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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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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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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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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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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화. 계획 -2-

DUMMY

셋은 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왔다. 칠하지 않은 회색 콘크리트 계단은 마치 사람을 홀리려는 양 꼬여진채 밑으로 끝없이 뻗어있었다. 철혁은 내려가면서도 위아래로 누가 있는지 살펴봤다. 앨리스는 그를 따라가면서 외부 창 바깥을 보았다. 담배를 피고 있는 노인, 걸어가고 있는 여인.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려는 햇빛은 제법 쨍쨍했다. 마당에는 아까전에는 본 적이 없던 차 몇 대가 놓여있었다. 미쓰비시부터 현대, 폭스바겐까지 다양했다. 장경수는 이 차들을 지나쳐 계속 도로 변으로 나아갔다. 도로로 나오기 직전 주차되어있는 어떤 차 앞에 섰다. 회백색 벤츠는 삐까번쩍했다.


그는 열쇠를 꽂고 문을 열었다. 이 노인은 둘에게 타라고 손짓했다. 철혁이 조수석에 타고 앨리스는 뒷자석에 탔다. 차는 새로 구입한지 얼마 안되보였고 꽤 안락했다. 차량 내부는 크게 무언가 장식한 흔적은 거의 없었다. 단지 오디오 세트와 가죽 좌석만 꽤 고급스러워볼 뿐이었다.


“좋지? 이래뵈도 산지 반년도 안된 차라고. 이 차만 있는게 아니야. 벤츠 외에도 오펠, 폭스바겐이 각각 하나 더 있어. 내 돈으로 산 것도 있고 말했다시피 아는 사람들 통해 구해놓은 것도 있다만.”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온 차는 아까 전에 두 사람이 걸어왔던 골목길과 대로를 지나 쾌속전진하기 시작했다. 철혁은 앞쪽 창문과 조수석 쪽 유리창을 번갈아보았다.


“어디로 가는거죠?”


“일단 호텔 주변을 둘러보자고.”


부르하통 강으로 빠져나가는 작은 실개천을 지나자마자 차는 교차로에 막혔다. 신호를 기다리다가 좌회전을 한 차는 1~2분 달리더니 또다시 좌회전을 했다.


“여기 도로 설계를 참 이상하게 해놨어. 아까전에 공원 앞에 있는 도로를 왕복으로 건설하면 될 것이지 그건 또 일방통행으로 해놨단 말야. 그러니까 이렇게 돌아서 가는데 시간 낭비지.”


실개천을 건너자마자 바로 보인 건물은 호텔이었다. 한눈에 봐도 새로 지은 20여층 짜리 유리 건물은 이 근방에서 알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장경수는 호텔 옆 아파트 단지로 차를 몰더니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저기 보면 입구가 있지. 그 뒤에는 식료품 차가 출입하는 후문이 있고.”


장은 말을 하다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철혁에게 인터넷 지도 앱을 켜고 호텔 주변부를 확대하라고 했다.


“호텔에서 나오는 길은 크게 두 길이야. 하나는 정면 돌파. 정문으로 나가면 되는데 경비실이 있지. 뒷문으로 나오면 저 지름길이 있는데 경비실이 없는 대신 여긴 화물 트럭 전용이야. 일반 승용차가 나가면 의심을 살 수 있어.”


그는 계속 주변부를 예의주시하면서 말을 내뱉었다. 앨리스와 철혁 역시 결전의 장소를 하수구 뚜껑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저 왼쪽으로 가면 바로 도문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탈 수 있는데 요금소가 있고 검문소가 따로 있잖아. 이렇게 되면 위험하지. 그래서 오른쪽으로 가면 남쪽으로 곧장 갈 수 있는데 시내를 지나쳐야지. 대신에 G333 도로를 타면 제일 넓고 통행량이 많은 도로를 탈 수 있지. 여긴 밤에도 차가 많이 다니니 의심을 덜 살거야. 다만 중간에 공안 차량이 종종 지나가. 근처에 파출소가 있거든.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속력을 지키라고.”


차는 다시 공원 대로를 질주하다 우회전하여 G333 도로로 갈아탔다. 부르하통 강 다리를 건너간 이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계속 달려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파트촌이 끝나고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풍경이 바뀌는 지점 사이에는 철로가 도로 밑으로 나있었다. 때마침 올리브색 구형 여객열차 한 대가 연길서역 방면으로 서서히 속력을 줄이며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두고 서서히 달려가는 상어의 모습 같았다. 풍광은 또다시 농촌으로 바뀌더니 도로는 어느새 고속도로로 바뀌어있었다. 유신촌(维新村) 부근에서 차는 농촌 길로 빠져나갔다.


“일단 지금 목적지로 가려면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지만 일단 일을 마치면 이 길을 계속 따라가. 룡정 시내에 들어서면 이 333을 계속 타든가 아니면 중간에 334로 빠지든가 해. 철혁군 자네는 잘 알지? 여기 종종 왔었다며?”


“네, 잘 알죠.”


