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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희 님의 서재입니다.

퇴물 살수는 이능으로 살아남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사바희
작품등록일 :
2024.08.17 16:31
최근연재일 :
2024.09.1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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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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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9화-영약이 있다면

DUMMY



삼일 만에 나는 다시 삼계탕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몸을 움직여서 인지 금단증상의 강도가 약간이나마 옅어진 느낌이었다.

이제는 자주 얼굴을 봐서 인지, 처참하게 손상된 명부동 사람들의 모습도 약간은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익숙해 지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나는 팔뚝을 물어 뜯는 백만돌이의 머리를 밀어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보니 구명지은을 입은 객잔이 살수 조직인 상황.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데다가, 말만 들었을 때는 대의를 위하고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살행을 하는 조직이라는데, 거기에 차기 문주 후보자로 면접을 보고 있는 상태.


이왕 무협 세상에 떨어졌으니, 잘 나가는 협객이나 정파의 절세 고수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십일 호의 얼굴로는 결코 그 쪽 길을 걷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반대 쪽 길을 걸을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았다. 게다가 경력이라고는 살수 조직의 평살수가 다인 데다가 나이는 이미 마흔 줄을 넘겼다.

내가 꿈꿔왔던 무협 세상에서의 이상적인 삶을 실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어중간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현실적인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원래 소속되어 있던 명부동은 사라졌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일단 구도문의 문주가 되어 내 가능성을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구도문과 명부동의 창립 이념이 궤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중요했다.

어차피 같은 뜻을 행하는 것이라면, 명부동이건 구도문이건 칠정살문이건 그 명칭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또한 이곳에는 나만이 알고 있는 건 줄 알았던 붉은 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붉은 점의 사용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려 줄 사람이었다.


천살지체.

솔직히 살수가 되기에 최적의 몸이라느니, 천자마저 죽일 수 있다느니 하는 소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천무지체와 천마지체 같은 세계관 최강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 요소인 사기 체질에 버금가는 특별한 체질이라는 건 꽤 매력적인 사실이었다.

그 체질의 개발을 도와줄 사람까지 있으니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파의 규모가 영세 상인 조합 수준이라는 것 빼고는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었다.

규모가 작다는 것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격식이나 귀찮은 일에 얽매일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은 하루 빨리 금단증상에서 벗어나, 강해질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명부동 사람들과 한 약속도 지킬 수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에 가장 빠른 길은 구도문의 문주 자리를 잇는 것이다.

어차피 같은 뜻을 행하는 것이라면, 명부동이건 구도문이건 칠정살문이건 그 명칭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게 결론이다.


언제나처럼 의족사내가 자꾸 내 다리를 물어 뜯어서 머리통을 내려쳤더니, 썩은 핏물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금단증상 때문에 보이는 환각임을 알고 있었지만, 겪을 때마다 구역질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머리를 짧게 털며 생각에 집중했다.

점로대와 함께 했던 사외 면접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해 보니 춘양현에서 내가 너무 나댄 것이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됐다.

명경루에서 수탈당하는 어부들을 본 것 때문인지,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르려는 방도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미 구도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서서 일을 키웠다.


그랬기에 더욱 사외 면접의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어쩌나 고민됐다.

야명주로 계산한 반 년 치 식대와 숙박비를 돌려주고 내쫓지는 않을까?

만약에 쫓겨난다면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혼자서라도 나쁜 놈들을 죽이고 다녀야 하는 걸까? 그러다가 나보다 강한 놈을 만나면 꼼짝 없이 저 세상으로 직행해 명부동 친구들과 해후를 하겠지? 시벌.


삼계탕이 된 상태로 금단증상과 씨름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자꾸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회사원 시절에도 그럴 때가 있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부정적인 가정이 꼬리를 물고 끝없이 확장되는 경험.

예를 들면, 납품한 제품에서 발생한 작은 품질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담당자인 내가 구속되고 회사가 파산하는 상황까지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물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상해 보고 대비한다는 관점에서 이런 성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게 반복되다 보면 너무 많은 걱정으로 내 삶이 피폐해 진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종남파의 제자들은 종남산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무림맹? 그들이 다시 이곳을 찾아오지는 않을까?

불온세력 소탕작전은 어디까지 진행된 걸까? 설마 구도문과 칠정살문을 처단하겠다고 쳐들어 오지는 않을까? 그들이 쳐들어 온다면 점로대와 왕충, 이현과 장태보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약한 힘이나마 내가 도와줘야 하는 건가? 그들을 돕다가 죽으면 나는 또 어딘가에서 새로운 사람의 몸으로 깨어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완전한 무(無)로 돌아가는 걸까?


