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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희 님의 서재입니다.

퇴물 살수는 이능으로 살아남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사바희
작품등록일 :
2024.08.17 16:31
최근연재일 :
2024.09.15 12:1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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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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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5,814

작성
24.09.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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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5화-그 잡놈이 대체 누굽니까?

DUMMY



“풍소소혜역수한(風蕭蕭兮易水寒: 바람 쓸쓸하니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일거혜불부환(壯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점로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흑갈방이 기절한 족제비를 데리고 돌아간 후, 점로대는 내게 강변을 걷자고 했다.

흑갈방 놈들이 언제 들이닥칠 지도 모르는데 무슨 팔자 좋은 소리냐 싶었지만, 점로대도 그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 하는 소리일 거라고 믿었다.

이번에도 나한테 다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오면, 나도 드러눕거나 도망칠 생각이었다.

강변을 걷자고 해놓고 점로대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가, 불쑥 시인지 노래인지 모를 저 소리를 중얼거린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형공이 시황제를 죽이러 진 나라로 떠나는 날, 역수를 건너며 불렀다는 노래일세.”

“아. 예.”


사연을 듣고 나니, 성공하건 실패하건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살행을 나가는 형가의 각오와 쓸쓸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갑자기 그 노래는 왜 부르십니까?”

“개백정은 이 노래를 싫어했다고 하네.”

“왜요?”

“대의를 이루겠다고 가는 친우의 마음가짐이 너무 비장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더군.”

“별 게 다 마음에 안 들었나 보군요. 그나저나, 아무리 그래도 개파조사인데, 그렇게 적나라한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겁니까? 형가는 형공이라고 부르시잖아요.”


점로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개파조사께서 스스로 원하셨던 것이라네.”

“누가 뭐라 해도 내 근본은 개백정이다. 뭐 이런 겁니까?”

“틀리지 않네.”

“개같은, 아니, 개보다 못한 놈들을 처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거죠?”


내 물음에 점로대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영감님. 저 그래도 인 서울 사년제 대학 나온 사람입니다.


“방금 자네가 말한 그 의지가 구도문을 만든 이유일세.”

“음.”


나는 낮은 침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개파조사의 마음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내가 만년 과장 이대로로 살았던 시대이건 형가가 진시황을 죽이려 했던 시기이건, 인간 세상에는 개보다 못한 놈들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시작한 구도문이었네만, 문제가 있었다네.”

“무슨 문제요?”

“천하에 죽여야 할 놈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지.”


점로대는 쓴웃음을 지우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을 다 죽이려다 보니 천하의 삼분지일은 족히 죽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더군.”


나는 점로대를 따라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하고 있는 말은 천 년도 더 이전에 개백정이 남긴 말이겠지만, 지금도, 그리고 과학 문명이 발달한 21세기에도 공히 적용되는 말일 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그 많은 사람을 다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개백정은 구도문을 일인전승의 비전문파로 만든 것일세. 천하제일의 고수가 된다 한들, 한 사람이 평생 죽일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 법이니까. 꼭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자만 죽이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지.”


죽여야 할 놈들이 너무 많아서, 문도가 많아지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개백정은 스스로 일인 문파로 남기로 한 것이다.

나름 숭고한 정신인 것도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랬을 필요가 있을까도 싶었다.

어쨌든, 개백정의 사상과 의지가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은 구도문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인 것이었으니, 어떤 의미에서 개백정은 성공한 삶을 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구도문은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죽여 왔네. 사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빼앗는 악인들이라면, 그것이 뒷골목 파락호이건,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이건 가리지 않았지. 이 두 손에 묻힌 피도 적지 않다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겠지. 다만······, 세월이 흐를수록 죽여야 할 숫자가 줄어들길 바랄 뿐이라네.”


만난 이후, 처음으로 점로대의 얼굴이 달리 보였다.

푸근한 인상 속에 꼬장꼬장함이 베어 있던 객잔 주인의 얼굴이, 지금은 왠지 구도자처럼 보였다.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 지는 것 같아서, 화제 전환을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붉은 점 말입니다.”


점로대가 나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상대의 약점을 보여 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생로를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점로대의 고개가 모로 꼬이는 것을 보며, 나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족제비 같이 생긴 놈을 상대하는 도중에 붉은 점이 두 개가 보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혹시 어르신께도 그렇게 보였습니까?”


