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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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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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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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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화 - 왕립 검투대회(1)

DUMMY

검투대회 3일 전.

바스타프와 그의 어머니는 영주성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드릭키어 영주는 전형적인 맹장처럼 보이는 그대로의 호쾌하고 열혈한 사람이었다.


“핫하하하! 어떤가 바스타프. 첫 승마의 감상은!”

“흔들리는데다 엉덩이를 자꾸 들썩이니 기분이 좀 묘합니다.”

“그것 재미있는 감상이군!”


대회를 앞두고 그는 바스타프에게 기사로서의 기본 소양 교육을 하고 있었다.

귀족으로서의 기본적인 예법부터 기사들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승마까지, 바스타프로서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지만 기사가 되려면 필요한 과정이었다.


“으-음.”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전속 메이드에게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형편없었지만 영어와 제법 비슷했기에 어떻게든 초보적인 수준에는 도달한 상태였다.


“잘 하셨어요.”

“당신이 잘 가르쳐준 덕분이지. 고마워.”

감사를 표하면 메이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바스타프 님이 잘 배우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하프오크인 그와 거리를 두고 쭈뼛거리며 두려워하던 그녀였지만, 며칠 간 바스타프를 지켜보며 그가 결코 야만적인 마물이 아님을 알게 된 후에는 스스럼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3일 인가···.”


또다시 하루가 지난 아침.

바스타프는 영주에게 부탁해 주문제작한 샌드백 앞에 선 채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이런 세계에서 현대의 샌드백을 재현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튼튼한 소가죽 안에는 모래와 자잘한 자갈이 들어가 있었다.


덕분에 펀치의 감촉이 영 시원찮았지만, 이 세계에서 그가 두들겨야 하는 것은 대부분 두터운데다 질긴 가죽을 자랑하는 흉악한 마물들.

이 정도는 되어야 펀치의 감촉이 맞춰질 터였다.


보그렐에게서 주문한 장비를 재차 정돈했다.

목 주변에 뱀 가죽을 두른 금속제 프로텍터 역할을 하는 링을 중심으로, 멧돼지 가죽을 3겹으로 무두질하여 견고하게 만든 가죽 조끼.


팔에는 적의 공격을 흘려 내거나 막을 수 있도록 악어의 등가죽을 덧댄 멧돼지 가죽 토시를 끼웠다.

글러브 역시 멧돼지 가죽을 쓴 형태였지만, 바깥쪽에는 상어의 가죽을 덧대어 강화했다.


하의 역시 기본적으로 통이 넓은 멧돼지 가죽 바지에, 벨트는 뱀 가죽을 사용한 견고한 벨트였다.

마지막으로 신발은 바스타프의 주문 대로 보그렐의 것처럼 말굽 편자를 박은 모양새의 금속 바닥을 사용했다.


가볍게 몸을 튕기며 주먹으로 턱을 가린 채 몸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일단 몸에 걸친 게 많이 늘었음에도 무게나 착용감은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훅···!”

리듬을 잡기 위해 흔들던 그대로 라이트 잽을 연달아 샌드백을 향해 내질렀다.

복싱 글러브와 달리 쩍쩍 붙는 퇴폐적인 감촉이 느껴지며 그의 기분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흡!”

곧바로 리듬을 타면서 가볍게 레프트 훅!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샌드백이 확 꺾이며 출렁거렸다.

가벼운 일격이었는데도 이런 위력이라면 컨디션은 최상이라는 의미.


“정말로 격투가였군 그래.”

멀리서 지켜보던 드릭키어 영주가 박수를 치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별 건 아닙니다.”

“아니. 지금의 동작만 보고도 자네의 솜씨를 대강은 알겠네. 굳이 무기를 쓰라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어.”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바스타프를 바라보던 드릭키어가 벽의 거치대에서 목검을 꺼내왔다.

