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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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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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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 노 룰스 랜드 스윙(1)

DUMMY

바스타프가 카프틴이란 이름을 입에 올리기 무섭게 주위에서 듣고 있던 어나더 블러드 대원들이 너도나도 무기를 빼들고서 그를 포위해왔다.


“바스타프 너 이 머저리 자식···!”

“무, 뭐야?!”

“잘 들어 바스타프. 이번 한 번 뿐이니까. 다시는 그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

“······!”

“···그 이름을 함부로 지껄이고 다니면 둘 중 하나야. 우리 손에 숙청당하던가, 진짜로 죽었다고 알려진 그가 관뚜껑을 뜯고 올라와서 당신 목줄기를 틀어쥐고 자기 관짝 룸메이트로 삼던가.”


멧서의 표정은 전에 없이 심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는 걸까.


“대체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간단히 말해서, 기간트 커맨더인 네로스 님 조차도 그와 싸우게 되면 길어야 3분이면 죽어.”

“······!”

“그를 막으려면 단순히 강한 걸로는 안 돼. 악마를 3마리나 찢어 죽인, 사람 탈을 쓴 괴수니까.”

“악마를···뭐?”

“그런 것도 모르다니 당신도 어지간히 멍청하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녀가 바스타프의 엉덩이를 힘차게 걷어찼다.

“정 그를 만나보고 싶으면 일이나 해!”

“윽! 무, 무슨 짓이야?!”

“그는 때때로 본부에 들르거든. 정말로 그와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면 본부에 출입할 정도의 신뢰를 얻는 수밖에 없어.”

“본부라고? 어나더 블러드는 점조직 같은 게 아니었나?”


여태까지 그가 봐온 바로는 어나더 블러드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자유분방한 점조직의 느낌이 강했었다.

“그건 우리 실행부대의 일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거고. 제대로 총본산이 있으니까.”

“그럼 거기 가면 그가 있다는 건가?”

“몰라. 정말로 매년 한두번씩 들르는 정도니까 기대는 하지 마.”


적어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일 터.

그렇다면 그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또 노예 상단을 터는 건가?”

“···뭐야? 일 하려고?”

“그래.”


의욕을 불태우는 그의 모습에 조금이지만 흡족한 미소를 일순 띄운 그녀가 고갯짓으로 그를 이끌었다.


“이봐! 켈리시!”

“음? 멧서. 이번엔 쉰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 나는 쉴 거야. 대신 이 녀석이 참가할 거고.”

“뭐?”


켈리시라고 불린 드워프는 물건을 품평하듯 그를 위에서 아래로 쓱 훑어보고는,

“정말 멀쩡한 놈이겠지? 아까 분명히 말해선 안 될 이름을 멍청하게 입에 올리는 걸 확실히 들었다만.”

“그야 이 녀석은 머리통이 텅 비었으니까.”

“날 너무 바보취급하는 거 아냐?!”


계속해서 그를 바보 취급하는 멧서의 태도에 바스타프가 발끈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녀의 발길질 뿐 이었다.

“시끄러! 그의 이름과 위업, 악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그것도 모르는 놈이 있다니 우리가 더 놀라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난 여태까지 오크 부락에서 막 나와서 기사가 된 참이라고?!”

“뭐야, 그랬어? 그건 미안하네. 근데 그러면 지금부터 배워야 될 게 굉장히 많을 텐데···.”


마치 불쌍한 아이를 보는 듯한 눈을 한 멧서가 그를 놀리면, 바스타프는 이를 갈면서 켈리시 쪽으로 걸어갔다.

“들은대로, 아직 이것저것 세상 물정에 좀 어둡지만 잘 부탁하오.”

“뭐, 상관없지. 우리들은 인간을 잘 찢어죽이는 놈이면 골렘도 오케이인 곳이니까.”

“······.”

“특별히 말해두겠는데, 그분은 우리의 은인이자 구도자이자 전설이야. 다시는 함부로 입에 올리거나 하지 말라고.”

“아, 알겠다고요.”


도끼도 아니고 자그마치 자기 몸통만한, 두터운 검신이 특징적인 톱날검을 만지작거리며 그가 독살스런 눈빛을 쏘아댔다.

“끄응···.”

“아무튼, 내 부대가 향할 곳은 여기서 하루 거리에 있는 텔메니아 공국의 깡촌이다.”

“? 그런 깡촌에 무슨 일이 있길래?”


설마 또 본보기니 뭐니 하면서 기사왕국에서 들은 대로 마을을 학살하는 건가 싶어 바스타프가 께름칙한 낌새를 보이자, 켈리시는 으르렁대는 낮은 톤으로 답했다.

