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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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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556
추천수 :
42
글자수 :
159,433

작성
23.02.05 20:15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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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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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6화. 시작

DUMMY

점심 시간이 지났지만 이카루스 호텔 로비에는 오히려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은 다양했다. 회색 양복을 입고 머리를 잘 빗어넘긴 중년 남성부터 분홍색 바탕의 색동 한복을 차려입은 장년의 여성, 공안 제복을 입은 젊은 남성에 그냥 간편하게 비즈니스 캐주얼에 핸드백만 매고 온 30대 여기자까지. 중국어 단어를 섞는 조선말만이 아닌 영어가 섞인 함경도 억양의 표준 한국어, 그리고 물론 중국어까지 각양 각색의 언어가 로비와 행사장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저기 저 사람 아닌가요?”


철혁이 입구 쪽을 가리켰다. 마침 둘은 가짜 신분으로 등록을 마치고 잠시 로비에 서서 이 인파들을 둘러보고 있던 참이었다.


앨리스가 그 방향으로 쳐다보았다. 갈색 간편 비즈니스용 자켓에 조끼를 입은 중년 남성이었다. 잘 빗긴 검은색 머리는 40이 막 넘었을 텐데도 새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였다.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으로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이렇게 먼발치에서라도 직접 보게 된 것이 대체 몇 년 만인가.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강산이 3번은 넘은 세월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던 그 예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단지 좀 더 성숙해졌을 뿐이었다. 앨리스는 반가운과 지나온 회한에 젖은 탄식을 내뱉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 맞군요.”


“지금은 안되겠죠? 바로 옆에 공안이 붙어있는 것 같은데.”


“쟤를 감시하는 것 같진 않군요.”


“하기야 너무 티가 나면 사람들이 불안해할테니.”


“어쨌든 지금 바로 말을 걸기에는 조금 어색하고 불안해요. 이따가 연회 시간 때 접촉하죠. 식탁에서 먹는 방식이 아니라 스탠드 방식이니 자연스럽게 접근하기도 용이할 거에요.”


“팜플렛에 약력이 소개되어 있는데 흥미가 있어 성공담을 취재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일단 말합시다. 회사가 과학 관련 서적도 출판하는 걸로 되어있으니.”


“그게 과연 통할까요?”


“다짜고짜 인사를 하면 더 이상하게 보지 않겠어요?”


“국방 과학 종사자인데 그렇게 접근하면 더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뭐, 좀 생각해보죠.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보니까 어떤가요?”


“옛날 모습이 보이는군요. 나를 과연 기억할련지...”


“설득할 수 있겠어요?”


“이제는 안할 수가 없지요.”


“우리를 보진 못했겠죠?”


“그런 눈치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잘 될 거라고 믿읍시다.”


“장 노인은 행사 시간 중에는 전화를 아예 안받겠다고 하더니 진짜 칼같이 안 받는군요. 지금 그렇게 여유를 부릴 만한 타이밍인가...”


“특이한 사람이죠. 그래도 오랫동안 회사와 일했다고 하니 일단 믿어봅시다.”


“이제 시간이 됐군요. 들어가요.”


행사는 전통 복장을 입은 어린 남녀 무용수가 장구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웃고 있지만, 그러나 무언가 경직되어보이는 표정의 그들은 마치 어느 시인이 고이 나빌레라라고 묘사했듯이 절도 있고도 화려한 동작으로 춤을 마쳤다.


“연길 조선족 예술단 어린이조가 선보인 우리 공화국 동북 지방의 전통 춤인 조선 장구춤을 보셨습니다. 중국조선족무용예술사업의 선봉에 서있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전 분홍색 한복을 입고 왔던 그 중년 여성이 사회를 보고 있었다. 박수가 이어진 다음 그녀는 안경 쓴 장년 남성을 소개했다. 연길시 부시장이었다.


“네, 이렇게 이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 우리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 70주년을 맞이하여 이렇게 귀한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우리 조선족은 공화국 성립 이래 국가와 당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특히 우리 자치주 성립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던 주덕해 선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 진념했던 분이었습니다. 그의 당과 국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결실을 맺어 과학, 당 사업, 예술 등 전 분야에서 조선족은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중화민족의 한 일원이 되어 공화국과 공산당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더욱 우리 공화국이 외부의 모략을 물리치고 만방의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공산당의 영도에 변함없이 전심으로 따라야 합니다. 특히 우리 고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각 분야의 우리 조선 민족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학습해 실질적인 정책에 도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각 급 지도자들은 서로의 경험을 얘기하며 우리가 어떻게 당의 영도에 따라 위대한 사업들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외에도 주저리 주저리 말을 길게 꺼내던 부시장 다음은 한국 영사였다. 그는 무언가 긴장된 표정으로 쪽지를 오른쪽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말을 꺼냈다. 초청자들에 대한 감사, 양국간의 오랜 관계. 연설에서 독창성과 진실성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부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는 수교 30년간 많은 발전을 이룩해왔습니다. 한때 비극의 역사 속에서 반목한 적도 있었지만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이제 가장 많은 경제 협력을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비결에는 조선족 동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양국을 오가면서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오해를 불식시키고 오늘날에도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사는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연설을 이어나갔다.


“그들의 헌신 결과 그 어떤 때보다도 연길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있어 가장 친숙한 이웃 나라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연길을 발판 삼아 우리 모두 양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 영사는 말이 참 길군요.”


앨리스가 불만의 소리를 내비쳤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자리니까요. 공안조차 영사를 무시하는 판에 이런 자리가 감지덕지하지 않겠어요?”


“이제 식사 시간까지 얼마나 남은거죠?”


철혁은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대표 초청자들 발표 끝나고 6시 반부터니까 이제 1시간 정도 남았군요.”


“그게 운명의 시간이겠군요.”


유명 무용수로 방송에 자주 나온다는 여 교수,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안하고 정부의 위대함과 앞으로의 시책 선전만 하고 있는 군인 출신 전직 전인대 대표, 컴퓨터 공학자라는 중년 남성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발표는 재미가 없으면 없었지 결코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재깍재깍 흐르고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수백명은 족히 되어보이는 인원들이 발표장을 떠나 옆 홀로 이동했다.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음식들이 일자형 테이블에 형형색색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철혁과 앨리스의 마음 속에서 결코 형형색색의 무지개밭은 존재하지 않았다.


방문객들은 곧 젓가락과 집게를 집어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누군가는 접시를 들고 있는 채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있고 또 누군가는 대화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밥을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리고 타겟은 접시에 카오양 조각을 집어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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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1화. 책임 회피 23.04.30 27 1 7쪽
36 20화. 유혹 23.04.09 26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1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6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7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0 1 9쪽
» 16화. 시작 23.02.05 35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39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8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2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6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5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59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3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8 1 13쪽
16 7화. 탄식 -1- 22.10.30 64 1 12쪽
15 6화. 연길 가는 길 22.10.23 65 1 19쪽
14 5화. 조우 -3- 22.10.16 65 1 14쪽
13 5화. 조우 -2- 22.10.10 64 1 8쪽
12 5화. 조우 -1- 22.10.09 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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