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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 님의 서재입니다.

이중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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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
작품등록일 :
2023.05.10 20:43
최근연재일 :
2023.07.12 23:15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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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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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글자수 :
355,081

작성
23.06.2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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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요괴의 승리

DUMMY

갑자기 지필묵을 꺼내 뭔가를 열심히 계산한다.

얼핏 보아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웬놈의 견적서가 저렇게 길어?’


그러는 와중에도 견적서은 끊임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심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영감은 왜 귀곡 일을 하게 된 거야?”


오일휘는 견적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한다.


“귀곡에게 납치당했다”

“협박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귀곡을 짓게 된 것이군”

“이 골 빈 고객님아, 세상에 나를 협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납치당했다며?”

“표면적으로는 정중하게 모시고 간다고 했지만 사실상 납치였다는 말이다”


기관진식은 너무나 복잡하고 예민해서 납치나 협박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가 몰래 암수를 깔아 놓으면 끊임 없이 고장이 날 수도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할 수도 있다.

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돈만 잡아 먹는 애물단지로 변한다.


이런 상황이 벌어져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최초 설치한 사람과 같은 수준, 혹은 그 이상의 기술력이 없으면 수리가 안 된다.

한 마디로 눈을 벌겋게 뜨고도 당하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를 협박할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삼천 냥에 낚인 것은 아니고?”

“세상 물정 모르는 쑥맥 고객님, 나를 초빙해서 이렇게 몇 년씩이나 가혹하게 일을 시키려면 적어도 금자 만 냥은 주어야 한다”

“헐값에 수주했다는 말이네”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귀곡의 요구에 응한 데에는 금자 삼천 냥이 급하게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헐값에 일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금자 삼천 냥은 황제라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거액이다.


“그래도 건물을 보니 멋지게 지어 놓았던데?”

“천하에 알려진 교수신공이라는 이름이 있다. 비록 납치를 당했다고 하지만 내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지 않나?”


그에게 자존심은 목숨보다 중요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교수신공의 명성에 먹칠을 할 수는 없다는 태도였다.


자꾸 말을 시키는 이유는

그가 귀곡의 편, 다시 말해 첩자가 될 소지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제 여기는 우리 금강문이 됐는데 귀곡을 배신하고 일을 계속 해도 되는 거야?”

“나는 귀곡과 이 곳을 건설하기로 계약했으니 지어 주면 된다, 주인이 바뀐 것은 내 책임이 아니야”

“조건만 이행하면 된다고 한가롭게 주장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놈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 없다, 다시 나를 납치할 기회는 없을 거야”


뭔가 확신이 있는 모양


지금에 와서 건물에 기관을 설치하는 것은 귀곡의 입장에서 이적행위

그걸 잘 아는 오일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원래 이런 특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귀곡은 그의 실력은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를 보니 귀곡에 원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귀곡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건가?”

“그 정도로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못마땅해서 그들과 싸우는 너를 도우려는 것이야”

“강호를 위해서인가?”

“그렇게 거창한 명분보다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아는 게 싫다, 귀곡이 큰 세력을 얻으면 수천, 수만 명이 죽어나갈 거다”


이 정도면 믿을 수 있다.


문제는 돈

아직도 견적서는 계속 꼬리를 늘려가고 있다.


‘여기서 한 재산 우려내기로 작정한 모양이군’


그렇게 쉽게 당해 줄 수는 없다.


“견적서가 뭐 그리 복잡해?”

“정확한 금액을 청구하려면 당연하지 않나? 이거 외에도 시방서와 설계도면이 필요하다”

“그것만 작성하려고 해도 몇 년은 걸리겠네”

“나를 그런 인부들과 비교하는 거냐? 다른 것은 준비해 놓은 게 있으니 곧 끝난다”

“축령기관진을 설치할 준비를 해 놓았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축령기관진 설계도를 그리려면 숙련된 인력을 대거 동원해도 일 년은 걸린다.


“사실 귀곡이 원하는 것은 축령기관진이었다. 그래서 준비를 하기는 했는데 그들에게 그런 최고의 기관진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등급을 낮추어 공사를 한 것이군”


오일휘가 대단한 생명중시 사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림에서 살인은 밥 먹듯 일어나는 일

남들이 죽거나 말거나 관심은 없지만 그게 수천 수만 명이 된다면 곤란하다.

