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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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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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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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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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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 뜻밖의 곤란

DUMMY

“뭔가 든든한 게 먹고 싶군. 기왕이면 고기로. 그리고 여기 우리 어머니에게는···.”

주문을 하다 말고 잠시 어머니의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음을 생각해낸 그가 소화가 잘 될 만한 야채 스튜를 메뉴판에서 가리킨다.


그것을 눈치 챈 웨이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재빠르게 주방으로 향했다.

처음엔 횡포를 부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어머니 쪽이 안고 있는 자루에서 짤랑거리는 돈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식당에 앉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아닌 척 그녀가 안고 있는 탐스런 자루를 힐긋거리고 있었다.

“···크흠. 흠.”

“으음···?”


저 괴물 자식을 이용해서 시비를 걸어서 잘만 하면 저 자루를 통째로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시비를 걸던 두 녀석이 맥없이 널브러지지만 않았어도 너도나도 달려들었을 터였다.


결국 그를 어떻게 해보기에는 범상치 않다고 여긴 이들이 재차 작전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저 묵직한 자루를 자신들이 가로채고 싶었던 것이다.


“어이, 자네 여행자인가?”

기어이 한 깡마른 남성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합석을 시도한다.

인근에서 혓바닥 잘 놀리기로 유명한, 용병 겸 사기꾼이었다.


“당신 뭐야?”

“에헤이,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친구. 보아하니 자네는 오크의 스파이 같은 것도 아닌 듯하고 말이야.”

“······.”

바스타프는 이 귀찮아 보이는 녀석을 갈겨 버리려 손을 꼼지락거렸지만,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그런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어 제지했다.

최소한 이야기는 들어보고 대처하라는 뜻일 터.


“그래서 말인데, 자네 혹시 특별히 일하는 것 있나?”

“······.”

“자네가 힘깨나 쓰는 것 같으니 하는 말일세. 혹시 갈 곳이 없다면 식사 후에 내가···.”

“···그러는 당신의 직업은?”


차분하게 질문해오는 바스타프의 모습에 남자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무시당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입질이 오고 있었다.

더욱 흥이 오른 남자는 자신의 목에 걸린 동그란 금속패를 꺼내 보여주었다.


“보시게! 이래봬도 브론즈 등급의 용병을 하고 있다고. 이 근방에선 제법 잘 나가는 트레져 헌터랄까···.”

“브론즈?”

“음? 설마 용병 등급제도에 대한 것도 잘 모르는 건가?”


남자는 이 순간 확신했다.

이 오크 반푼이 녀석은 봉이다.

힘만 셌지 마마보이에 세상물정 어둡기 짝이 없는, 훌륭한 봉.


“···오크 부락에서 갓 나온 참이라 말이야.”

“그렇군. 그럼 모를 수도 있겠는데. 가르쳐줄까?”

“그거 고맙군.”


남자는 계속해서 용병 등급제도에 대해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용병들의 등급은 크게 두 가지 분류방식이 있었다.

그 중 용병왕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쓰이는 것이 그가 목에 건 것과 같은, 금속의 종류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었다.


“참고로, 내 등급인 브론즈는 애석하게도 밑에서 두 번째일세.”

“그럼 최말단은?”

“코퍼. 하지만 코퍼로 시작하는 용병은 좀처럼 없지. 할 수 있는 일도 마을 잡역부 정도밖에 없고 말이야.”


막 요리가 나오자 바스타프는 웨이터를 시켜서 맥주를 한 잔 추가했다.

비록 여러 가지로 맘에 안 드는 녀석이지만 정보를 받았으니 사례는 해야 했다.

“자.”

“호오. 뭘 좀 아는 친구로구만! 감사히 받지.”


약삭빠르게 잔을 받아 든 남자가 생긴 것과 달리 호쾌하게 원샷을 해내고는 입에 묻은 거품을 핥으며 바스타프를 가리켰다.

“그래서, 자네는 지금 하는 일이 무언가?”

“···당장은 없군. 기왕이면 자네처럼 용병을 하고 싶은데···.”


걸렸다!

남자의 눈동자에서 약하게 번개가 쳤다.

잘만 하면 마을에서 사기꾼 소리나 들으며 천대받던 자신의 처지가 단숨에 나아질 지도 모른다.

“그거 잘됐군!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이니 내가 안내하지.”

