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빙의

엉덩이신공

그가 보기에 악운룡의 행동은 미치광이나 다름 없었다.

진짜 고수라면 저렇게 대책 없이 자신의 몸을 허공에 띄운 상태로 접근하지 않는다.

허공에서는 상대의 반격을 회피할 수단이 거의 없다.

내리 찍는 기세는 좋지만

그 전에 지가 먼저 죽는다는 의미

“흥, 화산의 애송이라더니···”

상대가 공격해 오는 경로에서 살짝 비켜 서면서

거의 동시에 상대의 심장을 찔렀다.

“너는 죽었어”

분명히 정확하게 심장을 찔렀다.

‘어? 손맛이 이게 아닌데?’

그러나 다음 순간 장검에 심장이 꿰뚫린 자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빡

단 일초만에 싸움이 끝났다.

엄한로는 자신의 공격이 먼저 상대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는데

왜 자신의 머리가 두 쪽이 났는지 알지 못하고 죽었다.

악운룡이 땅에 내려 서자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주를 일순간에 잃은 귀호대도

그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송귀포도

심지어 담장 위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의 경솔한 행동을 바라보고 있던 아군들까지

두 눈을 뜨고 똑똑히 보았어도 어떻게 이렇게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오직 막칠만이 흐뭇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남궁혁빈과 송귀포

남궁혁빈은 여태 악운룡이 사기꾼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된통 얻어 맏고 황금전장에서 금강공의 구결을 모두 배운 뒤에도 역시 마찬가지

그의 성취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금강공의 구결을 자기가 배우고 익힌 다음에도 그런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나보다 뛰어난 천재라고 가정해도 어떻게 저리도 빨리 금강불괴의 경지에 접근할 수 있냐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엄한로의 검이 악운룡의 심장을 찌르는 것을 확연히 보았기 때문

아무리 생각해도 악운룡의 성취는 경이롭기만 하다.

‘금강공을 몇 성까지 익혀야 저런 방어력이 나오는 거야?’

절정 고수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낼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익혀야 한다.

송귀포도 화산의 젊은 검객이 장보도을 얻은 뒤 일으킨 소동에 대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일류에 간신히 발을 걸친 소년검객이었는데

곧 군웅들을 이끌고 무령을 잡은 뒤 영웅이 되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제는 귀랑대의 추격을 받고도 살아 돌아와서

귀호대주 엄한로를 죽여버렸다.

이 젊은놈에 대한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아마도 허상과 실상이 구분할 수 없게 뒤섞여 있는 것 같다.

허상이건 실상이건 죽여버리면 간단하다.

몸을 날려 귀호대를 뛰어 넘어 그의 앞에 서며 말했다.

“네가 화산의 악운룡이냐?”

“너는 또 누구냐?”

가소롭기만 하다.

그가 절정의 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 이놈은 어미 젖을 빨고 있었다.

“너를 살려 두면 앞으로 두고두고 귀곡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 같구나”

“나도 같은 생각이야, 너 같은 종자는 모조리 쓸어버려야 해”

“이 건방진···”

송귀포가 막 몸을 날리려는 순간

막칠이 그를 향해 포탄처럼 달려들었다.

“네가 젤 마음에 든다”

그는 황금전장에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지냈다.

매일 신나게 두드려 팼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 재미가 없어졌다.

맞지는 않고 패기만 하는 것도 따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태까지 백 년 동안 자신을 패던 몽둥이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그는 송귀포를 보는 순간 알았다.

저놈 정도면 뭔가 신나게 한 판 붙어볼 수 있지 않을까?

동생이 그 즐거움을 누리기 전에 재빨리 가로챘다.

결코 아우가 걱정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송귀포는 과연 초절정의 고수

짧은 순간에도 어느새 허리를 감고 있던 영사귀편이 손에 들려 있다.

채찍은 마치 영험한 뱀처럼 살아서 움직여 막칠의 옆구리를 때렸다.

