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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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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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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수 :
165,203

작성
21.03.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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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DUMMY

[···일어나라. 나의 투사여.]

‘또 당신인가.’


아득한 의식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바스타프는 인상을 구겼다.

여태껏 아무런 말도 없이 뭐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다시 나타나다니.

‘여태까지 어디서 뭘 했길래···.’

[그대에게 선택지를 주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뭐?’


뜬금없이 선택을 종용하는 신의 목소리에 바스타프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뭔 선택? 이 상황에서?’

[그대는 여지껏 원치 않는 하프오크의 육체로 잘 싸워 주었다. 하지만···, 원치도 않는 몸으로 주먹만을 사용한다는 전투방식으로는 한계일 터. 그대가 원한다면 이대로 가호를 풀고 그대가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 있도록···.]


바스타프를 놔 주겠다는 말을 나직하게 풀어낸 신의 목소리에 바스타프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

‘논외다. 그딴 이야기 필요 없으니까 닥치고 있어. 난 지금 바쁘다.’

[어째서? 그대는 스스로가 하프오크로 환생한 것이 거슬리지 않았나?]


바스타프는 코웃음을 쳤다.

확실히 이런 추한 몰골로 환생을 한 것은 맘에 안 들었다.

하지만 그딴 건 부차적인 문제.

지금 바스타프에게 중요한 건···.


‘난 지금 꼭 좀 때려죽이고 싶은 녀석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 말이야.’

[······.]

‘그나저나, 당신 진짜 강해지고 있는 거 맞아? 어째 전보다 목소리가 조금 더 가늘어진 것 같은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그에게 신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비밀 중 하나를 고백했다.


[나는 본래 여신이다. 투사여.]

‘···그런 건 빨리 말해.’

[?]

‘처음부터 고운 목소리로 도와달라고 사정했으면 하프오크로 환생한 거 불만 안 가지고 그냥 덮을 수 있었는데 말이지.’

[······!]

‘신이란 게 인간의 마음도 못 헤아리고 칠칠맞은 여신님이구만.’


그렇게 눈을 떠 의식을 되찾았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현기증이었다.

“빌어먹을···쇠몽둥이 같은 칼이라 안 베일 줄 알았는데.”


복부에 길게 한일자로 베인 상처를 바라보며 이를 갈고 있는데, 그제서야 바스타프 자신의 몸 주변에 은은하게 오렌지색 오라가 피어오르고 있음을 인지했다.


“뭐야 이건? 뭔가 이글거리는게···.”

[나의 신성력이다.]

“진짜? 색깔이 어째 좀 애매한데.”

[···그것은 그대의 믿음이 아직 부족해서다.]

“하! 미안하게 됐네. 난 애초에 무신론자라고.”

[······.]


상처부위를 감싸쥔 채 끙 하고 일어난 바스타프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갈비뼈가 두 대 나갔고, 배의 출혈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나무와 충돌한 탓인지 허리도 조금 뻐근했다.


어딜 보아도 이미 만신창이로 싸울 상태가 아니었지만, 바스타프의 눈은 목책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사령술사 노파 쪽을 바라보았다.


“마침 뼈다귀 자식도 어디 갔고···지금이라면!”

[투사여. 그 몸으로는···.]

“시끄러워! 저런 곧 죽을 듯한 할망구 숨통 정도는 비틀어 죽일 수 있어!”


일갈하는 소리에 바스타프를 발견한 노파, 데드마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확실하게 치명상을 입혔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니.

“이이이···! 지겨운 녀석! 좀 죽어라!”

“누구 맘대로! 내가 뽀뽀해줄 정도로 예뻐질 때까지 그 얼굴을 두들겨 패주마!”

“추잡스런 오크 놈 같으니!”


바스타프의 도발에 분개한 노파가 손을 휘저어 뼈로 된 창을 소환해 날렸다.

비틀거리며 어떻게든 더킹을 시도했지만 창날이 얼굴을 스쳐지나가며 길게 상처를 냈다.


“크윽···!”

