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기독교 집안
“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어디 아퍼? 병원에 가볼까? ”
차우돈의 추측은 완벽히 틀렸다. 이게 병원에 가서 해결될 저주였으면 그렇게 많은 인간들이 죽지 않아도 됐을 거다.
다들 처음엔 병원에 가는 것으로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보려 했지만 그들이 병원에서 들을 수 있는 건 원인불명의 스트레스성 질환이라는 진단밖에 없었다.
“ 가봤는데 별다른 이상이 없대... 근데 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고!!!! "
박지연의 고함소리에 근처에 있던 관장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몰려왔다.
“ 오초희 회원님, 안녕하세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
이 와중에도 김 관장은 오초희에게 인사 하며 말을 걸었다.
오초희는 두 관장에게 오늘 눈으로 확인한 사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박지연이 자꾸 이상한 게 보이고 들린다고.
그 외에 반지에 관한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 아이고, 오초희 씨 많이 놀랐겠네요. "
김 관장은 걱정해야 할 박지연은 걱정 안 하고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 아니요. 저 별로 안 놀랐는데요. "
놀란 것이 있다면 지금 내 걱정이나 하고 있는 너님 정도?
하지만 우돈은 김 관장의 추근거림을 견제할 정신이 없었다.
지금 지연의 상태는 몹시 안 좋아 보였다.
사람이 아프면 누렇게 뜨거나 허옇게 질린 경우는 봤어도 온몸이 썩은 듯 까맣게 변한 건 처음 봤다.
그때, 평소 미신을 좋아하던 연 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이거 귀신의 장난 같은데? ”
매년 새해 기념으로 신년운세를 보러 무당집에 드나들던 그는 박지연의 증상을 미지의 힘에 의한 농간으로 단정지었다.
나이도 가장 어리면서 가장 예리한 촉을 가지고 있었다.
“ 귀신의 장난? 지금이 농담할 때야?! ”
차우돈은 벌벌 떨고 있는 지연을 진정시키며 연 관장을 나무랬다.
“ 병원에 가도 소용없다면서요. 그럼 딱 하나밖에 없죠. 내가 아는 용한 무당이 둘 있는데 한번 가볼래요? ”
" 얼마나 용한데요? "
연 관장의 말에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건 나였다.
그 무당이 얼마나 용하길래 그렇게 유명한지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잘하면 내 운명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 중에서도 가장 물어보고 싶은 것은.
그래서 난 언제쯤 솔로를 탈출할 수 있을까?
“ 무당은 무슨 무당이야! ”
연 관장의 연달은 실언에 차우돈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박지연을 데리고 나갔다.
사람이 인정머리 하고는.
하여간 박지연과 관련된 일이라면 차우돈은 바보천지가 되는 거 같았다.
" 쳇. 난 도와줄려고 그런 건데. "
자신의 호의가 비난당하자 연 관장이 입이 댓발 튀어나왔다.
" 연 관장님! 그 무당집 저한테 알려주시죠? "
혹시 몰라 차우돈을 대신해 내가 그 무당집 주소를 알아놨다.
이런 걸 바로 내조라고 한다지.
***
" 차우돈 씨! 차 관장!!! "
도망간 차우돈을 따라 밖으로 나오긴 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설마 둘이 또 나만 빼고 내뺀 거 아니야?
" 오초희 씨! 점 보러 가려고 그러는 거죠? 나도 같이 가죠. 나도 그거 무지 보고 싶었거든요. "
어느새 여기까지 따라온 김 관장이 정신사납게 옆에서 쫑알거렸다.
이 사람이 요즘들어 은근히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게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 안 볼 거니깐 저리 좀 가보세요. "
" 그럼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요? 아님 저번에 말했던 쇼핑은.. "
지금 사람이 아파서 죽게 생겼는데 쇼핑 타령하는 거 실화냐.
아무래도 김 관장은 내 쇼핑메이트에서 탈락시켜야 할 거 같다. 사람이 인정머리가 없는 게 딱 남의 등을 쳐먹을 상이었다.
" 저기요, 김 과장님. "
" 네? 왜요? 저랑 밥먹으러 가려고요? "
그저 이름 한번 불렀을 뿐인데 그는 속사포처럼 랩을 쏟아냈다.
" 지금 안 꺼지면 무당이고보고 저승사자를 먼저 보게 될 테니 알아서 하세요. "
내가 웬만해서는 내 본 얼굴을 안 보여주는데 이 인간을 쫓아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괴물처럼 흉악스럽게 생긴 건 아니었지만 악으로 물든 내 표정을 보게 되면 다들 식겁하며 줄행랑을 쳤다.
능지에 처하고 싶지 않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 죄..죄송합니다! "
역시나 김 관장도 바지에 똥을 지린 사람처럼 헐레벌떡 도망쳤다.
이래서 웬만하면 내 민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거다. 우아하고 고상한 내가 도깨비 취급을 받으니까.
