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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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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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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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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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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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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3화. 시비 -2-

DUMMY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침묵 속에서 이 중년 여성과 청년의 산책은 이어졌다. 소나무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 뾰족한 푸르름을 자랑했고 칼같은 추위에 굴복해 이파리를 몽땅 빼앗긴 어떤 나무는 다시 봄날이 올 날을 기다리며 수그리고 있었다.


좁디 좁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간 곳은 전통 중국 방식으로 지어진 붉으스름한 정자였다. 정자 앞으로 연길시의 겨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흰색 콘크리트 빌딩과 수십년전 누군가가 노래했다는 그 붉은 산이 하나의 풍광 속에 놓여 있었다. 정자 앞에 서 있는 어떤 이들은 추운 입김을 내뿜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평선 산자락 저쪽에서 붉은 기운이 점점 파란 기운을 압도하면서 그들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앨리스는 휘파람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제임스 본드군요.”


철혁이 단번에 무슨 노래인지 알아맞혔다.


“어떻게 알았죠? 당신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나온 노래인데.”


앨리스는 조금 깜짝 놀란 눈치였다.


“007 시리즈를 좋아하죠. 1편부터 끝까지 다 봤어요. 그리고 마침 듀란듀란도 고전 록밴드 중에 굉장히 좋아하는 밴드고요. 007을 좋아하시나요?”


“재미있게 보죠.”


“근데 당신 글 스타일하고는 조금 안맞을 수 있을 것 같던데.”


“왜요?”


“조금 비현실적인 면도 있잖아요. 나도 당신 인터뷰한 거를 봤어요. 사실적인 요소를 좋아한다고요.”


비록 고졸에 몸쓰는 군인 출신이었지만 이 젊은이도 누군가와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어울리지 않는, 당장 내일의 대업을 준비해야 하는 자리에서 잠시라도 그 토론의 심연에 잠시 빠져들고자 했다.


“그거는 맞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007 영화나 소설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내 스타일과 충돌한다고 해서 그게 싫은 건 아니거든요? 글을 읽는 재미는 확실히 있어요. 그리고 그게 소설의 역할 중 하나죠.”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군요.”


“아무리 문학성이 있어도 재미가 없으면, 그래서 독자를 설득할 수 없으면 그건 작가들만의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격이죠. 기본적으로 인간은 재미를 추구하고 그것이 영화든, 문학이든, 게임이든 기본적으로 재미라는 게 있어야죠.”


“한국 영화나 문학을 자주 접하나요?”


“물론. 한국 문학은 물론이고 영화도 꼬박꼬박 챙겨봐요.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작들도 매년 보죠.”


“신춘문예도?”


“그럼요. 내가 명색이 소설가인데. 한국 문학, 중국 문학도 죄다 읽는다고요.”


“우리가 서로 알게 된지 얼마 안되었지만 당신을 보면 참 놀랄때가 많아요.”


“어떤 면에서죠?”


“뭐랄까, 전혀 영국에서 오래 산 사람같지가 않아요. 그냥 전형적인 한국 사람 같아요.”


“칭찬인가요?”


“당연히 칭찬이죠.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당신이 조선족 출신이거나, 혹은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잖아요. 저 오래 군생활 해봤다는 장 노인도 조금 의심했어도 외국 국적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던데요. 사실 저도 그래요. 훈련의 결과인가요?”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죠.”


“무슨 의미죠?”


“분명히 훈련을 받은 건 맞아요. 네. 런던에서도 한국어, 조선어 유창하게 하는 교육자들 많더군요. 좀 깜짝 놀랬죠. 이 동네 상황에 대해서도 브리핑을 했고요.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렇다면?”


“내가 바로 기본적으로 이 동네 출신이었으니까요. 태어나면서부터 여기의 문화에 익숙하고 이 동네를 사랑하도록 교육받았죠.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를 우리 혈육들도 혹시 누군가는 여기 살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한편으론 이방인이죠. 다들 내가 여기에서 나고 자란 여자라는 사실을 눈치 못채잖아요? 그만큼 여기 물이 빠진 셈이죠.”


“물이 빠진다... 이런 말도 배웠나요? 아니면 여기서 쓴건가요?”


“글쎄, 일부러 배운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한국에도 가끔 왔었고. 그리고 런던에서도 한국 방송은 꼬박 챙겨봤어요. 그리고 유튜브 방송들도 봤죠. 자연스럽게 익혔다고 할 수 있겠죠.”


“런던의 삶은 어떤가요? 당신이 여태까지 살던 곳과 비교하면?”

