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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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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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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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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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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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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화 - 밀서 전달

DUMMY

잠시 멈칫한 멧서는 이내 눈썹을 구기며 이를 갈았다.

“웃기지 마! 너 따위가!”

“어째서지? 나도 엄연히 이종족이다. 가입 요건은 충족한다고 생각한다만.”

“기사 서임이나 받고 인간의 개가 되어서 희희낙락하는 너 같은···!”


“문제 없습니다. 입단은.”

“?”

“?!”

두 사람의 논쟁을 멈춘 것은 출입구 너머에 어느 새인가 서서 듣고 있었던 엘프 남성이었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멧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네로스님?! 어째서 이런 자를···!”

“그가 하프 오크이기 때문입니다.”


앙화의 네로스.

특유의 동글동글한 코안경에 실눈이 특징적인, 길게 땋은 백금발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엘프 남성이자 어나더 블러드의 고위 간부.


“하지만! 이 녀석은 인간들에게 기사 서임을 받고 호의호식하는···!”

“지금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조만간 그도 알게 될 겁니다.”

“큭···!”

“경험을 하고 나서 들어오는 쪽이 최선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를 내칠 이유는 될 수 없어요. 멧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미남이었지만, 바스타프가 그에게서 느낀 첫인상은 께름칙함이었다.


분명히 화사한 피부에 웃음기가 서린 실눈을 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피냄새와 살기는 그가 결코 상냥한 부류가 아님을 알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멧서. 한 사람이라도 많은 병사가 필요해요. 그리고 그는 인간들이 기사로 삼을 만큼 유능한 전사입니다.”

“으으···!”


멧서를 단번에 논파한 그가 바스타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악수를 받은 바스타프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

“저희 대원이 실례를 했군요. 바스타프···경.”


일부러 늘여서 기사 존칭을 붙이는 것으로, 그 역시도 바스타프의 기사 작위가 거슬린다는 것을 은근히 표현하는 것이 과연 께름칙했다.

바스타프 성격 상 차라리 멧서처럼 대놓고 적대하는 쪽이 대하기 편하달까.


“그···기사왕국의 밀···.”

“아아. 그 이야긴 이미 오면서 들었습니다. 정령들이 이야기해줬으니까요.”

“아. 네.”

“따라오시죠.”


앞장선 네로스를 따라 다크엘프 대표의 집을 나서면, 바스타프의 몇 걸음 뒤에서 감시하듯 멧서가 따라붙었다.

“바스타프! 수상한 거동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네 녀석이 인간들의 첩자라는 게 발각되는 순간, 내 육봉 콜렉션에 첫 이종족의 육봉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 테니까.”


자신의 허리춤에 찬 가위 손잡이를 툭툭 건드려 보이며 위협하는 멧서를 본 바스타프가 기겁했다.

“어이. 설마 잘라낸 것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말한 거야?”

“물론이지. 전부 소금에 절여서 제대로 진열대에 이름표까지 붙여서 전시 중이라고?”

“······.”


어째서 위델이 어나더 블러드라는 이름에 경기를 일으켰는지 알 것 같았다.

여자 단원까지 이 모양이면 다른 대원들 정신상태가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내심 입단하겠다는 말을 꺼낸 게 실언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밀서만 전달하고 물러설 방법을 생각하던 찰나, 네로스는 마을 밖에 있는 작은 무덤 앞에 섰다.

“여기는?”

“저희 동포들의 위령비입니다.”

“···!”


그렇게 마주 선 네로스는 재차 손을 내밀었다.

“먼저, 당신이 가져왔다는 그 밀서부터 확인하도록 하죠.”

“음? 당신이?”

“물론입니다. 전 이래봬도 꽤 고위 간부라고요?”

“···뭐?!”


눈 앞의 엘프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사람임을 깨달은 바스타프가 흠칫했다.

생각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약했던 것이 순전히 그가 힘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자, 어서요.”

“아. 알겠소.”


엉겁결에 품 속에서 밀서가 담긴 금속 봉을 건네주면 엘프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호오···과연···그렇게 된 겁니까.”

“······.”

“네로스님, 무슨 이야기가 적혀 있는 겁니까?”


전부 읽은 네로스는 그 얼굴 그대로, 그러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잔뜩 날이 서서 입을 열었다.

