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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희 님의 서재입니다.

퇴물 살수는 이능으로 살아남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사바희
작품등록일 :
2024.08.17 16:31
최근연재일 :
2024.09.15 12:1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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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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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글자수 :
23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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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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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0화-이번 작전명은

DUMMY



암전됐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졌다.

실눈을 떴더니 소대가리가 보였다.

송아지처럼 맑은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깨어났군.”


우두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걸림과 동시에 또 다시 솥뚜껑이 날아왔다.

와. 무식한 놈.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 싸대기를 날려 오다니.


“담간! 담간! (잠깐! 잠깐!)”


나는 두 손바닥을 다급하게 뻗으며 우두에게 소리쳤다.

눈앞까지 날아왔던 솥뚜껑이 가까스로 멈췄지만, 바람 만으로도 뺨이 얼얼했다.

입술은 퉁퉁 부어서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고, 입안이 터져서 진득한 핏물이 연신 목을 타고 넘어갔다. 다행히도 이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어금니가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우두 딴에는 힘을 조절해서 때렸겠지만, 한 대 더 맞으면 이빨 뿐만 아니라 턱도 빠질 것 같았다.

무지막지한 놈.

오른손은 앞으로 내민 채 왼손으로 부풀어 오른 오른 뺨을 감싸 쥐고 있는데 우두가 물었다.


“그만. 할 건가?”


두 손을 비비며 입맛을 다시는 것이 왠지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다는 모양새였다.

와. 무서운 새끼.

일단 붉은 점이 보이는 조건을 확인하겠다는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했다.

두 번 다시는 맞고 싶지 않았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나는 침상에서 내려와 바지를 입었다.

귀싸대기의 충격이 아직 남아있는지 현기증이 나서 이마를 짚었다.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시선을 빠르게 옮기며 내가 며칠 동안 누워 있었던 공간을 확인했다.

장신인 우두보다 머리가 두어 개 정도 더 높은 천장에 안쪽은 회색 암벽으로 막혀 있는 작은 석실. 나 정도 덩치의 사내가 누우면 딱 맞는 크기의 침상이 한쪽 벽면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 침상 하나 정도의 빈 공간이 있었다.

아무래도 동굴 벽면에 뚫려 있던 구멍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안쪽 벽까지 서너 걸음 정도의 거리가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우두를 마주 보고 섰다.

우두가 기대를 담은 얼굴로 물었다.


“또. 할 건가?”


눈앞에 솥뚜껑이 어른거리는 느낌에 다시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담간반 (잠깐만).”


손바닥을 내밀어 우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신호를 보낸 나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을 풀었다.

조금 전에 귀싸대기를 맞은 것으로 일단 예의 그 붉은 점이 보이는 조건은 얼추 알아낸 상태. 뇌 세포 수천만 개가 사라졌을 지도 모를 대가를 치뤘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이제는 붉은 점을 공략할 방법만 찾아내면 된다.

굳은 관절을 풀며 나는 솥뚜껑에 후드려맞기 전에 내게 일어났던 변화를 찬찬히 떠올렸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찌릿한 느낌과 함께 급격하게 빨라진 심장 박동.

그와 동시에 일어난, 무조건 반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즉각적으로 일어난 회피 동작.

타고난 감각인지 반복된 훈련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십일 호의 몸은 위험을 감지한 순간,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끔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붉은 점.

적묘 작전의 경험 상, 그건 상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나는 우두를 상대로 그 붉은 점을 공략할 방법을 찾을 생각이다.


몸풀기를 끝낸 나는 두 손을 늘어뜨리며 우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디 하다(다시 하자).”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우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우두가 움직였다.

통나무 같은 다리를 뻗으며 나를 향해 한 걸음 내딛은 순간.

등골을 타고 저릿한 감각이 깨어나고.

저절로 허리가 뒤로 누웠다.


-부웅!


솥뚜껑이 바람을 찢으며 내 코앞을 지나갔다.

찌릿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손바닥을 휘두르느라 노출된 우두의 오른쪽 어깨가 카메라 줌을 당긴 것처럼 확대됐다.

대포알 같은 어깨 위에 누가 붉은 매직으로 찍어 놓은 것 같은 점이 보였다.

솥뚜껑을 피하기 위해 상체를 뒤로 젖히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났던 나는 뒤꿈치를 치켜들며 허리를 세웠다.

순간, 하체가 급제동이 걸린 것처럼 멈춰 서더니 뒤로 누웠던 상체가 판 스프링처럼 튕기며 중심이 앞으로 쏠리고. 나는 오른손을 쭉 뻗으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와. 이런 움직임이 가능한 거였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방향 전환에 감탄이 나오려 했지만, 갑자기 무릎이 시큰거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어야만 했다. 빌어먹을 늙은 도가니.

