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2,008
추천수 :
43
글자수 :
165,203

작성
21.03.08 20:00
조회
42
추천
2
글자
12쪽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DUMMY

네로스는 순순히 성명문과 사과문을 작성해서 바스타프의 손에 넘겨주었다.

물론 왕도 밖에서 기다리겠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 주었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마쇼. 밀사 일이 끝나는 대로··· 그나저나, 입단에 필요한 절차 같은 건 없는 건가?”

“딱히 없습니다. 어나더 블러드는 어디까지나 각 동포의 자발적인 참여로 움직이는 비밀 결사. 가입과 탈퇴에 제한은 없습니다.”


문득 예전에 소속되어 있던 보그렐이 별다른 제약 없이 탈퇴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 생각났다.

“비밀결사라면서 이탈하는 자들의 입막음도 안 하나?”

“훗. 인간들과 달리 우리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동포의 피를 팔아치우는 추악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과연.”


같은 고통을 짊어진 이들이기에 비밀을 발설할 리 없다.

이들이 어째서 이런 느슨한 체계임에도 비밀결사로서 성립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탈퇴했어도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겁니다. 여기 있는 멧서도···.”


멧서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이내 본인이 네로스의 입을 툭 치며 가로막는다.

“그 이야긴 됐잖아요. 넌 어서 가 봐. 오크 반푼이.”

“헷. 알고 있다고.”


여전히 바스타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치인 멧서의 등쌀에 못이기는 척 기사왕국의 왕도에 입성했다.

입성하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근위대의 기사들이 나타나 그를 이끌었다.


근위대 기사들이 이끌고 간 곳은, 왕성 근처에 자리 잡은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왕세자는 층 하나를 통째로 빌려 창가의 식탁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전하. 밀사 바스타프가 생환했습니다.”

“그런가. 데려와라.”


식사를 잠시 중단한 왕세자는 곧바로 바스타프를 불러 올라오게 했다.

바스타프는 처음과 달리 제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며 조심스럽게 네로스의 성명문과 사과문이 든 금속원통을 왕세자 옆의 근위기사에게 넘겼다.


근위기사는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왕세자 대신 뚜껑을 열고 안을 살핀 뒤, 서류 두 장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왕세자의 손에 들려주었다.

“흠. 어떻게 그들이 순순히 조건을 들어준 모양이구나.”

“송구합니다만, 기사왕국의 법 기준에 따르는 것은 거부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잠시 이걸 말해도 좋을지 뜸을 들이던 바스타프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들은 제가 3년 간 어나더 블러드의 일원으로 활동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


왕세자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조건이지만, 3년이나 요구할 줄은.

감히 자신이 서임한, 엄연히 기사왕국의 가신이자 자신의 가신이기도 한 자를 멋대로 데려다 쓰겠다니 한편으로는 괘씸했다.

“이유는 말해주던가?”

“같은 혼혈종인 저에게 자신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


왕세자는 내심 이를 갈았다.

명백히 바스타프를 자신들의 끄나풀로 삼겠다는 게 틀림 없었다.

비록 기사 작위를 쟁취하여 인간의 길을 택했지만, 그 역시 본질은 하프오크.


같은 혼혈종이나 이종족들의 비참한 실태를 적나라하게 접하게 되면 향후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바꿀지는 미지수였다.

“3년은 좀 길군···.”

“그럼 거절 할까요?”


막 고개를 끄덕이려던 왕세자는 멈칫하더니 손을 내밀어 잠시 기다려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그의 머릿속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여러 가지 경우들이 스쳐지나가며 어떻게 해야 왕국에 이득이 될지를 재기 시작했다.


“···알았다. 그 조건도 받아들이지.”

“!”

“단, 그러기에 앞서 자네에게 몇 가지 알려둘 것이 있네.”

“어떤 것입니까?”

왕세자는 근위기사에게 고갯짓을 하여 무언가 가져오도록 시켰다.


바스타프가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보면, 푸른색 장식용 천과 발톱 문양이 회오리처럼 둘러진 인간의 주먹 모양이 양각된 금도금 된 버클이었다.

“중요한 이번 밀사 역할을 잘 수행해 준 공로로, 왕명에 따라 자네는 ‘방랑백’의 작위를 하사받았다네.”


방랑백.

방랑백작을 뜻하는 특수한 백작위를 뜻하는 것이다.

