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992
추천수 :
43
글자수 :
165,203

작성
21.02.15 18:00
조회
65
추천
1
글자
11쪽

8화 - 스틸 스타터(3)

DUMMY

바스타프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익숙한 풍경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바스타프가 독점거래를 하기로 했다고 한 잡화점의 간판이 보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아래쪽이 단단해서 고개를 숙여 보면, 그가 때려잡은 멧돼지가 큰 수레 위에 퍼질러져 있었다.

“빌어먹을 멧돼지 놈 같으니, 이 내가 더블 KO라고?”


바스타프의 인상이 구겨졌다.

분명 멧돼지는 죽은 모양이니 전투 면에서는 이겼지만, 복서로서의 긍지에는 흠집이 생겼다.

망할 멧돼지 놈이 자신보다 먼저 저 거대한 머리통으로 바스타프 자신의 몸을 쳐올렸던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혼신의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놈의 미간에 꽂혀 들어간 덕에 살아남은 셈이었다.

“바스타프-! 살아있냐?!”

“그래. 일단은···.”


힘을 주어 멧돼지에게서 내려오려고 하는 순간, 몸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며 신음성을 내었다.

“크윽···망할!”

“왜그래?!”

“갈비뼈가 나갔어! 큭···!”


들이받힐 적에 갈비뼈를 당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전부 박살난 게 아니고 아래쪽의 한 두 가닥 정도였지만, 중상은 중상이었다.

“으엑?! 진짜로? 큰일이잖아!”

“그래. 뭐든 좋으니까 치료수단을 좀 준비해 달라고.”


팔에 힘을 주어 멧돼지의 몸을 밀면서 슥하고 미끄러져 내려와 지면에 발을 딛자마자 그 울림이 몸에 난 생채기들을 울려 격통을 전해왔다.

“상처뿐인 승리···인가.”


잡화점 앞에 그와 멧돼지를 남겨두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위델을 내버려두고, 바스타프는 잡화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어, 아저씨-.”

“오오? 며칠 전에 왔던 하프오크 형씨로군. 오늘은 무슨···.”

무심하게 그릇을 닦던 주인장이 피칠갑을 한 그의 모습을 보고 눈이 커졌다.


“이, 이봐!? 괜찮은 건가?!”“목소리 좀 낮추쇼. 상처에 울리니까.”

“아아, 그건 미안하네. 자네 같은 단단한 남자가 어쩌다 그런 꼴이 된 건가?”


바스타프는 말없이 열린 문 밖을 엄지로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창문으로 가게 앞에 뭐가 있는지 살핀 주인장의 턱이 빠질 듯이 확 벌어졌다.

“보, 보보보, 보어 브루트-?!”

“그렇소. 저 괴물 멧돼지 새끼랑 거하게 한 판 했지.”


보어 브루트, 그것도 3미터에 근접한 성체였다.

동체 곳곳에 있는 큼직한 흉터들이 저 멧돼지가 여태껏 여러 도전자들을 그 흉악한 어금니와 돌진으로 격퇴해왔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멧돼지는 소규모 기사단이 희생을 각오하고 토벌에 나서야 어찌어찌 잡히곤 하는, 중상위급의 마수였다.


한달음에 달려 나간 주인장이 멧돼지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정도 레벨의 개체라면 어느 정도 흠결이 있어도 가게에 있는 현금을 다 내서라도 매입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는 뼛속까지 상인이었다.


“말도 안 돼···!”

둘러보고 나서 내린 평가는 특상품.

가죽에 생체기 하나 없었다.

있는 거라곤 미간이 큼직하게 패인 자국이 전부.


저 정도로 패여 있다면 필시 두개골에 구멍이 뚫렸거나 박살이 나 있을 터.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특상품 이라고 할 만 했다.

무엇보다 보어 브루트의 가죽은 갑옷 등의 소재로 꽤 인기 있는 고급품이었던 것.


“이, 이보게! 정말로 이 녀석 내가 사도 괜찮겠나?!”

혹시나 해서 바스타프에게 달려가 재차 확인을 했다.

그가 내건 독점 거래 공약이 확실한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연하오. 당신에겐 신세를 졌으니까.”

“신세를 지다니···?”

“초면, 그것도 하프 오크인 내가 내미는 물건을 망설임 없이 정가로 매입해 주었잖소.”

“······!”

“당신은 장사치지만,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그, 그것은 고맙네!”


서로에게 엄지를 세우며 의리를 확인한 점주는 이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자기소개에 나섰다.