“······.”


어째서 하프오크인 자신에게 이토록 들러붙는 건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당장 도와준다는 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뭔가 수작을 부리는 것이 확인되면 여관방에 산 채로 매달아놓고 샌드백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었지만.

“호의는 감사히 받도록 하지.”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를 데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누워 편히 잠드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하고 방을 나선 바스타프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예의 남자와 마주했다.


“안내하라고.”

“헤헤헤. 그러고 보니 서로 통성명도 아직 안 했던가? 내 이름은 위델일세.”

“···바스타프.”

간단히 통성명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면, 경비병으로 보이는 잘 무장된 두 병사가 창을 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 하프···오크? 잠시 따라와 주지 않겠나?”

정중하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려 하면 가차 없이 창을 들이밀 기세.

발끈한 바스타프가 주먹을 들어 올리려는데,


사삭.


뭔가 해 보기도 전에 사이를 막아선 위델이 간신배 마냥 손바닥을 삭삭 비비며 접대용 스마일을 펼쳐냈다.

“에고에고···이거이거! 우르마 경비병님 아니십니까-.”

“끄응···또 너냐 위델. 넌 상관없으니 물러나라.”


이 잡스런 사기꾼 녀석한테 몇 번이나 놀아난 전력이 있는 경비병들은 위델의 멱살을 잡고서 옆으로 치워버리려 했다.

하지만 위델 역시 사기꾼으로서 잔뼈가 굵은 몸.

“아이고야! 어쿠쿠!”


멱살을 잡혀 치워지자마자 그 기세를 그대로 실어 바닥에 힘차게 팽개쳐진 그가 죽는 소릴 내며 몸을 뒤틀었다.

“아이고 어깨야! 허, 허리에 감각이···!”


그 간사한 꼴을 못 봐주겠다는 듯 동료 경비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간사한 사기꾼 놈이 이런 수법으로 몇 번이나 경비병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던가.

“위델. 같은 수법에는 더 이상 안 당한다. 당장 일어서던지, 이 하프 오크랑 같이 좀 와줘야겠다.”

“아고고···허, 허리에 감각이···사, 살려주시오···.”


계속해서 위델이 엄살을 부리며 주의를 끌자, 결국 경비병들은 그런 위델의 양 다리를 대충 붙잡고 질질 끌고 갈 태세를 취했다.

“자, 거기 하프 오크도 같이 좀 와줘야겠는데.”

“······.”


바스타프는 딱 보아도 법 집행관인 두 사람을 구타하면 직업을 구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임을 직감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도 직업은 반드시 구해야 하는 상황.

경비병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불쾌했지만, 일단은 따르기로 했다.

“···알겠소. 저항할 생각은 없으니 포박은 거절해도 괜찮은지?”

“···물론이다. 대신 난폭한 짓은 하지 말도록.”

“······.”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모습을 본 경비병들은 위델을 질질 끌고서 치안소로 향했다.

물론, 끌려가는 내내 위델이 목청껏 앓는 소리로 엄살을 부려서 온 마을의 이목을 끌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


다행히 하프오크라는 이유만으로 가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명확한 신원증명 없이 마을에 들어온 것과, 마을 안에서 강도라고는 해도 사람을 셋이나 머리통을 날려버린 것에 대한 추궁이 이어졌다.


“정말로 강도들이었나?”

“···정말이고 뭐고, 그들은 내 어머니를 인질로 잡고 날 협박했소만.”

“크음···.”

경비대를 통솔하고 있는 기사는 내심 안도했다.

말하는 투나 행실을 보건대 적어도 오크의 첩자나 위험한 부류는 아닌 것 같았다.

행동거지가 하프오크 답지 않게 차분했다.


“그 건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도록 하지. 단!”

“······?”

“그 정도 실력이 있다면 충분히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었을 걸세. 그렇지?”

“······.”


추궁하듯 묻자 눈앞의 하프오크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이 녀석, 뭔가 수상한데.

“설마, 아니라고 할 생각인가?”

“전 아직 미숙해서···.”

“목격자 증언은 확보했네. 주먹질 한 방에 머리가 과자처럼 산산조각 났다더군.”

“······.”


타앙.


재차 시선을 피하는 바스타프의 모습에 조금 화가 난 듯 테이블을 치며 다그쳤다.

