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993
추천수 :
43
글자수 :
165,203

작성
21.03.15 20:00
조회
21
추천
0
글자
11쪽

28화 - 스피릿 라이드의 말로

DUMMY

다음 날 오전.

마침 같이 다니게 된 바리드에게 진혼곡의 일에 대해 자세히 캐물었다.


그러면 그는 어려워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바스타프. 정령술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어?”

“정령술? 어째서 숙청부대 이야기에 정령술이 끼어드는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를 보며 바리드는 설명을 시작했다.

“정령술에는 크게 2가지의 고등기술이 있어.”

“2가지나?”

“그 첫 번째가 스피릿 라이드, 정령 강신이야.”

“······!”


단어만 듣고도 어떤 의미인지 알아챈 바스타프의 눈빛이 변했다.

“그거, 안전한 거야?”

“···물론 안전하지는 않지.”


바리드의 이야기는 더없이 비참한 것이었다.

오래 전 있었던 큰 전쟁에 참전했던 엘프들은 당시 막 개발한 이 스피릿 라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엘프들은 전쟁에서 승리할 정도로 큰 힘을 휘두를 수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그 댓가를 치러야 했다.


멜티드 소울 신드롬.

통칭 멜티드라 칭해지는 비참한 부작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잦은, 그리고 과도한 정령과의 융합으로 인해 육체와 영혼이 정령과 뒤섞이면서 동화되어간 끝에 지성을 상실하고 날뛰다가 완전히 정령화 되어 자멸하는 엘프 전사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자신들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마구 날뛰면서 피아 구분 없이 주변을 초토화시키거나, 심하면 정령력의 역류로 소멸과 동시에 대폭발까지 일으켰다.


결국 엘프들은 눈물을 머금고 멜티드화 되었거나 될 우려가 있는 참전용사들을 모두 강마의 숲 남부에 있는 짙은 밀림에 격리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잊혀져 있다가, 어나더 블러드를 만든 남자가 이곳에 감금된 후에 탈옥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풀려났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세상에 되돌아온 전사들은 신성제국의 정책을 중심으로 이종족들이 탄압당하고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며 광분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고 나온 남자의 말에 자극받아 그를 따르게 되었고, 어나더 블러드를 만들 때 원년멤버이자 고위 전사들로 참여했다.


“그렇다면···.”

“그래. 분명 그들은 더할나위 없이 강력한 전사들이야. 하지만 극도로 불안정하기도 하지.”

“······.”

“그들을 이끌었던 지도자, 카프틴 역시도 그 점을 알고 있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고 해.”

“뭘 말이지?”


바리드는 안타깝다는 듯 먼 곳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싸움을 멈추고 숲으로 돌아가라고.”

“······.”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어. 괴물이 되어서라도 동포의 해방과 번영을 위해 싸우다 죽겠다고 했지.”


그러자 그 남자, 카프틴은 조직을 나누었다.

멜티드화 된 전사들을 비롯해 전면에서 복수전을 갈구하는 가장 난폭한 자들을 중심으로 구축한 실행부대를 ‘피눈물’로.


그런 그들을 개별 감시하다가 멜티드화가 심해져 폭주할 경우 그런 그들이 존엄을 가지고 전사로서 죽도록 해주는 숙청부대인 ‘진혼곡’을 이면에 창설했다.


“그렇다면,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멜티드들이 있나?”

“미안. 그것은 우리 입으로는 말할 수 없어.”

“······.”

“확실한 건, 멜티드는 꾸준히 늘고 있다는 거야.”

“어째서지?”


바리드는 잠시 이야기를 하던 걸 멈추고 주위를 살피며 곤란한 눈치였다.

아마도 신참에게 쉬이 말해줘도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일 터.

“···본디 스핏 라이드는 전쟁 이후로 엘프들 사이에서도 금기시되어 잊혀진 기술이었어.”

“그게 정론이겠지.”

“하지만 초대 멜티드 전사들이 카프틴과 함께 나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기술이 전수되었지.”