“내 이름은 알메프. 이 챔프 만물상의 점주다. 앞으로도 거래 잘 부탁하네.”

“바스타프. 스틸 등급의 용병이 되었소. 앞으로도 신세를 지겠소.”


“스, 스틸?! 설마 스틸 스타터?!”

바스타프가 시작부터 스틸 등급을 받았음을 깨달은 알메프의 눈에 번개가 튀었다.

“스틸···스타터?”

“그렇소. 자네처럼 시작부터 스틸 등급을 받는 장래 유망한 용병들을 경외의 뜻으로 그렇게 부르지.”

“허.”


곧바로 매대 아래의 금고를 열고 있는 동전들을 커다란 마대자루에 득득 긁어 담는 알메프.

저 정도 특상품이면 솔직히 이걸로도 조금 부족했다.


“바스타프! 자네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겠나?”

“···? 무슨 일이오?”

“사실, 저 정도 품질의 보어 브루트를 매입하려면 현금이 조금 부족해서 말일세. 지금 바로 가서 상단에서 전표를 환전해 오겠네!”

“아. 알겠소.”


이번에는 점주마저 후다닥 뛰쳐나갔다.

어느새 혼자 남은 바스타프는 밖에 나와 자신이 때려눕힌 멧돼지를 바라보며 주저앉아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용병생활을 하며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번 일로 복서 때처럼 맨몸으로 육박전을 하는 건 굉장한 리스크가 동반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갑옷이라···움직이기 불편한 건 질색인데.”

복서의 생명은 뭐라 해도 스피드와 유연하고 역동적인 운동성이었다.

금속제 갑옷은 필시 방해가 될 터.


문득 자신의 주먹을 살펴보면, 주먹에도 여기저기 가죽이 벗겨진 상처가 생겨 있었다.

급한 대로 주문해서 만든 급조 글러브는 멧돼지의 가죽에는 이기지 못한 듯 반쯤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일단은 장비를 개선하지 않으면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힘들겠군.”


먼저 도착한 것은 점주 알메프였다.

자신의 몸통만한 돈 자루를 낑낑대며 안고 달려온 그가 바스타프 앞에 그것을 내려놓고는, 뒤이어 가에 매대 아래에 놔둔 바스타프 몸통만한 돈 자루를 질질 끌고 와서 넘겨주었다.


“자, 잠깐만 알메프. 어째서 돈이 이렇게···.”

“이게 정가일세! 자네가 잡아온 이 멧돼지는 그 정도 마수라고!?”

있는 돈을 다 넘겨주고도 입이 찢어져라 웃는 모습을 보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바스타프 자신이 다치면서까지 잡아온 보람은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돈으로 솜씨 좋은 장인을 찾아서···.”

“잠깐, 설마 자네···그 상태로 이 놈과 싸운 건 아니겠지?”

문득 갑옷도 없이 상반신 나체에 너덜너덜한 가죽 글러브만 끼고 있는 그의 모습에 알메프가 의심스럽게 바라보면, 바스타프는 무심하게 끄덕인다.


“그게 내 전투방식이니까.”

“······!”

알메프는 또 한 번 전율을 느꼈다.

그의 잡화점주 인생 20년, 이런 고객은 처음이었다.

이 남자는 진짜다.

필시 후일 상상을 초월한 거물이 될 터였다.


꾸벅.


곧바로 허리를 팍 숙여 인사하는 알메프.

“바스타프 군! 앞으로도 잘 부탁함세!”

“아니, 갑자기 왜 그러시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돕겠네, 말만 하시게!”

“어어···.”


바스타프는 당황했다.

처음과 달리 점주의 눈이 마치 황금동산을 발견한 듯 번뜩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지만, 그는 분명 믿을만한 상인이었다.

“그러면, 혹시 좋은 대장장이를 소개받을 수 있겠소?”

“대장장이 말인가?”

“이 멧돼지를 잡아 보니, 아무래도 최소한의 무장은 해야 될 것 같아서.”


바스타프가 자신의 몸에 난 생채기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납득한 알메프가 생각에 잠겼다.

“바스타프 군. 자네 금속 갑주는 입을 생각이 없겠지?”

“당연하지.”


권각을 쓰는 자라면 필시 움직임이 걸리적거리는 금속 갑주는 피해야 할 터였다.

“그럼···그 손에 있는 것 같은 글러브를 만들 수 있으면 더 좋겠고?”

“그러면 금상첨화겠는데.”