“어째서 죽일 필요가 있었나! 그 완력이면 팔다리를 잡아서 찍어 누르는 정도로도 충분했을 터!”

“······.”

“뭐, 좋네. 불문에 붙이기로 했으니.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사건을 일으키면 그 때는 봐주지 않고 법 집행을 할 테니 주의하게.”

“···주의하겠소.”


바스타프는 차마 때릴 때 기분이 좋다보니 힘 조절을 못 했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말했다간 필시 미친 놈 취급을 당할 테니.


하지만 바스타프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확인해야겠군.”

“···또 뭔가 있소?”

“자네의 신분일세.”


흠칫한 바스타프가 재차 시선을 피하자, 기사의 의심이 깊어졌다.

“자네의 어머니 말인데, 실종된 지 꽤 지나서 이미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네.”

“···뭣!”

“즉, 현 시점에서 자네와 자네의 어머니는 아무런 신분 증명이 없네.”


설마 어머니가 죽은 사람 취급일 줄이야.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만약 제대로 된 증명이 없다면, 3일 후에 강제추방을 하게 될 걸세.”

“그런···!”


바스타프 자신은 아무래도 괜찮았지만, 어머니는 다르다.

이미 오랜 노예생활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는 어머니를 길바닥으로 내몰 수는 없었다.


“이곳은 북부에서 가장 법과 군사력이 잘 정비된 기사왕국 브레이븐의 도시일세. 신분이 불분명한, 그것도 하프 오크를 포함한 일행을 아무런 확인절차도 없이 받아 줄 수는 없지.”

“크으으음···!”


문득 이런 세계에선 용병도 신분의 하나임을 떠올린 바스타프가 손을 들었다.

“전 용병이 될 겁니다. 그거라면 제대로 신분이···.”

“···자네 어머니는 별개일세.”

“큭···!”


융퉁성 없는 빡대가리들 같으니!

내심 이를 갈면서도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한 그가 짜낼 수 있는 방법은 마땅한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바스타프는 테이블에 이마를 박으며 간청하는 쪽을 택했다.

“부탁드리겠소. 어머니의 신분 문제를 좀 어떻게···!”

“어이쿠. 이 친구가···.”


하프오크라고 조금 경원시하고 있었던 기사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보통 오크라면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당장에 기사의 목줄을 쥐고 죽이려 들었을 터였다.

“나는 어찌되어도 괜찮소만, 어머니는 지금 쇠약한 상태라···!”

“아, 알겠네! 나 역시 기사도를 숭상하는 자로서 가녀린 여성을 무턱대고 추방하는 것은···.”


바스타프는 큼직한 손으로 기사의 손을 쥐고서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결국 한숨을 쉰 기사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해보더니,


“일단, 자네와 자네 어머니의 여태까지의 행적에 대해 확인을 해야겠네.”

“그, 그것은···.”

“그 내용을 서한으로 해서 이 도시의 영주님에게 도와주실 수 있는지 건의해보겠네.”

“······!”


너무 기쁜 나머지 냅다 기사를 확 끌어안는 바스타프.

하지만 그의 완력 탓에 기사는 끄어억 소리를 내며 갑옷 째로 우그러지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이, 이보게! 끄윽! 알겠네! 알겠으니까 좀···!”

“아.”


간신히 그의 품에서 풀려난 기사였지만, 갑옷에는 선명히 바스타프의 우람한 근육 자국이 찍혀 있었다.

“끄으으응···.”

“그··· 미, 미안하게 되었소.”

“자네, 힘이 장사로군···.”


내심 갑옷 수선에 돈이 깨질 것을 고통스러워하던 기사는 주춤주춤 사무실 한쪽의 서랍에서 양피지를 꺼내왔다.

“일단 자네의 행실에 대해 확인을 해야겠지···? 물론 거짓말을 한 게 밝혀지면 어찌 될지는 알고 있을 거라 믿네.”

“···거짓말 할 이야기도 없소.”


딱히 숨길만한 이야기도 없었다.

기껏해야 오크 부락에서 핍박당하며 노예로 살다가 탈출했다는 내용이 전부였으니까.

단지 그것을 어디까지 자세히 말하느냐가 문제가 될 터였다.


-5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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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2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7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8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6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6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3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1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3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6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5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6 2 13쪽
»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4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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