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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판타지 세계에서 복싱 좀 하자는데 왜 뭐가 불만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1.02.07 23:39
최근연재일 :
2021.03.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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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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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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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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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화 - 왕립 검투대회(4)

DUMMY

심판이 계속해서 눈치를 주는 걸 본 바스타프는 칫 하고 혀를 찬 뒤 짐덩이를 팽개치듯 상대를 바닥에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경기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황급히 달려와서 그에게 달려가 응급처치를 하는 것을 뒤로 한 채 언짢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벗어났다.


“칫.”

“뭘 그리 불쾌해 하지?”

들리는 목소리에 앞을 보면 바스타프와 접전을 펼쳤던 우르켈이 팔짱을 끼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자네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심판 때문인 것 같던데.”

역시 이 남자. 쓸데없이 촉은 좋았다.


단번에 바스타프가 불쾌한 표정을 지은 이유를 알아채고는 손가락을 흔들면서,

“일단은 왕실 주최의 검투 시합이라고? 적당히 하지 않으면 기사로서의 소양에 흠집이 갈 걸?”

“알고 있어.”


이걸로 우승까지 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것은 맞았지만, 바스타프는 기사도와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주먹은 저 불손한 녀석을 계속 떡을 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이번엔 이걸로 됐어. 우승도 했으니.”


툴툴대며 자리에 앉아 애써 표정을 관리하는 바스타프를 보곤 그제서야 안심한 듯 피식 웃으며 옆에 턱하니 앉았다.

“그나저나, 자네 이 다음은 어쩔 생각인가?”

“뭘?”

“서임 받고 나서 어디에서 뭘 하고 싶냐는 거지.”


우르켈의 질문에 바스타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면 목표는 신분 증명 겸 바스타프의 혈통을 기사 작위로 덮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다음의 일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 둔 것이 없었다.


드릭키어 영주는 필시 자신의 산하로 들어오라고 권할 테지만 바스타프로서는 조금 망설여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프 오크인 자신이 산하에 붙으면 그의 명성에 흠집이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처럼 얻은 호인에게 그런 누를 끼치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드릭키어 영주님의 후원을 받아서 참가는 했다만, 아직 잘 모르겠군.”

“드릭키어 백작님이 자네를 후원했다고? 의외로군. 그분은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한데.”

기사왕국 내에서도 목 뻣뻣하기로 소문난 맹장인 드릭키어 백작의 후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에 우르켈은 진심으로 놀랐다.


농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농사를 그만두고 직업군인이 된 후 계속해서 강마의 숲 토벌 등에서 공을 세워 기사에서 영주까지 된 기사왕국에 종종 있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귀족이 드릭키어 백작이었다.


기사였던 시절 농가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은근히 무시당하던 탓에 몹 토벌만큼이나 결투를 자주 해서 결투의 드릭키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 성격 하는 인물이, 그것도 하프오크를 후원하다니.


“자네도 어지간한 사람이군.”

“뭐가?”

“그 영주님은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특히 성격이 강하거든. 근데 그런 사람이 그것도 하프오크를 인정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우르켈의 설명에 그제서야 자신을 고평가해준 사람이 이 나라에서도 한 성격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된 바스타프의 눈이 차게 식었다.

그래서 대련 때 매번 흥분해서 반쯤 진심으로 달려들었던 건가.


곤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들것에 실려 나오는 결승전의 상대를 곁눈질로 살폈다.

“으으으···.”


앒는 소리를 내며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대기실 뒤쪽의 치료실로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출구로 나가는 복도로 실려 갔다.

이곳에서는 제대로 치료가 힘들 정도의 중상이니 신전까지 가서 집중치료를 받을 터였다.


“자네가 왜 그분에게 인정받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군.”

“뭐가 말이지?”

우르켈은 말없이 웃어 보였다.

바스타프가 우르켈 자신과의 시합과 이번 시합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바스타프란 남자가 어떤 성격인지는 일목요연했다.


사투를 즐기며 잔혹성까지 그대로 드러내는 더없이 공격적인 전투광.

그것이 우르켈이 마음속으로 정립한 바스타프의 이미지였다.


“시상식이 끝나면 같이 한 잔 하러 가지 않겠나? 내가 쏘는 걸로.”

우르켈이 술잔을 드는 제스쳐를 해 보이자 바스타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원래 우승자가 쏘는 거 아니었나?”

“훗! 사 줄 셈인가?”

“자네만 괜찮다면.”

“호오-. 이 우르켈, 비록 검투시합에선 패배했어도 술 승부라면 자신 있다고? 우승 상금을 내 뱃속에 던져 넣을 셈인가?”


도발하듯 말하며 입맛을 다시는 우르켈의 모습에 바스타프는 발끈한 듯 눈을 부릅뜨며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였다.