별의별 희한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는 건 자각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내 의지만으로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짧은 동영상의 무한 루프에 빠진 느낌 속에서 이제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명확하게 인지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을 때였다.


“깨어 있나?”


욕조 바깥에서 점로대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


“상태가 왜 그런가?”


욕조에서 나와 담요를 덮어 쓰고 있는 내게 점로대가 물었다.

거울을 보진 못했지만, 눈이 뻑뻑하고 입술이 마른 것이 느껴졌기에,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금단증상 때문인지, 머리가 복잡하네요.”

“지난 번에는 분노의 늪에 빠지더니 이제는 생각의 늪에 빠진 겐가?”

“듣고 보니 그러네요.”


힘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팔짱을 낀 채, 내 변화를 주시하던 점로대가 불쑥 물었다.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말해 줄 수 있나?”


이 영감님은 질문을 무슨 암기처럼 던질 줄 아는 기술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을 난처하게 만든다는 소리다.

나는 평살수 십일 호가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모른다.

애초에 명부동에서 가르치는 무공의 종류가 뭐인지도 모르는 상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를 때는 솔직히 대답하는 게 최선이다.


“내공을 잃은 동안 그 전에 가졌던 기억들이 많이 날아갔습니다. 분명 무언가 배운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어떤 거였는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시 내공이 느껴지기 시작한 후, 단전의 내공을 혈도를 타고 움직이게 만들어 운기조식은 해 봤습니다만, 솔직히 지금은 그게 운기조식이 맞는 건지 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싸웠을 때도 홍점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였지, 딱히 초식 같은 걸 쓰지도 않았습니다. 기억하는 초식이 없으니까요.”


나는 내 상태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게 고백하고 점로대의 답을 기다렸다.


“오히려 잘 됐네.”

“네?”

“내가 자네에게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물은 이유는, 이제 그 무공이 필요 없기 때문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구도문의 무공을 배우게 되면 과거에 익힌 무공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지.”


원래 익혔던 무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쉬워 할 수도 있는 상황이겠지만, 내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나는 잃을 무공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네에게 심법과 검법, 권장법, 지법, 금나수, 비도술과 신법을 한 가지씩 가르칠 생각이네.”

“그, 그렇게나 많이요?”


솔직히 놀랐다.

무슨 무공종합선물세트도 아니고 뭘 이렇게 한꺼번에 가르친다는 걸까?

제대로 된 무공이라고는 아는 게 없는 상태였으니, 다양한 무공을 배우는 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걸릴 것이냐는 것.


“단번에 모든 걸 배울 수는 없을 걸세. 하지만 내가 말한 무공은 모두 구도문의 역사와 함께 한 것이기에 다음 대를 위해서라도 배워 놓을 필요가 있네.”

“알겠습니다.”


굳은 의지를 담아 대답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하는 겐가?”


점로대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공을 배우게 되면 어르신이 제 사부님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럴 땐 보통 구배지례(九拜之禮)를 올려서 사제의 연을 먼저 맺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무공을 사사받는 스승에게 아홉 번 절을 해 사부로 모시는 것은 무협의 기본 상식.

하지만 점로대는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네. 우리 구도문은 사승관계를 맺지 않는 문파이니,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네.”

“네? 그런 것도 있습니까?”

“잊었나? 구도문에 들어온다는 것은 스스로 개백정이 되겠다는 것임을. 세상이 정해 놓은 규율과 법도에 신경 쓰는 것보다, 어려운 이들의 아픔을 한 번 더 살펴보라는 것이 개파조사의 뜻이기도 하네.”

“음.”


현대라 할지라도 충분히 실용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문파 철학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무공을 전수하기에 앞서서 먼저 자네 몸 상태를 확실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네.”

“네?”

“나오게들.”


점로대의 말에 문밖에서 왕충과 이현이 객잔 뒷문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손목 좀 줘 보겠나?”


시키는 대로 했더니, 왕충이 내 손목의 맥을 짚고는 눈을 감았다.

내 짐작에 그는 웬만한 명의와 견줄만 한 의술의 소유자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급류에 떠내려온 나를 그렇게 빨리 회복시킬 수도 없었을 것이고, 금단증상을 완화하는 욕탕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왕충이 진맥을 하는 사이에 이현은 내 얼굴 앞 허공에 줄자 같은 걸 이리저리 대 보고 있었다.