“흐히히히히! 그 잘난 회피동작조차도 마음먹은 대로 못 하면서, 어떻게 이 데드마더님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겠다는 거냐?!”


승리를 확신한 데드마더가 자지러지게 웃으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문득 저 오크 놈이 죽으면 저 시체로 언데드를 만들 생각이 떠오른 탓이었다.


“흐히히···! 걱정 말거라. 나도 너처럼 젊고 힘찬 육체는 싫어하지 않는 편이란다. 물론 ‘시체’일 경우에 한해서지만. 히히히히!”

“거 참 취미 고약한 할망구일세.”

“피차일반이지 않나? 이런 연약한 노파의 얼굴을 주먹으로 두들겨버릴 생각이나 하는 네놈이 할 말은 아니지!”


즐거움을 마친 노파가 천천히 스태프를 들어올려 겨냥해온다.

이번에야말로 최후의 주문이라고 생각하며 여유롭게 영창을 시작했다.


[···투사여.]

‘좀 조용히 해. 지금 중요한 순간이니까.’

[그렇기 때문이다.]

‘······?’

[진심으로 나를 섬길 생각이 없는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무신론자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

‘왜. 역시 날 고른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라고 이제와서 후회라도 하고 있는 거야?’


어렴풋이 그녀가 고개를 도리질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그대가 나를 갈구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야?’


어차피 사도로 임명받은 걸로 관계는 충분하지 않나 싶어서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면,


“이봐! 오크! 어디서 딴청울 부리고 있는 거냐!”

“아 좀. 할망구 좀만 기다려 봐.”

“뭣이?!”

“그러니까, 잠깐이면 된다니까. 지금 중요한 이야기가···.”

“이이이이익!”


결국 뼈의 창을 5개나 소환한 노파가 손을 휘저어 그것 모두를 투사해왔다.

“죽어라 이 건방진 오크 놈아!”

“망할!”


얼빠진 여신 때문에 저런 걸 맞고 죽어야 하다니 라고 생각하며 바스타프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문 순간,


파앙!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노파의 경악성이 들려왔다.

“히에엑?! 뭐, 뭐냐 그건?! 저, 정령? 정령술인가?!”

“?”


엉겁결에 한쪽 눈을 뜨고 앞을 살피면···.


“어?”

바스타프의 몸에서부터 나온 오렌지색 오라로 이뤄진, 6개의 팔을 펼친 여성의 상반신 형체가 모든 뼈 창을 가로채 쥐고서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그대를 아직 죽게 할 수는 없다.]

“당신···!”

“그, 그것은 대체 뭐냐고 묻고 있다! 오크! 대답해라!”


여신의 형체가 천천히 몸을 돌리는데, 바스타프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제길, 여신은 여신. 확실히 굴곡이 도드라진 모습이다.

팔이 6개라는 이형의 모습만 아니었으면 일순간 헌팅 대상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로.


“느닷없이 튀어나오고 말이야···무리하는 거 아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알겠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들어가 있어. 이건 내 싸움이야.”


형체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그것을 부정했다.

[그렇지 않다.]

“뭐?”

[이것은 ‘우리’의 싸움이다. 나의 투사여.]

“······.”


“오크 놈이! 어울리지 않게 정령왕 같은 걸 부리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정령왕이라고 억측한 노파가 재차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꽤나 고급의 마법인지 지면에 짙은 마법진까지 아로새겨지고, 뒤에 있던 부하 사령술사들이 재차 마나를 지원했다.


[그대의 안에서 그대의 기억, 감정들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지금 이런 이야기 하긴 좀 그렇지 않아? 나중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아 쫌!”


하지만 여신은 오히려 두 손으로 그의 양 팔을 붙잡고 마주보며 버텼다.

결국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낸 바스타프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대에게 있어서 우상은 자기 자신 뿐.]

“그래.”

[그렇다면 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폈다.]

“마음속을 읽었다는 걸 그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재주라고 해야 할까..”


