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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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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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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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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DUMMY

예의 대장장이는 성 밖의 마을에 거주한다고 했다.


결국 성벽을 지나 평민들과 하층민들이 사는 지역으로 이동해온 두 사람.

상인이 그려 준 약도를 따라 걸어가 보면, 이내 손질한 가죽들이 촘촘히 펼쳐져 있는 공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계십니까-.”

위델이 선두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쪽의 작업공간에서 쇠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잠시 기다리면 곧 망치질 소리가 멈추었다.

작업실에서 걸어 나오는 장인의 용모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지의 야만전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와일드한 인상이었다.


전혀 손질이 안 되어 마구 뻗치고 떡진 머리카락을 대충 질끈 동여매어 등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손질이 덜 된 수염이 까칠해 보였다.

본래는 반짝이는 은발이었을 머리카락은 빛을 잃고 칙칙한 색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는 꽉 잡힌 근육질로 번들거렸고, 곳곳에 할퀴어진 자국이 가득했다. 덤으로 해골과 짐승의 발톱자국을 형상화한 독특한 문신까지 왼쪽 가슴에 떡하니 새겨져 있어 마주치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패기가 인상적이었다.


“당신이 대장장이 보그렐 씨인가.”

대장장이 보그렐.

이 인근에서 가죽 다루는 솜씨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알려진, 숨은 명인이었다.


본래는 좀 더 좋은 대우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었지만, 출신 문제와 그 괴팍한 성격 탓에 이런 곳에서 농기구나 만들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소만, 댁은 누구요? 새로 온 잡역부신가?”

“아니. 용병이오.”


바스타프가 은근슬쩍 목에 걸린 강철제 패널을 드러내 보이면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우리 집은 당신 같은 사람이 쓸 물건은 취급 안 하오.”

“소개장을 가져왔는데도 안 되는 겁니까?”


위델이 조심스럽게 소개장이 든 편지봉투를 그에게 내밀면, 그는 그것을 휙 낚아채어 누가 보냈는지를 확인했다.

“흐응.”


콧소리를 내며 그대로 소개장은 읽지도 않고 찢어버리려는데,

“분명 가죽을 받으셨겠죠?”


약삭빠른 위델이 곧바로 끼어들어 입을 열면, 그의 태도가 맘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구긴 보그렐은 고개만 까딱인다.


“그게 어떤 가죽인지도 물론 잘 알고 계시겠지요.”

말없이 고개만 까딱이는 보그렐에게 위델은 바스타프에게 손을 갖다대고 자랑했다.


“이 친구가 그 멧돼지를 맨몸으로! 때려잡은 친구입니다. 물론 혼자서요!”

“뭐?”

그제서야 눈빛이 바뀐 보그렐이 찢으려던 소개장을 꺼내서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금새 다 읽은 소개장을 콱 구겨서 바닥에 던져버리더니 바스타프의 앞으로 다가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정말인가?”

“정말이오. 부상은 입었지만 어떻게든 잡았지.”


믿기 힘든 이야기.

그러나 보그렐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사람, 아니 전사를 보는 안목은 어지간한 장인들도 혀를 내두를 수준.

그런 그의 안목이 이 남자는 진짜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시 매대로 돌아가 선 보그렐은 진지한 표정으로 서서 바스타프를 마주 보았다.

“그래, 필요한 물건이 뭐요?”


바스타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보아하니 꽤나 까다로운 작자인 것 같은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확인한다는 것은 합격이라는 뜻일 터.

“움직이기 편한 가죽 갑옷 한 벌, 그리고···.”


바스타프는 자신의 주먹을 들어 쥐었다 폈다 해보며 생각에 잠겼다.

익숙한 벙어리장갑 형태의 복싱 글러브로 할지, 좀 더 실전적인 격투기용 장갑을 주문할지로 고민했다.


“왜 그러지?”

“그게···뭐가 좋을지 고민 중이오.”

“무슨 고민인지 들어나 보도록 할까.”

뭔가 범상치 않은 것을 느낀 보그렐이 손짓으로 작업실로 따라오게 했다.