대체 뭘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진맥 중에 말을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 참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진맥을 하던 왕충이 마침내 눈을 떴다.


“천라지망을 탈출할 때 단전을 상했다고 했었나?”

“맞네.”

“음······.”


왕충이 긴 침음을 흘리자, 점로대가 물었다.


“어떤가?”


왕충이 어두운 얼굴로 대꾸했다.


“단전이 구할 이상이 손실된 상태입니다. 단전에서 나오는 내공을 사지로 뻗어나가게 해 줄 혈맥 또한 마찬가지고. 이런 상태로 억지로 무공을 쓰려고 했다가는 언제 주화입마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내 몸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무공을 쓰는 건 웬만해서는 말리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일세.”

“음.”


나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단전과 혈맥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듣고 보니 꽤 심각하게 다가왔다.


“이 친구의 단전은 지금 찢어지고 헤져서 손바닥 만한 크기만 남아 있는 장삼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손바닥만 한 천 쪼가리를 장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이 친구의 단전도 과연 단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내 몸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건 고맙지만, 너무 적나라해서 우울함이 밀려올 정도였다.


“회복할 방법은 없는 건가?”

“글쎄. 이론 상으로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방법이 없는 것과 다른 바 없지.”


애매모호한 말이었지만, 왕충의 체념한 듯한 표정을 보니 대충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무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


“막대한 양의 영약이 필요한 건가? 환골탈태를 할 수 있을 만한.”

“환골탈태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약으로 심맥과 혈맥을 안정시키고 단전에 양분을 보급해 줄 수 있을 테니, 절대 나쁜 방향은 아닐 걸세. 언제나 문제는 그 영약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는 거겠지.”

“비싸겠지?”

“비싼 건 둘째 치고, 그 정도 되는 양의 영약을 구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걸세. 인연이 닿는다 하더라도 삼사십 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군.”


시벌. 늙어 죽는 게 더 빠르겠다.


“절벽에서 뛰어 내린다거나 하는 방법은 어떻겠나? 기연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농담에 왕충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뒷통수를 벅벅 긁는데, 문득 명부동의 총관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천라지망을 빠져나오면서 십일 호 님이 입은 부상은 날고 긴다 하는 고수들도 회생을 장담하기 힘든 엄중한 것이었습니다. 단전은 깨진 사기 그릇처럼 망가졌고, 혈맥은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과 내공을 잃은 정도로 목숨을 부지한 것만 해도 염라대왕이 한 번 눈감아준 거라고 믿습니다.’


총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 단전은 원래 손바닥만 한 장삼 쪼가리가 아니라 잘게 쪼개진 사기 그릇 같은 상태였다.


“물어볼 것이 있네.”


내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이 되자, 왕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가 말했던 그 장삼 쪼가리가 보름 전까지만 해도 손가락 한 마디나 될까 말까 한 크기였다면 믿을 수 있겠나?”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왕충이 왕방울만 하게 커진 눈으로 물었다.


“단전은 깨진 사기 그릇처럼 망가졌고, 혈맥은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다는 게 천라지망을 빠져나왔을 당시에 내 몸상태를 봐줬던 의원이 한 말이야.”

“······!”

“그런데 얼마 전부터 미약하긴 하지만 단전에서 내공이 느껴지고 있어. 거기에 단 한 줄기 밖에 운용할 순 없지만, 사지로 내공을 보내는 것도 가능해 졌지. 그 전에는 불가능했던 운기조식도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고 말이야.”

“그런 일이······.”

“이 정도면 내 몸이 스스로 회복하고 있다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음······.”


내 물음에 왕충이 긴 침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은 마치 불가사의한 일을 접한 사람처럼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불가해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강호라지만······ 그런 건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일일세.”


왕충이 자신 없는 얼굴로 말했을 때였다.


“그건 천살지체 만이 가진 체질일 수도 있네.”


등 뒤에서 점로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점로대가 팔짱을 낀 채로 천천히 걸어왔다.


“나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역대 문주들이 남긴 기록 중에 비슷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네. 살행 중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단전이 파괴됐음에도 시간이 흐른 후에 몸이 스스로 단전을 복구시켰다는 것이었네. 당시에는 영약 같은 걸로 복구했으리라고 지레 짐작했네만······ 자네의 얘기를 듣고 보니, 영약에 대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군.”


점로대의 말에 왕충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런 전례가 있다면, 이 친구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설명이 가능하겠군요. 그래도 앞으로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요.”


확실히 과거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건 고무적이었다.