보통 백작위 정도면 최소한의 경작이 가능한 영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자유기사가 활성화 되어 있는 기사왕국에서는 드물게 영지나 다른 귀족 산하에 들지 않고도 백작위 같은 높은 작위를 받는 경우가 생겼다.


이에 기사왕국 왕가에서 아예 따로 방랑백작이라는 특수한 작위를 마련해 이러한 자유기사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던 것.


“그, 그렇게까지···!”

“귀관의 충성을 믿겠네.”

“······!”

바스타프는 직감했다.

이것은 그저 호의로 주는 것이 아니다.

바스타프가 이종족들의 편으로 돌아서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던 것이다.


“자네가 방랑백이 되었기 때문에, 자네의 어머니 역시 같은 방랑백이 되겠군.”

“······!”

“바스타프 경. 명심하게. 자네는 기사왕국의 방랑백일세. 향후 3년간 어나더 블러드에서 뭘 겪든···.”


왕세자가 바스타프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왔다.

그는 지금 도박을 걸었다.

만약 바스타프가 끝까지 인간의 편을, 기사왕국의 기사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준다면···.

기사왕국은 어나더 블러드에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하나 갖는 셈이 된다.

어나더 블러드의 의도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귀관은 내가 서임한 강인하고 명예로운 기사, 바스타프 와일드-피스트일세.”

“···알고 있습니다.”


바스타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푸른 천을 허리에 두른 뒤 버클을 끼워 고정해 보였다.

번쩍거리는 도금제 버클 덕에 마치 챔피언 벨트를 찬 듯해서 피가 끓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전하.”

“그래. 자네의 무운을 빌도록 하지.”


조심스럽게 레스토랑을 나온 바스타프는 그 길로 왕도를 벗어났다.

네로스와 약속한 장소에 와 보면, 네로스의 모습은 없고 있는 것은 멧서 뿐이었다.

“멧서. 네로스는 어디 있지?”

“······.”


쳇 하고 혀를 찬 멧서가 머리를 긁적이며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뭔데? 설마 또 누구 죽이러 간 건가?”

“그런 거 아니야! 네로스는 기간트 커맨더라 바쁜 몸이라고!”

“과연. 다른 용무가 있어서 가버린 건가.”


납득한 바스타프는 덤덤하게 멧서의 옆에 가서 섰다.

그러자 멧서는 그런 그의 엉덩이를 거칠게 걷어차면서 거리를 벌린다.

“무, 무슨 짓이야? 일단은 이제부터 동료인데?!”

“시끄러워! 너 같은 수컷 새끼랑 가까이 할 생각 없으니까, 앞으로 3걸음 이상 다가오면 그 다리사이에 추한 걸 다시는 못 보게 해줄 테니까!”

“뭐?! 진심이냐?”


동료가 되었음에도 으르렁거리는 그녀의 태도에 바스타프도 발끈했는지 이를 갈면서 주먹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녀의 태도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기도 했고.

“진심이지 그럼! 지금 여기서 처리해줄까?!”

“너 진짜! 아무리 여자라지만 손 좀 봐줄까? 아앙?!”

“해 보시지! 그 둔해빠진 근육돼지 몸뚱이로 내 움직임을 반이나 따라올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서로 잠시 동안 눈에 힘을 주고 대항하다가, 결국 바스타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다.

“너도 어지간하네. 하여튼···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이유나 들어보자.”

“시끄러! 그딴 거 묻지 마!”

“이제부터 같이 일할 동료로서 그 정도도 못 해주는 거냐?!”

“이이익···!”


기어이 가위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던 멧서는 네로스가 가기 전 언질했던 것이 떠올라 멈칫했다.

“···쳇.”

“대체 뭔데?”

“···첫째. 난 너 같은 수컷 냄새 풀풀 풍기는 숫퇘지 한테는 관심 1도 없어! 짜증난다고!”


그것은 이미 여태까지의 태도만 보아도 명백했기에 바스타프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둘째! 어느 쪽이냐고 하면 난 가녀린 미소녀 취향이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내 앞에서 허락 없이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하면···.”

“?”

“···네 눈알에 침을 뱉어 버릴 거야.”

“···개 같은.”


이제 막 동료가 된 자신 앞에서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시전 하는 이 글러먹은 동료에게 바스타프는 한심하다는 듯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당신 같은 취향의 사람이 많은 건가? 그렇다면 진심으로 울고 싶어질 거 같은데.”

