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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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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추천수 :
43
글자수 :
165,203

작성
21.02.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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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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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DUMMY

보그렐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일을 쉬기로 했다.

멧돼지를 잡은 보수가 두둑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일이 없어도 살림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는 좀이 쑤셨던 바스타프는 위델을 데리고 마을의 잡역부 일부터 간단한 마물 토벌까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훠이! 훠이!”

이번 의뢰는 토끼 사냥.

공격수단이 맨손격투 뿐인 바스타프에겐 귀찮은 일이었지만, 위델은 석궁을 잘 쓰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바스타프가 주먹으로 굴이 있을 법한 바닥을 마구 내리쳐서 토끼를 끄집어내면, 위델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가 석궁으로 쏴 맞추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왔다!”

한여름에 풀을 양껏 먹고 살이 토실토실하게 찐 토끼가 굴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손을 휘저어 위델 쪽으로 몰았다.


“얌전히···.”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위델이 곧바로 석궁에 볼트를 재고 쏴 맞췄다.


푹 하고 미간에 볼트가 박힌 토끼가 나뒹굴면, 바스타프가 그것을 붙잡아 수레에 던져놓았다.

“이걸로 6마리. 다 됐군.”

“그래. 돌아가지.”


바스타프의 등급은 변동이 없었지만, 그간 두 사람이 해온 의뢰 덕에 위델의 등급은 브론즈에서 아이언으로 승급했다.

“아저씨-. 여기 토끼 6마리!”

“뭐야? 뭐 이리 빨라?”


푸줏간 주인은 내심 저녁 무렵에나 오겠지 하고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 들이닥친 위델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저희 콤비는 합이 잘 맞으니까 말이죠. 헤헤헤.”

“그거 대단하구만. 바스타프 군이 스틸 스타터라 그런가?”


바스타프가 생각한 것보다 스틸 등급의 위세는 상당했다.

일반적으로 숙련된 정예병사에서 수습 기사 수준의 강자로 통하는 스틸 등급 용병들은 사실상 작위만 없는 기사 취급을 받고 있었다.


토끼를 건네주고 보수금을 받아 나오는 길.

곳곳에 기사단의 문양이 박힌 번쩍거리는 플레이트 메일을 걸친 기사 무리가 두 사람에게 접근해왔다.

“?”

“자네가 바스타프인가.”

“그렇소만.”


그를 확인한 기사들이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따라 와주지 않겠나?”

“무슨 일입니까?”


내심 최근엔 딱히 마을에서 사건을 일으킨 것도 없을 텐데, 하고 의구심을 피워 올리고 있을 때였다.

“자네와 자네 어머니의 신분 증명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네.”

“···!”


위델과 헤어져 기사들을 따라간 곳은 다름 아닌 이 도시의 영주가 기거하는 영주성의 응접실이었다.


엉겁결에 소파에 앉아 메이드가 내어준 차를 홀짝거리고 있으면, 곧 문을 열고 딱 보아도 범상치 않은 인상의 중년귀족이 들어왔다.


엉겁결에 일어서서 어떻게 인사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바스타프는, 결국 전생에 하던 대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바스타프입니다.”


그런 바스타프의 인사에 잠시 멈칫한 귀족은 이내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그런 바스타프의 등을 팡팡 치며 흡족해했다.

“자! 자! 어색하게 서 있지 말고 일단 앉게.”

“아, 감사합니다.”


마주 앉은 귀족은 만족스런 미소를 보이며 차를 한 모금 들이킨 뒤,

“자네와 자네 어머니의 신분에 관한 문제 말인데, 처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네.”

“그, 그렇군요.”

“서류도 읽었고, 사연이 딱하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했지.”


말을 하다 말고 뭔가 잊어버렸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아. 내 인사를 잊고 있었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런 일도 있지요.”

“이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드릭키어 폰 스톤해머일세.”


소개를 마친 그는 메이드에게 손짓을 해 무언가를 가져오게 시킨 뒤 차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분명 신분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만, 자네 실력에 대해 듣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네.”

“······?!”


팔락.


메이드가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웬 종이를 내려놓았다.

“자네 같은 실력자를 일개 용병으로 썩게 두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네. 그러니···.”

“···?”


종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영주는 자신의 조건을 확인했다.

“자네가 여기 출전해서 3위 이내에 입상하면 좋겠군.”

“무슨 대회입니까?”


곧 그가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을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영주가 메이드에게 고갯짓을 해 종이를 읽게 시켰다.

“제 681회 기사왕국 브레이븐 왕립 자유기사 선발 검투대회 포스터입니다.”

“······!”


“입상을 못하면, 신분 증명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까.”

이를 악문 바스타프를 보며 재차 호쾌하게 웃어넘긴 영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출전하는 시점에서 자네와 자네 어머니 신분은 내가 보장해 줄 생각이네.”

“그렇다면 어째서···.”

“자네 같은 인재를 썩혀두기 싫다고 했잖나?”


재차 메이드에게 고갯짓을 해서 남은 내용을 마저 읽도록 종용했다.

“···5위 이내 입상자 5명은 정식으로 자유 기사 서입을 받게 됩니다. 왕실 주최의 대회이기 때문에 서임 부여자는 왕족입니다.”

“······!”

“그래. 일개 영주가 신분증명을 해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


영주는 그가 기사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물론 있지. 그것도 3개나.”


