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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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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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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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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4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2)

DUMMY

어나더 블러드의 접선장소는 기사왕국 서쪽 국경선 인근의 공터였다.

이미 곳곳에는 모닥불 주변에 눌러앉아 무기를 다듬고 있는 이종족 전사들이 즐비했다.


“여어! 멧서 왔네!”

“멧서! 요새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니야? 쉬엄쉬엄 하라고.”

이미 조직 내에서 그녀는 유명인이었는지 가는 곳마다 인사를 받았다.


물론, 그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닥쳐! 나한테 신경 쓸 시간에 무기나 신경쓰라고! 이 머저리들!”

“하하하핫! 오늘도 멧서는 날카롭구만!”


저 성격이 특별한 게 아니라 보통이었음을 확인한 바스타프가 고개를 저었다.

“너, 동료들한테도 그런 식이구나.”

“뭐 어때서?”

“아니. 그냥···용케 지금까지 잘 지냈구나 싶어서.”

“흥.”


그날 밤.

몸 여기저기 흉터가 가득한 늑대인간 전사가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이번 목표는 수송 행렬 습격이다. 목표는 모든 인간종의 박멸과 동포 구출 및 물자 탈취다.”

“어디쯤에서 덮치는 건데?”


한 다크엘프의 질문에 그가 가리킨 곳은 남쪽이었다.

“내일 오후 무렵에 남쪽에 있는 외진 길을 지나가는 걸 확인했다.”

“그냥 우리가 가서 치면 안 돼?”


누군가가 나서서 치자고 제의하자 너도 나도 맞장구를 치며 무기를 쳐들고 전투를 갈구했다.

늑대인간 전사는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네들의 기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의 활약으로 놈들이 꽤나 겁쟁이가 되어 있어서 말이야. 섣불리 달려들면 필시 도망칠 거다.”


조용히 듣고 있던 바스타프가 손을 들었다.

“어. 그래. 거기 신입.”

“그게 나쁜 건가? 놈들이 도망친다면 더 쉽고 빠르게 동포들을 구할 수 있을 텐데.”


백우 시절의 사고방식 대로의 답을 입에 올리자, 이내 주위가 조용해졌다.

“저 신입 누가 데려온 거야?”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며 늑대인간 전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본적으로 어나더 블러드는 가입과 이탈이 자유롭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구성원들의 의식수준이 높았다.

“앙화의 네로스 님이야.”


멧서의 대답에 늑대인간 전사가 손을 내리고 헛기침을 했다.

앙화의 네로스라면 현재 조직 내에서도 몇 없는 기간트 커맨더 직위를 가진 고위 간부이자 어나더 블러드의 원년 멤버였다.

그의 결정에 토를 달 수 있을 만큼 베짱이 두둑한 대원은 이 중에는 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잘 싸우나보군?”

“기사왕국의 기사 작위를 갖고 있어.”

“뭐?”

멧서가 자신이 준 로브를 들추어 바스타프의 허리에 둘러진 기사왕국의 방랑백의 증표를 보여주었다.


“···진짜냐. 그거. 모조품 같은 거 아니지?”

“진짜야. 네로스 님한테 밀사로 찾아온 적이 있어.”

멧서가 계속해서 사실임을 확인시키면 대원들의 눈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놈, 스파이 아닌 거 확실하냐? 멧서?”

“그건 본인밖에 모르지.”

“어이 멧서?!”

전사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바스타프의 주변을 포위하고 무언의 압박을 해왔다.

금방이라도 그를 붙잡고 두들겨 패서 스파이 의혹을 풀겠다는 듯이.


“너 이자식, 설마 기사왕국 놈들에게 동포를 팔아넘길 생각인 건 아니겠지? 아앙?”

“마을 하나를 태운 걸로는 본보기가 안 되었나본데? 야. 나중에 저번 일이랑 연루된 마을 놈들 다시 조사해야겠다.”


그들의 눈을 보며 바스타프는 어째서 보그렐이 이 조직에서 뛰쳐나왔는지 확실히 체감했다.


그들의 눈동자는 너무도 짙은 살기에 문드러져 탁한 빛을 내고 있었다.

오래 전, 백우였을 때 자신이 방황하던 시기에 그러했듯이.

“좋아. 어이 멧서! 이 자식 담당은 너지?”

“그래.”

“그럼 안심이군. 멧서라면 필히 이놈이 수작질을 부리는 거 같으면···.”


멧서가 말 없이 자신의 가위 손잡이를 툭툭 건드리며 새침하게 웃어 보이자, 다른 전사들도 그제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젠장할···.”


진심으로 나중에 고간 보호대에 대해서 보그렐과 상담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바스타프는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했다.

“바스타프.”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멧서 덕에 구석에서 자는 척이라도 하려고 침낭을 만지작거리다가 흠칫했다.

“무, 뭔데.”

“···내일 습격 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어.”

“······?”

“인간을 3명 이상 죽여. 최대한 잔인하게.”

“······!”


바스타프는 멧서 쪽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다시 침낭을 만지작거렸다.

바스타프라는 이름의 하프 오크의 육체를 빌리긴 했지만, 여태까지 자신은 인간 백우라고 여기고 있었다.


물론 인간 백우는 사람 패는 걸 좋아하는 파탄자가 맞다.

그러나 그는 코치의 도움으로 적어도 살인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경기 중에 때린 상대가 죽는 것은 괜찮았다.

적어도 자신이 비난받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한가지 확인 하고 싶은데.”

“간단한 거라면.”


