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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희 님의 서재입니다.

퇴물 살수는 이능으로 살아남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사바희
작품등록일 :
2024.08.17 16:31
최근연재일 :
2024.09.15 12:1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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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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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5,814

작성
24.08.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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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7화-구했다. 나도.

DUMMY



내 눈앞에 서 있는 초로의 거한(巨漢)을 보자마자, 나는 그가 우두임을 알았다.


일단 덩치가 아주 컸다. 소처럼.

칠 척 장신이니 팔 척 장신이니 하는 말이 미터법으로 정확하게 몇 센티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나타난 이자가 아니면 누구에게 그런 표현을 쓰겠는가?

어림잡아도 백 구십 센티는 되어 보이는 키에 태평양만큼 넓게 벌어진 어깨와 가슴. 상의를 걸치지 않아 완전히 드러난 상체는 보디빌딩 선수처럼 팽팽한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약물도 없는 시대일 텐데 저 정도로 대단한 근육을 만들려면 얼마나 운동을 빡세게 했을까?


키와 덩치만으로 내가 그를 우두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일단 머리가 아주 컸다.

길쭉한 얼굴에 각진 턱, 뭉툭한 코와 커다란 눈.

한때 씨름을 하다가 이종격투기로 전향했던 거구의 운동 선수의 얼굴도 머릿속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자의 얼굴은 현대인인 내가 봐도 한눈에 소 대가리를 연상케 했다. 코뚜레만 있으면 영락없이 소 대가리를 사람 몸에 붙여 놓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사대사자의 호칭이 그냥 설화나 민담에 나오는 저승사자의 이름을 갖다 쓴 거로 생각했는데, 이건 오히려 얼굴 생김새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게 아닌가 싶었다.


충격적인 얼굴 다음으로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가슴에 난 거대한 흉터였다.

왼쪽 쇄골 아래부터 시작된 흉터는 오른쪽 갈비뼈 아래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너비가 한 뼘은 더 될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물체에 통째로 뜯겨 나간 것 같은 느낌의 흉터였다.

저런 상처를 입고도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얼핏 보기에도 장시간의 외과 수술과 수혈이 필요할 상처로 보였는데, 그 흔한 항생제조차 없을 것 같은 이 세상에서 저런 상처를 입고도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

하긴, 서기 이백 년대에 이미 외과 수술로 팔에 맞은 독화살을 긁어낸 화타도 있으니, 딱히 놀랄 일은 아닌 건가?

왠지 눈앞에 있는 이 사내도 갈라진 자기 배를 봉합하는 동안 관운장처럼 술을 마시거나 껄껄거리며 농지거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우두는 내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걸음을 머무첬다. 당연하게도 내 코는 가슴에 난 흉측한 흉터를 마주하고 있었다.


“돌아왔구나. 살아서.”


의외로 어린 아이처럼 단순한 말투였는데, 어째선지 목소리에서 안도의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우두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문자 그대로 송아지 같은 두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두의 눈동자에서 뜻 모를 호의가 담겨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온 동생을 보는 눈빛 같다고나 할까?

눈빛만으로 처음 보는 사람, 보통 사람도 아닌 살수 집단의 저승사자 중 하나가 내게 호의를 보내는 거라고 속단할 순 없다. 하지만 총관에 이어서 우두가 내게 보이는 호의에 나는 살짝 당혹감을 느꼈다.

이들과 십일 호의 관계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때였다.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우두가 갑자기 두 손으로 내 머리를 덥석 붙잡았다.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야구글러브만 한 두 손에 얼굴이 뒤덮이자, 입술을 열 수조차 없었다.


“없나? 다친 데는.”


걱정이 담긴 묘한 물음과 함께 눈을 들이댄 우두가 내 머리를 좌우로 홱홱 꺾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손을 가진 사람은 처음 봤다.

언제 목이 뽑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던 내 머리는 우두의 미소와 함께 멈췄다.


“다행이다.”


짧지만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송아지같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우두가 얼굴에 함박 웃음을 걸며 말했다.


“먹자. 술.”


뭐라고?


“가자!”

.

.

.

술 얘기가 떨어지자마자 우두는 내 손목을 잡고 동굴 입구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황당해 할 겨를도 없이 끌려가다시피 걸었다. 백만돌이도 우리를 따라왔다.


우두가 나를 데려간 곳은 들어올 때 보았던 건장한 사내들이 뭔가를 옮기고 있던 곳이었는데,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나무 탁자와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회색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다부진 체격만으로는 나이를 분간하기 어려웠는데, 희끗희끗하게 새기 시작한 귀밑머리를 보아, 내 또래로 보였다.


“오셨습니까.”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하는 사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우두가 말했다.


“술.”

“네. 우 사자님.”


깍듯이 고개를 숙여 대답한 사내는 미소 띤 얼굴로 우두와 나를 돌아보며 시선을 맞추고는 총총걸음으로 구멍 쪽으로 돌아갔다.

