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펑펑
“ 그래서 오초희 씨는 언제 울겁니까? 지연이가 많이 힘들어보이던데. ”
이 바보는 자기가 그럴수록 흘러내리려던 눈물이 분노의 열기로 증발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 어련히 알아서 울겠죠! 조용히 좀 해요. 운전에 방해되니깐! "
그 말과 동시에 뒤에서 강한 충격과 함께 차가 덜컹였다.
누군가 내 차를 뒤에서 박은 듯 했다.
이게 얼마짜리 차인데!
큰 맘 먹고 무려 3억이나 주고 산 2022년 최신식 외제차를 개시한 지 얼마 안 돼서 박아?
누군지 모르겠지만 수리비로 왕창 받아 먹어야지!
“ 어떤 자식이! ”
차우돈 때문에 열받은 김에 화풀이나 하려고 난 차에서 내리고 봤다.
" 어디 가요?! 요즘 함부로 내리면 큰일 나는 거 몰라요? 그러다 사이코면 어쩌려고요! "
우돈도 따라 내리려고 문에 손을 갖다댔다.
" 아니요. 차우돈 씨는 안에 계세요. 이건 내가 해결하고 올 게요. "
" 그래도 여자 혼자 위험하다고요. 나도 같이.. "
" 있어요, 좀!!!! "
내가 소리치자 차우돈은 가여운 새끼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가기를 포기했다.
옳지. 잘했어, 차우돈.
차우돈이 있으면 분명 난 내 본성을 꺼내지 못하고 조신한 척하며 필터링을 거칠 거다. 그게 영 답답해서 그를 나오지 못하게 막은 거다.
원래 이런 차사고에선 목소리 큰 놈과 입이 거친 사람이 이기는 법이니까. 오늘도 난 승자가 되기 위해 입을 풀었다.
" 이보세...! "
그런데 뒷차에서 내린 이들의 얼굴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매일 밤 내 꿈 속에 나와 나를 슬픔의 바닷속에 빠트려던 사람들이었다.
바로 500년 전에 나를 키워준 내 엄마 아빠였다.
“ 아이고, 죄송합니다. ”
아빠가 머리를 수그리며 나에게 사과를 했다.
“ 저한테 고개 숙이지 마세요. ”
“ 네? "
" 괜찮으니까 고개 숙이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
아빠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쩔쩔매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부디 다음 생에는 떵떵 거리며 잘 살길 바랬었는데.
그들이 타고 있는 차는 10년도 넘어 보이는 다 낡은 소형차였다. 언제 멈춰도 이상할 게 없는 도로 위의 폭탄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도 막 입기 편한 멋도 하나 없는 일상복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번 생에도 내 부모님은 고생한 티가 팍팍 났다.
“ 죄송해요. 이 양반이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잠깐 졸았나 봐요. ”
보조석에 있던 엄마가 나와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번 생에도 두 분께서 부부의 연을 맺으신듯 보여 참으로 다행이었다.
나만 저기에 있으면 우리 가족이 다시 완성되는 건데.
난 저들 사이에 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 아, 아빠! 그러니까 운전 똑바로 하라고 했잖아! ”
그렇게 만족하려고 했는데 뒷자석에서 나보다 싸가지를 밥 말아 먹은 여자가 나와 내 아빠에게 고레고레 소리를 질렀다.
아무래도 나 대신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거같았다.
같은 부보님 밑에서 태어났는데 그 아이와 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내가 더 예쁘고, 착하고, 돈도 훨씬 더 많다.
누가 뭐래도 엄마 아빠의 최고의 딸은 나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근데 네가 감히 소중한 내 부모님께 소리를 질러?
“ 얘! 넌 부모님께 말버릇이 그게 뭐니! 싸가지 없게. ”
하도 열이 뻗쳐 내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그 아이에게 버럭 호통을 쳤다.
“ 쳇. ”
아직 철 들려면 멀었는지 싸가지가 콧방귀를 꼈다. 하는 짓이 딱 오백년 전에 나 같았다.
“ 정말 죄송합니다. 보험회사 불렀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
“ 내 대학교 등록금도 못 내주면서 수리비는 어떻게 내려고! 짜증나 진짜! ”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우리 아빠 옆에서 고함을 지르는 그 계집을 보며 난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저 싸가지가 다치면 속상해 할 우리 엄마 아빠를 생각해서 간신히 꾹 참았다.
넌 진짜 부모님 잘 만난 줄이나 알아라!
“ 아버님, 보시다시피 제가 이렇게 대단히 성공을 해서요. 수리비는 정말 괜찮습니다. ”
나 하나만 잘 되면 만사형통하다던 부모님께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예전에 아씨들의 가마를 멀리서 부러워하던 말숙이는 이제 남들이 못 타는 외제차를 탈 정도로 성공했다.
그러니깐 이제 내 걱정은 마시라고요.
두 분 덕분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장성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 그래도 차가 이렇게 망가졌는데.. ”
아빠는 찌그러진 내 차를 보며 안절부절 못 하고 계셨다.