“······!”

“어나더 블러드의 전사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흔한 기술이라는 뜻이야.”


그제서야 어나더 블러드의 전사들이 왜 그토록 막강한 전투력을 선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다들 자신들의 생명을 정령에게 갉아 먹히면서까지 복수를 부르짖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이미 알고 있잖아?”


문득 바리드의 사연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바스타프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입장에 처했었다면···

바스타프 자신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 필시 그것을 선택할 터.


“잠깐만, 인간이나 다른 종족이 그걸 남용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엘프들이랑 똑같은 증상이 나오는 건가?”

문득 궁금해진 사실을 입에 올리면 바리드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왜그래?”

“바스타프. 설마 정령술을 배우려는 거야?”

“···아니.”

“······.”


잠시 침묵하던 바리드는 쥐어짜는 듯한 음성으로 나직하게 말했다.

“엘프들은, 영혼이 정령의 일종이기 때문에 정령과 동화되어서 자연소멸하지만···인간이나 다른 혼혈종들은 그렇게는 될 수 없어.”

“그래서?”


“나도 본 적은 없지만, 인간도, 정령도 아닌 중간의 무언가가 되어서···융합한 정령조차도 변질되어 육체에 속박당한 채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 되어 버린다고 하더군.”

“···끔찍한 결말이군.”

“그렇지? 게다가 엘프들과 달리 자연소멸도 못 해. 생명력이 다해서 선채로 죽거나, 동족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산채로 뜯어먹으며 미쳐 날뛰게 된다고 하더라고.”

“뭐?!”


말을 하는 바리드의 건틀릿 사이로 드러난 수상한 징후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바스타프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덥석 잡아 건틀릿을 잡아 그것을 벗겨 내려고 했다.

아닐 거라고, 이런 좋은 녀석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바리드의 저항으로 무산되었다.

“바리드! 너···!”

“······.”

“말해! 너도냐?!”

“······.”

“너도 그 빌어먹을 기술을 쓰고 있는거냐고 묻고 있는거다! 말해!”


이런 곳에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그런 그가 비참한 시한부나 다름없는 꼴로 연명한다는 현실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바스타프. 당신도 말했잖아? 우린 근본은 같다고. 당신은 어떨 것 같아?”

“큭···! 이 망할 자식!”

“괜찮아. 각오하고 받아들인 거야.”

“고칠 방법은 있는 거지?! 그렇게 오래된 기술이라면···!”


바리드는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초기라면 스핏라이드를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지만, 나나 다른 어나더 블러드의 대원들처럼 몸에 변이가 나타날 정도면···.”

“······!”


이 무슨 비참한 꼴이란 말인가.

탄생조차 축복받지 못하고 삶이 복수로 더럽혀져 버렸다.

그럼에도 죽음마저 이토록 끔찍한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다니.


“이 세계엔 신도 뭣도 없는 거냐···!”

“그럴지도 모르지.”

“잠깐만, 그렇다면···멧서도?”

“···응. 그녀는 2세대니까.”

“2세대?”

“그래. 1세대가 카프틴과 함께 숲에서 뛰쳐나온 초대 전사들. 그 이후 그들에게 직접 단련받은 고위 전사들이 2세대.”

“그렇다면 바리드 너는?”

“···3세대, 라고 해야 될려나.”


바스타프는 곧바로 마음속으로 여신을 불렀다.

‘이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무엇이지?]

‘이 녀석들의 멜티드라는 거, 당신 신성력으로 어떻게 안 될까?’

[······.]

‘신이라면 이런 불쌍한 녀석들을 구해주는 게 일 아니었어? 뭔가 방법이 있을 거 아냐?’


여신의 형상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조금 숙인 채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바스타프. 그것은 어떤 신이 오더라도 무리다.]

‘···거짓말 하지 마! 전지전능이라는 수식어는 장식이냐!?’

[그렇다. 장식이다.]

‘?!’