우두는 나를 탁자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히고는 맞은 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솔직히 나도 더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지쳤기에, 앉자마자 낮은 한숨이 나왔다.

피로에 찌든 목덜미를 주무르다 보니 우연찮게 구멍으로 들어가는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는데, 왼쪽 다리가 꼭 탁자의 다리 같았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딱히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사내의 왼쪽 다리는 나무로 만든 의족이었다.

음.


우두가 나를 데려온 이곳은 아무래도 이 명부동 안에 있는 술집, 무협 식으로 부르면 주점이나 반점 느낌이었다.

중년에 의족을 찬 사내가 점소이를 하는 객잔이라니.

객잔이라 하면 대개 십 대의 점소이와 세트 메뉴로 구성된다는 내 고정관념에 살짝 금이 갔다.

뭔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곳이 살수들의 본거지이다 보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협 세계의 객잔에 대한 환상은 깨졌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여유는 없었다.

나는 지금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머릿속에 박혀 있다는 고독에 대한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이 몸의 주인과 이 살수 조직의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아직 잘 모른다.


백만돌이나 총관, 우두가 지금까지 내게 보여준 태도는 호의였다. 특히나 어딘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뜨끈해지는 우둥와 총관의 표정은 연극이나 가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함이 있었다. 마치 가족이나 친척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아직 그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애초에 그들과 십일 호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모르기에,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관계가 내게 칼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이들이 십일 호와 가족이나 형제 같은 막역한 사이라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이 알고 있는 십일 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내게 생긴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릴 자들일 터. 내가 십일 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호의는 그 무엇보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게 날아올지 모를 일이니까.


“무슨 생각?”


우두가 자연 에코가 적용된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어색한 웃음을 짓자, 우두는 송아지 같은 맑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백만돌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얘? 이번엔.”


우두의 물음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대답 없이 입가에 걸고 있던 웃음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우두가 백만돌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불렀다.


“신참?”


백만돌이는 우두의 손이 어깨에 올라온 이후부터 동상이 된 것처럼 바짝 얼어 있었는데, 갑자기 질문을 받자,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네, 넵! 우 사자님. 삼백이십팔호입니다!”

“첫 임무?”

“네! 그렇습니다!”

“소감은?”

“어······ 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제가 살아 있다는 게 잘 실감 나지 않습니다.”


백만돌이의 대답에 우두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어때? 기분.”

“네? 무슨 기분 말씀이신지······.”


백만돌이의 반문에 우두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가 다시 백만돌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구해진 기분.”

“그, 그걸 어떻게······.”


백만돌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내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두의 말투와 표정이 당연한 일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두는 내가 백만돌이를 구해 주는 걸 직접 본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

미간이 슬쩍 찌푸려지려 하기에 피곤에 절은 사람처럼 손가락으로 미간을 주무르며 태연한 척 했을 때였다.

백만돌이의 등 뒤에서 탁자를 향해 다가오던 의족 사내가 말했다.


“명부동 안에서 십일 호 선배에게 구명지은을 입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데 뭐? 선배?


어깨에 술독을 짊어진 의족 사내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가 선배였다고? 그럼 이자도 과거에는 살수였었다는 말인가? 음. 나랑 비슷한 또래 같았는데······. 여하튼 이자의 얼굴도 그렇고, 내 얼굴도 그렇고, 다들 액면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고생을 한 것 같았다.


“서, 선배님이셨습니까?”


화들짝 놀란 백만돌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족 사내가 한때 살수였다는 건 녀석도 몰랐던 게 확실했다.

의족 사내는 대답 없이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궁금하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미소가 어린 눈빛으로 나와 백만돌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 의족 사내가 품에서 팔뚝만 한 크기의 나무 상자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우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허리를 깊게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구멍 쪽으로 걸어가는 사내의 의족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의 사연이 꽤나 궁금했지만, 내 입으로는 물어볼 길이 없어 답답했던 찰나.


“정말 저분도 선배님이신가요?”


백만돌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도 알고,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녀석이었다.

우두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육십 번 대에서.”


슬쩍 들어올린 우두의 엄지 손가락을 보며 백만돌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육, 육십 번 대!”


기수 별로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삼백이십팔호에게 육십 번 대는 까마득한 선배일 터였다.


“구했다. 십일 호가.”


음. 예상대로 의족 사내도 십일 호에게 목숨을 빚졌던 거였군.


백만돌이가 존경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는 와중에 우두는 자기 머리통만 한 술독의 가죽 뚜껑을 땄다.

순간, 알싸한 술 냄새가 퍼져 나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협에서는 이걸 주향이라고 하던가.

글로만 봤던 무협 세계의 술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무협지에 등장하는 술은 대체로 오랜 옛날부터 현대까지 맥을 이어오는, 누가 들어도 이름을 알 만한 것들이었다.