“내가 승부를 피할 거라고 생각하나?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얼마든지 받아주지. 2연패를 당하고 시무룩한 얼굴로 토악질하게 해 주겠어!”


바스타프의 맞불에 마주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잠시 후, 신전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고 있는 2위를 제외한 두 사람의 시상식이 경기장에서 열렸다.


현 왕실의 막내이자 4녀인 공주가 차례로 두 사람의 몸에 우승자를 뜻하는 메달이 달린 천을 걸쳐 주었다.

뒤이어 왕세자가 자신의 검을 뽑아든 채 다가오면, 우르켈이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서임을 받을 준비를 했다.


“우르켈 폰 하드스타. 이번 대회에서 그대의 활약을 치하하며, 왕세자로서 그대에게 기사의 칭호를 서임한다.”

왕세자의 검이 우르켈의 양 어깨와 목덜미 위에 눕힌 채 갖다 대어지면, 우르켈은 차분한 음성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바스타프도 영주에게 배웠던 대로 조심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고 차례를 기다렸다.


“바스타프. 이번 대회에서···.”

양 어깨에 차가운 검면의 감촉이 느껴지길 잠시, 왕세자의 서임 선언이 들려오고 있었다.

바스타프는 마치 전생 전 챔피언이 되었을 때의 기분이 끓어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차분해지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기사의 칭호를 서임하며, 귀관에게 ‘와일드-피스트’의 가문명을 하사하겠다.”

“네?”

아까 들은 것과 조금 다른 마무리에 무심코 고개를 쳐들고 왕세자를 올려다보면, 옆에 있던 근위기사들이 도끼눈을 뜨고 어서 고개를 다시 숙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해왔다.


어이쿠. 하는 심정으로 다시 고개를 숙이면,

“아. 그대는 생소할 수도 있겠군. 이 나라에서 기사 서임을 받는 자는 모두 준 귀족. 평민 출신이거나 하여 가문명이 없는 이에게는 서임자의 권한으로 가문명을 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왕세자의 설명에 납득한 바스타프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물론, 자네가 원치 않는다면 거부해도 좋다.”

“아, 그···.”

문득 이럴 때의 예법은 아직 드릭키어 영주에게 배우질 못한 것이 떠올라 말을 머뭇거리고 있으면, 위쪽에서 왕세자가 큭 하고 웃는 것이 들려왔다.


“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을 받아 감사하다고밖에···.”

“그거면 됐다.”

절차를 끝낸 왕세자가 자리로 돌아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자아-! 드릭키어 영주님-!”

목에 걸려있던 메달을 들고 드릭키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달려간 바스타프가 주위에서 뭐라 하건 그것을 흔들면서 엄지를 세워 보였다.

이것으로 바스타프 자신을 믿고 후원해준 영주의 기대에 답한 것은 물론, 또다시 정점에 설 수 있었다.


“응?”

한창 기분 좋게 손을 흔들고 다시 돌아서려는데, 문득 바스타프의 감각에 불쾌한 기척이 감지되었다.

왜 인지는 몰라도 드릭키어 영주가 있는 쪽에서 느껴지는 그 기척에 굳은 표정으로 그쪽을 훑어보면···.


“뭐야 저 희멀건 멸치는?”

척 봐도 뭔가 높으신 분들이 앉는 자리 한쪽 끝에 앉아서 바스타프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 깡마른 인상에 전체적으로 눈부시게 흰 옷을 걸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설마 아까 바스타프 자신이 무참하게 쓰러트린 탈마 어쩌고 하는 활쟁이 녀석의 후원자인 것일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바스타프는 다시 시상대 위로 올라가 메달을 흔들어 대며 승자의 기분을 만끽했다.


*


시상식이 끝난 뒤 우르켈과 둘이서 따로 술자리를 잡았다.

우르켈은 이번 대회에 참가했던 자들 중 자신과 친분이 있는 기사들 두어 명을 데려왔다.


“좋아, 너희들! 지금부터 내가 이 친구와 술 결투를 하는 걸 잘 지켜보고 있으라고?”

“우르켈, 자네 정말 괜찮겠어? 대회 끝나자마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날 이기고 우승까지 한 기사가 쏜다는 데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기어이 큼직한 맥주잔을 쥐고서 번갈아 비우기를 시작한 두 기사는 3시간동안 가게의 맥주를 거의 거덜낸 후에야 무너져 내렸다.

애석하게도 우르켈의 호언장담은 허세가 아니었던지 승부는 바스타프가 간발의 차이로 패배하긴 했지만.


“비러머글 자쉭···! 설마 술이 이정도로 쎌 쭐은 몰랐는데···!”

“흐헤헤헤, 대회의 설욕전을 할 수 이써꾼···히끅!”

“그으으···.”