펑

고수의 웅혼한 내공이 실려 있는 강력한 일격

기수가 말을 달리며 때리는 채찍과는 비교할 수 없다.

단 일격 만으로도 사람을 허공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적인 채찍이었는데

막칠은 개의치 않고 덤벼들어 주먹을 날린다.

“헛!”

송귀포는 헛바람을 내뱉으며 주먹을 피했다.

그러나 막칠의 주먹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뭐 이런놈이 다 있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비는 놈이 있다니

이렇게 싸우는 놈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아니 있었나?

금강문이 아니었다면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오래 전의 사람

금강권왕 이후에는 이런 식으로 싸우는 고수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금강문이 금강권왕의 유묵을 얻었다고 했는데’

그것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 자는 도무지 해석할 길이 없다.

거리가 가장 중요한 무기인 채찍을 사용하는 입장

단 일수에 거리를 뺐겼으니 부전공인 박투로 상대하는 수 밖에 없다.

송귀포를 막칠이 차지하자 악운룡은 귀호대를 향해 돌격했다.

동시에 담장 위에 있던 고수들도 일제히 몸을 날려 귀호대를 덮쳐갔다.

귀호대는 원래 진법을 이용해서 조직적으로 싸우는데 특화된 조직

정교한 합공으로 조직을 상대하고 자기들보다 무공이 더 높은 고수들을 상대하는 게 특기다.

그런데 창졸간에 대주가 죽으니 지휘에 공백이 발생했다.

더구나 자신들과 비슷한 숫자의 고수들이 덤벼들자 더 이상 진법은 소용이 없었다.

가장 치명적인 존재는 악운룡

귀호대가 무슨 공격을 퍼붓든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끄아아악”

정확하게 급소를 찔러 들어가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으니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크윽”

게다가 동귀어진의 수법을 남발한다.

너 죽고 나 죽자며 덤빈다.

그게 하수라면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하겠지만

자신보다 고수가 방어를 도외시한 채 닥치고 공격을 거듭하니 대책이 없다.

“아아악”

그나마 악운룡이 영환에 들어 있는 흑령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였다.

유리한 싸움

더구나 자신의 흑령기를 드러내면 곤란한 상황에서 구태여 흑령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커억”

혼자서 사방을 휩쓸고 다니니 금방 형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귀호대의 무서운 점은 마치 군대와 같이 조직적인 전투를 한다는 점

개개인의 능력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내는 게 장점인데

그 장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개개인의 능력이라면 금강문쪽이 더 뛰어났다.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 대부분

공여문과 전광대를 제외한 나머지 무인들이 다 절정을 넘어섰다.

전장이 빠르게 정리됐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영사귀편 송귀포

그와 막칠의 대결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송귀포는 영사귀편이라는 별호답게 채찍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고수

그의 채찍은 막칠의 목을 감고 있었다.

채찍은 원거리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근거리의 적에게는 취약하다.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막칠에게 거리를 내 주었으니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영사귀편은 채찍으로 이름을 날린 고수답게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있었다.

나름 절기라 자부하는 권각법으로 상대하는 동시

채찍이 마치 뱀처럼 허공를 헤엄쳐 막칠의 목을 감고 조이기 시작했다.

초절정 고수의 심후한 내력으로 목을 조이면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일류의 고수라도 목이 간단히 부러진다.

‘이놈은 도대체 사람이 맞는 거야?’

벌써 한참이나 목을 조이고 있는데도 별 효과가 없다.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

이건 그의 고정관념이었다.

막칠은 금강공이 십성에 이르러 있기 때문에 목을 조여도 약간 불편할뿐 호흡에 큰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니 상대에게 죽도록 맞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목을 조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먼저 죽나 네가 먼저 죽나 보자’

반면 그 사이 자신은 막칠에게 너무나 많이 얻어 맞아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끄으으응”

결국 채찍을 조이는 힘이 풀어지기 시작하자 막칠은 주먹을 크게 날렸다.

