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귀한 보물
“ 어이, 아가씨. 일어나봐. ”
최재절이 검지 손가락으로 박지연의 이마를 툭툭 쳤다. 그러자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지연이 번개에 맞은 듯 눈을 번쩍 떴다.
“ 누구세요..? ”
지연은 다크써클이 짙은 얼굴로 가면 쓴 사내에게 물었다.
“ 나 알지 알아? 이 가면. ”
최재철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가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들 중 이 가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다름 아닌 한국 그룹 총수가 쓰는 가면이니깐.
“ 최재철 회장님..? ”
“ 역시 바로 알아보네. ”
최재철은 그녀라면 자신을 단박에 알아볼 거라 짐작했다.
저 탐욕의 반지를 끼고 있다는 건 그만큼 탐욕에 취약한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인간들이 부귀영화의 정점을 찍은 최재철이란 인간을 모를 리가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젊고 가진 게 몸밖에 없는 여자들은 더더욱.
“ 회장님이 여길 어떻게.. ”
지연이 자신을 찾아온 대단한 손님을 반기기 위해 힘겹게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 그 반지 주인한테 다시 찾아주려고. ”
최재철이 눈으로 지연의 손에 끼인 반지를 가리켰다.
“ 이건 제 건데요. ”
최 회장이 반지를 빼앗으려 하자 지연의 눈빛이 독사처럼 매섭게 변했다.
이럴 줄 알고 최 회장은 그녀를 위한 조촐한 선물을 준비해왔다. 엄청 비싼 거니 분명 이 여자도 마음에 들어 할 거다.
“ 그거 정말 안 줄 거야? 내가 더 좋은 거 가져왔는데. ”
회장이 품속에서 작은 반지케이스를 꺼내며 물었다.
이 반지에는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질투와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무리 지독한 탐욕도 분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필요없어요. 난 이 반지만 있으면 되니깐!! "
지연은 회장에게 반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벽에 바싹 달라붙었다.
"어이쿠. 무서워라. “
회장은 흉폭하게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놀란척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박지연이 무섭기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크게 일었다.
이 여자도 멀쩡하게 살았으면 예쁘기만 했을 텐데. 탐욕이 지배한 그녀의 몰골은 추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건 무릇 반지 때문이 아닐 거다.
“ 여기에 박혀 있는 게 그 귀하다던 블루 다이아몬드야. 시가로 3억은 넘을 텐데, 이래도 싫어? ”
진귀한 보물을 감추고 있던 케이스가 열리고 그 진가가 드러나자 죽어도 싫다고 우기던 박지연이 움찔했다.
영롱한 파란빛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름답기로 따지면 평범한 다이아반지보다는 블루 다이아몬드가 훨씬 매혹적이었다.
허나 지연은 자신의 손에 끼어져 있는 반지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 다이아 반지를 가져야 자신이 더욱 가치 있는 인간으로 발돋음할 수 있을 거 같았다.
“ 그래도 난 이 반지가 좋아.. 이건 내 반지야.. ”
박지연이 끈질기게 유혹에 반항하자 최 회장은 하는 수없이 마지막 강수를 둬야 했다.
" 이게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게 아닌데... "
그는 천천히 손을 올려 집에서도 결코 벗지 않았던 가면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면에 가려져 있었던 자신의 진짜 얼굴을 공개했다.
회장이 비장의 무기로 가져온 보물은 블루다이아몬드가 아닌 그의 얼굴이었다.
“ 맙소사.. ”
3도 화상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졌다는 그의 얼굴은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천사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인간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이 있다면 그건 악마를 흉물스런 괴물로 묘사해뒀다는 거다.
진짜 악마는 보란 듯이 천사의 빛을 내뿜으며 시각에 좌지우지되는 인간들을 현혹한다.
“ 이 반지를 끼면 내 자기가 되는 거야. 어때? 나랑 같이 쾌락을 맛보지 않을래? ”
그의 미모가 지금껏 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기에 지연은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파란빛을 띠는 다이몬드 반지가 끼어있었다.
이렇게 차우돈의 첫사랑은 최재철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과연 차우돈은 이 여자와 우리 공주님 중 누굴 선택하게 될까.
아마 재밌는 게임이 시작될 거다.
***
회장은 박지연을 자신의 한남동 집으로 데려왔다.
그녀를 보자 부인 주현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가 이내 감정을 감추고 다시 평온해졌다.
“ 이 손님은 누구세요? ”
그녀는 신경 안 쓰는 척 회장의 외투를 받아들며 새로운 손님에 대한 스캔을 끝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자신과는 별 차이 안 나는 젊은 여자였다.
외모는 예쁜 편이었지만 분명 한두 군데는 손 댔을 거라 예상됐다.
한마디로 밖에 가면 널리고 널린 특별한 거 하나 없는 여자란 뜻이었다.
“ 오늘부터 여기서 같이 지낼 거니깐 자기가 많이 도와줘. ”
회장이 무뚝뚝하고 간략하게 지연을 소개했다.
“ 여기서 산다고요..? 왜... ”
얼마 전 다녀간 공주님이란 여자도 모자라서 또 다시 찾아온 그의 여자에 주현미는 그만 망연자실한 표정을 들키고야 말았다.