도면용 양피지를 몇 장 건네주고 목탄까지 건네준 후 바스타프에게 직접 원하는 물건의 모양을 그려서 보여 달라고 했다.


“음···.”


일단 자신에게 더없이 익숙한 경기용 복싱 글러브 형태를 그려서 보여주면,

“특이한 장갑이군. 근데 이걸로는 무기를 쓸 수 없게 될 거 같은데.”

“물론이오. 난 복서니까.”

“복···서?”

“간단히 말하면, 펀치만으로 적을 격파하는 격투가를 말하는 것이지.”


격투가라는 말에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보그렐.

“확실히 그렇다면 납득은 된다만···아무리 그래도 불편할 텐데.”

“오직 전투용이니까. 보통은 벗지.”

“그래선 실용성이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닌가?”


보그렐의 말에 문득 깨달았다는 듯 재차 목탄을 쥔 바스타프가 슥슥 그림을 그렸다.

이번에는 일반적인 현대의 이종격투기용 글러브를 최대한 알아보기 쉽도록 그렸다.

“이건 나도 잘 아는 종류로군.”

“만들어 본 적은?”

“비슷한 건 몇 번 만들어 봤지. 보통은 주먹 앞부분에 금속 징을 덧대거나 하니까.”


금속 징이란 말에 혹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바스타프 자신은 복서였다.

타격 시에 금속의 감촉이 느껴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선호하는 감촉은 어디까지나 가죽과 가죽이 맞부딪치는 그 찰진 손맛이었으니까.


복싱이란 스포츠가 존재하지 않으며, 용병과 검과 마법이 판치는 이 세계에서 어설프게 스포츠맨십이니 불살이니 고집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기에 단순한 가죽 글러브로는 만족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때리는 감촉을 포기하기도 싫었다.

“뭐랄까, 금속 보다는···으으음.”


자신의 주먹을 꼼지락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바스타프를 지켜보던 보그렐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이 남자의 본성을 알아챈 것이다.

“알 것 같군. 금속이 견고하고 파괴적이긴 하지만, 타격 시에 감촉이 좋지는 않으니까.”

“그, 그렇지.”

“그렇다면 되도록 가죽 재질로, 하지만 질긴 몬스터의 가죽을 찢거나 뚫고 큰 부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로서의 기능도 포기하기는 싫다···는 거로군.”


다 안다는 듯 설명하는 모습에 바스타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보그렐은 손가락을 튕기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가 뭘 원하는지는 알 것 같군. 주문대로 만들어주지.”

“가, 감사하지.”

“감사는 필요 없네. 정 감사하고 싶으면, 만들어준 장비를 입고 나가서 피칠갑을 할 때까지 실컷 두들기고 다니라고.”

“······?!”


송곳니가 두드러진 미소를 보이며 보그렐은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게 무기의 용도니까 말이야. 잘 써주는 게 나 같은 장인들에겐 가장 좋은 보답이라고.”


서로 잘 맞는 것을 느낀 바스타프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작업실을 벗어나려는데, 문득 선반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가죽 부츠에 눈길이 간 바스타프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건 뭐하는 신발이지?”

“그건, 파는 게 아닐세.”

겉보기엔 평범한 가죽 부츠였지만 묘하게 묵직한 중량감에 바닥을 살펴보면,


“···바닥이 금속제로군.”

“그래. 그건 내 거다. 파는 게 아니야.”

단순히 금속 바닥이 아니었다.

바닥 앞 뒤 가장자리에 말발굽에 박는 편자와 비슷한 U자형 금속이 툭 튀어나와 있는 기묘한 구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닥 옆면 금속 부분에 당당히 새겨져 있는 문장.

‘이것은 신발이 아닙니다. 밟아 죽이기 위한 무기입니다.’


문장을 같이 발견한 위델이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보그렐 쪽을 보고는 뒷걸음질 쳤다.

“다, 다다다···당신! 설마!”

“···알아 본 건가.”


보그렐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바스타프가 부츠를 내려놓고 위델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이오.”

“그 녀석이 내 정체랄까, 예전 직업을 알아챈 모양이거든.”