“나에게는 가장 좋은 곳이죠.”

“어째서요?”


“런던에 가본적은 없죠?”


“전혀. 유럽에 가본 적이 아예 없어요.”


“가보면 알 거에요. 그 곳은 전세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에요. 영국인이야 물론이고 중국, 인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 아프리카, 카리브해 지역까지.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고 활력이 넘치는 곳이죠. 다만...”


“다만이라면?”


“모든 명에는 암도 있는 법이죠. 그런 코스모폴리탄적 분위기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혹시 국제 정치에 조금 관심있으면 알겠지만 요즘 이민자들이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죠.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같은 이민자 입장에서 그런게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한국에서도 그런 얘기는 많아요. 그러니까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많죠.”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하층민들도 많아요. 영국의 문화와 사회상에 적응을 못해서 결국 종교 극단주의나 범죄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일으키는게 요즘 계속 문제가 되는 테러나 갱단 문제죠.”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각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는 또 유지해야한다고 봐요. 런던이 다문화의 중심지이고 그게 나쁘다고 보지는 않아요. 그러나 영국 고유의 문화가 아예 사라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당신도 그런데 영국 원주민은 아니잖아요?”


“맞아요. 내 말은 어디서 오든지 일단 그곳에 왔으면 그 문화에 맞춰 최대한 생활해야 한다고 봐요. 물론 우리가 걷고있는 바로 이 곳처럼 그걸 관철하겠답시고 폭력이 동반되서는 안되고 원래 뿌리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요. 다만 내가 새로이 뿌리내린 곳의 문화도 존중하면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고자 노력해야죠. 일단 그 곳의 시민이 되면요.”


“솔직히 저는 연길은 아니더라도 상해나 서울에 있을 때 더 많은 동질감, 어쩌면 행복감도 느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나마 비슷한 동네니까요. 특히 서울 말이에요. 연길과 그나마 비슷한 동네 아닌가요? 같은 중국 대륙이래도 상해는 여기와 완전히 다른 동네죠. 앨리스 당신은 스스로 중국인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래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태어난 곳은 대륙이지만 중국인이라는 의식은 잘 못느꼈어요. 그 많은 세뇌 교육 속에서도요. 물론 상해나 서울이나 그 동네 사는게 전혀 싫지는 않죠. 중국어, 한국어를 쓸 수 있는 동네니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래도 이 동아시아에는 그런게 있어요.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요하다는 그 분위기. 그게 어딜가나 서려있어요. 그러나 나는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에 더 맞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사는 곳이 좋다는 거고.”


“한가지 물을게요. 당신은 여기 사람들을 같은 동포로 생각하나요? 아니면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혹은 지금 당신이 몸을 의탁하는 영국?”


“나는 나에요. 어느 곳에도 속박받지 않고 싶군요. 나는 조선족이자, 한국인이자 그리고 영국인이죠. 그러나 그 전에 나는 하나의 자유인입니다. 그래서 여기를 떠난거에요. 지금 이렇게 다시 돌아왔지만.”


“질문이 조금 잘못된 것 같은데. 화내지 마세요. 지금 이 사람들을 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친구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우리 입장에선 적이나 다름없는데?”


철혁은 이 말 만큼은 앨리스의 귀에 대고 정말 작게 얘기했다. 그러나 그 물음은 또렷했다. 군인의 직설적인 성격이 이번만큼은 정말 제대로 노출된 듯 했다.


“솔직히 말할까요?”


“그럼요.”


“적 맞아요.”


“좀 의외인데요. 동질감을 느낄거라 생각도 했는데.”


“비유를 해보죠. 당신 어렸을 때 나오긴 했는데 매트릭스 영화 알죠?”


“잘 알죠. 나도 나름 영화광이에요. 다 봤어요.”


“그러면 1편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가르침을 주던 장면을 기억하겠군요. 훈련프로그램 안인데 요원을 조심하라고. 스미스가 네오에게 총구를 겨누던.”


“그 빨간 옷 입은 여자?”


“그래 맞아요. 그 장면. 남자라서 그걸 더 기억하는군요. 여하튼 모피어스가 그때 네오에게 뭐라 했나요?”


“뭐라 했더라. 매트릭스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은 적이라고?”


“대충 기억하는군요. 정확히는 우리가 구원해야 할 사람들이지만 매트릭스 안에 있는 이상 그들도 적이라고요.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시스템의 일부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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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1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6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7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0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5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40 1 7쪽
» 13화. 시비 -2- 23.01.15 39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2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6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5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59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4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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