너무도 선뜻 인정하는 그녀의 태도에 바스타프는 멈칫했다.

[신들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바스타프. 나를 비롯해 그들 모두는···신앙을 바치고 섬겨주는 신도가 없으면 존재조차 소멸할 수 있는 위태로운 존재들이다.]

‘······.’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멜티드로 고통 받고 있는 전사들의 증상은···그 어떤 존재라도 고칠 수 없다.]

‘어째서냐.’

[스피릿 라이드는 말 그대로 자신과 정령의 영혼을 섞어서 폭발적인 힘을 얻는 금술. 남용하면 저들처럼 영혼이 뒤섞이게 된다.]


‘···섞인 걸 빼내면 되는 거 아냐?’

[한 번 섞이기 시작한 영혼을 되돌리는 방법 따위, 그 어떤 존재라도 가지고 있지 않다.]

‘큭···!’

[그것을 알고 그들이 선택한 길이다. 하다못해 그들을 기억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겠지.]

‘······.’


“바리드. 그러면 그 망할 금술이라는 게 이 조직, 어나더 블러드 전체에 만연해 있는 거냐?”


바스타프의 질문에 바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렇지는 않아. 알다시피 그 댓가가 너무 큰 기술이니까. 사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엘프나 하프엘프, 다크엘프들. 그 중에서도 반수 정도의 열성적인 이들 정도야.”

“너는···.”“알잖아? 나에겐 싸워야만 하는 이유도 각오도 있었을 뿐이야.”

“······.”

“무엇보다도, 하루라도 더 빨리 싸우고 싶었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도 병약했으니까. 내가 전장에 나서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어.”


조직의 실체를 알아버린 바스타프는 이를 악물었다.

이 바보 같은 복수귀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바리드! 슬슬 출발할 시간이다!”

“아. 네! 지금 갑니다!”

한 곰 수인의 손짓에 바리드가 바스타프의 손을 떨쳐내고서 달려가 버렸다.


“바, 바리드!”

“바스타프. 너도 내키면 멧서한테 일 달라고 이야기 정돈 해 봐! 제대로 하면 본부에 출입할 수 있으니까!”

손을 흔들어주며 곰 수인에게 달려가버리는 바리드를 보며 바스타프는 입술을 깨물었다.


“복수 때문에 자신을 불사른다니, 무슨 불나방도 아니고···.”

이 바보 같은 집단을 당장에라도 멈춰 세우고 싶었지만, 바스타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도 막막했다.


“뭐야, 다 나았으면 나한테 와야지 이런 데서 뭐하고 있어?!”

“···멧서.”

텐트 너머에서 걸어와 으르렁대는 멧서를 바라보며 바스타프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멧서. 너도 멜티드인가?”

“······!”

곧바로 날아드는 발차기를 뒤로 물러서서 피해낸 바스타프가 이를 갈았다.

“멧서!”

“뭐, 어쩌라고?!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

“당신한테 그거 가르친 놈 누구야!”

“?!”

“아니, 그 이전에···그 카프틴인가 뭔가 하는 자식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어!?”


-28화 END-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정 중단합니다. 21.03.20 55 0 -
공지 게재 시간 관련. 21.02.24 45 0 -
32 31화 - 노 룰스 랜드 스윙(3) 21.03.19 15 0 11쪽
31 30화 - 노 룰스 랜드 스윙(2) 21.03.18 17 0 12쪽
30 29화 - 노 룰스 랜드 스윙(1) 21.03.16 21 0 12쪽
» 28화 - 스피릿 라이드의 말로 21.03.15 22 0 11쪽
28 27화 - 피눈물과 진혼곡 21.03.12 27 1 11쪽
27 26화 - 피는 피로 씻는다. 21.03.12 33 0 11쪽
26 25화 - 사도의 사명 21.03.10 35 0 11쪽
25 24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2) 21.03.09 35 0 11쪽
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2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7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8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6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6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2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1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3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6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5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6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3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3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