내 물음에 점로대가 고개를 저었다.


“내게는 홍점이 보이지 않았네. 그리고, 홍점에 대한 자네의 추리는 틀렸네.”

“네?”

“홍점이 천살지체만이 가진 특수한 능력인 것은 맞네. 하지만 그 발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더군.”

“음.”

“어떤 이에게는 생문을 보여 주고, 어떤 이에게는 상대의 사문(死門)을 보여주는 공능이 있다고 하지.”

“네? 둘 중의 하나로만 보인다는 겁니까? 어르신께는 어떻게 보입니까?”

“내게는 생문만 보여 준다네.”


홍점이 생문으로 보였다면 족제비의 몸에 찍힌 걸 점로대는 보지 못했을 터였다.


“둘 중의 하나로만 보인다는 게 확실합니까?”


점로대는 확신을 담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할 걸세.”

“어째서요?”

“구도문의 역대 문주들이 남긴 기록이 있다네.”

“그런 게 있었습니까?”

“구도문의 문주는 자신의 살행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네. 그것도 상세하게.”

“귀찮은 일이군요.”


내 말에 점로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천살지체를 가졌던 역대 문주들 중에서 그 누구도 홍점이 생로와 사로를 함께 보여줬다고 적은 이는 없었네.”

“음······. 그런데 저는 왜 그런 겁니까?”


점로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역대 문주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자신이 특별한 체질이라는 걸 알고 있었네. 그러니 훈련을 통해 능력을 개방하고 홍점도 숙련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지. 나 또한 그랬고.”


십일 호는 자신의 체질을 알고 있었을까?

점로대는 과거를 떠올리는 듯, 먼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만, 역대 문주들 중에 자네처럼 오랫동안 거의 무공을 잃은 것과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던 이는 없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그런 상태가 자네 몸에 어떤 작용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군.”

“흠······.”


경험 상, 내게 보이는 붉은 점은 분명 상황에 따라 생문과 사문을 번갈아 보여 줬다고 확신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조건에서 그렇게 각기 다른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

결국, 앞으로 차근차근 알아 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머리를 가볍게 털었다.

홍점에 관한 건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은 눈 앞의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망가진 몸을 회복하고, 어떻게 무공을 익히고, 어떻게 구도문과 칠정살문과 관계를 맺어 갈 것인 지가 당장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요한 일이라는 뜻.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한참 동안 강물을 바라보고 있던 점로대의 시선이 강둑 쪽을 향했다.


“일단은 저자들을 상대로 시험해 봐야겠군.”


시커먼 무복을 입은 일련의 사내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맨 앞에서 선 것은 족제비를 업고 갔던 구레나룻이었다. 그의 뒤쪽에는 네 명이 드는 가마, 이 세계관에서는 아마 사인거라고 부르는 가마에 붉은 장삼을 걸친 대머리 사내가 타고 있었다. 흑갈방의 방주이거나 최소한 높은 위치에 있는 간부처럼 보였다.


“멈춰라!”


구레나룻이 예의 그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우리는 딱히 도망칠 생각이 없다.

매번 저렇게 멈추라고 소리치니, 장난으로라도 도망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점로대의 눈치를 보고 참았다.

점로대의 얼굴에 경월루 아래에서 보여 줬던 장난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점로대를 향해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번에도 뒷짐만 지고 계시면 안됩니다.”


점로대의 가라앉은 얼굴에 슬쩍 스치는 미소를 보니, 사회 면접이 되었건 OJT가 되었건, 아직 정식 입사도 하기 전에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놈입니다!”


구레나룻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보고를 올렸다.

대머리가 사인거에서 내려오지도 않은 채, 하품을 하며 물었다.


“흑갈방의 행사를 방해했다고?”


대머리는 내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죽립이 사라져 흉터 가득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내가 그였어도, 내가 흉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꾸했다.


“길 가는 사람에게 멈추라고 했으면, 적어도 내가 누구인지, 무슨 용건인지부터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반문에 대머리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솟아났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뒷목에서 저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자신의 기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자라는 뜻. 최소한 족제비와 비슷하거나 더 고수라는 뜻이었다.


“네놈 같은 어중이떠중이와 길바닥에서 시시비비를 따질 생각은 없다.”


비웃음을 담은 얼굴로 대꾸한 대머리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장 저놈을 방으로 압송하도록.”

“네!”