철혁은 남중국으로 가기 얼마 전 연변 일대를 종종 방문했었다. 한국인들이 하도 많이 방문해 그의 과거 이력에도 연길 가는건 수월했다. 관광 비자도 문제없이 나왔었다. 그는 비싸기 비싼 고국의 물가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저렴한 이 지역 물가 덕택에 여행하는 것이 즐거웠다. 두만강 건너 고향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북간도의 풍광도 인상적이었다. 시골 마을에 갔을 때 동포라고 하는 사람들의 친절함도 좋았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들은 그들의 잠재적 적이다. 어떻게 밀고할지 모르는.


차는 왕복 2차로의 작은 도로에 들어섰다. 벤츠가 한창 잘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공안 마크를 단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옆으로 끼어들었다. 중국어로 길가에 차를 대라는 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왔다. 나지막히라고 하지만 셋에게는 요란한 천둥소리나 다름없었다. 장경수는 길가에 차를 대는 걸 선택했다. 주변은 온통 밭이었고 민가도 저 멀리 보일락말락 했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선글라스를 낀채 차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철혁은 주머니 안에서 총을 계속 만지작만지작거렸다.


장경수가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공안이 그를 잠시 쳐다보더니 움찔했다.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 장형 아니오?”


아까전만 해도 위압감 넘치는 만다린으로 안내 방송을 하던 공안원은 조선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 황 경사였어? 오랜만이구려. 자네 시내에서 근무하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 먼 교외까지 단속을 하고 있어? 그것도 이 차도 잘 안다니는 시골길을?”


“오늘 순찰은 여기까지 하라고 지시를 하잖아. 내가 이 나이먹고 너무 멀어서 짜증나 죽겠네. 잠깐 주변 좀 돌아보면서 휴식 좀 취하려 했더니 아 장형 차가 속도를 내며 달려가네?”


공안원은 옆에 앉아있던 철혁과 뒤의 앨리스를 보고 장경수에게 다시 물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요?”


“아, 한국에서 온 내 딸 친구들이야. 연길에 여행왔는데 이 동네 잘 아는 사람이 나 밖에 없으니 잘 부탁한다고 딸년이 그러잖아. 그래서 차로 좀 동네 구경시켜주고 있지.”


“이 농촌 구석까지?”


“한국에 이런 풍경이 어딨어? 죄다 공장에다 아파트 이런데 밖에 없으니 여기 오면 자연 환경이 좋다고 다 좋아하잖아?”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형님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어쩐 일로 이렇게 속력을 내는거요?”


“아 봐봐. 차를 새로 샀잖아. 차를 샀으면 속력을 내야 할 것 아닌가. 도로도 새로 뚫렸으니.”


“그래도 법규는 지켜야지.”


“한번만 봐줘.”


“에이. 그건 곤란하다. 일단 서로 아는 사이래도 확인 작업은 기본적으로 해야하니 공민증이나 내놔봐요.”


장경수는 공민증을 꺼냈다. 이 자그마한 카드 밑으로 종이처럼 생긴 무언가가 삐져나와있었다. 지폐였다.


“아이씨, 또 이러면 곤란한데. 거기다가 외화도 아니잖아?”


“좋은게 좋은거 아니야? 뭘 또 그래? 그리고 인민경찰이 외화 팍팍 쓰고 다니면 더 의심받지 않겠어?”


“요즘 상부에서도 이런 거 단속 잘한다고. 그나마 이 근방을 찍는 CCTV가 없어서 망정이지. 상급 기관에서 감시하다 걸리면 우리 둘 다 박살날 수 있다고.”


“그래 잘 알아. 그런데 자네 말대로 여기 보는 눈 없잖아?”


“에이 알았어 알았어. 이번 한번만. 노인 공경 차원에서. 다음에는 진짜로 없어. 조심하라고. 나니까 이렇게 해주는 거지. 다른 이들이었으면 꼼짝없어. 나도 다음에 걸리면 봐주기 힘드니까 천천히 운전하시오. 그 나이가 어디 속도를 즐길 나이요? 걸어다니는 운전하든 조심해서 다니라고.”


“아유 알았어.”


“그러고 보니 우리 술 마신지 오래되지 않았소? 같은 조선 사람들끼리 이렇게 서먹서먹해서야 되겠나?”


“토요일 점심에 시간 되겠어?”


“아마 될거요.”


“그러면 그때 사람들 불러서 한잔 하자고. 내가 공부가주를 구했다고.”


“어유, 공부가주를?”


“그럼. 내가 누구야. 바로 장경수 아닌가.”


“흐흐, 그럼 그때 보자고.”


교통 공안원은 경례를 한번 하더니 차를 몰고 바로 가버렸다.


“휴, 큰일날 뻔했네!”


장경수는 손으로 이마를 닦았다.


“저런 식이야. 아주 약간 속력을 낸건데. 단속 기준을 넘어선것도 아니야. 그런데 그걸 핑계 삼아서 돈 받으려 오는거지. 평소라면 그냥 주겠다만 당신들이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신원조사를 요구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 어떻게 해명을 하라고? 앞으론 그냥 아예 지정속도 이하로 달려야겠어.”


장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차는 몇분 동안 계속 흙밭을 달렸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들어서자 차는 멈췄다. 주변에 쓰러진 폐가들이 몇 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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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화. 유혹 23.04.09 27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1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6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7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0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5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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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2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6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6 1 10쪽
» 8화. 계획 -2- 22.11.27 60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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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7화. 탄식 -2- 22.11.06 5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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