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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 님의 서재입니다.

이중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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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
작품등록일 :
2023.05.10 20:43
최근연재일 :
2023.07.12 23:15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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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5,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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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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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태극 난동

DUMMY

험한 바위틈에 위태롭게 자리잡은 나무들이 파릇파릇한 신록으로 물들어간다.

화산에도 스멀스멀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한층 따스해진 봄바람이 외진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암향곡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간다.


양쪽의 하늘을 가리고 있는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

두 개의 바위산에 비집고 들어가듯 끼어있는 계곡에서 한 소년이 목검을 휘두르며 검술에 몰두해 있었다.


힘차게 바람을 가르던 목검이 문득 멈추었다.


“후욱 훅”


거칠어진 숨소리에 온몸이 잘게 떨리고 있다.


멀지 않은 정자 위에서 얼굴에 상처가 뚜렷한 노인이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검을 들 힘도 없구나, 잠시 쉬어라”


소년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쉬기 위해 정자까지 걸어갈 힘은커녕 대꾸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초로의 여인이 혀를 찬다.


“쯧쯧··· 매번 저렇게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구나, 언제 봐도 대단한 아이야”


곁에 있던 뚱뚱한 노인이 거들었다.


“룡아처럼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적지 않지만 저토록 의지가 강고한 아이는 천하에 저 아이 하나 밖에 없지”

“그러게 왜 저 아이한테 극한수련을 가르쳐서 애를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요?”

“크흠, 그래도 저게 최고의 수련 방법인걸···”


풍채 좋은 노인이 툴툴거리듯 말을 가로챘다.


“더는 우리가 가르칠 것도 없는데 극한수련이 무슨 필요가 있나?”

“그건··· 저 아이가 원해서 하는 거라고···”


이들의 말과 표정에는 제자에 대한 애정이 뚝뚝 흘러내린다.

세 노인 모두 제자바보라는 말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제자가 왜 저렇게 목숨을 걸고 수련에 매진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말릴 수는 없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화산비무회에서 기필코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는 제자에게


‘그렇게 고된 수련을 해 봤자 우승은 안 돼’


라는 진실은 죽어도 말할 수 없다.


악운룡(岳雲龍)


아직 소년의 티가 남아 있는 청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추슬러 세 노인이 있는 정자에 올랐다.

정자에 걸터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탄성을 뱉는다.


“이 경치는 매일 보아도 언제나 아름답네요”

“이걸 만들기 위해 네가 몇 달이나 고생했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구나”


모두가 거들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부분 악운룡이 만든 정자다.

그 때는 사부들의 건강이 지금보다 더 안좋았고 사제들도 어렸었다.

자신보다는 사부들을 위해 만들었다.


세 사부들은 동시에 맞장구를 치다 말꼬리를 흐리고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이 암향곡은 악운룡의 말대로 보기 드문 선경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곳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된다.


이들이 이 궁벽한 골짜기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빌어먹을 전설 때문이었다.


암향검객(暗香劍客)


삼백 년 전 천하제일의 검객

화산을 명문검파로 만들어준 그의 유품이 이곳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산 아래로 내려가 살면 훨씬 편하다는 것은 알지만천하제일의 검술을 얻을 기회는 사라진다.


누가 보아도 가망이 없는 꿈을 위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세 사부 모두 고집불통

정확히는 암향곡의 제자인 큰 사부 악산의 고집 때문이다.

만난을 무릅쓰고 노력을 거듭해도 암향검은커녕 냄새도 맡아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암향검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쿠르르릉


대낮인데도 벼락치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의 시선이 멀리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향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붉고 푸른 두 개의 소용돌이가 어지럽게 회오리치고 있었다.


“오오! 저건 뭐지?”

“꼭 태극 문양 같네요”


붉고 푸른 기운이 얽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은 악운룡의 말대로 여지 없는 태극이었다.


산봉우리에서 회오리 치는 태극을 산 중턱에 있는 조그만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소년 소녀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나, 저게 뭐야?”

“글쎄···”


언제나 똑부러지는 총명함으로 스승들에게 칭찬을 받는 악소평(岳小平)

남루한 복장으로도 감추어지지 않는 미모를 가진 소녀도 막내 악붕(岳鵬)의 물음에 대답해줄 수 없었다.


쿠르릉 쾅 쾅


붉고 푸른 기운이 서로 엉겨 붙으며 폭음을 토해냈다.