사인거 주변에 있던 덩치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더니 허리에 찬 박도를 빼들었다.

중앙에 있던 구레나룻이 나를 향해 박도를 겨누며 소리쳤다.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구레나룻의 말 끝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방도들도 기세 좋게 칼은 빼 들었지만, 한 발짝도 앞으로 나서지 않은 채, 인상만 험악하게 찡그리고 있었다.

족제비가 나에게 당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점로대를 돌아보았다.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대머리를 제외한 흑갈방도들은 이미 기세에서 밀린 상태. 아무리 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해도, 이런 자들이 상대라면 쪽 수에 상관 없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인거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대머리는 점로대가 나선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상황.

나는 과연 여기서 싸움을 해야 할 것인 지를 눈빛으로 점로대에게 물었다.

나와 잠시 시선을 마주친 점로대가 대머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섬서에서 왔다는 그 식객인가?”


순간, 대머리의 이마에 빨래판 같은 주름이 잡혔다.


“너 같은 벌레가 알 바 아니다.”


대머리는 정말 하찮은 벌레를 대하듯 대꾸했다.

하지만 점로대도 만만치 않았다.


“섬서에서 이름 깨나 날리던 낭인이 이런 촌구석 흑도 방파의 식객 노릇이라니.”

“닥쳐라!”


대머리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목소리에 무시하지 못할 내공이 실려 있었다. 섬서에서 악명을 떨쳤던 낭인이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느껴지는 기도 만으로도 확실히 족제비보다는 윗줄의 고수였다.

내가 과연 저자에게 이길 수 있을까?

대머리와의 실력 차이를 가늠하는 와중에 점로대가 무심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섬서에서 무슨 사고라도 쳤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촌구석까지 올 이유가 없지 않나 말이야.”


점로대의 말에 대머리의 얼굴이 정수리까지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분명히 흑갈방의 식객이 된 것에는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뭐. 대기업을 다니다가 우리 회사로 전직한 사람도 있는데, 낭인이 흑도 문파에 의탁하는 거야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대머리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다만, 얼굴만 보면 대머리가 이미 몇 번이나 점로대에게 달려들었을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화를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점로대는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대머리는 보이지 않는 속박에라도 걸린 것처럼 보였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설마 무협에서 자주 나오는, 특정인에게 기파나 살기를 쏘아 보내는 식의 절기를 점로대가 펼치고 있는 것일까?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물론이고 흑갈방도들도 점로대와 대머리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구레나룻이 대머리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호법님.”

“······.”

“호법님?”

“······.”


눈치 없이 대머리를 부르던 구레나룻은 대머리의 죽일 듯한 눈빛을 받고는 목을 움츠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점로대가 내게 물었다.


“혹시 자네 그런 소문 들어본 적 없나?”

“무슨 소문 말씀이십니까?”

“나도 얼마 전에 들었던 소문인데, 몇 달 전에 섬서에서 끔찍한 혈사가 일어났다고 하더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섬서 북쪽의 상권을 두고 다투던 두 가문이 있었는데, 다툼이 과열된 나머지 충돌이 잦았다고 하더군. 결국, 두 가문은 돈을 주고 병력을 끌어모으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한 가문에서 고용한 낭인이 고용주의 일가족을 죽이는 일이 있었다네.”

“그런 일이······, 설마 이중 첩자 같은 거였습니까?”


점로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그 낭인이 고용주의 딸 자식에게 음심을 품고 납치하려 했던 모양이야.”

“허!”


나도 모르게 황당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쨌든, 납치 행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는데, 앙심을 품고 딸을 죽인 것도 모자라, 그 집안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모두 죽여버리고 도망쳤다 하더군.”

“개 같은 변태 살인마 새끼군요.”


쌍욕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천인공노할 참상에 관아는 물론이고 상대 가문에서조차 싸움을 멈추고 그 낭인을 쫓는 일을 도왔을 정도라는데, 결국 잡지 못했다고 하더군.”

“천하의 개 쓰레기같은 그 잡놈이 대체 누굽니까?”


점로대가 대머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혈삼독귀(血衫禿鬼)라는 별호로 알려진 자일세.”


점로대의 말이 끝났을 때, 흑갈방도들과 가마꾼을 포함한 장내의 모두가 대머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핏빛 장삼과 반짝이는 대머리.

