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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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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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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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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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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화. 탄식 -2-

DUMMY

초대자와 손님들 이 셋은 계속 기묘한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도움을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도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사복 입은 공안이 무슨 죄목을 명목으로 문따고 들어올지 모르는 이 위험한 곳에서 노인은 대놓고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하고 있었다. 이미 그쪽 세계를 경험해봤다는 자신감일까, 아니면 지금 죽어도 충분히 살았다는 관조(觀照)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당신들은 내가 왜 위험천만하게 이런 일에 도움을 주냐고 의아해할수도 있겠소. 공산당은 마땅히 그럴 거야. 나는 공화국의 배신자라고. 그렇지만 인민과 공화국의 배신자는 바로 당이야. 그들은 자기네들 욕심에 이 나라를 반으로 토막 냈어. 지금까지도 중국 전체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계속 선동하지만 그건 사실 자기들끼리만 권력을 다 독점하겠다는 욕심일 뿐이야. 그들이야말로 사회주의를 배신했지.


나는 군에 있으면서 인민을 해방하겠다는 집단이 공민들을 도륙내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지켜봐야 했어. 사람들을 땅크로 밀어버리고 그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못했다고. 고백하자면 오히려 거기에 가담했어.


부끄럽지만 나 같은 한명이 맞서기에 저들은 너무 컸고 또 결국은 나와 내 가족의 안위, 오늘 저녁에 당장 먹을 수 있는 쌀밥과 고기를 신경쓸 수밖에 없었거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거기에 대한 속죄지. 걸려도 상관없어. 해봤자 죽는 것밖에 더 있겠어. 살 날도 얼마 안남았는데.”


장은 잠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앨리스는 그를 담담히 쳐다보고 있었고 철혁은 다시 잔을 들어 식어가고 있는 가시오가피차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장이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좀 더 얘기를 해도 되겠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주변 나라들을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소. 내가 간부에 공산당원이라고 여행 허가는 잘 내주더라고. 몇 년 전에 울라지보스또크에 가게 됐는데. 20여년 만에 다시 간거지 아마. 아 글쎄 내가 깜짝 놀랐다니까. 심양은 물론이고 목단강보다도 못했던 저 동네가 이 정도로 발전했냐 말이지. 건물도 도로도 온통 다 새거야. 젊은이는 가봤소?”


“블라디보스톡이요? 아니요.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만 봤어요.”


“아주마이, 당신은?”


“가보긴 했어요.”


“그 루스키 섬이라고 알아요? 도시 본토에서 다리로 연결된. 그거 뭐 호텔들에 수많은 백화상점에다가 대학에 아 심지어 수족관까지. 아주 옛날에 처음 갔을 때 그냥 숲만 있던 곳이 확 바뀌었더라고. 그게 자유의 힘이지. 우리랑 비슷한 처지였던 쏘비에트 련방이 로씨야로 돌아가고 나서 자유를 받아들였어. 서방 세계의 일원도 됐고. 사람들의 얼굴도 밝아져있는게 느껴져.


우리 공화국은 뭐야 시장 경제만 받아들였지 자유가 없는 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등소평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게 나라를 잘살게 하려고 한다, 뭐 그런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그런데 본질은 그게 아니야. 그 놈들이 그걸로 인민들의 눈을 잠시 가리고 자칭 무산계급 독재를 유지하겠다는 거야. 그런데 겉만 번지르르하지 지금 무산계급들이 잘 살고 있어? 오히려 빈부 격차만 늘어났고.


여기 연변은 그나마 한국과 로씨야와 교역하니 대부분 여건이 좋다 치더라도 심양만 봐도요. 시내 중심부는 저 남쪽 민국의 상해와 좀 어떻게 비슷하게 갖춰놨어도 교외로만 가면 대약진했을때와 그렇게 달라진거 없어. 농민공들이 가져가야 할 최소한의 부를 도시가 다 가져가는거야.


농민공들은 너무 힘드니까 월남할 생각조차 못해. 어설프게나마 돈과 편안한 삶은 맛본 애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월남하거나 한국으로 도망가려는 거지. 정말 안타까운 역설이야. 진짜 도망을 가서 자유를 누려야 할 사람들은 그럴 시도할 여건조차 되지도 않으니.”


짜증이 날 법만도 했지만 앨리스는 이 노인의 장광설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저 노인의 마지막 말은 사실 동감을 안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바로 그랬으니.


“또 한편으론 해외로 나가 있는 우리 공화국 동포들중에 괘씸한 놈들이 많아. 외국에서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도 노예의 삶을 버리지 못하고 당이 시키는 데로 이곳 저곳에서 어용 단체 만들고 폭동 일으키면서 분탕 치잖아. 뭐 울라지보스또크는 이제 공화국 공민들이 많이 사니 우리 공화국으로 가야한다?