우르켈이 데려왔던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술집을 나서고 있는데, 저쪽의 대로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끅. 뭔 난리래···?”

“몰러···대회 일로 다투는 겨?”

두 기사가 무심코 향한 곳에는 신성제국의 깃발이 걸린 호화로운 마차가 정지해 있었다.


“빨리 저리 안 비켜?”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쳇, 아까부터 대체 뭐야? 저쪽에서 자꾸 수상한 행렬이···.”

마부가 투덜거리며 간간히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나오는 묘한 행렬이 나온 방향을 쏘아보고 있으면, 마차 쪽의 창문이 열리고 신성제국의 고위 신관 페레투스의 얼굴이 나타났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핫! 죄송합니다 신관님. 왠지 모르지만 묘한 행렬이 통행에 방해를 해서···.”

“흐음···.”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막 마차를 막아선 누더기를 걸친 인영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고갯짓으로 마차를 호위하던 신전기사들에게 확인을 지시했다.


“이리 와라.”

“히, 히익!”

누더기의 인영은 겁을 먹고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신전기사들은 손쉽게 그를 붙잡아 누더기를 걷어내었다.


“뭣?!”

“사, 살려주세요!”

“신관님! 이 자는···!”

누더기를 걷어내자마자 보인 것은 회색빛이 도는 짙은 피부색과 뾰족한 귀.


“다크엘프입니다!”

“뭣이? 그 아인종이 왜 이런 곳까지 와 있는 거냐?!”곧바로 인상을 구긴 페레투스가 마차 문을 열고 황급히 걸어 나왔다.

신전기사들이 그에게 잘 보이도록 다크엘프를 강제로 일으켜세우면,


“이 목의 고리는···확실히 노예 매매자들이 사용하는 물건 같습니다만.”

“호오···그렇다는 이야기는···.”

페레투스의 눈동자가 주위를 훑었다.

다행히 늦은 밤이라 사람의 왕래는 거의 없었다.


냉큼 다크엘프의 머리채를 부여잡은 페레투스는 오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봐. 아인종···. 네놈, 어디서 탈출해 왔는지 말해라.”

“······?!”

“어서!”


다크엘프는 그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그가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서 붙잡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다크엘프는 이를 악물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어이! 이 녀석! 가만히 있어!”

“하찮은 아인종 주제에 감히!”

양 팔을 붙잡고 있던 두 기사가 힘을 주어 눌러 보았지만, 순간적으로 페레투스의 다리 사이에 다크엘프의 발차기가 꽂히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으아아악?!”

“시, 신관님?!”

“네 이놈! 잘도!”

결국 분개한 신성기사들이 다크엘프의 얼굴을 지면에 찍어 누른 채 참수하기 위해 검을 뽑았다.

하지만 다크엘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오히려 모두 들으라는 듯이 발악하듯 외쳤다.


“죽일 테면 죽여라! 난 절대 네놈들에게 굴하지 않아! 나는 어나더 블러드의 센터 커맨더, ‘거세의 멧서’다!”

“······!”


-14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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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 사도의 사명 21.03.10 36 0 11쪽
25 24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2) 21.03.09 36 0 11쪽
24 23화 - 어나더 블러드, 입단(1) +1 21.03.08 43 2 12쪽
23 22화 - 밀서 전달 21.03.06 45 1 12쪽
22 21화 - 다크엘프 마을, 도착 21.03.04 38 1 11쪽
21 20화 - 로터스 오브 헬(2) 21.03.03 41 1 11쪽
20 19화 - 로터스 오브 헬(1) 21.03.02 39 1 12쪽
19 18화 - 하프오크 밀사(3) 21.03.01 49 1 11쪽
18 17화 - 하프오크 밀사(2) +2 21.02.26 78 2 14쪽
17 16화 - 하프오크 밀사(1) 21.02.25 67 1 13쪽
16 15화 - 거세의 멧서 21.02.24 57 2 13쪽
» 14화 - 왕립 검투대회(4) 21.02.23 60 1 12쪽
14 13화 - 왕립 검투대회(3) 21.02.22 53 1 12쪽
13 12화 - 왕립 검투대회(2) 21.02.19 62 1 13쪽
12 11화 - 왕립 검투대회(1) 21.02.19 64 1 11쪽
11 10화 - 신분은 쟁취하는 것 21.02.17 76 1 11쪽
10 9화 - 대장장이 보그렐 21.02.16 62 1 12쪽
9 8화 - 스틸 스타터(3) 21.02.15 66 1 11쪽
8 7화 - 스틸 스타터(2) 21.02.12 66 1 11쪽
7 6화 - 스틸 스타터(1) 21.02.11 66 2 13쪽
6 5화 - 뜻밖의 곤란 21.02.10 94 2 12쪽
5 4화 - 세상에 나서다 21.02.09 94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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