 감시 수준은 비슷할거에요. 그러면 차를 이용하면 G334 도로 타고 개산툰(開山屯)까지 가서 강을 넘든가. 여기 333 타고 북흥(北兴)까지 가서 회령으로 가든가. 혹은 차가 여의치 않으면 여기 사진 보시면 아시죠. 황기구(黄记沟)에서 산을 타고 가는 수밖에요.”


“걸어서? 그 산을 타고?”


“별 수 없죠.”


“뭐 자네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아줌마나 그 친구는 어쩌려고?”


앨리스가 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묘한 자신감이 서려있는 말투로 말을 꺼냈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그동안 꾸준히 운동을 하긴 했어요.”


장경수는 고개를 잠시 갸우뚱거리더니 그녀의 태도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몇가지를 부탁드려요. 하나는 이카루스 호텔 안의 설계도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해주시고.”


“그건 문제없어. 예전에 한번 수리 작업할 때 나한테 자금 좀 달라고 해서 견적 좀 계산해야 한다고 구한 게 있어. 거기 사장 나랑 잘 알아는 사이라 달라는 거 있으면 다 준다고. 나도 재원을 좀 투자하기도 했었고.”


“차도 한 대 필요하고요.”


“좋아.”


“마지막으로 이건 그냥 망상이겠다만. 우리 루트에 있는 공안 CCTV는 최대한 차단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불가능하겠죠? 그러면 산을 타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인데.”


“왜 망상이라 생각하지? 전혀 문제없어.”


앨리스와 철혁은 장경수가 너무 당연한 어투로 말하는 것에 놀랐다.


“아니, 어떻게 가능하죠?”


“돈과 관계(꽌시)라면 다 가능해. 일례 하나 들어볼까? 내가 가지고 있는 차량이 원래 군 간부 용 차야. 내가 이래뵈도 대교까지 올랐고 아는 애들 많아. 그냥 그 차 타고 가면 어디든 다 통과야. 이 나라가 정말로 웃기는 게 뭔지 알아요? 아무리 공민에 대한 통제가 심해도 또 돈을 주면 모든지 다 된다고. 돈에 환장한다고. 무산계급 무산계급 운운하면서 돈은 제일 좋아하거든. 놀라지 마시오. 무기도 빼돌릴 수 있다니까? 일단 내가 여기 공안들하고는 잘 아는 사이야. 걔네들하고도 사업했거든.”


장경수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냈다. 철혁은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탁자에 올려놓은 건 별이 새겨져 있는 권총이었다.


“이것 봐봐. 내가 대교(大校)로 군을 떠날 때 가지고 나온거야. 돈으로 무마했지. 어디 이것만 그런 줄 알아? 당신들 상상도 못할 장비를 나는 가지고 있어. 내가 가지고 있는 건물에 보관해뒀지. 내 돈과 혀로 무마시키고 몰래 몰래 빼돌렸어.”


장은 미소를 지었다. 철혁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 회사와의 연결망이 모두 다 발각되었는데 어떻게 당신만 무사할 수 있었죠?”


“그래, 이상하지? 의심할수도 있겠지만 왜냐하면 오히려 나라서 더 의심을 안하 거든. 남들 눈에는 나는 아주 충성스런 공산당원이고 때때로 걔네들 주머니에 돈 좀 잘 찔러주고 술 잘 사주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저 장비 빼돌린 건 아주 옛날 얘기야. 관계있는 사람들은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야. 내가 일단은 직접 죽였다든가 한 건 아니니까 걱정 말게. 그러니까 지금 관계있는 애들은 그런게 있는지 전혀 모르지.”


장경수는 오래 살아온 사람의 자신감이라 할지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혹시 이게 함정이라고 생각하면 맘대로 생각해. 정 의심스러우면 여기서 포기하고 가라고. 아니면 내가 이 총을 줄 테니 가다가 의심스러우면 내 머리에다 총알을 박든지. 어차피 곧 죽을 몸인데.”


장경수는 철혁에게 총을 건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총을 받았다.


“이제 나갈 시간이 됐네. 따라와보게.”


작가의말

주숙등기: 외국인이 중화인민공화국에 입국할 시 의무적으로 24시간 내 거주지 관할 파출소에 거주지를 신고하는 제도. 호텔 등에 머무를 시 해당 숙박업소가 해당 신고를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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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1화. 책임 회피 23.04.30 27 1 7쪽
36 20화. 유혹 23.04.09 27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2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6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8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1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5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40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9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2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1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7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6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60 1 9쪽
» 8화. 계획 -1- 22.11.20 60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4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9 1 13쪽
16 7화. 탄식 -1- 22.10.30 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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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5화. 조우 -2- 22.10.10 6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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