“시, 시끄러워!”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바스타프가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가리키며,

“잠깐만, 너 그 네로스랑은 아무렇지 않았잖아?”

“네, 네로스 님은 너처럼 추잡한 근육돼지가 아니잖아! 어딜 비교하고 있어! 더럽게!”

“아···그러냐···.”


아무래도 그녀와는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친해진다고 해도 어느 날엔가 틀어지면 저 흉악한 가위질을 해올 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무튼 간에, 넌 내가 맡기로 되었으니까 앞으로 말 잘 들어야 돼.”

“응?”


예상치 못한 사실에 멈칫한 바스타프가 눈을 마주치면, 그녀는 새침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인다.

“당신은 오늘부터 내 부하라는 것이지.”

“···그거, 최악이군.”

“그래. 최악이지.”

“어떻게 다른 사람 휘하로 옮길 수는 없나?”


바스타프의 요청에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쉽게도, 네로스 님의 지시로 정해진 거니까, 바꾸고 싶으면 그 분을 설득해야 할 거야.”

“허어.”


보나마나 그녀가 거부했지만 네로스가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바스타프가 말해도 소용 없을 터.

“그···3걸음이랬지?‘

“···그래.”


아무래도 바스타프의 어나더 블러드 생활은 순탄치 못할 것 같았다.

“따라와. 이제부터 접선장소로 향할 거야.”

“오자마자 일이라는 건가?”

“그런 셈이지. 우린 바쁜 조직이니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바스타프는 곧 뒤따라 걸었다.

“그래서 내가 참가할 일은 뭐지?”

“그걸 지금부터 들으러 가는 거야. 라고는 해도 참가나 불참가도 자유기는 하지만, 당신은 신참이니까 당분간은 나랑 동행해야 하지만.”

“그건···꽤나 곤란한 이야기군.”


꽤나 까칠한데다 성격이 결코 원만하지 않은 그녀와의 동행이라니 더없이 위험했다.

내심 다리 사이 부분에 금속판 정도는 덧대어 둘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네로스 님은 어째서 이런 근육돼지를 권유하는건지 원···.”

“전력에 보탬이 되니까, 아냐?”

“하! 너 설마 어나더 블러드 기준에서 자기가 꽤 먹히는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냐?”


국가 전체가 상무정신으로 똘똘 뭉친 기사왕국에서 기사로 인정받을 정도면 자신이 이 세계에서 나름 중상위권 정도의 강자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바스타프였다.

“당신 정도는 발에 채일 정도로 널려 있어. 당장 내가 당신이랑 거의 호각일테니까.”

“뭐? 잠깐만, 그럼 당신은 어나더 블러드 내에서 어느 정도지?”

“······.”


그것도 모르냐는 듯 흘겨본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해주었다.

“간단히 말하면, 당신 같은 신참이나 최말단 졸개들을 현장에서 끌고 다니는 말단 지휘관이랄까.”

“!!”


즉 바스타프는 어나더 블러드 내에서도 잘 쳐줘봐야 말단 레벨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게 어딨어?! 난 이래봬도 기사왕국의 검투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라고?!”“하! 인간들 수준으로 우릴 평가하면 농담 아니고 너 3일 내로 토막 나서 길바닥에 버려지는 수가 있다?”

“!!”“눈먼 칼 맞고 홀라당 죽기 싫으면 이 악물고 따라와야 될 거야.”


-23화 END-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정 중단합니다. 21.03.20 56 0 -
공지 게재 시간 관련. 21.02.24 46 0 -
32 31화 - 노 룰스 랜드 스윙(3) 21.03.19 16 0 11쪽
31 30화 - 노 룰스 랜드 스윙(2) 21.03.18 17 0 12쪽
30 29화 - 노 룰스 랜드 스윙(1) 21.03.16 21 0 12쪽
29 28화 - 스피릿 라이드의 말로 21.03.15 22 0 11쪽
28 27화 - 피눈물과 진혼곡 21.03.12 28 1 11쪽
27 26화 - 피는 피로 씻는다. 21.03.12 33 0 11쪽
26 25화 - 사도의 사명 21.03.10 36 0 11쪽
25 24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2) 21.03.09 36 0 11쪽
»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3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8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9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7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7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3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2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4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6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6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6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4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4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