욕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했지만, 내 몸은 이미 우두의 지척까지 도달한 상태.

훤히 열린 우두의 옆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내 목표는 거기가 아니다.

나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곧게 뻗어 우두의 어깨를 찔러갔다.


됐다!


중지의 끝이 붉은 점에 닿으려던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또다시 예의 그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두의 어깨가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커다란 오함마가 내 관자놀이를 노리며 날아왔다.

그건 솥뚜껑을 휘두른 관성으로 몸을 빙글 돌린 우두의 왼쪽 팔꿈치였다.

아. 시펄. 존나 빠르네.

인간의 움직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빠르기에 욕부터 튀어나왔지만, 일단 나는 급하게 왼팔을 들어 올렸다. 저 오함마를 정통으로 맞으면 머리가 깨질 것이 분명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것 보다는 팔이 부러지는 게 낫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우두의 것과 비교하면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내 왼팔이 오함마와 마주치려 했을 때.

갑자기 반신욕을 하는 것처럼 아랫배가 뜨끈해졌다. 그와 동시에 배꼽 아래에서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기어 나오더니 오른발 뒤꿈치를 향해 순식간에 뻗어 나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느낌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나는 발을 굴렀다.

순간.


-부웅!


내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솟아올랐다.

웅크린 것과 다름 없이 최대한 접은 발 아래로 우두의 팔꿈치가 스쳐 지나가고.

나는 오른손 엄지를 뻗어 우두의 어깨에 찍힌 붉은 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꾹.


됐다!

어깨 피부가 살짝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쾌재를 부른 순간.

악! 씨브으으으!!

손가락이 부러진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며 튕겨 나왔다.

격통에 머릿속이 하얘졌을 때.

커다란 솥뚜껑이 시야를 가득 메우며 날아왔다.

아. 씨바.


*


“정신이 드십니까?”


총관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시 기억이 나지 않아 멍한 눈으로 총관을 쳐다보았다.

주름으로 뒤덮인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다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애처로운 눈빛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아. 맞다. 솥뚜껑.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기억은 눈앞을 가득 채운 우두의 거대한 손바닥이었다. 또 기절했었나 보군.

눈알을 슬쩍 굴려 주변을 살피니, 총관의 등 뒤에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

우두가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채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턱을 괸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자고 있는 건지 애매했다.

시선을 내려보니 다행히도 내 몸에 꽂힌 침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지난 거지?”

“저는 반 시진 정도 전에 왔습니다.”

“네······.”


한 시진이 두 시간이니 반 시진이면 한 시간 전에 왔다는 건데, 우두에게 맞고 뻗은 게 언제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우 사자의 말로는 정신을 잃으신 건 한 시진 정도 전이었다고 하더군요.”


음. 두 시간이나 뻗어 있었군.

눈치 빠른 총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시커먼 탕약이 담긴 사발을 내밀었다.

지어 오겠다던 약인 모양이었다.

잠시 탕약을 내려다보다가 단숨에 들이켜자, 총관이 물었다.


“우 사자와 비무를 하셨다고요?”


나는 입안에 남아 있는 쓴맛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총관이 걱정과 기대가 반반 섞인 얼굴로 물었다.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잘 모르겠어.”


나는 총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두와의 비무에서 나는 예의 그 붉은 점이 보이는 조건을 확인했다. 거기에 더해 붉은 점을 공략하는 것까지도 성공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우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또 한 번 솥뚜껑에 처맞아 기절했다.

어째서 그랬을까? 붉은 점에 관한 내 가설이 잘못됐던 걸까?

내 의문을 해소해 줄 적임자는 멀리 있지 않았다.


“우두의 오른쪽 어깨 말이야.”


내 말을 들은 총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무를 하다가 우두의 어깨를 찔······ 건드렸어.”


찌른 것 같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찌른 건 아닌 것 같아서 표현을 바꿨다.

내 말에 총관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우두를 돌아보았다.

우두는 절의 정문에 있는 사천왕상 중의 하나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역시 자는 거였나?

총관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흠······. 우 사자가 몇 달 전에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음. 그랬군. 그렇다면 내 눈에 보였던 붉은 점이 상대의 약점이라는 가설은 얼추 맞아 들어간 셈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우 사자와 저 밖에 모르는 것일 터인데······. 혹시 우 사자가 따로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까?”


총관의 물음에 나는 그에게 붉은 점에 관한 것을 사실대로 얘기해 줘도 될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털었다.