토이기가 키프로스 가지고 그러는 것처럼. 내가 장담하는데 한 10년 안에 이쪽 온성이나 아니면 저기 만포(滿浦)에서도 똑같은 일 벌어질거요. 공산당이 과연 한국 안 건드리겠어? 아무리 더 이상 군사력으로 상대가 안된다 한들 아직 핵있는 로씨야도 이렇게 대놓고 건드리는데 한국에 장난안친다는게 더 이상하지. 아, 이거 내가 너무 말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늙으니까 사람을 잘 안만나게되니 만날때마다 이러네.”


“어쨌든 이렇게 도움을 주신다니 우리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린 사람이 예의가 바르구려. 뭐 같은 군인이었으니. 아니, 내가 당신들에게 감사하지. 솔직하게 말하겠소. 나도 그렇게 살 날은 얼마 남지 않았어. 가족들에게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난 지금 투병 중이야. 청진에 갔을 때 거기 한국인 의사에게 진단받았어요. 해봤자 2~3년이라는 거야. 어차피 죽을 거 공민들에게 속죄하고 죽으려고.


이렇게 계속 정권에 균열을 일으킨다면, 언젠가는 둑이 터지듯이 무너지지 않겠어? 사실 연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실망해서 남쪽으로 내려갔어. 내가 아는 사람들만 해도 부지기수야. 도망가는 게 좋지. 그러나 나처럼 여기 남아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근데 이번에 포섭하려는 친구가 누구라고 했더라. 리...”


“리정성.”


“아, 그래 리정성. 대충 알아. 예전부터 똑똑한 애라고 연길에 소문이 났었어. 내가 걔 아버지와 조금 친했어. 같은 연길 출신에 군 장교라서. 아주 잠깐 같은 부대에 근무하기도 했었고. 이름을 리경춘으로 기억하는데. 그 사람은 옛날에 죽었어. 어떻게 된 거냐면 86년이었나 언제였나, 이 사람 가족들이 단체로 청도로 이주했어. 산동성.


리경춘 그 사람의 아버지가 공무원인데 늘그막에 거기로 발령이 났거든. 리경춘도 어떻게 아버지의 힘을 써가지고 그 근처에서 근무했지. 그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였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이미 산동의 발전 수준이 여기를 압도했어. 개혁개방 초창기에 거기에 무역 개방 지구를 설정했거든. 그러니까 당연히 산동으로 이주해야 경제 재원을 마련하기도 쉽고 정주 여건도 좋을 거 아냐.


아니 그런데 몇 년 만에 이 사람들이 도로 연길로 돌아왔잖아. 돌아온 게 아니라 쫒겨나온거지. 내가 얼핏 들었는데 그 막내 여동생이 월남을 했을거야. 그때 대학생이었는데. 때가 천안문에서 시위하던 학생들을 땅크로 짓밟아버린 그 땐데 이 애도 그 시위 주도했던 학생회, 그 왜 광장에서 확성기 들고 마이크 들고있던 사람들 말이야. 걔네들과 연루가 됐을 거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고 하는데 그 여동생은 한번도 본 적은 없어. 그 사건으로 온 가족이 도로 연길로 쫒겨돌아왔고 리경춘 이 친구는 계속 강도 높은 조사를 받다가 자살했지. 그리고 또 연좌에 걸려서 리경춘 그 친구 부모님도...”


“어떻게 됐나요?”


앨리스는 자제력을 살짝 잃고 장경수의 말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그녀는 혹시나 이 자리에서 미리 진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감이 들었다.


“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요? 아주마이. 나도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좀 헷갈리는데 노개(劳改)로 잠깐 끌려갔다가 풀려나고 아마 내몽고로 강제이주당했을 거요. 만주리(满洲里)였나? 그 로씨야와 붙어있는 데였을걸. 대체 그 추운 날씨를 환갑 다 되어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견디라고. 그 다음부턴 소식이 완전히 끊어져서 모르겠어.


연길에 남아있는 친척들도 물어보면 전혀 얘기를 안 하고. 보복이 무서웠겠지. 나도 결말이 어떻게 된 건지 느낌이 와서 솔직히 알고 싶지가 않았고.


그러다가 리정성 이 아이는 어떻게 된 건지 자기 엄마와 돌아왔더라고. 자기 아버지 얘기하려 하면 자기는 그런 사람 모른다 그랬다던데. 어땠든 좋은 대학까지 들어가고 또 그렇게 일하더라. 뭐 정 궁금하면 만나서 물어보든가요. 포섭하는데 그 얘기가 과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근데 당신도 우리 동포 출신이요? 꼭 우리네 사람 같구만.”


“아, 저는 회령 출신이에요. 함북 회령.”


“한국 사람이구만. 회령은 나도 잘 알지. 가끔 가요. 온성, 회령, 무산, 종성. 여기는 변경이라서 동포들도 많이 사니까. 그러니까 거기 사람이나 여기 사람이나 다 같은 동포지. 그런데 이 변경 지역에서 여러 얘기도 많아. 좋지는 않은 얘기지.”


