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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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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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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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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가창조국

DUMMY

장경수의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올라가고 있었다. 단지 아까와 달리 속력은 제한속도보다 훨씬 낮았다.


철혁은 최덕철로부터 답신을 받았다. 문자를 읽고 나니 막 차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클래식 음악이었다. 철혁은 뭔가 익숙한 멜로디라는 걸 깨달았다. 잠시 생각해봤다. 중학생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적이 있었지. 종성에서 나진까지 버스로 간 다음 다시 나진공항에서 김포공항까지 비행기로 오는 강행군. 그때 비행기도 처음 탔고 지하철도 처음 탔더랬다. 그게 6호선이었나. 월드컵 경기장까지 가는데 환승역 알림에 나오는 그 음악이었다. 그러고 나서 군대 들어가서 강서구에서 군생활할 때 뺀질나게 지하철 탈때는 전 지하철이 무슨 국악 비스무리한 걸로 환승역 알림 음악이 바뀌어버렸지.


“안또니오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입니다. 우리 공화국 모든 공민들의 사회주의의 기치 아래 조화롭게 생활하기 위해 당과 정부는 오늘도 용양매진하고 있습니다.”


앞문장과 뒷문장이 전혀 조화를 안이루는 조선어 라디오의 마지막 멘트에 철혁은 추억의 감상이 또 산산조각남을 느꼈다. 이 동네 인간들은 분위기에 초를 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듯 했다. 그 다음은 라디오 오후 뉴스였다. 첫 뉴스는 여기 주석 동지의 동정이었다. 서녕을 방문한 그는 주택건설사업을 지도하면서 청해성 인민들의 주거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각 성 및 시급 당서기들이 분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다음은 당규약 학습내용이었다. 당대회에서 결정된 규약 내용을 뉴스로 보도하고 간부나 공산당원은 물론이요, 학생, 직장인들까지 각 소조에서 이 내용을 외워야 했다. 수정해봤자 이 체제를 겪은 사람이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내용이었다.


“정치에 의한 건군, 개혁에 의한 강군, 과학기술에 의한 강군, 인재에 의한 강군, 법에 의한 군대관리를 견지하여 인민군대를 세계일류의 군대로 건설한다. ‘공화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의한 전 중국 통일’ 방침을 전면적이고 정확하며 확고부동하게 관철하고 ‘자본주의의 확산’을 견결히 반대하고 억제한다. 조국 남반부 해방과 승리를 위하여, 현대적 사회주의 혁명 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적극 투쟁한다. 평화, 발전, 공평, 정의, 민주, 자유의 전 인류 공동가치를 발양하고 지구적인 평화, 보편적인 안전, 공동번영, 개방포용, 청결하고 아름다운 세계 건설을 추동한다.”


그 다음은 아무르 강에서 또다시 벌어진 러시아와의 국경 분쟁 소식이었다. 역시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도발을 인민무장경찰이 결연하게 물리쳤다는 선전이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를 배신하고 자본주의와 자본가 세력에 붙어 소위 서구식 자유주의를 도입하고 서구 세력과 야합한 결과 러시아는 모순으로 인해 인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그 불만을 돌리기 위해 나날히 발전해가는 공화국을 도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철혁이나 앨리스나, 그리고 장경수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지루하지, 안그래?”


장경수가 옆을 힐끗 보고 그리고 백미러로 뒤의 앨리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원래 뉴스가 사건 사고를 보도해야 재미있는 법이야. 문혁 때는 그런게 전혀 없었어. 사회주의는 완벽해야 하는데 그런 거는 이놈들 체제가 약한걸로 보이게 할 수 있거든. 당산 지진때도 그래. 날짜도 기억나. 1976년 7월 28일이었는데 난 그 근처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다 기억나거든. 우리도 가서 깔린 사람들을 도왔어. 그런데 언론에는 거의 하루가 지나서야 보도됐다고. 통제한답시고. 그것도 제대로 된 보도가 아니라 당 공식 지침만 그대로 읽는 수준이라서. 개혁개방하고나서 그런 소식들이 많이 나오긴 했는데 요즘 또다시 잘 안 나오고 있어. 죄다 이런 내용밖에 없어.”


“어르신은 저 변경(국경) 소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앨리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글쎄 하하. 근데 그건 있어. 아주마이도 태어나기 전인데. 혹시 들어봤어요? 우리와 쏘련하고 진보도(珍宝岛)라고 쟤네들 말로는 다만스키라고 하지. 69년도에 그거 가지고 전쟁할 뻔한거.”


“들어봤죠.”


“그때 처음에는 주먹으로 시작했다가 몽둥이로 그리고 마침내 총을 쓰면서 애들이 죽어나갔지. 그리고 우리는 그때 무기도 형편없었지. 쟤네들이 수준이 우월했지.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고. 오히려 우리가 무장이 훨씬 잘 되어있어. 로씨야 애들이 평화 시대가 왔다고 군대도 몽땅 줄이고 그랬잖아. 구라파 애들하고 지낼때는 뭐 그래도 되지. 그런데 이 공산당 애들하고 대치할때는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해야할 거 아냐. 그런데 그것마저 대책없이 줄여버리니까 도발을 해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잖아.”


