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551
추천수 :
42
글자수 :
159,433

작성
22.12.11 19:05
조회
60
추천
1
글자
13쪽

9화. 방사능 녹차

DUMMY

같은 시각 연길에서 약 100KM 떨어진 이곳 나진만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온갖 화물선과 여객선이었다. 배 갑판을 컨테이너가 잔뜩 메운 에버그린 화물선은 명호동(明湖洞)쪽의 남항으로 향하는 듯 했고 한진해운 화물선은 이쪽 신항으로 오고 있었다. 동해를 건너 태평양을 건널지, 아니면 대한해협을 넘어 남중국해, 그리고 인도양을 건널지 그 최종 목적지를 짐작하기 힘든 광석선은 이제 끝 모를 여정을 또다시 시작하기 위해 막 북항에서 나오려는 참이었다. 반대로 일본 국기를 단 여객선은 KTX 나진역 바로 앞의 여객선 터미널로 마지막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 함경북도의 얼어붙은 동토를 낀 동해 바다는 물살을 가로지르는 화물선과 여객선떼, 그리고 건물들 유리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인해 얼음이 낄 여지가 없었다.


최덕철은 택시 뒷자석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5분안에 도착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영어로 보냈다. 언덕 길을 꾸불꾸불 달리는 택시 안에서 약간 어지로움을 느낀 그는 그는 핸드폰을 놓고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깊숙이 들어온 나진만 주위로 온갖 마천루들이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신안동(新安洞)에는 롯데호텔 타워가 있고 그 옆에는 포스코 지사가 자리잡았다. 이 대한민국 땅에서 해안가를 낀 마천루 타운이 부산 해운대와 인천 송도국제도시, 그리고 여기 나진만 무역지대라는데 가장 마천루 밀집도가 놓은 곳은 어김없이 여기 나진이었다. 최덕철 입장에서는 남한 출신들에게 젠채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였다.


최덕철의 택시가 우회전을 하여 크게 반원을 돌며 호텔 로비로 다가가고 있었다. 호텔 앞에는 국기들이 여러개 놓여있었다. 도어맨이 택시 문을 열어주자 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가운데에서 가장 높게 게양된건 역시 태극기였고 그 양 옆으로 성조기와 일장기,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놓여있었다. 바로 그 옆으로는 오성홍기, 독일, 폴란드,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EU 회원국 국기, 그리고 호주와 몽골, 태국 국기들이 있었다.


국기 게양대 근처로 경찰 네다섯명이 모여있는게 최의 눈에 띄었다. 경찰에 이어 그가 볼 수 있었던 건 바닥에 내팽개쳐져있는 또 다른 깃발이었다. 파란색 바탕이 위 아래로 있고 가운데에는 붉은 바탕, 그리고 붉은 별이 하얀색 동그라미 안에 있는 국기. 남한에서는 인공기로 불렸고 최 같은 구 북한 출신들은 지금도 공화국기라 부르는 ‘람홍색공화국기’였다. 극좌 애들이 태극기를 끌어내리고 이걸 게양하려 하다가 경찰에게 걸린 모양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공식 석상에서의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지만 나진뿐만 아니라 함흥과 평양은 물론이요, 의주, 강계, 청진, 단천 등 여러 주요 도시에서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아직도 이 배곯던 시절이 그리운 사람, 그러니까 최덕철이 병신이라 부르는 놈들이 이 옛 휴전선 이북 지역에는 아주 많다. 굶는 건 참아도 돈으로 계급이 결정되는 사회는 싫다 이런 생각이라는데 그러면 그 시절 로동당 간부들은 상위 계급이 아니었나?


조선로동당 시절 혜택을 보다 특권을 잃은 세력은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이들이 주민들 향수를 이용해 창당한 극좌 정당은 아직도 회합을 할때 태극기가 아니라 이 공화국기를 계속 사용해 욕을 먹는다. 10여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공화국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위헌이라 판단하는 바람에 이들은 자유롭게 대놓고 활개칠 수 있게 되었다. 최덕철에게 공화국기는 여타 2000만 구 북한 출신들처럼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깃발이지만 그시절이 그립다거나 하는 애들이 있으면 그는 미친 놈들이라고 뇌까린다. 그리고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때 조선로동당이 떨어뜨리는 떡고물을 받아먹었건만 바로 그들의 사상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도 그가 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나진 힐튼호텔의 야외 커피숍이자 테라스로 쓰이는 장소로 올라온 사람들은 누구나 구 나진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피요르드처럼 땅을 깊숙이 파고든 덕에 웬만한 도시의 풍경은 이곳에서 다 보인다. 관광객이나 출장 스케줄의 압박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즐기는 비즈니스맨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뒤를 돌아서면 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보통 신나진으로 불리는 웅기구(雄基區) 지역의 스카이라인도 조금이나마 보인다. 잠시나마 선봉(先鋒)으로 불리던 그 지역 말이다. 대한민국 체제가 불만스런 일부 분자들은 아직도 저 동네를 웅기가 아니라 선봉이라 부른다.