“국경지대니까 뭔 일이 벌어지든 이상하진 않겠죠. 무슨 이야기인가요?”


“뭔 일이겠소. 마약 얘기지. 당신네 한국 근래 가수들부터 해서 배우들까지 연예인들 마약 얘기 엄청 많잖아. 회식, 파티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서 뭐 히로뽕이니 펜타닐이니 다 퍼진거 우리도 뉴스로 알아. CCTV나 인민일보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타락 어쩌고 하면서 선전을 해대니까. 그런데 그걸 퍼뜨려주는게 역시 바로 공산당이야. 바로 이 국경지대를 통해서.


펜타닐을 예로 들어보자고. 만드는 건 여기 동북 3성이나 저 멀리 산서성의 화학 공단에서 국영 기업이 완제품이나 원료를 일반 의약품으로 위장해서 생산한다고. 그게 그러면 뭐 곳곳에 뚫려있는 고속도로로 운송하지. 기관 번호판 달면 공안 검문도 안 받고 그냥 가거든. 고속도로도 필요없어. 군에서 나르는 렬차면 오히려 사람 눈에 더 안 띄니까 좋지. 그런것들이 모이고 모여 여기 중한(中韓) 변경으로 간다고.


거기서 한밤중에 보따리 장사꾼이라든지 망명자로 위장한 요원, 아니면 삼합회 조직원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서 한국으로 간다고. 이 강을 둘러싼 철책은 당이 원하지 않는 탈출자를 막으려는 거지, 마약이나 자기네 사람들은 해당 안되거든. 당신네 한국 경찰이 국경지대 제대로 통제 못해서 말 많은거 유명하잖아. 그게 무능한게 아니야. 대놓고 공산당에서 벌이는 물량 공세인데 그걸 얼마 안되는 국경경비대가 어떻게 다 통제를 해.


한국으로 들어오면 우리 동포들이 중심인 범죄 조직원, 사실 개중에는 국가안전부 요원들도 있어. 이들이 내부에서 유통을 하지. 원료가 도착했다면 한국에서 직접 합성해서 제품을 만드는거고. 말하자면 그게 두만강을 건너면 회령, 온성, 무산을 거쳐서 나진, 함흥, 원산으로. 또 저 압록강에서는 신의주, 만포, 후창을 거쳐서 평양으로 가겠지. 아 혜산도 있겠구만. 거긴 함흥으로 가지. 당신네들이 자랑하는 그 고속도로와 고속렬차를 통해서 말이오. 그래 가지고 평양과 함흥에서 모이고 다시 해주나 철원, 결국 서울로 가는 거지.


서울에서 끝나는 게 아니야. 서울이 유통의 중심부가 되고 다시 대전, 부산, 광주 이렇게 남부까지 가서 한국 전역으로 퍼지는 거라고. 제주도는 그나마 섬이라고 교통 통제가 좀 되니 덜하다지만. 여튼 주요 도시에 퍼지면 그 말단 유통 루트는 조직원들이 직접 관리하는 게 아니라 걸렸을 때 버리면 그만인 끄나풀들이 알아서 인터네트 등을 통해서 팔아대는거지. 꼬리 짜르기가 잘 되어있어서 말단 유통망을 파괴해도 상부는 타격을 안 입는다고.”


“마약 얘기는 얼핏 들었지만 그런 루트는 처음 듣는군요.”


“공공연한 얘기야 여기선. 나랑 친한 무경 애들 중에 그 일을 자기가 맡는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애들이 있어. 조선 반도 해방의 일환이고 설령 한국에서 그걸 알아도 뭘 어쩌겠냐 그거지.


사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야. 남중국에다가 하는 짓은 더하지. 로씨야도 육로로 연결되었으니까 연해주도 점점 난리고 로씨야가 같은 유럽연합이니까 저 뽈스까니, 독일이니, 영국, 프랑스 같은 나머지 구라파로도 퍼지는거고. 나는 여기 사니까 한국 쪽을 좀더 잘 아는 거고. 요즘은 아예 미국에다가도 퍼뜨린다지? 중남미의 범죄조직과 연결되서? 이게 범죄 조직이지 어떻게 한 공화국을 다스리는 당이고 정부야?”


철혁과 앨리스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둘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미묘함이 섞여 있었다. 장경수는 잠시 차를 더 가져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의말

만포(滿浦): 평안북도 강계에 위치한 지역

노개(劳改): 라오가이, (북)중국의 정치범수용소

로씨야: 러시아

뽈스까: 폴란드

구라파: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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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1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6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7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0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5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40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9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2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7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6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60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4 1 11쪽
» 7화. 탄식 -2- 22.11.06 59 1 13쪽
16 7화. 탄식 -1- 22.10.30 64 1 12쪽
15 6화. 연길 가는 길 22.10.23 66 1 19쪽
14 5화. 조우 -3- 22.10.16 65 1 14쪽
13 5화. 조우 -2- 22.10.10 6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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