그게 탐탁지 않았던 최 회장이 그녀의 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 표정 그 따위로 할 거면 여기서 나가. 안 말리니깐. ”
지금 그의 집에 있는 여자들 중 회장이 억지로 잡고 있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그들이 자진해서 남아있는 거였다.
가는 여자 안 잡고 오는 여자 안 막는 게 바로 회장의 모토였다.
단, 우리 공주님을 제외하고.
“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
“ 그래. 그렇게 해야 최재철의 부인이지. 그리고 걱정마. 저 손님은 곧 나갈 테니깐. ”
최재철은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부인에게 위로가 될 말을 속삭인 뒤 박지연을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에겐 뭐든 공짜는 없었다.
다 죽은 목숨을 살려주고 큰 재물을 얻게 해준 대가는 이제 그녀가 치뤄야할 업보가 될 거다.
거기서 뭘 요구할지는 전적으로 나 최재철의 마음이었다.
***
최재철의 음모가 드리우는 줄도 모르고 오초희와 차우돈은 대회 준비를 가장한 유도장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 아이, 빨리 넘기라니까요. ”
오초희는 오늘도 자신을 넘기지 못하는 차우돈에게 바싹 붙어 즐거워했다.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발가락마저 꼼지락거리며 춤을 췄다.
유도가 이렇게 좋은 운동이었다. 신체 건강해지지, 신체 건강한 관장님이랑 썸도 탈 수 있지.
“ 내가 어떻게 오초희 씨를 넘깁니까. 보기에도 이렇게 약해 보이는데. ”
절대로 그럴 거 같지 않았던 차우돈의 남사스런 말투에 몰래 그들을 염탐하던 두 관장은 동시에 혀를 찼다.
차우돈하면 무뚝뚝하고 우직함의 상징이었는데. 그 상남자가 지금 여자 하나를 못 넘겨서 20분째 씨름 중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관장 자리는 때려쳐야지!
“ 그럼 내가 넘길 거에요. 알죠? 내 힘이 어떤지. ”
“ 오초희씨가 넘기면 그냥 넘어가야죠. ”
둘이 이 동네의 깨소금이란 깨소금은 다 볶을 동안 유도장으로 불청객 하나가 아찔한 구두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녀를 가장 먼저 발견한 두 관장은 차우돈의 콧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란 듯 입을 쩌억 벌렸다.
분명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피골이 상접해서 보기 안쓰러웠는데, 싹 나은 것은 물론이오 전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 우돈아. ”
우돈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유도장 민폐 커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오초희의 얼굴은 썩었고, 차우돈의 표정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 지연아.. 여긴 어쩐 일이야? ”
성당에서 안정을 취해야 할 지연이 나타나자 우돈은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박지연의 등장으로 연애 사업에 방해를 받은 오초희는 둘의 사이를 방해하기 위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 그동안 날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줘서 고마워, 우돈아. ”
분명 같이 뛴 사람이 더 있는데도 박지연은 차우돈만 콕 찝어서 고맙다고 했다.
오초희는 박지연 같은 부류의 여자들을 잘 알았다.
모든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여자를 적으로 돌리고 마는 멍청이들.
“ 아냐 뭘. 몸은 좀 괜찮은 진 거야? ”
개버릇 남 못 준다고, 만난 지 3분도 안 돼 차우돈은 다시 박지연에게 애절한 사내로 돌아와 있었다.
공 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광경을 보며 오초희는 허탈해했다.
“ 응. 괜찮아졌어. ”
신의 가호를 받기라도 했는지 정말로 박지연의 안색은 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아니, 어디서 진주 가루라도 발랐는지 그 전보다 더 휘화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그녀의 손에 낀 푸른빛 보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반지가 바뀌었네요? ”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본 오초희가 그녀에게 물었다.
“ 예. 선물 받았어요. ”
“ 이걸 선물 받았다고요? 그럼 전에 끼고 있 반지는요? ”
다른 놈에게 반지 선물을 받든말든 상관없는데 내 반지나 내놔, 이 반지 도둑아!
“ 그건... 곧 돌려줄 거에요. ”
최 회장은 오초희의 반지를 가져가면서 지연에게 자신이 알아서 돌려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자기에 대해선 절대로 발설해선 안 된다고 했다.
“ 그래. 그럼 된 거지. 아무튼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
또 박지연의 편에 서서 상황을 얼버무리는 차우돈을 보며 오초희는 기가막혔다.
반지를 도둑맞은 건 난데 왜 차 관장이 이 여자를 용서해?
우리가 서로의 용서도 대신해주는 일심동체라기엔 너무 진도를 안 나간 거 같은데.
“ 응. 그러니까 우리 자주 보자, 우돈아. 이번에 내 옆을 지켜주는 널 보면서 나도 느낀 바가 컸어. ”
지연은 회장의 지시대로 차우돈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를 받아주면 회장이 남은 빚은 모조리 갚아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회장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 건 무릇 빚청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연은 그보다 더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회장의 옆자리를 차지 하는 것.
지금 사모님께는 죄송하지만 가면을 벗은 회장님께서 너무도 매혹적이었기에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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