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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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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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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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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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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8화. 계획 -3-

DUMMY

푸른 기와가 얹은 집이 눈에 보였다. 흡사 창고 같았다. 벽의 하얀 페인트칠은 하도 많이 벗겨져서 차라리 회색 벽에 흰색 점을 찍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맞을 지경이었다.


장경수는 붉은 색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왼쪽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철문 안구석에 채워져있는 자물쇠를 열었다. 끼이익 하는 쇳소리가 났다. 장경수가 잠시 끙차하는 소리를 내더니 문을 앞으로 열었다.


“괜찮으니까 들어와.”


장경수는 뒤에 서있는 두 남녀에게 손짓했다. 방 안은 예상대로였다. 퀴퀴한 냄새가 세명의 코를 찔렀다. 부서진 가구가 몇 개 있었다. 어떤 거는 옷장이었고 또 하나는 침대인 듯 했다. 벽면에는 문화혁명 시절에 만들어진 듯한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적어도 철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앨리스는 그게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그린 거라는 걸 알았다. 꽃이 만발한 봄의 시골길을 스즈키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그 오토바이에 앉은 선남선녀도 역시 분홍색 꽃나무처럼 싱그러웠다. 자신은 늙어가고 있지만 그 포스터의 커플은 그때나 이 먼지 쌓인 창고 구석에서나 영원히 그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명을 다한지 최소 20여년은 지난 듯한 라디오가 책상에 놓여있었다. 장경수는 귀찮다는 듯이 라디오를 들어 바닥에 살며시 놓더니 이내 그 책상을 오른쪽 구석으로 확 밀어버렸다. 노인이래도 오랜 시간동안 무력을 쓰는 일을 하며 단련한 체력은 어디가지 않는 듯했다. 책상 밑에는 다시 검푸르게 녹슨 철로 된 뚜껑이 놓여있었다.


“이봐, 여기 좀 여는 거 도와줘.”


장경수가 바닥의 먼지를 털더니 철혁을 불렀다. 장이 왼쪽 구석진 곳의 손잡이를 잡고 젊은이가 오른쪽 손잡이를 잡고 용을 썼다. 뚜껑은 열렸다. 밑에 공간이 있었다. 완전한 지하실은 아니고 머리를 좀 숙여야 걸어다닐 수 있는 높이였다. 사다리를 타고 차례로 셋은 내려갔다.


나무 선반 위에 총들이 가득했다. 수량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나 이 먼지 쌓인 건물 답지 않게 총들은 깨끗했다. 권총부터 시작해서 소총, 군용 칼에 몽둥이까지. 이 거대한 통제 사회의 촌구석의 버려진 창고. 그 곳에 이런 물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자, 골라봐. 내가 틈틈이 닦고 관리했으니 오래된 거 치고는 작동이 잘 될거야. 그렇다고 AK 이런 것처럼 대놓고 보이는 거는 가져가지 마. 어디 인민정부청사 이런거 습격할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비상용 무기들이니까. 권총이나 칼이 최고지. 쓱싹해버리면 되잖아.”


철혁은 칼을 선택했다. 앨리스는 총을 골랐다. 마치 쇼핑하듯이.


“놀랍군요. 설마했는데 말씀하신게 진짜라니.”


철혁이 칼의 날을 살짝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어허, 내가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보여? 다 골랐으면 나가자고.”


장경수는 옷에 묻은 흙을 탈탈 털었다. 일부는 트렁크에 싣고 일부는 각자 코트 주머니나 안감에 넣었다.


차는 탈탈탈 다시 오는 길을 되돌아오고 있었다. 장이 흘러간 노래를 중얼거리다가 아차하며 옆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들 배고프지 않아? 점심 시간이 지나버렸는데.”


“네,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점심, 저녁 같이 먹지. 점심은 여기 근처에서. 저녁은 시내 근처에서. 어차피 내가 호텔로 다시 와야 하잖아. 오후에 자료 구해서 와야 하거든.”


“외부인이 호텔에 들어올 수 있어요? 하루 전부터 보안을 강화하지 않을까요?”


“아, 내가 누구야. 그리고 이 연길에서는 당일 아침부터나 보안 검색을 한다고. 내가 말했잖아. 북경이나 아니면 각 성정부 급 인사가 아니면 보안 그렇게 심하게 안한다고. 심지어 핵물리학자가 와도 말이야. 우리의 주인공 나으리말이지.”


흙길을 나와 좁은 포장길로 들어선 차는 도로 한 구석으로 빠져나오더니 이내 속도를 줄이면서 공터 앞에 섰다. 차가 두 대 더 서 있었고 이 흙밭 주차장 바로 옆으로 자그마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의 그 도로변 간판을 어설프게 흉내낸 네온 간판에는 간화자로 ‘청도가’라고 써져있었다. 식당이었다. 주변에는 이파리 빠진 나무들로 장식된 겨울 산들이 못처럼 박혀있는 가운데 방금 전 그들이 ‘물건’을 구했던 폐가보다는 조금 깨끗할지언정 여전히 낡아빠진 주택들이 이 포장된 왕복 2차로 변을 중심으로 들어서있었다. 연길 시내 방향으로는 2~3채, 저 건너편은 한 4채 정도.


“어차피 여기 연변의 조선요리나 저 건너 함경도 요리나 똑같잖아. 당신들이 실컷 먹었으니까 질렸을 것 같아서. 공화국에 왔으면 공화국식 요리를 먹어보는게 좋아. 여기 산동 요리로 유명한 집이야. 가상채라고 이 그 지역 인민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요리야. 물론 다른 것도 팔지. 건물 겉모습이 이래도 맛은 좋아.”