눈앞에 있는 이자가 혈삼독귀가 아니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헛소리! 우리 호법님의 별호는 혈삼독귀가 아니라 혈삼객(血衫客)이시다!”


구레나룻이 또 한 번 눈치 없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점로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네. 혈삼독귀는 자신이 대머리라고 불리는 걸 아주 싫어했다고 하지. 그래서 스스로 혈삼객이라고 불렀다더군.”

“에이. 시펄!”


구레나룻의 입에서 황당함을 담은 욕이 튀어나왔을 때였다.


“죽어라!”


정수리까지 시뻘게진 혈삼독귀가 두 손을 뻗으며 날아왔다.

그런데······ 자신의 과오를 얘기한 건 점로대였는데, 왜 나한테 날아오는 걸까?

황당했지만,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딴 데 정신을 파는 것보다 홍점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혈삼독귀의 앞으로 뻗은 두 손을 갈고리처럼 말아쥐고 있었다. 저런 걸 응조공(鷹爪功)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혈삼독귀의 응조 주변에 뿌연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걸로 보아, 그 또한 내공을 외부로 분출할 정도의 고수가 확실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뒷덜미가 찌릿해지는 것과 동시에 나는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며 뒤로 신형을 날렸다. 이제 이 정도 움직임에는 내공이 자동으로 발을 향해 뻗어 나갔다.

아직 내 시야 어디에도 홍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 이럴 때는 일단 거리를 벌리며 시간을 벌어야 한다.

문제는 혈삼독귀의 속도가 나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었다.

내공의 힘으로 빠르게 뒤로 물러서고 있음에도 혈삼독귀의 신형은 내 시야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금방 따라잡힌다. 반격 없이는 속절없이 당하고 말 것이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종남파의 제자에게 일방적으로 몰렸던 때가 떠올랐지만, 나는 내공을 오른손으로 뻗어 낸 상태로 어깨 뒤로 당겨 주먹을 말아 쥐었다.

피할 수 없다면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금니를 악물고 오른쪽 주먹을 앞으로 뻗어 내려 했을 때였다.


-슉.


눈앞에서 점로대의 등이 연기처럼 솟아 올랐다.

뭐, 뭐야?


부릅 뜬 내 눈에 두 손을 앞으로 뻗어내는 점로대의 모습이 들어오고.


-퍼버버벅!


찰진 격타음이 장내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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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화-절벽 기연 24.09.14 206 10 14쪽
32 31화-개백정 훈련소 24.09.13 215 9 13쪽
31 30화-무공종합선물세트 24.09.12 229 8 13쪽
30 29화-영약이 있다면 24.09.11 239 10 18쪽
29 28화-협객과 자객 +2 24.09.10 270 13 16쪽
28 27화-협객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1 24.09.09 287 14 16쪽
27 26화-밤새도록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1 24.09.08 308 11 14쪽
» 25화-그 잡놈이 대체 누굽니까? 24.09.07 351 12 17쪽
25 24화-당황과 분노, 그리고 공포 24.09.06 358 15 14쪽
24 23화-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네요 24.09.05 379 15 17쪽
23 22화-하늘을 죽인다 24.09.04 411 15 16쪽
22 21화-호의를 베풀어 주신 이유 24.09.03 414 14 16쪽
21 20화-뭐라고요? 24.09.02 447 15 13쪽
20 19화-삼계탕 24.09.01 492 13 14쪽
19 18화-점로대 24.08.31 536 16 20쪽
18 17화-개고기 잘하는 집 24.08.30 589 16 14쪽
17 16화-믿어라. 염라대왕 24.08.29 623 17 18쪽
16 15화-강해질 거다 24.08.28 672 19 14쪽
15 14화-비싼 거로 사 주십시오 24.08.27 695 19 14쪽
14 13화-코끝이 시큰해졌다 24.08.26 715 17 17쪽
13 12화-혼란의 도가니탕 +1 24.08.25 729 17 15쪽
12 11화-운기조식 +1 24.08.24 760 18 16쪽
11 10화-이번 작전명은 +1 24.08.24 812 15 18쪽
10 9화-이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1 24.08.23 909 17 20쪽
9 8화-과거의 기억 +1 24.08.22 1,000 17 17쪽
8 7화-구했다. 나도. +2 24.08.21 1,118 19 16쪽
7 6화-귀동(歸洞) +1 24.08.20 1,149 2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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