바스타프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점주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한 사람, 솜씨 좋은 사람을 알고 있네.”

“정말이오?”

“다만, 그 뭐랄까···고집이 있는데다 좀 거친 친구일세.”

“상관없소.”


자신의 일에 고집을 갖는 것은 바스타프에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당장 자신부터도 복서로서의 자신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상이 낫는 대로 소개해줌세.”

“고맙소.”


조금 후에 찾아온 위델이 그를 부축하여 데리고 간 곳은 마을에 있는 가장 큰 신전이었다.

기사왕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신 중 한명인 용기의 신 히타라를 모시는 곳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신관들은 바스타프의 활약을 전해듣고는 반색을 하며 그를 치료해 주었다.

히타라는 의롭고 용감한 자를 축복하고 수호한다는 신이니만큼, 홀로 흉악한 마수에게 맞선 바스타프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으음···.”

잠시 여기저기 다쳤던 몸이 말끔해진 것을 내려다보며 여기저기 움직여본 바스타프는 이내 씨익 웃었다.


“감사하오. 나 같은 자를 선뜻 치료해 주다니.”

하프오크인 자신을 이토록 환영하며 치료해준 데 감사를 표하며 허리를 숙이는 바스타프에게, 신관들은 손사래를 치며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형제여. 비록 혼혈이시라곤 해도 당신의 용기는 진실 된 것. 그런 분을 박대하면 히타라 님께서 저희를 꾸짖으실 겁니다.”


그저 교리에 따랐다고 말하며 웃어준 그들에게 맞추어 손을 맞대고 예를 표한 바스타프는 신전을 나섰다.


“그나저나 바스타프. 이제 어쩔 거야?”

“일단은 장비를 새로 맞춰야겠어.”

“장비를? 아. 하긴···. 그 장갑 완전히 망가졌네.”


너덜너덜해진 장갑을 마저 찢어 벗어던지고 바스타프는 고개를 저었다.

“글러브 외에도, 간단한 가죽갑옷 정도는 입어야겠어.”

“그렇지? 내가 좋은 대장장이 소개시켜줄까?”

“아니.”


거절하는 바스타프의 모습이 의아한 듯 바라보는 위델에게, 바스타프는 잡화점 상인이 이미 소개해주기로 했다고 말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아저씨-!”

“오오! 왔구만!”

잡화점 앞에 돌아오면 이미 멧돼지는 처분해버린 듯 빈 수레에 무지막지한 크기의 돈 자루 두 덩이만 실려 있었다.


“히익! 이렇게나 많이?!”

그제서야 돈 자루의 크기를 확인한 위델이 턱이 찢어저라 벌리고서 침을 질질 흘려댔다.

바스타프는 그런 위델 앞에 손가락 4개를 세워 보이며,


“···알지?”

“아.”

돈 배분은 바스타프가 6, 그가 4이었음을 재차 확인시키는 바스타프였다.

물론 그 배분이라도 저 양이라면 위델에게는 평생에 한 번 만질까 말까 한 거금이었다.

“물론 알고 있네. 걱정 말라고.”


“참고로, 서비스로 가죽은 갈무리해서 예의 대장장이에게 보내 두었네.”

“?”

“본래는 가죽 값을 대금에서 제해야 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내가 사는 걸로 해뒀네.”

“······!”


바스타프는 말없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에 점주는 손사래를 치며,

“별로 선심에서 한 일이 아니라고? 대신 앞으로도 자네는 내 독점 거래자로 못을 박아두고 싶었을 뿐일세.”


역시나 상인은 상인이다.

바스타프는 고개를 들어 마주 웃어 보였다.


-8화 END-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정 중단합니다. 21.03.20 55 0 -
공지 게재 시간 관련. 21.02.24 45 0 -
32 31화 - 노 룰스 랜드 스윙(3) 21.03.19 15 0 11쪽
31 30화 - 노 룰스 랜드 스윙(2) 21.03.18 17 0 12쪽
30 29화 - 노 룰스 랜드 스윙(1) 21.03.16 21 0 12쪽
29 28화 - 스피릿 라이드의 말로 21.03.15 21 0 11쪽
28 27화 - 피눈물과 진혼곡 21.03.12 27 1 11쪽
27 26화 - 피는 피로 씻는다. 21.03.12 33 0 11쪽
26 25화 - 사도의 사명 21.03.10 35 0 11쪽
25 24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2) 21.03.09 35 0 11쪽
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2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7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8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8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7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6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6 2 13쪽
15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59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2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1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3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6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5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6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3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3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