고독도 이미 제거했으니, 이제 망가진 몸만 스스로 회복할 수만 있다면, 고수가 되는 꿈도 꿔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생한 이후, 가장 희망적인 상황이었다.


“다만······.”


왕충이 걱정이 떠오른 얼굴로 말했다.


“단전과 혈맥이 스스로 회복한다 하더라도, 혹시나 모를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영약을 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작용?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나?”


내 물음에 왕충이 까끌한 턱수염을 문지르며 대꾸했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네. 다만, 모든 상처가 회복될 때는 부작용이 생기는 건 자연의 섭리지. 예를 들면, 찢어진 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날 때나 부러진 뼈가 다시 붙을 때, 우리 몸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게 되는데, 이 경우, 고열이나 무기력증 같은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세.”

“음.”

“더군다나, 자네의 단전은 오랜 기간 찢어진 채 굳어버렸던 상처가 다시 봉합되려는 것과 비슷한 상태인데, 거기에 마약의 금단증상까지 동반된 상황이라······, 최근에 갑자기 침울해지거나 화가 나는 것 같은 감정 기복이 심한 것도 그 영향일 수도 있을 거야.”

“결국은 내 몸을 안전하게 회복시키려면 영약이 필요하다는 거군.”

“맞네.”


기승전영약인 상태.

클리셰 적으로 본다면, 절벽에서 떨어지는 게 영약을 얻을 확률이 제일 높다. 실제로는 죽을 확률이 가장 높겠지만.

인연이 닿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영약이기도 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일단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나는 내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세 사람은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현이었다.


“저는 일단 태보에게 최근에 영약이 출몰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할게요.”


이현이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점로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도 이 친구 말에 동의하네. 언제 구할 수 있을 지 모를 영약을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점로대가 왕충에게 물었다.


“다음 금단증상이 찾아오는 건 사흘 뒤겠지?”

“비슷할 겁니다.”

“저 욕탕 없이 견딜 수 있을까?”

“음······. 더 괴롭긴 하겠지만, 고통이 지나갈 때까지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욕탕 없이 금단증상을 견딜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점로대는 왜 이런 걸 묻는 걸까?


“미안하지만 내일부터는 당분간 자네와 현이가 객잔을 맡아주게.”


응?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린가?

왕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를 가시려구요?”


점로대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개백정 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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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화-담금질 24.09.15 169 7 12쪽
33 32화-절벽 기연 24.09.14 206 10 14쪽
32 31화-개백정 훈련소 24.09.13 215 9 13쪽
31 30화-무공종합선물세트 24.09.12 229 8 13쪽
» 29화-영약이 있다면 24.09.11 240 10 18쪽
29 28화-협객과 자객 +2 24.09.10 270 13 16쪽
28 27화-협객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1 24.09.09 287 14 16쪽
27 26화-밤새도록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1 24.09.08 308 11 14쪽
26 25화-그 잡놈이 대체 누굽니까? 24.09.07 351 12 17쪽
25 24화-당황과 분노, 그리고 공포 24.09.06 359 15 14쪽
24 23화-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네요 24.09.05 379 15 17쪽
23 22화-하늘을 죽인다 24.09.04 412 15 16쪽
22 21화-호의를 베풀어 주신 이유 24.09.03 414 14 16쪽
21 20화-뭐라고요? 24.09.02 447 15 13쪽
20 19화-삼계탕 24.09.01 493 13 14쪽
19 18화-점로대 24.08.31 536 16 20쪽
18 17화-개고기 잘하는 집 24.08.30 589 16 14쪽
17 16화-믿어라. 염라대왕 24.08.29 623 17 18쪽
16 15화-강해질 거다 24.08.28 672 19 14쪽
15 14화-비싼 거로 사 주십시오 24.08.27 695 19 14쪽
14 13화-코끝이 시큰해졌다 24.08.26 716 17 17쪽
13 12화-혼란의 도가니탕 +1 24.08.25 729 17 15쪽
12 11화-운기조식 +1 24.08.24 760 18 16쪽
11 10화-이번 작전명은 +1 24.08.24 812 15 18쪽
10 9화-이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1 24.08.23 909 17 20쪽
9 8화-과거의 기억 +1 24.08.22 1,000 17 17쪽
8 7화-구했다. 나도. +2 24.08.21 1,120 19 16쪽
7 6화-귀동(歸洞) +1 24.08.20 1,149 20 16쪽
6 5화-빨리 죽어 +2 24.08.19 1,184 1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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