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울었으면 좋겠어
“ 그 반지가요? 그럼 그 사악한 영혼의 주인이 오초희 씨? ”
그러고 보니 우돈은 그 반지를 본 기억이 있었다.
지난번 처음으로 오초희네 집에 방문했을 때 엄청나게 비싸보이는 다이아반지에 잠시 마음이 요동쳤었다.
그땐 회원님꼐 돈을 빌리기 전이라 더더욱 탐이 났었더랬다.
어떻게 그 반지가 지연이 손에 있는지...
" 사악하다뇨! 어쨌든 제 반지는 맞아요. 애초에 내 반지를 훔쳐간 사람이 박지연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
혹 차우돈이 박지연의 잘못을 나에게 텀터기 씌울까봐 미리 확실히 해뒀다.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지연이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겁니까? ”
차우돈의 말에 난 콧방귀를 꼈다.
박지연이 시가 3억에 달하는 내 반지를 훔쳐갔는데 그게 중요하지 않단다. 어이가 없어서.
설령 해결책을 알게 되더라도 괘씸해서라도 안 알려줄 거다.
“ 나야 모르죠. 내가 건 저주가 아니니깐. ”
“ 오초희 씨 반지라면서요! 근데 왜 본인이 몰라! ”
“ 난들 아나. 훔쳐간 인간이 알아서 해야지. ”
“ 오초희 씨! ”
“ 아, 진짜 모른다구요! 훔쳐간 인간들이 다 죽어버려서 풀어준 적이 없다고! ”
답답한 마음에 나도 소리쳤다.
알아도 안 알려줄 생각이었지만 정말로 나는 몰랐다.
근데 뭘 어쩌라고.
“ 그래도 뭔가 있을 거 아니에요. 간혹 증상이 좋아졌다거나 그런! ”
이런 미신은 안 믿는다면서 증상이 좋아진 사람을 찾는 걸 보니 잘만 믿는 모양이었다.
증상이 좋아진 아이라면 있기는 했다.
프랑스에서 잠깐 살았을 시절 한 꼬마 아이가 내 반지를 훔쳐간 적이 있었다.
헌데 그 아이가 아픈 엄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반지를 훔쳤단 사실을 알았을 때 500년 전에 약 한번 못 써보고 끙끙 앓았던 부모님이 생각나 눈물이 났었다.
그때 눈물 한 방울이 반지 위로 떨어졌는데 반지가 저절로 아이의 손에서 빠지더니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 아이 외엔 모두 전멸이었다.
내가 박지연을 위해 눈물 흘릴 일은 없을 거 같은데, 그 사실을 차우돈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 모든, 모든 다할게요! 영혼을 바치라고 하면 영혼도 바칠게요! ”
차우돈이 두 손 모아 간절히 애원했다.
“ 영혼은 됐고, 그럼 그 심장을 나한테 주세요. ”
“ 제 심장으로 뭐하려고요? ”
순간 우돈의 머리에는 그동안 봐왔던 영화들이 짬뽕되어 최악의 공포영화를 만들어냈다.
그 나쁜 놈들이 인간의 심장으로 했던 짓들엔 꽤 여러가지가 있었다.
가령 심장을 먹는다거나. 아니면 팔아버린다던가.
오초희씨는 500년이나 살았다고 했으니 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 심장을 먹고 영생을 누리려는 거다.
“ 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냥 그 심장은 나한테만 반응하라고요! 나만 좋아하고, 나만 아끼고! "
“ 아, 난 또... ”
우돈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나한테 바라는 것이 사랑이라니. 과연 스토커다운 발상이었다.
“ 싫으면 말고! ”
“ 누가 싫다 했습니까! 가져요, 내 심장! 이번 생에만 말고 다음 생에도! ”
그렇게 차우돈의 심장을 건 둘만의 계약이 성립되었다.
이제 차우돈의 심장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었다.
진즉에 이렇게 할 걸.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지난 500년 동안 나는 왜 발품을 발아가며 개고생을 했던 걸까.
***
“ 그러니까 이 반지에다가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기만 하면 된다고요? ”
난 해결책을 전해들은 차우돈과 함께 박지연이 잠들어 있는 침대 맡에 앉았다.
“ 예. 그때 그 꼬마만 내 눈물을 얻어 무사할 수 있었어요. ”
“ 그럼 우세요. ”
차우돈이 손을 뻗으며 내가 울 멍석을 깔아줬다.
“ 좀 기다려봐요! 내가 연기자도 아니고 어떻게 바로 눈물을 흘립니까! 슬프지도 않은데. ”
차우돈에 성화에 못 이겨 눈에 힘을 바짝 줘봤지만 30분째 눈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간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살았더니 어느새 눈물이 매말라버린 모양이었다.
“ 잠깐만요! 눈물 참기 챈린지! "
그런 나를 울리기 위해 차우돈이 휴대폰에서 동영상 하나를 틀어줬다.