“망할 노예쟁이 자식들이 그 깡촌 외곽의 모처에 땅굴을 만들어서 노예 창고인지 뭔지로 쓰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이번엔 그 지하 창고를 섬멸하는 건가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으면,

“물론, 그 위에 지어진 깡촌도 멀쩡한 마을이라고는 못하지. 지하 창고 타격과 동시에 마을을 소멸시킨다.”

“?!”


바스타프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본 켈리시는 곧바로 자신의 톱날검을 그의 목에 겨누며 위협했다.

“어이. 신참. 왜 표정이 그리 떫어? 문제 있나?”

“아, 아니···딱히···.”

“잘 들어 신참.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알려주지. 노예쟁이는 찢어 죽인다. 노예쟁이를 지키거나 옹호하는 새끼는 밟아 죽인다. 그 과정을 봐버린 목격자 새끼들은 때려 죽인다. 목격자를 때려 죽이는 걸 본 놈도 때려 죽인다···이걸 더 이상 목격자가 안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알겠나?”

“······!”


그제서야 어째서 노예시장 섬멸이 마을 몰살로 이어지는지 확실히 알 게 되었다.

“그, 그런 무모한 일처리 방식으로 지금까지 해온 겁니까?!”

“그래. 지금까지 아주 잘 굴러갔지. 뭐가 그리 이상하지?”

“아, 아니 그렇지만 그런 식이면 인간들이 반발을···.”

“했는데 뭐? 놈들이 우리한테 뭐 얼마나 피해를 줬을 거 같나?”

“그, 그것은···.”

“반발해도 상관없어. 이미 계획은 다 되어 있으니까.”


큭큭 웃던 켈리시는 그 날이 기대된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기까지 했다.

“인간의 국가들이 모여서 우릴 죽이려 드는 순간, 그것은 곧 공식적인 이종족과의 전면전을 의미하거든.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를 긍정은 해도 적극 협력은 하지 않는 다른 이종족 거주지들도 우리와 결집하게 되겠지···.”

“······!”

“그분이 늘 말씀하던 대전쟁이 시작되는거야. 그리고···!”


부웅 하고 허공에 톱날검을 크게 횡으로 베어 올리면서 드워프는 입술을 핥았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대학살이 시작되는 거야···!”

“당신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켈리시는 이내 톱날검을 등에 갈무리한 뒤 그런 바스타프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하나 더 알려주지. 여기서 다른 동포의 사연을 함부로 캐묻는 건 실례다. 깡통아.”

“윽···!”


확실히 바리드의 건만 보아도 결코 이야기하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각자가 그런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뭐, 네놈이 망설이는 것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니까···정 무고한 인간을 죽이는 게 께름칙하다면 특별히 지하 타격조에 넣어주마.”

“그, 그건 감사합니다.”

“흥. 분명 네로스가 3년 이랬던가?”


그런 바스타프를 혀를 차며 바라보던 그는 이내 다른 동료들과 인선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 지하 출입구는 1개 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

“놈들은 퇴로가 없다. 최악의 경우 잡아 둔 동포들을 고기방패로 쓰거나 죽일 거다.”


덤덤하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켈리시의 발언에 바스타프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 그건 곤란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냐?”

“동포가···인질로···.”


바스타프의 발언에 켈리시는 미친 듯이 웃어제꼈다.

“인질? 하하하하하! 인질이라고? 잘 들어라 애송아. 우리가 노예쟁이를 죽이는 걸 실패하면 그들은 죽는 것보다 더한 꼴을 당할 거다.”

“······!”


“그러니 그건 고민할 거리가 안 돼. 그리고 전쟁에 희생은 당연히 따르는 법이다.”

“······.”

“그리고 그건 네놈도 똑같이 해당되니까, 개죽음 당하기 싫으면 이 악물고 똑바로 해라. 애송아.”


타격조와 학살조의 편성이 끝나고 나자 바스타프에게도 멧서가 밖에서 걸치고 다니던 것과 비슷한 로브가 지급되었다.


“이게 그···.”

“뒤집어쓰면 간단한 인식저해 마법을 발동하는 로브다. 암행에는 안성맞춤이지.”

간단히 설명해 준 켈리시가 자신의 로브를 착용한 뒤 먼저 마차에 올랐다.


바스타프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텐트를 걷어 마차의 짐칸에 실은 후에 마차 짐칸 위에 걸터앉아 출발했다.


*


켈리시의 말대로 마을은 채 30가구가 되지 않는 화전민 촌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마을이었지만, 바스타프는 행렬을 따라 마을 외곽의 고목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바윗덩이 앞까지 와 있었다.


대원들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며 준비 상태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여 신호했다.

“흡.”