총관과 우두는 내가 가장 의지해야 할 아군이었다. 그들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보여.”

“네?”


총관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나라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먹겠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면, 상대의 약점이 어디인지 보이는 것 같아.”

“음······.”


내 말에 총관이 침음을 흘리며 턱수염을 쓸었다. 이해가 간다는 건지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표정으로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총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뭐야? 이렇게 쉽게 납득을 한다고?

아무리 무협 세계관이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참이나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주억거리던 총관이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저는 십일 호 님이 살린 사람의 숫자 만큼 염라대왕에게 여벌의 목숨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총관의 입에서 또 염라대왕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까지 논리적이고 현명한 선비 같던 총관이 우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말을 하자, 살짝 실망감이 들려고 했다.

내 얼굴을 마주 본 총관이 멋쩍게 웃었다.


“이승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자주 겪게 되면 저승의 법도에서 답을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이지요.”


음. 그런 거였나.

이러면 일견 단순무식해 보이던 우두의 대답이 오히려 더 현기(玄氣)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총관은 절대 풀 수 없었던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게 된 사람처럼 홀가분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질문할 차례였다.


“궁금한 게 있어.”


아직도 눈을 감고 있던 총관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총관을 향해 내밀었다. 다행히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손가락은 퉁퉁 부어 있었다.


“분명히 이 손가락으로 찔렀는데······ 손가락이 부러지는 줄 알았어.”


나는 내밀고 있던 손가락으로 우두를 가리켰다.

총관은 딱히 놀라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 사자가 반탄지기를 쓰셨나 보군요.”


반탄지기는 내공을 사용해 공격을 튕겨내는 것을 말한다.


“외공만으로도 충분하셨을 텐데······ 오랜만에 십일 호 님과 비무를 하시느라 흥이 오르셨나······?”


살짝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우두를 돌아보는 총관에게 물었다.


“만약에 단검이나 비수로 찔렀다면?”

“흠. 그래도 반탄지기를 뚫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내가 내공을 운용할 수 없기 때문인가?”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공을 운용해 단검에 진기를 싣지 못한다면 아무리 우두의 어깨가 약점이라 할지라도 뚫을 방도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때 문득, 우두와의 비무 중에 공중으로 뛰어 올랐던 일이 생각났다.

갑자기 반신욕을 할 때처럼 아랫배가 뜨끈해지더니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가볍게 몸을 띄워 우두의 공격을 피했던 일련의 움직임.

그건 대체 뭐였을까?

배꼽 아래에 단전, 정확하게는 하단전이 있다는 건 나 같은 무협 매니아에게는 기초 상식이었다.

그렇다면 단전에서 나와서 뒤꿈치로 뻗어나갔던 그 가느다란 실 같은 기운은 뭐란 말인가?


“내가 내공을 쓸 수 없다고 확신할 수 있어?”


나는 손가락으로 배꼽 아래를 가리키며 물었다.

내 물음에 총관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십오 년 전, 천라지망을 빠져나오면서 십일 호 님이 입은 부상은 날고 긴다 하는 고수들도 회생을 장담하기 힘든 엄중한 것이었습니다. 단전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심맥은 뒤틀렸으며, 혈맥은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과 내공을 잃은 정도로 목숨을 부지한 것만 해도 염라대왕이 한 번 눈감아 준 거라고 믿습니다.”


온몸에 새겨진 흉터와 말까지 잃을 정도의 부상이었으니, 심각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의원이 저런 소리를 할 정도면 거의 저승 문턱에 갔다가 돌아왔다는 소리였다.


“십일 호 님이 내공과 말을 잃은 것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 했던 것이 바로 전대 동주님이었습니다. 회복되시자마자 내공 만이라도 되찾을 방법이 있을지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니셨고,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음. 전대 동주라는 자는 그래도 사람된 도리는 아는 자였나 보군.

괴로워하는 총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 수준이 아주 미약한 정도라면?”

“네? 미약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건지······?”


나는 집게 손가락을 만들어 엄지와 검지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로 좁혀서 내밀었다.


“요 정도?”

“네?”


총관의 고개가 또다시 기울어지려고 할 때였다.


“맞았다. 내공.”


우두의 굵직한 목소리가 동굴을 채웠다.


*


“음······.”


한참이나 내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던 총관이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어때?”

“제가 보기에는 예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내 물음에 총관이 고개를 저으며 우두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내공의 기운이 맞았습니까?

“맞다.


확신을 담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우두가 긴 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뛰었다. 여기까지.”