아무튼 본래의 임무로 돌아와 난 바람에 코를 대고 개처럼 킁킁대면 공기 속에 담긴 차우돈의 체취를 찾았다.
그가 있는 곳은 바로 근처에 있는 공원쪽 방향이었다.
내가 갔을 때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 그러지 말고 한번 가봐요. 가봐서 나쁠 건 없잖아요. "
나도 혼자 가기 뻘쭘해서 어떻게든 두 사람 사이에서 묻어가고 싶었다.
" 지연이를 어떻게 그런 데 데려갑니까! 미안하지만 우리 집 3대가 기독교에요. "
" 오. 차우돈 씨도 대단하신 분 믿으시네요. 근데 그 분이 차우돈 씨 소원을 들어주시던가요? "
차우돈이 믿는 신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건 나도 인정한다.
절대전능한 유일신.
헌데 그 대단하신 신께서 내 소원을 5백년 동안 들어주고 있지 않아 난 몹시도 삐진 상태였다.
나도 나만을 사랑해줄 남자를 보내달라고!
자꾸 이러시면 나도 무속 신앙으로 개종합니다?
고로 오늘 무당집 방문은 신에 대한 나의 알량한 협박이었다.
" 그건... 아무튼 난 절대 그런 사기꾼들한텐 안 갑니다! 가면 또 굿하라고 돈이나 뜯어낼 걸요? "
" 우돈아... 나 가볼래... "
그때 눈을 감고 있던 박지연이 힘들게 눈을 뜨고 얘기했다.
" 그치만 지연아, 거긴.. "
" 병원에서도 모른다잖아... 그냥 한번만 가보자... "
" 그래. 알았어. "
내가 말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박지연이 말하니 바로 가겠단다.
이게 신이 내 기도를 안 들어준다는 증거였다.
나만을 바라봐주는 단 한 사람?
개뿔. 내 옆엔 다른 여자 말만 잘 듣는 한 남자만 있을 뿐이었다.
***
연 관장이 말한 첫번째 용한 무당은 부천에 있는 가라선녀였다.
“ 요즘 몸이 으슬으슬 춥고 뭐가 내려앉은 거처럼 무겁지? ”
가라 선녀는 40대로 추정되는 쌍커풀 수술 라인이 짙은 여자였다. 눈에 살기가 잔뜩 끼인 것인 저 안에 깃든 것이 선녀가 아니라 마귀인 거처럼 느껴졌다.
“ 예. 요즘들어 이상한 게 들리고, 이상한 게 보인다네요. ”
입술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박지연을 대신해 차우돈이 그녀의 증상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게 미리 말해주면 안 되는데.
인간들은 꼭 무당이 맞추기도 전에 자신의 사정을 줄줄 말하고 나서는 용하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더라.
하지만 난 그녀에게 반지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을 거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반지의 기운을 알아차린다면 적어도 이 여잔 가짜는 아니다.
“ 기가 허해 보이는 것이 혹 귀신이 씌인 것은 아닌지. ”
“ 네, 맞아요! 정말 용하시네요! "
저 근육 바보가 또.
아까까지만 해도 3대가 기독교 신자라던 차우돈은 신당에 들어온 지 5분도 안 돼 가라 신녀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있었다.
“ 어떤 귀신을 말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
보다 못한 내가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 물었다.
내가 무당을 한두 번 상대해 본 것도 아니고, 아마 저들이 섬기는 신 중 몇은 이미 나와 안면을 튼 사이일지도 몰랐다.
어디 보자. 구슬동자는 내 만나본 적이 없고.
백운 도사는.. 어디서 한번 스쳐봤을 이름이었다.
“ 아가씨 조상 중에 굶어죽은 분이 계시네. 그 할마이가 지금 말하고 있어. 내 배가 고프다고. 찹쌀밥 좀 해달라고. ”
백년이건 이백년이건 저들의 수법에는 변함이 없었다.
조상님을 들먹여 사람들에게 겁주고 어떻게든 부적 하나라도 더 팔아먹으려는 심산.
그리고 종이 하나에 그림만 그리고선 몇십에서 몇천은 해먹는 거다.
“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
3대 기독교 집안이 뭐가 이렇게 귀가 얇은지.
이래서 차우돈에게 내가 필요한 거다. 난 저런 장사속에 속을 사람이 아니니까 옆에서 그를 다잡아 줄 수 있을 거다.
“ 사정이 딱한 거 같으니까 삼백만 가져오면 내가 조상님들 다 하늘로 보내줄게. ”
“ 삼백이요? ”
생각보다 금액이 컸던지 차우돈은 쉽사리 하겠단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럴 때 보면 그가 아무것도 없는 맨발의 청춘임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가진 것이 많았다면 분명 주위 사람들에게 다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돌아갔을 거다.
" 삼백이면 싸지! 자손이 돼가지고 조상님들한테 그것도 못 해주나! 그런 마음씀씀이로 살다보면 자식의 자식까지 다 일이 안 풀리는 거야! "
차우돈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무당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손들을 입에 올리며 겁을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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