팔짱을 끼고 방관만 하는 입장이라면 나설 필요가 없지만 본의 아니게 엮이게 됐다.

그런 일에 자신이 일조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암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

“귀곡은 독사보다 더한 놈들이지”

“그들에게 절진을 만들어 주어서 힘을 키워 주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수 많은 생령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업적이 귀곡에 의해 독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불명예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면 교수신공 역시 싸잡아 욕을 먹게 된다.


“축령기관진이라는 게 엄청 복잡하네”


견적서를 대충 훑어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


“건물들이 서로 손을 잡고 살아 움직이는 게 쉽지는 않겠지?”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손을 쉬지 않는다.

수백 가지 부품과 재료들

그걸 한 번도 수정하지 않고 단숨에 써내려간다.

엄청난 총기다.


“그 많은 걸 다 외우고 있는 거야?”

“내가 이걸 어떻게 다 외우겠냐?”


자신이 쓰면서도 외우는 것은 아니라는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지 이 모든 물건들은 논리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논리의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들도 빠짐 없이 정리할 수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북명신공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논리구조를 익혀 그에 버금가는 청탁조령공을 결합시킨 사람으로서 무공과 기관진식이 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둑의 고수가 수백 수를 복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한 점 한 점의 위치를 외워서 복기를 하는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수를 따라가다 보면 전체를 다시 구성할 수 있다.


“이제 다 됐다”

“그래서 이 금액이 나오게 된 거야?”

“노부가 작성한 견적서는 조금도 오류가 없다, 검토해 보고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수정해 주겠다”


저벅저벅 걸어 가더니 책상 서랍에서 서류를 한 아름이나 꺼내 온다.


“여기 설계도와 시방서도 다 준비되어 있다, 서로 연관이 있으니 검토를 해 보시게”


엄청난 양이다.

설계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는 내용

익숙한 사람이라도 몇 달은 걸려야 검토가 가능할 정도였다.


‘이 영감 강적이네, 아예 물량으로 눌러버리는군’


견적서의 내용을 트집 잡아 공사비를 깎으려 했는데

근거를 제시하면 얼마든지 깎아주겠다고 선수를 친다.

그 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

아무래도 견적서의 문제점을 지적해서 공사비를 깎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지’


견적서를 꼼꼼하게 검토해 보았다.

아무리 살펴 보아도 결정적으로 한 방을 먹일 방법이 없다.

기본적으로 기관진식 분야에서의 수준차이가 너무 크다.


‘<나는 모르니 알아서 잘 해 주시오>따위 말은 절대 하지 못하지, 뭔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기술이 그보다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모두 그에게 맏겨버리면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적어도 호갱님은 되지 말아야 한다.


곳곳에서 수색하던 사람들이 하나씩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이때쯤 되니 많은 사람들이 돌아와 있다.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으니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견적서보다 백 배는 복잡한 설계도에서 문제점을 찾았다.


“여기 말이야, 경비체계 중에서 위기상황 감지 경보”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나?”

“만약 축령기관진이 상황을 잘못 인식해서 잘못된 경보를 자꾸 발하면 곤란해지잖아?”

“당연하지”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해 주면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그로 인한 문제점도 많다.

가장 빈번한 게 고장과 오작동


“위기경보가 자꾸 발령되면 결국 사람들이 위기경보가 발령 돼도 믿지 않게 되지”


비상경보가 발령되면 사람들은 미리 훈련한 대로 행동한다.

그게 오작동으로 밝혀지고 같은 일이 계속된다면 실제 상황에서도 믿지 않게 된다.

시간, 비용, 인력만 낭비하게 만드니 없는 게 나은 기계가 된다.


“그렇지”

“이 설계도에는 위기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관이 빠져 있어”


오일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뚫어지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식쟁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지적


‘이 무식한 자식이 진짜로 축령기관진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 그것도 최고수준의 전문가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내용인데’


내용도 물론이지만 그 엄청나게 복잡하고 방대한 서류더미에서 이렇게 빠른 시간에 문제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그 자신도 불가능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다.