“저희가 기사왕국에 초청된 고위 신관 일행을 살해하고 상해를 입힌 건으로 인해 기사왕국이 외교적으로 곤란해졌다는군요.”

“그건 이미 저 오크에게 들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네로스가 밀서의 중요한 부분을 입에 올렸다.

“그래서 기사왕국의 국왕은 더 이상 저희의 활동을 묵인할 수 없으므로 적으로 규정하고 색출해서 체포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감히!”

“큭···!”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멧서가 가위를 꺼내 바스타프의 목에 들이밀어 왔다.

설마 이렇게 노골적인 이야기일 줄은 몰랐던 바스타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양 손을 들어 항복의사를 표시했다.


눈앞의 멧서 만이라면 어떻게든 해 볼 자신이 있었지만, 밀서를 읽고 있는 저 네로스라는 작자에게 이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께름칙하고 불안한 느낌은 그만큼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래서···이번 일에 대해서 기사왕국에 정식으로 사과문을 보내라는군요.”

“건방진!”

“이, 이봐. 난 그냥 밀사라고. 그리고 당신들 같은 이종족이고. 설마 아무리 그래도 밀사를 죽이는 건···.”


기어이 가위를 합체시켜 바스타프의 고간을 그윽한 눈길로 노려보는 멧서의 시선을 피하려 다리를 오므린 바스타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네로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신성제국에 성명문을 보내서 모든 소행이 우리 소관이고 기사왕국은 무관계하다는 것을 강조해달라는군요.”


철컹철컹 가위를 움직이며 조금씩 다가오는 멧서를 필사적으로 피해 뒷걸음질 치는 바스타프.

“만약 이상의 조건을 모두 들어준다면, 기사왕국은 이종족 차별 반대법을 제정할 것이며, 이에 따라 어나더 블러드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줄 의향이 있다···라.”


멈칫.


의외의 이야기에 멧서의 움직임이 멈추고 네로스가 읽고 있던 밀서 쪽을 노려보았다.

“그거, 정말입니까 네로스님?!”

“네. 단지···말미에 법에 준하는 범위 내에서의 활동만을 묵인하겠다고 하는군요.”

“······!”

“지금까지 해 온 대로 관련자들을 마을 째로 토막 내고 다니는 건 당연히 안 돼. 라는 거겠죠.”


밀서를 다 읽은 네로스가 콱 하고 밀서를 구긴 다음 정령술을 사용해 순식간에 불살라 버렸다.

답은 당연히 거절이라는 뜻일 터.

바스타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방도를 이리저리 생각했다.

“저기···.”

“닥쳐 이 매종노! 단념하고 다리를 벌려라!”

“그건 곤란하다고?! 난 아직 동정이란 말이다!”

“그거 잘됐군!”

“진정하고 일단 그거 내려놓고 이야기로 풀자고? 응?”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가위를 들이밀고 다가오는 멧서를 피하면서도 간간히 네로스 쪽을 힐끗거리며 뒷걸음질을 30걸음 쯤 걸었을 무렵,


“응?”

무언가가 등 뒤에 툭 하고 걸리기에 돌아보면, 기척 한 올을 안 흘리고 10여 미터 거리를 일순간에 좁혀와 바스타프의 등 뒤에 서 있던 네로스가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 뭣?!”

“자자, 진정하시고. 멧서도 무기 내려놓으세요.”

“하지만 네로스님! 이 녀석은···!”

“멧서.”


네로스가 조금 엄한 목소리로 꾸짖자 흠칫해서 곧바로 가위를 분리해 허리에 갈무리하는 멧서.

과연 고위 간부라는 것일까.


“네로스님! 설마 이런 터무니없는 조건을 받아들이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

“오.”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네로스.

멧서가 볼을 부풀리며 항의하면,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

“일단, 사과문과 성명문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의향이 있습니다.”


의외의 발언에 바스타프와 멧서의 눈이 커진다.

“기사왕국은 지금까지 저희 이종족들에 대해 최대한 우호적으로 응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멧서. 당신 눈 앞에 있는 기사를 잘 보세요.”


하프오크임에도 기사 서임을 받았다는 것만 보아도, 기사왕국이 이종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일목요연했다.