야외 커피숍은 평일 대낮인데도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주로 외국인들이었다. 영어가 제일 많이 그리고 중국어와 일본어가 그 다음으로 많이 들리는 가운데 러시아어도 심심찮게 들렸고 심지어 불어나 몽골어, 아랍어도 들렸다. 참나무 바닥과 난간은 이 다국적 언어의 향연과 얽혀 이국적인 모습을 심화시키고 있었다.


최는 주위를 돌아봤다. 그리고 난간 테이블 한구석에 앉아 타임지를 읽고있는 백인에게 다가갔다. 테이블에는 차와 디저트가 놓여있었다.


“스탠 자네는 아직도 종이로 된 잡지를 읽고 있군 그래.”


그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오래된 습관이지.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로 읽으면 읽은 것 같지가 않아서.”


백인은 잡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입꼬리 한쪽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차 마시는 습관도 그래. 항상 개인 시간에는 커피를 안마시고 차, 그것도 홍차보다 녹차를 즐겨마시지. 영국인이 그렇게 특이한 습관을 그렇게 노출시키면 위험하지 않나?”


“그러니까 항상 체크를 하고 마시지. 친구라는 사람이 언제 찻잔에 폴로늄을 탈지 모르잖아.”


사내는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 키트를 최덕철에게 내보이며 말했다.


“벌써 16년 전이었군. 그 터키 친구는 참 불쌍한 사람이었어.”


“그때 수십 명이 피폭당했어. 런던 한가운데서 말야. 그것도 그때만 해도 같은 나토 국가였다는 놈들이 ‘우방국’ 수도에다가 그걸 버젓이 저질렀다고. 뭐 이미 수년 전부터 앙카라는 절대 믿을 놈들이 못된다고 경고했건만...”


“재미있지 않나? 수십년전 소련이나 저지를 일을 걔네들이 했었다는게.”


“러시아 놈들은 이제야 문명 사회의 온순한 일원이 됐지.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한 덕분에 야만성을 거세시켰다고 보면 될까? 그런데 아직도 뒤틀린 욕망을 주체 못하고 발톱을 드러내는 나라들이 있지. 적어도 유럽에서 하나, 아시아에서 하나. 수십 년간 우리는 그들을 문명의 일원이라 생각하고 대우했지만 그들은 그걸 스스로 걷어찼지...”


“허허. 자네 상관인 총리를 보고도 그런 얘기를 하는구만.”


“내가 말하는건 사람의 머리 속을 얘기하는거지 유전자를 얘기하는게 아니거든. 지금 총리야말로 에르도안을 향해 가장 강경한 정책을 펴고 있다는건 자네도 잘 알잖아? 일단 차나 마시면서 계속 얘기하지. 뭘 좋아하나? 이번엔 내 돈으로 사겠네.”


“난 이 호텔 카페에서 뭘 마신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 알아서 주문하게.”


“여기서 한국인이 어찌 나보다 더 잘 모를수가 있나? 하하. 자네 커피 취향은 잘 아니까 그말대로 하지.”


스탠리 월터스는 여종업원을 불러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얼마 뒤 작은 잔에 커피가 담겨나오자 최덕철은 용기있게 한모금 들이켰다. 그는 쓴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래. 나야 뭐 상하이에서 비행기 타고 바로 왔다만 자네는 좀 힘들었겠구만. 직항도 없는데. 런던에서 화상으로 보고받을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야.”


“총리 선까지 보고된 일이야. 상부에서는 본 건을 굉장히 예의주시하고 있어. 내가 직접 챙겨야지. 내 부하 3명도 지금 여기에 같이 와있어. 오늘 밤에 온성과 종성, 회령으로 각각 이동해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지.”


“온성이라면 몰라도 종성과 회령에서 백인이 도심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주민들이 관심을 아주 많이 가질텐데? 나도 그 근방에서 살아봐서 잘 알아. 거긴 눈에 띄면 아주 위험하다고. 대부분은 호의를 줄 지언정 아닌 애들도 굉장히 많거든.”


“걱정 말아. 다 아시아계야. 한국어와 중국어 잘해.”


“방금 전에 그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어. 오늘 오후에 호텔 체크인을 하고 준비해서 내일 실행에 옮기겠다고.”


“아직은 문제없이 진행되는군. 내일이 문제인데.”


“근데 이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


“자넨 어떻게 보는데?”


“이 어린 친구는 믿을만해. 직접 만나 봤고 경력도 그렇고. 근데 이 고고하다는 작가 아줌마는...”


“일단은 믿어. 나도 직접 만났고 내가 훈련시켜 줬으니까. 강한 여자야.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그건 믿겠다마는 선택의 여지도 없었겠지.”