“외공 만으로 그 정도 도약은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된다. 하지만. 안 된다. 십일 호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대답한 우두는 팔짱을 끼더니 입을 다물었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말은 어린 아이처럼 짧고 앞뒤가 뒤바뀐 경우가 많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는 것이 우두의 화법인 듯했다.


“흠. 아무래도 내공을 쓸 수 있는 특정한 조건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을 때, 상대방의 약점이 보였던 것처럼.”


내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총관의 얼굴이 약간 풀어졌다.

나는 우두와 총관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다시 비무를 해보고 싶다.”


우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기에 나는 급히 손을 들어 제지했다.

또 솥뚜껑에 맞을 뻔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내 말에 우두와 총관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돌아본 후,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명부동을 우리가 접수했으면 해.”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동주를 동주 자리에서 끌어내리자는 거지.”

“음.”


총관이 살짝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침음을 흘리는 와중에 우두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언제나 그렇듯 우두의 표정은 진지했다.


“명부회 날에 백무상과 붙어 볼 생각이야.”

“죽을 텐데.”


우두의 냉정한 평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간은 끌어볼 수 있을 것 같아. 대신 두 사람이 해 줘야 할 일이 중요해.”

“뭔데?”

“그게 뭡니까?”


나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내가 백무상의 발목을 잡고 있으면, 남은 건 흑무상 하나일 테지. 명부동 안에서 유지되던 힘의 균형이 기울어진다는 말이야.”

“설마······.”


나는 자신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총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우두와 마면 중에 하나가 흑무상과 싸움을 벌이는 동안, 다른 하나가 동주를 제압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작전이야.”

“음······.”


총관이 고민에 빠진 얼굴로 눈을 감았다.

반면에 우두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나는 말 없이 두 사람의 반응을 기다렸다.

한참이나 생각에 빠져 있던 총관이 눈을 뜨며 말했다.


“동주님을 제압하는 건, 고독의 해결책을 얻기 위한 것이겠지요?”

“맞아. 막말로 고독의 해결책을 내놓기만 하면 더 이상 그에게 볼 일은 없는 셈이지.”

“음. 알겠습니다.”


총관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아무래도 전대 동주의 아들인 동주를 제압하는 일이 내키지 않았던 듯했지만, 죽이지만 않는다면 총관은 동의할 것 같았다.


“마면이 돌아올 때까지, 누가 흑무상을 맡을 지, 누가 동주를 잡을 건지는 정해서 알려줘.”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이번 작전명은······ 명부동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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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화-절벽 기연 24.09.14 206 10 14쪽
32 31화-개백정 훈련소 24.09.13 215 9 13쪽
31 30화-무공종합선물세트 24.09.12 229 8 13쪽
30 29화-영약이 있다면 24.09.11 240 10 18쪽
29 28화-협객과 자객 +2 24.09.10 270 13 16쪽
28 27화-협객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1 24.09.09 287 14 16쪽
27 26화-밤새도록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1 24.09.08 308 11 14쪽
26 25화-그 잡놈이 대체 누굽니까? 24.09.07 351 12 17쪽
25 24화-당황과 분노, 그리고 공포 24.09.06 359 15 14쪽
24 23화-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네요 24.09.05 379 15 17쪽
23 22화-하늘을 죽인다 24.09.04 412 15 16쪽
22 21화-호의를 베풀어 주신 이유 24.09.03 414 14 16쪽
21 20화-뭐라고요? 24.09.02 447 15 13쪽
20 19화-삼계탕 24.09.01 493 13 14쪽
19 18화-점로대 24.08.31 536 16 20쪽
18 17화-개고기 잘하는 집 24.08.30 589 16 14쪽
17 16화-믿어라. 염라대왕 24.08.29 623 17 18쪽
16 15화-강해질 거다 24.08.28 672 19 14쪽
15 14화-비싼 거로 사 주십시오 24.08.27 695 19 14쪽
14 13화-코끝이 시큰해졌다 24.08.26 716 17 17쪽
13 12화-혼란의 도가니탕 +1 24.08.25 729 17 15쪽
12 11화-운기조식 +1 24.08.24 760 18 16쪽
» 10화-이번 작전명은 +1 24.08.24 813 15 18쪽
10 9화-이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1 24.08.23 909 17 20쪽
9 8화-과거의 기억 +1 24.08.22 1,000 17 17쪽
8 7화-구했다. 나도. +2 24.08.21 1,120 19 16쪽
7 6화-귀동(歸洞) +1 24.08.20 1,149 20 16쪽
6 5화-빨리 죽어 +2 24.08.19 1,184 1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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