네로스로서도 그런 기사왕국과 척을 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

“단, 당신네 법에 얽매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그도 그럴 것이, 저희는 당신네 국민으로 취급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단호한 대답에 바스타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당신들에게도 시민권을 준다고 해도?”

“물론, 거절할 겁니다.”

“그렇게까지 법에 얽매이는 게 싫은 건가. 당신들은.”


말없이 네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스타프는 이내 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상 짓고 있는 미소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 엘프의 미소는 그가 상냥한 사람이라는 표시가 아니라···.


“저희는 이종족들의 희망이자 복수 그 자체이며, 동시에 인간을 찢어죽이고 피를 뿌리고, 내장으로 길바닥과 온 건물에 장식하는 걸 좋아하는 살육자 집단입니다.”

“······!”


적을 살육하며 화사하게 웃는 미친 살인귀.

그것이 어나더 블러드의 고위 간부, 네로스라는 엘프의 본질이었다.

“그런 저희를 인간의 법으로 옭아매려 들다니···언어도단입니다.”

“···당신, 최악이군.”

“후후후후···그 이야긴 많이 들었습니다.”


답을 얻은 바스타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섰다.

이것으로 바스타프의 임무는 끝난 것이리라.

이제 살아 돌아가서 국왕에게 네로스의 의중을 전하기만 하면 될 터였다.


“그리고···.”

막 돌아가려는 바스타프의 등 뒤에 대고 또다시 운을 띄우는 네로스.

“또 뭐요? 솔직히, 이 이상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소만.”

“후후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무슨 이야기?”


고개를 갸웃거리는 바스타프를 향해 네로스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

“뭐?”

엉겁결에 그 손가락 끝에 있는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 보인 바스타프는, 몇 초 지난 후에야 그 의미를 깨닫고 식은땀을 흘리며 도리질쳤다.


“돼, 됐소이다! 방금 멧서가 몇 번이나 강조하지 않았소이까! 나, 나는 일단은 기사왕국의 기사요! 좋든 싫든 당신들에겐 스파이 같이 보일 거라고!?”

“후후후···그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죠.”

“네로스님?!”


뒤늦게 네로스의 의중을 파악한 멧서가 이를 악물고서 네로스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항의했다.

네로스는 바스타프에게 입단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스타프 경 같은 타입은 알기 쉽거든요. 첩자 노릇을 해도 쉽게 티가 날 겁니다. 멧서.”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저놈은 인간들이 말하는 그 뭐냐, 부···부···아무튼 그겁니다! 괘씸죄라고요!?”


멧서가 말하려던 단어를 알아챈 바스타프가 옆에서 거들었다.

“부, 부르조아지! 부르조아지 말하는 거로군?! 돈 많은 졸부 같은 놈들 말이지! 그래! 당신들 입장에선 그렇게 보일 거야! 내부 결속에 안 좋을 거라고?!”


하지만 네로스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물론 평생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네로스님?!”

“어어?!”

네로스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3개 펴 보였다.

“3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년만 저희들의 일원으로서 일해주시죠.”

“저는 반대입니다! 필시 다른 단원들도···!”

“멧서.”

“······!”


네로스가 은근히 보여주는 서늘한 눈웃음을 본 멧서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얌전해졌다.

“기사왕국에 가서 전하시죠. 3년입니다. 당신이 3년 간 어나더 블러드로서 활동하는 것을 기사왕국 측에서 허용한다면, 저희도 기사왕국의 조건을 수용한다는 것으로.”

“그, 그런···!?”


순순히 들어줄 것처럼 말하다가 마지막에 와서 바스타프를 걸고 넘어지는 교활함에 그는 이를 갈았다.

“당신의 의사는 상관 없겠죠.”

“그으윽···!”

“당신이 진정 기사라고 한다면···왕명에는 거역하지 못할 테니까요.”


이를 갈던 바스타프는 주먹을 꽉 쥔 채 네로스에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 갑자기 날 걸고 넘어지는 거지.”

“···당신에게도 알아줬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

“···동포들의 현실에 대해서, 말이죠.”


-22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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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2) 21.03.09 35 0 11쪽
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2 2 12쪽
»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7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8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6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6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2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1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3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5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5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5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5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3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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