“그래 맞아. 사람을 아무리 설득해도 가족만큼 설득력이 강한게 없어. 특히 당신네 아시아인들은. 우리가 여러 경로로 시도해봤잖아. 통하지 않았고 이번이 마지막 카드지.”


“젊었을 때 공산당 밑에서 일해본 내가 얘기하자면 저 동네에서는 사상이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많아. 내가 처음에 그랬거든. 붉은 물이 빠진지 30년 다되어가는 이 동네가 아직도 그런데 저기는 오죽하겠어?”


“그래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건 자네도 잘 알잖아. 과정은 철저히 준비해도 그 순간은 운에 맞길 수밖에. 일이 잘 안풀리면 플랜B로 가는 거고.”


월터스의 말에 최덕철은 쓴 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한모금 더 들이켰다.


“일단 우리 윗선에선 성공하더라도 그 자를 굳이 우리가 인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연말에 선거도 있고 괜히 붙어있는 나라 자극해서 더 위험에 빠지고 싶지 않다는거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옌지에서 우리 회사 연락망이 그 노인네 빼고 다 망가진 판에. 일단 배송에 성공하면 자네들이 알아서 하라고. 우리 영역에선 최소한의 시간만 있으면 좋겠고.”


“타오황 그 친구도 비슷한 말 하더구만. 지금 난징도 총통 선거가 아예 코 앞이라서 제대로 신경을 못쓴다고 하더군. 일단 한국으로 오는데 성공해도 그 자가 남쪽으로 올지 장담할 수가 없고. 말이 북중국인이지 남중국보다 차라리 한국에 더 연고가 깊으니까. 어쨌든 법적으로 자기네 국민이니 자기들이 인수하는게 맞지만 차라리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계획을 짠 우리나 아니면 워싱턴이 받아가는게 낫다는구만. 대신 정보공유협정 맺은게 있으니 그 자의 진술은 반드시 공유해달라고 하고.”


“나도 알아. 어제 상하이에서 만났잖아. 베이징에서 총통 선거 개입하려는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했다면서 그거 막느라 아주 죽을상이더군. 그래서 공유할건가?”


“안할 수는 없어. 연결고리를 찾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으니까. 어차피 우리도 랭글리와 공유할 수밖에 없어.”


“일단 국경을 건너면 여기 나진이 아니라 바로 청진으로 차라리 가는 게 더 안전할 수 있어. 여기는 베이징에서 온 놈들이 너무 많아. 도심부터 항만지대까지 죄다. 걔네들 웬만해서는 조용히 있지만 이 친구는 얘기가 전혀 다를거야. 일단 여기 온걸 알면 어떻게든 개수작을 부리려 들걸. 국경지대는 다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으니 온성에서든 회령에서든 새벽에 2시간이면 청진에 도착해. 거기도 공항이 있으니 김포에 착륙해서 인천으로 이동하면 그때 바로 런던으로 가면 되지. 아니면 타오가 협력을 요구하면 함흥에서 바로 상하이로 갈수도 있고. 아, 혹시 국경이 봉쇄된다면 훈춘에서 러시아로 가는 방법도 있는데.”


“그건 안돼. 지난주에 또다시 아무르강에서 총격전이 벌어져서 거기도 지금 신경을 못 쓰는거 알잖아. 모스크바 얘기가 언론엔 발표 안했지만 넴초프가 어제 회의에서 나토 헌장 5조까지 운운했다는군. 그거 말고도 지난번에 그 교수 부부 말이야. 부인이 우리 국적인. 과학자도 아니고 사회학 교수가 만저우리에서 국경을 넘겠다는데도 모스크바 놈들 베이징에 괜히 겁먹어서 입국 거부하고 우리더러 알아서 챙기라는 바람에 겨우 몽골로 입국하게 도와줬잖아. 에스컬레이션되기 싫다고.”


“그놈들 사나운 곰이 아니라 이젠 온순한 양이 되어버렸으니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스탠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트라이플을 한입 떠서 입에 넣었다. 최는 그 모습을 보며 한마디 내던졌다.


“이제 젊은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해야겠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북쪽 나라의 앨리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4월 말 쯤 연재 예정입니다. 23.04.21 16 0 -
공지 다음주 일요일 쯤 연재예정입니다. 23.04.02 23 0 -
공지 다음 주 일요일 쯤 연재될 예정입니다. 23.03.18 13 0 -
공지 이번주 일요일 연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23.03.03 45 0 -
37 21화. 책임 회피 23.04.30 26 1 7쪽
36 20화. 유혹 23.04.09 26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1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5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7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30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4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5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39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8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40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1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6 1 10쪽
»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5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59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3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8 1 13쪽
16 7화. 탄식 -1- 22.10.30 64 1 12쪽
15 6화. 연길 가는 길 22.10.23 65 1 19쪽
14 5화. 조우 -3- 22.10.16 64 1 14쪽
13 5화. 조우 -2- 22.10.10 64 1 8쪽
12 5화. 조우 -1- 22.10.09 64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