바스타프는 조심스럽게 목에 걸고 있던 용병패를 꺼내 보였다.

“그 행렬을 호위하고 있는 놈들은 그냥 고용된 용병들이지 않나?”

“······.”

“그들을 굳이 죽일 필요는 없어. 적이 늘어날 뿐이라고.”


멧서는 그런 바스타프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슥 하고 다가가서 냅다 뺨을 후려갈겼다.

“뭐, 뭐야? 왜 때려?!”

“이 병신자식아!”

“그러니까 왜?!”

“그 놈들은 누구 돈을 받고 일 하고 있지?!”

“놈들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잖아! 먹고 살려고 필사적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재차 반대쪽 뺨까지 얻어맞자 바스타프는 참지 않기로 했는지 몸을 일으키며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녀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고개를 틀어 피해낸 후 가위 한쪽을 뽑아 바스타프의 다리 사이의 지면에 꽂으며 위협했다.


“큭···!”

“잘 들어. 그 용병이란 놈들은 돼지 같은 노예상인 새끼들이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우리 동포들을 돈 대신 받아가는, 상인들과 똑같은 버러지들이야···. 차라리 상인 놈들에게 끌려가서 경매라도 당하면 사정이 나을 정도지.”

“······!”


씹어뱉듯이 내뱉은 그녀는 이내 비웃음을 띄고서 그의 머리채를 잡아 내팽개쳐 놓았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여기 모인 전사들은 모두 그런 쓰레기 자식들에게 가족이나 연인을 잃고 미쳐버린 놈들뿐이야.”

“···큭.”


바스타프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

이곳은 법이나 인권보다도 칼과 마법이 앞서는 중세 시대.

당연하게도 백우 시절의 인신매매에 대한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당신이 여기 있을 자격은 없어. 바스타프.”

“······.”

“하지만, 당신이 만약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동포’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그녀는 손가락으로 바스타프가 로브로 가려 둔 방랑백의 증표를 가리켰다.

“그걸 자기 손으로 우그러뜨려야 할 거야.”

“······!”


한심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던 멧서는 곧 몸을 돌려 멀어졌다.

“내일은 늦잠 자면 적진에 집어던져버릴 거니까, 빨리 자.”


바스타프는 자신의 허리에 채워진 버클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생한 직후 그가 오크들을 모조리 죽이면서까지 오크로서의 자신을 거부한 것은 자신 스스로를 인간 백우라고 규정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엄연히 인간인 자신의 어머니를 백우 시절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어머니와 겹쳐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신이 차별받는 것보다도 어머니의 안정된 신분과 생활을 바라보고 기사 작위까지 얻었다.

그러나 세계는 이제 와서 자신에게 하프오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나보고 대체 뭘 어쩌라는 거지···!”


쳇 하고 혀를 찬 바스타프가 침낭 속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이렇게 고민해봐야 당장 결론이 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


눈을 뜬 곳은 온통 새하얀 공간에서였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면, 이제는 붉은 오오라의 형태로 희미하게나마 6개의 팔을 펼치고 가부좌를 튼 여성의 형상을 한 거대한 신의 모습이 보였다.

“여긴 대체 뭐지?”

[이곳은 그대의 꿈 속이라고 할 수 있겠지.]

“······.”


잠시 서로 말 없이 마주보고 있던 두 존재.

먼저 입을 연 것은 여신 쪽이었다.

[저번의 일, 역시 후회하고 있지 않나?]

“뭘?”

[···사도 역할을 철회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

“······!”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게끔 해주겠다고 했던 그 제안.

바스타프는 거절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그의 새로운 어머니였음은 확실했다.


[나는 그대가 지금의 고뇌에 도달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 날 하프오크 같은 어중간한 걸로 환생을 시켰다는 건가.”

[그대에게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뭘 근거로?”


여신은 중간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바스타프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앉혀놓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신도를 잃고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었기에, 사도가 될 자에겐 특별한 자질이 필요했다.]

“용맹한 투사?”


바스타프가 넘겨짚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에고(Ego:자아).]

“어째서지?”

[사도가 된 이상, 오롯이 그대의 주신인 나를 섬겨야만 했다. 중간에 개종을 하거나 믿음이 약해질 수 있는 우유부단하거나 나약한 정신을 가진 이는 적합하지 않았지.]


그제서야 바스타프는 철저하게 종교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자신이 이 여신에게 선택받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전생을 했음에도 여전히 인간 강백우로서의 자신을 바꾸지 않으려고 했지.]

“······.”

[덕분에 사도로서 주신인 나와의 연결고리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였으니.]


여신의 말에 바스타프는 신성력이 오렌지에서 붉게 변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래서 색이 이상하게 나온 거였다는 건가?”


여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럼, 여신인 당신은 구체적으로 뭘 원하지? 그냥 지금처럼 내가 멋대로 날뛰는 걸 바라는 건 아닐 것 같은데.”

[······.]


조용해진 여신의 모습에 바스타프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말을 안 해? 당신이 원해서 날 전생시킨 목적이 있을 것 아냐? 그냥 이대로 당신 위상인지 위장인지가 늘어날 때까지 날 내버려두고 허송세월 할 건 아닐 텐데.”

[그것은···.]


망설이는 듯한 여신의 모습에 바스타프는 결국 그녀의 손바닥을 발로 구르며 다그쳤다.

“말해! 이건 당신 남자친구로서의 명령이야!”


-24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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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2) 21.03.09 36 0 11쪽
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2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7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8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6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6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3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2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4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6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6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6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4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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