“?”


“어, 어나더 블러드···!”

“뭐?”

“후흐, 역시나인가.”

보그렐이 바지 뒤쪽에 매어둔 나이프를 꺼내들고 바스타프에게 비키라는 듯 고갯짓을 해왔다.


“이봐, 그 친구를 이리 넘겨.”

“그건 곤란하다만.”

“히익!”

보그렐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어이, 같은 이종족끼리 이러기야? 저 놈이 쓸데없는 소릴 지껄이거나 하면 내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은 해 줘야 할 거 아닌가.”

“뭐야, 너 이종족이면서 어나더 블러드도 모르는 거냐?”


보그렐은 기가 차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바스타프를 바라보았다.

이종족, 그것도 혼혈이 어나더 블러드가 뭔지도 모르기는 어려웠다.


어나더 블러드.

대륙 각지에서 횡행하고 있는 이종족 인신매매를 비롯한 각종 횡포에 분개한 이종족들이 모인 비밀 결사이자 무차별 학살집단.


횡포에 가담한 자들을 비롯, 그들의 친인척까지 포함해 마을 째로 죽이고 불사르는 활동으로 세계 각국에서 경계를 받고 있었다.


설명을 들은 바스타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크 특성상 어느 정도는 차별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종족 차별이 이정도로 심했을 줄이야.

“그거 끔찍한 이야기로군. 여러 가지 의미로.”

“그렇지? 물론 난 이미 그만두긴 했다만, 경력이 밝혀지면 뭔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말이지. 자네 친구 입을 어떻게든 막아야겠는데.”


나이프를 이리저리 돌리며 으르렁대는 보그렐의 태도가 납득이 되었다.

치안이 엄격한 기사왕국인 만큼 그의 경력이 밝혀지면 필시 체포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 아무데도 말 안한다니까요! 진짜예요!”

손사래를 치는 위델을 못 미덥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바스타프.

그는 이미 이 작자가 사기꾼, 협잡꾼, 밀고자의 기질을 보이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뭐, 자네 친구라니까 한 번은 믿어 보도록 하지. 다만···.”

“···?”

“혹시라도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네가 입을 나불거린 걸로 알고 어나더 블러드에 알릴 수밖에.”

“흐에?”

“어나더 블러드에 대해 아는 자네라면 알고 있겠지? 그들이 한 번 노린 사냥감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도···.”

“······!!!”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은땀을 흘리는 위델의 태도를 보면서 어지간한 단체는 아님을 알아챈 바스타프가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였다.


비록 바스타프 자신에게 차별에 대한 복수 같은 대의는 없었지만, 그 정도 악명을 떨치는 조직이라면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이종족 이라면 누구라도 받아주는 건가?”


바스타프의 질문에 보그렐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나 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종족이라도 정신이 똑바로 박힌 작자라면 안 들어오지.”

“왜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곳이잖아?”


바스타프의 반문에 보그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신도 한때는 그 말을 믿고 어나더 블러드에 몸을 바쳤었다.

하지만 그가 청춘을 거기서 불사르고 깨달은 것은···.


“거긴 제정신 박힌 놈들이 들어갈 곳이 아니야.”

“그러니까 뭐가 문제···.”

“거긴 인간을 멸종시키고 싶어서, 복수를 하고 싶어서 굶주리다 못해 눈이 까뒤집힌 놈들 소굴이라고. 알겠나?”


보그렐의 말에 바스타프는 입을 다물었다.

어나더 블러드가 어떤 집단인지는 분명했다.


“정 이종족들과 인맥을 갖고 싶다면, 다크엘프 마을이라도 찾아가는 게 나을 걸세.”

“다크엘프 마을? 여기서 가까운가?”

바스타프의 질문에 강마의 숲 방향을 바라보는 보그렐.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멀지.”

“무슨 의미인가?”

“단순히 거리만이라면 하루 반나절이지만, 강마의 숲을 지나야 되거든.”


바스타프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바로 찾아가보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현재 어머니라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당장은 어머니와 자신의 신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기사왕국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9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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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1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3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5 1 11쪽
»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5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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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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