이게 얼마나 한다고. 뒷범버 전체를 가는데 고작 몇천 밖엔 안 들 거다.
두 부모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에 비하면 껌값이었다.
“ 아니요. 오히려 두 분 가시는 길에 제가 방해한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
난 지갑에 있는 현금을 꺼내 용돈 삼아 두 분께 건넸다. 그게 대략 오백만 원 정도였다.
“ 아니, 저희가 이걸 왜... ”
예나 지금이나 엄마는 공짜 횡재를 받길 꺼려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다 나중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시더만 이젠 딸이 주는 용돈마저도 사양하셨다.
“ 받으세요. 그게 제 평생의 소원이었으니까요. ”
난 한사코 거부하는 엄마의 손에 억지로 돈을 쥐어줬다.
그리고 멋지게 돌아서서 차에 올라타려는데 싸가지의 싸가지 없는 말이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 이걸로 내 학비하면 되겠네. ”
엄마 아빠 쓰라고 준 돈을 네가 왜 넘봐?!
하지만 성품 좋으신 우리 부모님께서는 분명 저 싸가지를 위해 내가 준 돈을 아낌없이 쓰실 게 분명했다.
" 어이, 거기 딸. “
이대로 가면 분통이 터질 거 같아 난 싸가지를 향해 돌아섰다..
“ 저요? ”
싸가지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 그래, 너. 다음 학기부턴 네가 벌어서 가라. 요즘 애들은 다 지 학비는 지가 대니깐! 알았어?! ”
우리 부모님 등골 빼먹은 자식은 나 하나만으로 족했다. 그러니깐 제발 이번생에서 두 분이 행복할 수 있도록 협조 좀 하자.
“ 왜 나하테만 그래.. ”
언니가 진지하게 조언을 해주는데도 싸가지는 빈정 상한 얼굴로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무래도 쟤도 철 들라면 한참을 먼 거같다.
“ 그리고요. 어머님, 아버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두 분을 만날 수 있어서 제 인생에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부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난 500년 간 미뤄왔던 말을 두 분께 전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로 돌아왔다.
저 싸가지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두 분께서 나름 단란한 가정을 이뤄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내 성질도 이겨내신 부모님이라면 저 싸가지의 성질 쯤이야 능히 견뎌내실 수 있을 거다.
***
차로 돌아와 의연한 척 운전대를 잡았는데 차우돈의 질문 폭탄이 쏟아졌다.
“ 왜 그냥 가요? 그리고, 저 사람들이 박았는데 왜 오초희 씨가 돈을 줍니까! 오초희 씨가 그렇게 돈이 많아요? 빨리 가서 잡아요. 더 늦기 전에! ”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냥 같이 나가자고 할 걸 그랬다.
“ 조용히 해요! 내 엄마 아빠니까! ”
그리고 나름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난 전혀 괜찮지 않았는지 그렇게 기다렸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 나왔다.
“ 오초희씨 부모님이라고요? ”
나는 건드려도 내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고, 가족 방패를 들이미니 차우돈도 더는 잔소리 하지 못 했다.
“ 그렇다니까요! 씨부레. 더 많이 드릴 걸. 하필이면 지갑에 현금이 그것뿐이었다고요!! ”
마음 같아선 이 차를 드리고 오고 싶었지만 내겐 그럴 명분이 없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주는 차를 덥석 받아도 될 만큼 이 세상은 안전하지 않았다.
공짜인 줄 알고 휴대폰을 가져왔는데 나중에 요금 폭탄을 맞아본 기억은 누구나 다 있을 거다.
하물며 다른 것도 아니고 3억짜리 외제찬데 명의를 양도하려면 상품이니 경품이니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고작 오백만 원으로 효도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 그렇다고 울긴 왜 울어요. 자요. ”
우돈이 짠한 얼굴로 차에 구비되어 있는 휴지를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거처럼 강한척 하다더니만. 이 여자도 결국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이제야 그녀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이제와서 위로하는 척하지 마요! 내가 울길 바랐잖아! 왜요. 지금이라도 박지연한테 차 돌려요?! "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예민해진 오초희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에게 소리쳤다.
차우돈은 내가 울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 말인 즉슨, 내게 울 만한 슬픈 일이 생기길 바랐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제 속이 시원하냐.
내 불행으로 박지연을 구원해줄 수 있어서 행복하냐고.
" 그건.. "
그 상황 속에서 우돈은 치열하게 갈등했다.
오초희가 또 언제 울지 기약할 수 없는 마당에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 그냥 오초희 씨 집으로 가죠. "
하지만 부모님 때문에 우는 사람에게 다시 차를 돌리란 부탁은 할 수 없었다.
“ 왜요? 나 다신 안 울지도 모르는데?! ”
“ 괜찮으니까 집으로 가요. ”
우돈은 그녀를 위해 집에 가기를 자처했다. 그냥 오늘만큼은 이 여자를 좀 더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눈물은 다음에 기쁨의 눈물로 받아내지 뭐.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챔피언 벨트가 간절했다.
지금까지 챔피언이 된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펑펑 흘렸으니까. 오초희도 인간이라면 분명 눈물을 흘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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