“그래도 자네가 출전하는 건 격투대회가 아니라 검투대회일세. 무기를 든 상대와의 감각을 익혀 둬야겠지?”

“아···.”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후원해주는 귀족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바스타프 앞에서 호쾌하게 웃어 보이는 드릭키어.

“핫하하! 설마 진심으로 할 생각인가?”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간단하네. 자네가 나의 검격을 피해 나에게 주먹을 닿게 하면 자네의 승리인 걸로 하지.”

“···!”


바스타프에게 규칙을 제안하며 미소를 짓는 그의 표정은, 누가 보아도 호승심으로 이글거리는 맹장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야···.”


바스타프 역시 호승심이 끓어오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자세를 잡았다.

목표는 최고속으로 영주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것.

맞출 펀치는 라이트 쇼트 어퍼.


본래라면 최고속 돌진이 가능하도록 졸트 자세로 무조건 치고 들어가야 했지만 상대에게는 검이라는 무기가 들려 있었다.


상대의 자세를 살피면 한손검술인 듯 한손으로 검을 편하게 쥔 채로 몸을 측면으로 대고 있었다.

저래서는 때릴 곳이 마뜩찮다.


섣불리 정면으로 다가가 봐야 정면의 노출은 최소화 되어 때리려고 해봐야 앞에 나와 있는 검에 먼저 베일 터.


그렇다면 측면을 노려야 했다.

어퍼컷은 취소하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레프트 훅을 노리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검을 피해내고 접근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오소독스 스타일로 자세를 잡고 몸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음···빈틈이 없군.”

드릭키어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멀리서 그냥 볼 때는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이렇게 정면에서 대치해보니 몹시 성가신 자세다.


무게중심을 살짝 낮추고 몸을 방정맞게 좌우로 살랑살랑 흔드는데, 기묘하게도 이 덕에 검으로 벨 각도를 잡을 수가 없었다.


생각 없이 검으로 베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어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낸 뒤 역으로 그의 주먹에 맞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검으로 20년을 살아온 기사.


“제법 재미있는 기술 이다만, 이건 어떠냐!”

“!”

슬금슬금 접근하던 바스타프의 발이 멈추었다.

황급히 상체를 이리저리 틀어 간신히 피해내며 접근하려 들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영주는 번개 같은 찌르기를 이용해 바스타프의 접근을 간단히 차단해버렸다.

“큭···!”

“자! 뭘 하고 있나! 이 정도도 뚫어내지 못해선 입상은 무리일세!”


저 안정된 자세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개 같은 검술에 바스타프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결국 한참을 몸을 흔들다 이마에 제대로 한 방 따콩 하고 찍힌 뒤 나뒹굴어야 했다.


“으그그···.”

“핫하하! 자네의 민첩함은 훌륭하지만, 아직 검술에 대항할 기술이 부족하군 그래. 이거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나 후원해 준 영주를 위해서라도 입상은 꼭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필시 고전하게 될 터.


벌떡 일어난 바스타프가 옷을 대충 털고는 이를 악물고 다시 자세를 취해 보였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좋지! 나도 마침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였으니. 자, 오시게!”


“이야아앗!”

이번에는 과감히 찌르기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내며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의 파고들기는 불가능할 터였다.


대회 당일.

마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브레이븐의 왕도, 가디스타에 위치한 왕립 검투장이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규모의 건축물을 마차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데, 옆에서 드릭키어가 툭툭 치며 놀리듯 내일 자네가 저기서 싸우게 될 거라고 속삭여왔다.


“아, 알고 있습니다.”

“떨 것 없네. 요 며칠간 했던 것 처럼 하면 입상은 확실하네.”

영주의 얼굴 곳곳에는 반창고와 연고를 바른 자국이 남아 있었다.