황충을 비롯한 고수들도 두 사람의 얘기를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악문주가 기관진식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상황으로 보아 이런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경악할 일


특히 이런 부분에 대해 황충과 주홍, 남궁혁빈은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문파나 사업장에도 설치되어 있기 때문

그들은 기관진식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놀라고 있었다.


오일휘 역시 악운룡의 지식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기술적으로는 양보할 수 없다.


“왜? 내 말이 맞지 않아?”


‘네가 아무리 잘났어도 내 수준을 따라올 수는 없지’


“당연한 말이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그 둘이 뭔데?”

“그걸 설치하려면 여기서 가장 비싼 부품인 축령주(蓄靈珠)를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공사비가 엄청나게 올라가지, 뭐 고객님이 원한다면 해 줄 수는 있어”


기술적인 문제점일뿐

자신의 설계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런 회로를 만들고 싶다면 거액의 공사비를 추가로 지불하면 해 주겠다는 의미


여기서 결정적인 반격의 실마리를 잡았다.


“왜 축령주를 별도로 설치해야 하지?”

“하나의 축령주로 두 가지 기능을 구현하면 혼선을 일으킨다, 아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지”

“혼선을 없애면 되잖아?”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을 잡고싶은 것인가?”


미간이 찌푸러지는 게 아주 기분이 나쁜 상태

선무당이 사람 잡고 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으려는 전형적인 행태다.


“왜 말이 안 돼? 바로 여기 있는 이 비싸지 않은 개폐기를 하나 더 설치해 주면 되지, 각각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지 않고 한 번에 하나의 기능만 수행하게 만들면 절대 혼선이 생기지 않잖아?”

“그··· 그게··· 그렇군요!”


어두웠던 날이 훤하게 밝아오는 것 같다.


‘왜 여태 나는 멍청하게 별도의 축령주를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벌떡 일어나서 포권을 한다.

역시 태세전환은 광속이다.


“고객님의 말씀이 정말 합당합니다,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던 이 교수신공이 오늘 한 수를 배웠습니다”

“크흠, 뭐 그렇게까지 말 할 건 없고···”


천하제일의 기관진식 전문가 교수신공 오일휘와 대결해서 승리했다.

이건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머리 속에 있는 요괴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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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적으로부터 얻은 비전 23.07.12 66 2 11쪽
66 사문의 적 23.07.11 74 4 12쪽
65 쳐맞을 계획 23.07.10 84 4 11쪽
64 요괴현현 23.07.09 78 4 12쪽
63 하의실종 23.07.08 83 4 12쪽
62 회초리 마녀 23.07.07 80 2 12쪽
61 적과의 동침 23.07.06 91 3 11쪽
60 무공 장사 23.07.05 91 3 12쪽
59 화산의 비밀병기 23.07.04 94 4 12쪽
58 병아리가 된 천재 23.07.03 93 3 12쪽
57 2군 양성 23.07.02 90 4 11쪽
56 치료 취소 23.07.01 104 4 12쪽
55 악마의 새끼들 23.06.30 98 3 11쪽
54 거대한 전리품 23.06.29 103 3 12쪽
53 위험한 도발 23.06.28 99 3 12쪽
» 요괴의 승리 23.06.27 107 2 12쪽
51 얼마나 우려 먹으려는 거야? 23.06.26 110 2 12쪽
50 엉덩이신공 23.06.25 106 3 12쪽
49 백 살 어린이 23.06.24 118 3 11쪽
48 줄타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23.06.23 115 3 11쪽
47 조카바보 23.06.21 117 2 11쪽
46 줄을 잘못 섰네 23.06.21 117 3 11쪽
45 줄 때 먹고 보자 23.06.19 118 3 11쪽
44 줄타기 23.06.18 116 3 11쪽
43 죽거나 미치거나 23.06.17 124 3 12쪽
42 힘을 빼라 23.06.16 123 3 12쪽
41 귀랑대 23.06.15 118 3 12쪽
40 세 천재들 23.06.14 123 3 12쪽
39 남궁세가의 적손 23.06.13 1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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