콰르르르르···


주변에 있던 거대한 바위들이 가파른 경사를 굴러 내린다.


와르르르르르···


바위들이 산사태를 일으키며 구르는 와중에도 폭음이 끊임 없이 울리며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모두 넋을 잃고 바라보는 가운데 태극문양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광 쾅


태극은 가파른 산록을 따라 하늘에서 토끼를 향해 떨어지는 매처럼 날아 내리며 아름드리 나무들을 쓸어버렸다.


꽈지직 빠각


수십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박살내더니 다시 수직으로 늘어선 바위 절벽을 타고 날아 올랐다.


“와아! 멋지네요”


악운룡이 감탄하는 사이 밭에 있던 악붕 역시 손뼉을 치며 외친다.


“누나, 저건 청룡과 적룡이 싸우고 있는 거 맞지?”


역시 아직 철이 덜 든 막내답다.


‘나도 너처럼 순진했으면 좋겠지만 저건 너무 위험해 보여’


악소평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저건··· 사람이다”

“에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싸울 수가 있어? 신선이라면 몰라도···”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엄청난 고수들이라는 말이지···”


그 사이 태극은 허공을 무지개처럼 가로질러 건너편 봉우리로 넘어갔다.


쿠르릉 쾅


적적하리만치 평화로운 화산에 갑자기 전설에도 나오지 않는 태극이 나타나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천금을 주고도 구경할 수 없는 광경

그렇지만 이 외진 산골에서 이렇게 희귀한 천고의 기사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은 얌향문의 스승과 제자들 여섯 명에 불과했다.


무시무시하지만 아름다운 태극은 두 봉우리 사이를 훨훨 날아다녔다.


쿠르르르르르···


마치 천둥과 같은 소리가 허공에서 울린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악운룡과 세 사부들은 그들의 몸이 천둥소리와 함께 진동하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와아!”


악운룡과 스승들은 그저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볼 뿐


“도대체 얼마나 고강한 고수들이길래 저토록 위력적인···”


악운룡이 감탄사를 연발하다 문득 말끝을 흐린다.

태극이 점점 빠르게 회오리 치면서 그들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 저러다···”


이들이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태극은 이미 몇 장 앞으로 다가왔다.


“위험해”


칼자국 노인

혁립이 큰 소리로 외치며 몸을 날려 악운룡을 가로막더니 태극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콰광

우지끈


갖가지 폭음이 동시에 울리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악운룡을 보호하려는 혁립의 노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엉성하게 지은 정자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정자 위에 앉아 있던 네 사람 역시 일제히 거대한 충격에 가랑잎처럼 허공을 날았다.


아름다운 태극은 졸지에 재앙으로 변했다.


“끄응”


악운룡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정자의 파편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고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는 중이었다.


“정신이 드느냐?”


서너 걸음 앞에 혁립 사부가 가슴을 부여잡고 앉아 있었다.

한눈에도 충격으로 인해 심한 내상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크륵”


울컥 피를 토한 뒤

정작 본인은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하기조차 힘든 상황임에도 제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는···”


악운룡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전신을 엄습하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끄으응”


그 모습을 보면서 혁립이 다급하게 외친다.


“용아야”


마음 같아서는 재빨리 다가가 상세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쿨룩, 우욱”


곁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전신에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이 선 채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피를 토했는지 가슴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고 밭 아래도 선혈이 낭자하다.

여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입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더니 악운룡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첫인상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서른 살 가량일까?


‘저 사람이 과연 인간일까?’


진정 인간인지가 의심스러운 미모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여자였다.


그러나 여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악운룡은 자신의 영혼이 여인에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다.


정신이 까무룩 꺼져가고 있는 순간

악운룡의 뇌리에 그들로 인해 죽은 세 사부가 떠올랐다.


세 사부 모두 지병이 깊어 오래 살지 못할 사정이고

특히 혁립사부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저 여자로 인해 죽을 것을 생각하니 슬픔과 분노로 가슴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안 돼, 사부님 지금 돌아가시면 안 돼요

-네가 사부님을 죽인 거야


불 같은 노기 덕에 아득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죽기 직전에 사부에 대한 애정과 그를 죽인 원수에 대한 분노의 격렬한 감정이 그를 살렸다.


분노가 그대로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요괴냐?”


요괴라는 말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악운룡의 지식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요괴밖에 없었다.