시큰둥해진 바스타프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느닷없이 겹쳐오는 여신의 모습에, 바스타프의 표정이 굳었다.

“뭐, 뭐야?!”

[아무리 잊혀지고, 약해지고, 저주받았을 지라도 여신. 필멸자와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지만···.“

“?!”


다음 순간 여신의 입에서 나온 발언에, 바스타프와 노파 모두가 얼었다.

[바스타프여! 나의 연인이 되어라!]

“머라꼬?!”

“흐히엑?!”


잠시 켈록거리며 마른기침을 한 바스타프가 이내 발끈해서 받아쳤다.

“당신 제정신이야?!”

[···무언가 잘못되었는가?]


발끈한 것은 바스타프 만이 아니었으니,

“콜록콜록! 이, 이···이 망할 오크 연놈들이!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런 낯부끄러운 연애질 하지 말란 말이다-!”


땅을 마구 밟으며 발광하는 노파의 모습에 바스타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여 사과의 표시를 할 정도였다.

[바스타프여,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는가?]

“전부다! 이 얼빠진 여신아!”

[······!]


오러 형태의 그녀의 머리를 꾹꾹 짓누르며, 바스타프는 일갈했다.

“보통 그런 건 말이야! 좀 더 공손한 말투로 부탁하듯이 하는 거라고!”

[···그, 그것은···!]


차마 여신으로서 거기까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바스타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 얘긴 나중에 좀···.”


쓸데없는 이야기로 긴장을 푼 탓일까.

현기증으로 인해 그의 몸이 비틀거린다.

“어우, 이거 오래 못 가겠는데. 빨리 저 할망구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중요한 이야기라고 했지 않나. 바스타프여.]


자꾸만 바스타프의 시야를 막는 여신의 모습에 바스타프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대체 그 부끄러운 고백의 어디가 중요하다는 겁니까. 여.신.님?”

[그대는 지금 나의 사도로서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본래 사도로서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여신인 나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너희들! 작작 하고 어서 덤비던지 도망치던지 하란 말이다-!”

“잠깐만 타임! 이거 진짜로 중요한 이야기였어!”

“뭣이?!”


그제서야 진지한 자세로 이야기를 하려는 듯 눈빛을 바꾼 바스타프.

“그거, 진짜인가?”

[그렇다. 그대가 나를 강하게 갈구하면 할수록 사도로서의 힘도 강해지는 것은 물론, 나의 여신으로서의 위상도 보다 빠르게 회복될 터.]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지만, 이건 엄연히 마음의 문제였다.

바스타프에게 있어서 이 이름모를 여신을 매력적으로 느낄 구석이 어디가 있는 것일까.

“당신에게 몇가지 확인할 게 있는데.”

[······?]

“당신, 예전에 전성기 시절 미모에 자신은 있나?”

[······.]


역시 남성이란 다 이런 것인가. 하고 내심 한심하게 바스타프를 내려다보던 여신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여신님이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으려나. 설마 이래놓고 나중에 동물 머리를 하고 있다든지···.”


내심 인간 시절 학생때 읽은 이집트 신화 책의 동물 머리를 한 신들 그림을 생각하는 바스타프의 모습에, 여신은 말없이 자신의 손으로 바스타프의 양 뺨을 후려갈겼다.

“아야! 알았다고! 농담이라니까! 몇 대를 때릴 생각이야?!”

[제대로 손 개수대로 맞아라.]

“그만둬?!”


재차 노파가 날린 뼈의 창들이 날아들었지만, 이번에도 여신의 손짓으로 간단히 격파당했다.

“크이이이-!! 가증스런 정령왕 년 같으니!”

[···정말 무례한 노파로군.]

“그러니까 이 이야긴 나중에 하자니까.”



안된다는 듯 재차 어깨를 붙잡는 여신의 모습에 결국 바스타프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혹시 나중에 위상을 되찾아서 실체를 가지게 되면, 나랑 스킨십도 할 수 있는 거야?”

[······.]


-19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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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2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7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9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6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7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3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2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4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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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6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6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6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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