“ 이게 눈물 참기 챌린지라는 건데 이거 보고도 안 울면 인간이 아니래요. ”
그렇게 편집된 몇 편의 드라마를 시청했는데 부부에서부터 부모님까지 온갖 가정사가 담긴 영상이 재생됐다.
속상하고 슬프긴 한데... 어쩌라고.
여기 있는 스토리를 전부 합해도 내 인생사에 비하면 희극일 뿐이었다 .
“ 미안한데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
“ 그럼 잠깐만요. ”
이것도 아니다 싶었는지 차우돈이 냉장고로 가서 파와 마늘을 잔뜩 가져왔다.
“ 이건 왜.. ”
이거 먹고 사람이나 되라고?
그 마음 씀씀이가 서운해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
“ 기다려봐요. 곧 신호가 올 거니까. ”
그렇게 차우돈과 나는 인간이 되길 소망했던 곰과 호랑이처럼 마늘과 파를 노려보며 각자의 소망을 빌었다.
헌데 온다던 그 신호는 나에게 오지 않고 차우돈에게로 몰빵해서 갔다.
“ 오초희 씨는 사람이 메말랐어! 사람이 어떻게 안 울 수가 있냐고!! "
눈이 아리는지 벌겋게 충혈된 차우돈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꼈다.
“ 차 관장 아까부터 말이 심하다? 내가 울기 싫어서 이러냐고! 자꾸 이러면 나 확 잠수타버린다?! ”
“ 잘못했습니다. ”
자기도 잘못했다는 걸 아는지 차우돈이 시린 눈을 껌뻑이며 정중히 사과했다.
“ 그러면 됐어요. ”
난 쿨한 사람이라 사과 한방이면 뭐든 충분했다.
괜히 짜증 내서 얼굴에 주름 하나 늘 바엔 차라리 잊고 사는 게 피부 미용에도 좋았다.
다른 인간들은 그 쉬운 사과를 안 해서 박지연처럼 경을 친 거고.
“ 그러지 말고 좀 울어봐요. 아, 오초희 씨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에요? ”
“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생각은... ”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렴풋이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날, 나 하나만은 잘 키우시겠다고 힘든 몸을 이끌고 일터에 나갔던 부모님은 오랑캐들의 습격을 받고 돌아가셨다.
그때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해 얼마나 한이 됐는지 모르겠다.
‘ 성공해서 꼭 효도해드리고 싶었는데.. ’
아직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었는지 순간 오초희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그것도 잠시.
“ 어, 운다! 더 해봐요, 더! "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차우돈 덕분에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버렸다.
“ 아, 몰라! 안 해! ”
가뜩이나 부모님 생각에 기분이 꿀꿀해 죽겠는데 날 울리고 싶어 안달난 이 남자 때문에 짜증이 배가 됐다.
진자 보살이 말한 내 운명의 사랑을 위해서라도 차우돈은 이제 그만 포기해야 될까 보다.
***
결국 난 우는 데 실패했고 차우돈은 임시방편으로 박지연을 성당에 데려가기로 했다. 왠지 그곳에 가면 신이 시켜주실 거 같단다.
“ 근데 나는 왜 가야하는 거죠? ”
그 상경길에 나도 포함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난 무척이나 떨더름했다.
“ 그야 오초희 씨 반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
이 남자는 기껏 말해줘도 도돌이표였다.
그러니까 이게 다 내 반지를 훔쳐간 박지연 잘못이라고!
도대체 몇번을 말해줘야 알아듣겠냐고, 이 바보야!
“ 근데 내가 왜 운전까지 해줘야 하는 거냐고요. ”
“ 그럼 눈물을 흘리시던가요! ”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렇게 입을 꾹 다물고 운전에 집중한 결과 우리는 빠르게 강원도에 있는 성당에 도착했다.
이곳이 차우돈네 부모님께서 신을 섬기는 신전이라고 했다.
그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요즘 무당집에 드나든 사실을 아실까 모르겠다.
“ 오초희 씨는 밖에서 기다려요. ”
“ 와.. 기껏 여기까지 운전해줬는데 난 밖에서 기다리라고요? ”
하물며 내가 모시던 주인집 마님께서도 날 이렇게 대우한 적은 없었다.
차우돈은 대체 지가 뭐가 되기에 나를 이렇게 박대하는지 엄청난 미스터리였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고요. 님이 전생이 무엇이었건 나를 이렇게 막대하면 안 된다니까.
“ 다 오초희 씨를 위해서 그런 건데... 들어가면 타죽거나 그러지 않아요? ”
그가 본 영화에서는 나와 같은 존재들이 다들 그런 식으로 불에 타 죽었던 모양이다. 영화가 사람을 버려놨다.
" 그냥 혼자 갔다오세요. "
이것저것 설명하기가 귀찮아 난 그냥 밖에 있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다시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귀갓길에 올랐다.
차우돈이 날 어떤 의도로 불렀는지가 명확히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반지 주인이라서 부른 거라고?
개뿔. 그냥 택시가 필요했던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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