죽엽청이나 두강주, 소흥주나 여아홍 같은 것들인데, 대충 뭉뚱그려서 화주라고 표현하는 무협지도 많았다. 어차피 작가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세상이니, 세심한 고증보다는 작가가 가져다 쓰기 편한 술 이름을 쓰는 느낌이 강했다.


어쨌든 우두는 내 앞에 놓인 대접인지 술잔인지 구분이 모호한 투박하게 생긴 그릇에 무색투명한 액체를 따랐다.

순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게 무슨 종류의 술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게는 그저 이 피로와 고통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 줄 무언가가 절실했다.


“몇 호?”


백만돌이의 잔을 채우며 우두가 물었다.


“삼, 삼백이십팔 호입니다.”


두 손으로 잔을 받친 채, 술을 받던 백만돌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쳤어?”

“좀 긁힌 것 말고는 괜찮습니다.”


백만돌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우두가 나를 돌아보았다.


“다쳤군. 많이.”


아마도 내가 많이 다쳤다는 것 같다는 말을 중얼거린 우두는 조금 전 의족 사내가 건넨 나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도자기 병이 몇 개 들어 있었는데, 우두는 그 중, 하나를 꺼내 마개를 열었다.

코를 찌르는 한약 냄새가 훅 풍겨 나왔지만, 이미 짙은 주향이 콧속에 가득했기에 참을만했다.

우두는 도자기 병을 내 앞에 놓인 잔 안쪽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진득한 점성을 가진 검은색 액체가 흘러나오더니 대접 안의 술이 금세 푸르죽죽한 녹즙처럼 변했다.


아. 놔.

입안에 고였던 침이 순식간에 말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군침이 돌게 하던 맑은 술이 어느새 독약처럼 보였다.

짜증이 나려 했지만, 저 송아지 같은 눈동자로 독약을 먹이려 할 것 같진 않았다.

우두는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내게 말했다.


“좋다. 상처에.”


음.

약이었나?.

뭔 약이 비주얼이······.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고마움을 표했다.

우두는 자신의 잔까지 채우고 잔을 들었다.


“건배.”


짤막하게 건배를 외친 우두가 술잔을 든 채로 나와 백만돌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우두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지옥에서 파는 칵테일 같은 비주얼의 액체를 들이켰다. 예상대로 거지같이 쓰고 떫은 맛과 함께 화끈한 고량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위장이 아우성을 쳤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전신을 휘감고 있던 고통이 조금은 옅어지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우두가 다시 대접에 술을 따르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구했다. 나도.”

“헉!”


우두의 말에 백만돌이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와.

설마 우두도 구했다고? 사대 사자는 이곳에서 가장 강한 네 명 아니었나?

아무래도 이 몸의 주인, 평범한 평살수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두가 이번에는 백만돌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나? 흑진.”

“네?”


흑진?


“혹시 그 흑진 작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임오년에 있었다는.”


백만돌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우두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구했다. 그때.”


백만돌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우두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나, 마면, 동주.”

“헉!”


이번에는 백만돌이의 아래 턱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이건 내게도 충격이었다.

우두뿐만 아니라 마면과 동주도 구했다고?

그 흑진 작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겼다. 그때.”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훑는 우두의 눈빛은 아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술독을 들어 그의 빈 잔을 채워주고, 내 잔을 채웠다. 우두를 구한 건 내가 아닌 과거의 십일호였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빈속에 들어간 첫 잔 때문에 이미 알딸딸하게 취기가 돌고 있었지만, 억지로라도 한잔 더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우두와 시선을 마주친 나는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화끈한 술이 또 한 번 식도를 긁고 내려가며 신입 사원 시절에 연이은 야식 때문에 겪었던 역류성 식도염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때였다.


“흑진. 누구라도 실패.”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우두의 말에 백만돌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함정······이었던 겁니까?”


우두는 실소를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몰랐다. 그놈들. 있는지.”


우두의 말을 모두 이해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강적이 있었고, 그들로 인해 참패했다는 것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었지만, 내 머리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술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시선이 흐릿해지며 잠이 든 것도 아닌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에 빠져들었을 때.


“그들······ 누구······ 니까······?”


백만돌이의 질문이 뚝뚝 끊기며 들려오고.


“······파.”


우두의 대답이 점점 작아지더니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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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뭐라고요? 24.09.02 447 15 13쪽
20 19화-삼계탕 24.09.01 493 13 14쪽
19 18화-점로대 24.08.31 536 16 20쪽
18 17화-개고기 잘하는 집 24.08.30 589 16 14쪽
17 16화-믿어라. 염라대왕 24.08.29 623 1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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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비싼 거로 사 주십시오 24.08.27 695 19 14쪽
14 13화-코끝이 시큰해졌다 24.08.26 715 1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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