대련 도중에 흥분한 두 사람이 반쯤 진심으로 겨루게 되면서, 기어이 그의 얼굴에 바스타프의 주먹이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권압에 압도된 드릭키어가 정신을 차리고 중지하지 않았다면, 필시 둘 다 어딘가 한 군데는 피가 날 정도로 다쳤을 터였다.


오후가 되자 바스타프는 개막식을 위해 검투장 무대 가장자리에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서 있었다.

몇 천 명은 될 왕도의 시민들이 관중석에 앉아 그런 참가자들을 내려다보며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각자 자신들이 응원하는 참가자의 이름을 연호하거나, 멋진 검투를 보여 달라며 환성을 질러댔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긴장으로 쭈뼛거리는 가운데, 바스타프는 오히려 이 분위기에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전생하기 전 늘 보던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허리에 묵직하고 번쩍거리는 챔피언 밸트를 감고 나타나 손을 번쩍 들면 모두들 그에게 환성을 질러주지 않았던가.

그 기분 좋은 감각을 이런 이세계에서 또다시 맛볼 수 있다니.


자기도 모르게 양 손을 번쩍 들어 화답해 보였다.

더 커진 환성을 들으며 바스타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 분위기에서라면 질 거 같지 않았다.


한편, 관중석 중 유독 화려하게 꾸며진 귀족 전용 좌석.

작위가 고만고만한 드릭키어는 비교적 뒷자리에 앉은 채로 그런 바스타프를 내려다보고 흡족해했다.

잔뜩 긴장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즐기고 있는 눈치.

이거라면 긴장해서 실력발휘를 못할 걱정도 없었다.


문득 시야에 하얀색이 눈에 띄어 내려다보면, 귀족 좌석 맨 앞쪽의 왕족석과 귀빈석 쪽에 익숙한 의상을 입은 이들이 보였다.

“신성제국···.”


드릭키어의 시야에 들어온 남자, 그는 의상이 말해주는 대로 신성제국의 고위 신관이었다.

특별히 기사왕국의 큰 행사인 이 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신성제국 대표로 참석한 것이었다.

같은 북부동맹의 중요한 우호국인 만큼, 그의 좌석은 자그마치 왕족석 가장자리에 마련된 귀빈석이었다.


“어떻습니까. 이번 참가자들은.”

“호호오···. 다들 건장한···.”

예의를 차린 멘트를 읊던 신관의 시선이 참가자들을 쭉 훓던 순간, 그의 눈에 결코 있어선 안 될 것이 여기 있음이 확인되었다.


“···국왕 전하.”

“무슨 일이오. 페레투스 신관.”

“그것이, 참가자 중에···.”

불쾌한 기색으로 신관이 가리킨 손끝에는, 연두색 피부에 턱이 유달리 발달한 바스타프가 양 손을 흔들며 관중들에게 화답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오. 유별난 참가자가 있었군요.”

“유별난? 국왕 전하. 저건 마물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

딱 잘라 마물이라고 규정하는 고위 신관의 태도에 국왕의 이마에 힘줄이 조금 올라왔다.


“물론 저도 행사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실격 시키시는 것을 건의 드리지요.”

국왕이 언짢은 기색을 보이자 곧바로 한 수 접기는 했지만, 신관은 저 연두색 마물이 거슬린다는 듯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페레투스 신관. 귀관의 의견은 존중하오. 다만, 그가 정말로 귀관이 말하는 대로 마물이라면 여기서 대회에 참가하고 있을 수 있겠소?”

“그, 그것은···.”

“우리 왕국의 치안은 북부 동맹에서도 최고라고 자부하오. 정말로 저 자가 단순한 마물이라면, 나의 유능한 기사들이 그가 왕도에 입성하려고 하자마자 그를 참수했을 터.”


국왕의 반론에 결국 신관은 떫은 표정을 최대한 감추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음속으로는 제발 저 추악한 마물이 무언가 사고를 쳐 주기를 기대하면서.


-11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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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2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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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8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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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3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2 1 13쪽
»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4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6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6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6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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