산동이라는 말에 앨리스는 그 시절이 생각났다. 푸르렀던 시절. 그리고 끔찍한 기억의 굴레가 온 몸을 감싸던 시절. 그녀는 그런 복합적인 기억의 사슬이 아닌 순수하고 걱정없던 옛 시절을 떠올리고 싶었다. 그건 연길식 조선 요리가 알맞았다. 산동요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돈을 내는 건 장경수니까. 그리고 마침 수족관 안을 노닐고 있는 물고기와 연신 공기를 뿜어대는 대합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어서와요 어서와!”


대머리 주인장은 산동 억양이 잔뜩 밴 말투로 손님을 맞았다. 장경수보다는 나이가 좀 더 적어보였다. 그도 장을 잘 아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다시 조선어로 장경수를 맞았다.


“오랜만이네 장씨. 석달은 넘었나?”


“생각나서 또 왔어.”


“지난번엔 누구더라 시 인민정부 사람들 같이 데리고 오더니 이번엔 또 누구야?”


“내 딸과 아는 사람들이야. 한국에서 왔어. 여기 음식 좋은 거 알려주려고 데려왔지.”


“한국 사람들 이 동네 잘 안오지만 우리 음식 한번 맛본 사람이면 안 찾아올수가 없지.”


“조용한데서 먹을 수 없나? 번잡스러워서.”


“마침 방이 비었는데. 거기서 먹을려고?”


“좋지.”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안내받은 곳에는 둥근 테이블에 의자가 5개 정도 놓여있었다. 상아색과 하늘색이 묘한 조화를 이룬 벽 가운데에는 창이 뚫려있었고 창문 건너편으로는 아까전에 셋이 차를 타고 지났던 그 도로가 훤히 보였다.


“메뉴는요?”


허기가 진 앨리스가 장을 쳐다봤다.


“그런거 필요없어.”


“네?”


“여기서 그날 재료 좋은 거 들어오는데로 요리하거든. 특별히 못먹는거 없으면 한번 먹어봐. 후회는 안할거야.”


그의 말에 둘은 이번은 그냥 따르기로 했다.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일종의 휴식시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바로 품에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의 살을 꿰뚫어버리거나 썰어버릴 수 있는 도구들을 지닌 채 그들의 혀를 잠시라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먼저 나온 것 중 하나는 마치 돈까스 껍질마냥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가지였다. 가지 사이로는 탱탱한 새우살이 들어있었다. 붉은 고추 튀김의 매콤함은 기름기를 중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볶음밥은 계란과 콩, 그리고 쌀이 고슬고슬하게 볶아져 있었다. 탕수육 비스무리하게 생긴 돼지고기 튀김, 두부와 삼겹살 조림이 각각 큰 접시에 담겨왔다. 그 외에 생선 요리, 채소 볶음까지.


그릇을 한 손에 든채 게걸스럽게 잉어 튀김을 씹어먹던 장경수는 막 룸의 커튼을 들추고 들어오는 주인장을 바라봤다. 그는 두부와 야채를 끓인 맑은 탕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어이, 습씨. 조개 요리 없소? 왜 죄다 육류 아니면 생선, 새우, 채소밖에 없어?”


“조개?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항상 올 때 마다 생선, 하다못해 새우 말고는 해산물 안 먹었잖아? 그래서 안 내놨지.”


주인장이 식탁 가운데에 탕 그릇을 놓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장을 쳐다봤다.


“이 사람들 때문에 그래. 어쨌든 있어 없어?”


“선패 있지.”


“아니. 그게 있었어?”


“당연하지. 비싸게 사왔어. 한국산이야. 아예 국경 넘어서 라진까지 가서 사왔다니까? 그것도 내가 직접 가서. 그 유현(踰峴)이라고 아는지 모르겠어. 거기에 대형 수산 시장 있잖아?”


“알지. 그럼 그거 줘.”


“선패?”


철혁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스캘롭(Scallop). 가리비요 가리비.”


앨리스가 ‘친절하게’ 영국식 영어로 발음했다가 이내 한국어로 말을 고쳤다. 주인장이 나가고 나서 다시 숟가락을 든 장경수가 그녀를 쳐다봤다.


“영어 좀 잘하는 모양이요. 아가씨?”


“네, 좀 공부를 했죠.”


“딸 얘기가 한국 사람들이 영어 학습하겠다고 아주 난리라는군. 그 말이 사실인가?”


앨리스가 잠깐 머뭇거렸다.


“네, 그건 맞아요.”


철혁이 대신 답했다.


“영어 공부하는 건 좋아. 나도 이 나이에 영어를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물론 연길에서 영어를 쓸 일은 없다고 봐도 좋지만 저기 라진이나 울라지보스또크만 가도 외국인들 많아요. 국적이 너무 다양해. 그 사람들과 원활히 소통하려하면 영어밖에 답이 없지. 그래도 너무 정도를 넘어서면 안된다고 봐요. 우리는 결국 동양 사람들이거든.”


장이 그렇게 고대하던 가리비 요리가 나왔다. 껍질 위에 가리비 그리고 잡채 비스무리하게 생긴 무언가와 쪽파가 얹혀져 있었다. 장경수의 불평아닌 불평을 주인이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듯 조개찜과 조개탕도 아예 같이 나왔다. 마치 후식 마냥. 진짜 후식이 나왔을 때도 셋은 게눈 감추듯이 그릇을 비웠다.


요리 종류와 양에 비해 식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약 1시간 정도. 그들은 음식을 아주 약간 남겼을 뿐이었다. 이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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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1화. 의심 22.12.25 5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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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61 1 13쪽
» 8화. 계획 -3- 22.12.04 6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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