여인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매우 놀란듯한 그 표정은 비할 데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스승을 죽인 원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는 여인을 보니 확신이 생긴다.


“너··· 진짜 요괴구나!”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아무리 깊은 화산 골짜기라지만 이런 요괴가 느닷없이 나타나다니···


‘요괴따위는 하나도 반갑지 않단 말이야’


가슴 속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다.


여인이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요사스럽게 웃는다.


“호호호호··· 요괴라··· 오랜만에 듣는 말이네”


여인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악운룡에게 다가오며 다시 놀란다.


“그러고 보니 너는 정말···”


곁에 앉아 머리를 만져보고 맥을 짚어보기도 하더니 눈을 까뒤집어 본다.

악운룡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요괴가 나를 잡아 먹으려는 것인가?’


요괴가 사람을 잡아먹기 전에 이와 같이 신체검사를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뭐 하는 짓이냐?”


악운룡이 있는 힘껏 외쳤지만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요괴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히죽히죽 웃으며 중얼거린다.


“섭혼대법을 가볍게 견뎌낸 연유가 있었네, 근골뿐 아니라 오성도 천하에 짝을 찾을 수 없는 기재야, 그렇다면 이건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라 이 참에 아예 몸을 바꿔버리는 게···”


여인과 눈을 마주치자 악운룡은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냐?”

“남자가 되기는 싫은데···”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되지는 않지만 뭔가 엄청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치 가위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런 기회는 백 년에 한 번 오기도 힘들어”


여인은 고개를 돌려 붉은 장포를 입은 남자에게 말했다.


“일이 묘하게 돼버렸네, 다시 십 년 뒤에 만나기로 할까? 물론 네가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하겠지만”

“쿨룩”


붉은 장포의 건장한 노인은 대답 대신 거하게 피를 토했다.


여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너무나 진실돼 보여서 보는 사람도 절로 같이 안타까워질 지경이었지만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너에게 이겨서 네가 가진 모든 능력을 온전히 흡수했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게 됐구나, 아마 오늘 밤도 넘기지 못하겠지?”


노인이 대답하려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넘어오는 핏물에 말이 막혔다.


“쿠억”


여인이 미련 없이 이별을 고했다.


“나도 별로 다를 게 없지만 이제 이 아이의 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 거야, 아쉽지만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네, 안녕, 호호호···.”


마치 같이 저녁을 먹은 후 헤어지는 듯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요사스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여인의 머리에서 푸른 기운이 솟아나오더니 허공을 잠시 맴돈다.

푸른 기운이 점점 진해지더니 문득 악운룡의 머리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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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가을에 새로운 작품으로 23.07.12 43 0 -
67 적으로부터 얻은 비전 23.07.12 66 2 11쪽
66 사문의 적 23.07.11 73 4 12쪽
65 쳐맞을 계획 23.07.10 84 4 11쪽
64 요괴현현 23.07.09 78 4 12쪽
63 하의실종 23.07.08 83 4 12쪽
62 회초리 마녀 23.07.07 80 2 12쪽
61 적과의 동침 23.07.06 91 3 11쪽
60 무공 장사 23.07.05 91 3 12쪽
59 화산의 비밀병기 23.07.04 94 4 12쪽
58 병아리가 된 천재 23.07.03 93 3 12쪽
57 2군 양성 23.07.02 90 4 11쪽
56 치료 취소 23.07.01 104 4 12쪽
55 악마의 새끼들 23.06.30 98 3 11쪽
54 거대한 전리품 23.06.29 102 3 12쪽
53 위험한 도발 23.06.28 99 3 12쪽
52 요괴의 승리 23.06.27 106 2 12쪽
51 얼마나 우려 먹으려는 거야? 23.06.26 109 2 12쪽
50 엉덩이신공 23.06.25 106 3 12쪽
49 백 살 어린이 23.06.24 118 3 11쪽
48 줄타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23.06.23 115 3 11쪽
47 조카바보 23.06.21 116 2 11쪽
46 줄을 잘못 섰네 23.06.21 116 3 11쪽
45 줄 때 먹고 보자 23.06.19 118 3 11쪽
44 줄타기 23.06.18 115 3 11쪽
43 죽거나 미치거나 23.06.17 124 3 12쪽
42 힘을 빼라 23.06.16 123 3 12쪽
41 귀랑대 23.06.15 118 3 12쪽
40 세 천재들 23.06.14 123 3 12쪽
39 남궁세가의 적손 23.06.13 1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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