손가락 3개를 세워 보인 영주가 설명을 시작했다.

“첫째, 평민 용병 신분보다 훨씬 강력한 신분이 생기지. 이 나라에서 자유기사는 내세울 작위나 영지가 없을 뿐인 귀족이네.”

“······!”

“둘째, 자네가 기사 서임을 받아 두면 자네 어머니의 생활도 훨씬 편해질 걸세. 뭣하면 내가 영주성의 시녀로 채용하는 것도 괜찮겠군.”


바스타프가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다만 자신이 중무장한 기사들 사이에서 얼마나 통용될지가 문제였다.

“마지막 셋째, 종족 차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네.”

“······!”


별로 신경 쓰지 않던 부분이 나오자 바스타프의 눈이 커졌다.

“뭐, 우리나라에서 이종족 차별을 하는 머저리는 좀처럼 드문 편이긴 하다만, 일부 신성제국의 교단 신관들 같은 사람은 꽤 귀찮거든.”

“신성제국이라면···?”

“이 서대륙 북부를 아우르는 북부 동맹체에서 기사왕국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초강대국일세.”

“······!”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한숨을 내쉰 그가 말을 이어갔다.

“왜인지 모르지만 수백 년 전 2차 신마대전이 끝난 후로 신성제국은 줄곧 이종족을 배척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네. 자네 같은 혼혈종은 더 그렇지.”

“그렇습니까···.”

“더없이 민폐란 말일세. 그 배척 정책과 일부 몰지각한 놈들의 이종족 인신매매 탓에 어나더 블러드 같은 정신 나간 놈들까지 활개치고 다니게 되었다니까.”


왜인지 모르게 곤란해 하는 영주의 태도에 바스타프가 어째서 어나더 블러드가 문제인지 질문해보니,

“6개월 전에 남부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네.”

“···네?”

“그 마을에 인신매매에 가담하는 놈들의 친인척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 마을을 통째로 날려 버렸네.”

“······!”

“애 어른 안 가리고 다 잘게 찢어놓고 길바닥에 뿌린 걸로도 모자라, 마을 전체를 불살라 버렸지.”


어째서 위델이 어나더 블러드라는 이야기에 그토록 식겁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확인하는 것 이다만, 자네도 혹시 거기에 가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나더 블러드라는 걸 안 것도 며칠 안 된 참입니다.”

“······.”


약간의 의심이 서린 눈초리를 잠시 바스타프에게 향하던 영주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차를 들이켰다.

바스타프 혼자였다면 의심했겠지만, 그는 인간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있다.

그런 남자가 인간에 대한 복수심으로 미쳐 날뛰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바스타프.”

“네.”

“자네는···인간인가? 아니면 오크인가?”

“······?!”

영주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바스타프 자신이 어느 쪽에 정체성을 두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일 터.


“···인간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인간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알겠네. 대회는 한 달 후에 시작될 테니···일단 자네 어머니와 함께 우리 성에 들어와 주게.”

“예?”


갑자기 두 사람을 영주성으로 불러들이는 영주의 모습에 바스타프가 멍한 표정으로 반문하면,

“대회 시작 전까지 준비할 것도 있는데다, 자네 신분 문제 때문에 영지 내에서 제대로 된 거처도 구하기 힘들 것 아닌가?”

“그, 그건···.”


너무 신세지는 것 같아 우물쭈물하는 바스타프를 지켜보던 영주가 호쾌하게 웃으면서,

“핫하하하! 그렇게 뺄 것 없네! 난 그저 자네 같은 인재를 다른 영주들이 채가는 게 싫을 뿐이니까.”

“그, 그 말씀인즉···.”

“그래. 자네가 기사 서임을 받는 즉시, 자네를 등용할 생각이네. 물론, 자네만 괜찮다면 이지만···.”


영주는 이미 바스타프가 스틸 스타터에 첫 의뢰로 보어 브루트를 맨몸으로 때려죽인 일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천생 기사인 그는 종족이 뭐가 되었건 이성이 있고 실력이 있다면 누구라도 부하로 삼고자 하고 있었다.

“그,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핫하하하! 그래! 잘 생각해 보시게!”


인사를 하고 응접실을 나서는 그의 등을 계속 팡팡 두들기며 기분 좋게 보내준 영주는, 그가 응접실을 나가서 멀어질 때쯤 표정이 싹 바뀌어 무시무시한 맹장의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안 되고말고. 저런 청년을 용병으로 둘 순 없지···.”


바스타프는 그 길로 여관방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전부 이야기했다.

“이제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어머니.”

“···그래. 열심히 했구나.”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좋아지는 것보다 바스타프가 기사가 된다는 이야기가 더 반가웠다.

이종족이 차별받고 있는 현 시대에서 혼혈종의 입장은 더없이 취약했다.


언제라도 인간들에게 배척당해 반강제로 오크의 길을 걷거나, 심하면 어나더 블러드에 가담해 미친 복수귀가 되어버릴 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사왕국의 기사가 된다면 그 누구도 그를 함부로 차별하거나 배척하지 못하게 된다.

그 정도로 기사왕국의 기사 칭호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이제 쉬렴. 내일은 영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하잖니?”

“그래야죠.”


어머니를 침대에 고이 눕히고 이불을 꼼꼼히 덮어준 바스타프는 그녀가 잠들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0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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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7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8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6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6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2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1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3 1 11쪽
»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5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5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5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3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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