앨리스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자기네 동네 소식을 하나 떠올렸다. 유명 스파이 소설 작가답게 그녀는 첩보 세계의 기초를 이루는 국제 정치가 돌아가는 꼴에 매일매일 큰 관심을 쏟는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은 냉전이 끝나고 대규모 군축을 한지 오래됐다. 이제 그녀의 조국이 된 영국은 물론이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까지. 그리고 그 러시아도.


고르바초프가 22년전 다시 러시아의 지도자로 복귀하고 나서 벌어진 가장 큰 변화는 이 동토의 제국이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한 일이었다. 1917년 이래 엉뚱한 길로 가던 이 거대한 땅이 마침내 다시 유럽 역사의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온순한 양이 된 이 나라는 주변 국가, 특히 우크라이나, 발트 3국 같은 옛 소련 국가들에 소위 ‘사과 외교’로 유럽 국가로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으려 애를 쓴다. 그래서 긴장이 풀린 걸까. 다른 유럽 국가들 역시 자신들의 국방력을 거세하는 걸로 화답했다. 단지 폴란드만 통일이 되고 나서도 이 큰 이웃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못해 서파 시절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지. 그런데 웃기는건 그 러시아도 경제 개발에 힘을 쏟겠다고 역시 군사력을 30만명 수준으로 줄여버리는 바람에 재래식 만큼은 폴란드가 그 러시아와 비등비등해져버렸다는 거다.


2014년 이전까지 서구의 정치인들이 예상못했던 거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격언의 가장 확실한 사례가 바로 자기네 동네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현대사의 냉혹함이었다. 투르크족 얘기였다. 헌팅턴의 말이 옳았던 것일까. 이 나라는 80년 가까이 서구의 일원으로 살고자 애썼다. 사실 냉전 초기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고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도 성공하면서 외교 무대에서 나름 독자적 목소리를 낸 것에서 싹수가 보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서구화를 지향하던 앙카라 정권은 90년대 들어서 반서방 가치를 무기로 기미를 보이더니 2000년부터는 그 발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8년에 아르메니아를 시작으로 2014년에 키프로스를 거치면서 터키가 서구 사회의 완전한 적으로 각인 되었을 때, 발칸 반도 국가, 그중에서 그리스와 불가리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신흥 선진국이자 새로운 기술 대국으로 떠올랐다 한들 1억이 넘는 핵무기 보유 국가, 그것도 그들과 완전히 다른 가치를 지닌 나라와 국경을 맞대는 것은 실로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구 반대편에서 재미없는 라디오를 듣고 있는 지금도 아테네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수블라키를 먹던 전직 터키 야당 인사 메흐메트씨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소피아에서는 앙카라의 치부를 알고 있는 사업가 투르구트씨가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그의 다치아(Dacia) SUV와 함께 폭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뉴스가 끝나고 다시 음악 세션이 돌아왔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가운데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앨리스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곡이었다. 가창조국(歌唱祖国)이었다.


오성홍기 바람에 휘날리고

승리의 노랫소리 울린다.

사랑하는 우리의 조국을 노래하고

번영과 부강의 길로 나아간다

사랑하는 우리의 조국을 노래하고

번영과 부강의 길로 나아간다


고산과 평원을 넘어

힘차게 흐르는 요하와 황하를 건넌다

넓고도 미려한 강토는

사랑하는 우리의 고향이다

영웅적인 인민들이 일어서니

우리의 단결과 우애는 강철과도 같다


우리는 근면하고 용감하니

조국통일은 우리의 이상이다

우리는 수많은 고난에서 승리했고

지금의 해방을 얻었다

우리는 고향을 사랑하고 통일을 갈망하니

우리를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오직 죽음뿐이다


살벌한 가사였고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을지언정 그녀에게는 또 다른 기억의 한 편린이었다. 어느 순간에 그녀는 얕게나마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입술은 조금씩 떨렸다. 장경수는 그걸 봤는지 못봤는지 그녀를 흘낏 쳐다보는 듯 하다가 이내 운전에 집중했다.


차는 계속 달렸다. 아까 룡정 방면으로 갈때와 정확히 방향만 반대인 경로였다. 그들은 다시 강을 지나고 시내로 들어와 대로로 들어섰다. 차는 아까전에 돌아봤던 이카루스 호텔 로비 앞에 섰다.


“이따가 다시 오겠네. 체크인하고 한번 둘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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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1화. 책임 회피 23.04.30 27 1 7쪽
36 20화. 유혹 23.04.09 27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1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6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7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0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5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40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9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2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7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6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60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4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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