바윗덩이를 두 수인이 살짝 들어서 굴려 치우면, 고목 뿌리 한쪽 아래로 난 개구멍 같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간신히 사람 두 명이 오갈 수 있을 수준의 비좁은 토굴이었다.


“간다.”

중갑옷을 걸치고 할버드를 든 두 전사가 최선두에 서서 토굴로 들어갔다.

뒤이어 켈리시와 바스타프를 비롯한 대원들이 차례로 돌입했다.


“뭐, 뭐냐?!”

“피는 피로 씻는다-!”

“!! 어나더 블···!”

어둑어둑한 토굴 속에서 은은한 야광석 빛에 의존해 전진한 최선두의 전사들이 입구를 지키던 인간들을 사정없이 할버드로 토막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악-?!”

“이, 이런! 어나더 블러드 놈들이 여길 어떻게?!”


토굴은 넓은 공동으로 이어져 있었다.

공동 안은 양 옆으로 늘어선 감옥 창살들이 즐비했고, 공동 중앙에는 각종 형틀과 고문도구로 보이는 께름칙한 기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퇴로는 없다! 인간은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제, 제기랄! 너희들!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저곳을 뚫어야 한다!”

인간들은 퇴로가 없음을 잘 안다는 듯 결사의 각오로 뭉치기 시작했다.

몇몇은 당연하다는 듯이 목줄을 채운 이종족들을 질질 끌고와 인질로 삼기까지 했다.


“자! 너희들! 소중한 동포가 다치는 꼴이 보고 싶지 않으면 거기를 비켜라!”

“흥. 어이.”


켈리시의 손짓에 할버드에 중갑을 걸친 두 전사가 토굴 앞에 철컹 하고 철벽처럼 막아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토굴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표시.

“이, 익···!”

“인질이라고? 좋다. 죽여라.”

“뭣이?!”

“그러나 너희가 우리 동포를 죽이면 죽일수록, 바닥에 동포의 피가 흐르면 흐를수록···.”

“······!”


켈리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스타프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었음을 깨닫고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자신이 어머니를 인질로 잡혔을 때와 같은 미소가 그에게서 보였다.

“···그 피를 지우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인간의 피를 뿌릴 뿐이다! 저 위의 마을 놈들도 이미 공격 중이다! 네놈들에게 희망은 없어! 머지않아 네놈의 가족, 친인척, 네놈과 거래하던 놈들, 그 놈들의 가족들 전부! 찢어 죽여서 동포의 피를 덮는다!”


격앙된 켈리시의 선언에 호응하듯 어나더 블러드의 전사들이 무기를 높이 쳐들고 부르짖었다.

“피로 피를 씻는다! 동포의 피를 인간의 피로! 속죄는 피로써 행해진다!”

“···정의도 신도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복수를 택하노니···!”

“빌어먹을 광인 놈들! 너희들! 어서 인질을 죽여라!”

“하, 하지만! 그랬다간 저 놈들이···!”

“어차피 인질로도 못 쓸 쓸모없는 것들이다! 죽···!”


발악하듯 인질을 죽이라고 명령하던 남자는 다음 순간 자신의 목에 뜨거운 감촉과 함께 막혀옴을 느꼈다.

“끄르륵···?!”

“부장?!”“꺼윽···?!”


뒤늦게 어느샌가 자신의 목덜미에 박힌 석궁의 볼트를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빛을 잃기 시작하고,

“제, 제기랄! 돌격해! 여길 뚫지 못하면 우린 다 갈갈이 찢겨서 이 토굴 안에 도배당할 거다-!”

“으아아아아!”


악에 받친 노예상인들이 인질들을 팽개치고 결사의 각오로 돌진을 감행했다.

“하하하하하하! 좋아! 아주 쉬워졌군! 이건 사냥 축에도 못 들겠어!”


켈리시는 광소하며 등에 차고 있던 자신의 톱날검을 자랑하듯 꺼내 쳐들었다.

“자아-. 어나더 블러드의 간부, 켈리시 코블 님은 여기 있다! 날 쓰러트리고 살아나갈 용감한 인간 놈은 어디냐-!”


-29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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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화 - 노 룰스 랜드 스윙(2) 21.03.18 16 0 12쪽
» 29화 - 노 룰스 랜드 스윙(1) 21.03.16 21 0 12쪽
29 28화 - 스피릿 라이드의 말로 21.03.15 21 0 11쪽
28 27화 - 피눈물과 진혼곡 21.03.12 27 1 11쪽
27 26화 - 피는 피로 씻는다. 21.03.12 33 0 11쪽
26 25화 - 사도의 사명 21.03.10 35 0 11쪽
25 24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2) 21.03.09 35 0 11쪽
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2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4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7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8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6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6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2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1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3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5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5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5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5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3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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