뻥

가죽북을 치는 소리가 들리며 천하에 이름을 떨친 무인 영사귀편 송귀포가 헌 신발짝처럼 악운룡에게 날아왔다.

퍽

바닥에 뒹구는 송귀포의 모습은 처참했다.

막칠은 그를 죽일 수 있으면서도 죽이지 않았다.

자신의 정신상태가 정상인에 비해 모자라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

그의 처리를 동생에게 맡기려 했다.

단지 그가 계속 저항하므로 아직도 패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애당초 막칠의 상대가 아니었다.

황충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를 심문하면 귀곡의 계획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을 거네”

“이런 고수가 우리에게 협조할 리도 없고 고문을 할 생각도 없습니다”

악운룡은 즉시 검을 들어 송귀포의 심장을 찔렀다.

“헛!”

냉정하게 상대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악운룡의 행동에 모든 사람들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무령과의 전투에서 화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손수 약을 지어 주던 사람이었다.

그들의 치료비를 부담하고 치료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기도 했다.

무령과의 전투뿐 아니라 이런 행동들이 군웅들이 어린 그를 <대협>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그런 사람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수를 사용했다.

그의 행동뿐 아니라 그가 풍기는 분위기

포악한 살기에 몸을 부르르 떤다.

전투가 끝나자 악운룡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는 건가?”

“저 건물들을 뒤져 보면 이들에 대한 정보가 나올 겁니다”

“자네 생각이 맞네, 괜히 포로에게 고문이나 가할 게 아니라 서류를 찾는 게 낫지”

그 때 주홍이 나타났다.

그의 뒤를 아홉명의 구룡삼대가 따르고 그 뒤로 목위방과 맹탕이 따라왔다.

맹탕이 신속하게 목가장에 알려 달려오게 된 것

“어? 악운룡 언제 돌아왔어?”

악운룡을 보고 반갑게 외치더니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보며 타박한다.

“내가 오기도 전에 벌써 끝내버린 거야?”

자신이 활약할 기회를 놓친 게 아쉬운 모양

그녀는 귀곡을 상대하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굴도 보기 전에 싸움이 끝났다.

그녀는 꼼꼼하게 죽은 자들의 시체를 살폈다.

열두 명이나 되는 고수를 죽였다는 게 허언이 아닌가보다

시집도 안 간 젊은 처녀답지 않게 시체를 들춰보는 행동이 너무나 익숙하다.

“이 자는 귀호대주 엄한로네, 악운룡 네가 죽였구나?”

“허약한 놈이었다”

뭐라 할 말이 없으니 그가 약하다고 둘러댔다.

남궁혁빈은 그 소리를 듣고 뒷목을 잡았다.

‘귀곡의 귀호대주가 허약하다면 강건해지려면 도대체 어느 수준이 돼야 하는 거야?’

“머리에 치명적인 일검을 맞았네, 그러고 보니 너 무공이 또 늘었구나? 겨우 열흘만에 어떻게 그런 장족의 발전을 한 거야?”

“귀랑대를 죽이다 보니 무공이 늘더라”

“호호호··· 너다운 말이야, 무공이 늘어서 귀랑대를 죽인 게 아니라 귀랑대를 죽이다 보니 무공이 늘었다는 말이지?”

“뭐 대충 그렇게 됐다”

귀랑대와 싸우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다.

자세한 부분은 그냥 엉덩이로 깔아 뭉개기

엉덩이신공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이 사람은··· 아무래도 유명한 인물 같은데? 도대체 이런 고수를 어떻게 잡은 거야?”

영사귀편 송귀포의 시체를 들척이며 관심을 보인다.

‘얘는 왜 나타나서 자꾸 쓸 데 없는 것을 물어보는 거야?’

그는 항상 귀곡자 곁에서 명을 기다리는 귀곡사자였으므로 강호에서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

요홍은 귀곡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

얼굴과 명성은 몰라도 이미 죽은 시체만을 보고도 엄청난 고수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놈도 허약했다”

엉덩이신공의 한계가 바로 드러난다.

어째 말이 잘 안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