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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희 님의 서재입니다.

퇴물 살수는 이능으로 살아남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사바희
작품등록일 :
2024.08.17 16:31
최근연재일 :
2024.09.15 12:1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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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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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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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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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27화-협객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DUMMY



황촉으로 불을 밝힌 화려한 방.

흑갈방주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도와주게.”


상석에 앉아 있던 서른 줄의 관리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밤중에 찾아와서 이리 호들갑을 떠는 거요?”


그는 춘향현에서 가장 높은 관리인 지현, 여구진(呂句進)이었다.

그의 눈에는 귀찮음이 가득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주겠네. 당장 관병들을 본 방으로 보내 주게.”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흑갈방주를 보며, 여구진이 혀를 찼다.


“쯧. 형님. 아무리 제가 지현이라도 관병들을 움직이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오. 기록도 남겨야 하고. 일단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들어나 봅시다.”


여구진의 반응이 생각보다 뜨뜨미지근하자, 흑갈방주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축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낮에 이상한 놈들이 본 방의 행사를 방해했네.”

“지금 그런 걸로 관병을 움직이라는 말씀이시오? 그 정도는 형님이 알아서 해결을 하셔야지요.”

“당연히 그 놈들을 잡으러 보냈었네.”

“누구를요?”

“행동대장 황서랑을 보냈네.”

“그가 갔는데도 해결을 못 했다는 거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여구진에게 흑갈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은커녕 어깨가 부러진 병신이 되서 돌아왔네.”

“허! 그래서 어쩌셨소?”


여구진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얼마 전에 초대한 식객이 있지 않은가? 혈삼객이라고. 그자를 보냈네.”


흑갈방주의 말에 여구진이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그놈까지 보냈으면, 해결되었을 것 아니오?”

“놈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오긴 했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말이오?”


흑갈방주가 심각한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놈들을 잡아 온 줄 알았네. 그런데 혈삼객은 곤죽이 된 상태로 가마에 실려 있었네.”

“뭐, 뭐요? 그게 진짜요?”

“내가 자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구진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소?”

“수하들에게 공격을 명하고 바로 내뺐네. 그리고 바로 여기로 달려온 걸세.”

“놈들의 숫자가 많았소?”

“두 놈이었네.”

“고작 두 놈에게 당했다는 말이오?”


흑갈방주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에는 그 놈들 중에서 한 놈이 벌인 일인 것 같네.”

“얼마나 고수였길래 혈삼독귀를 곤죽으로 만들었다는 거요?”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느라 놈의 실력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네. 다만, 내 부하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네.”

“흐음······.”


여구진이 인상을 찡그린 채, 손톱을 물어 뜯었다.

섬서에서 혈사를 일으킨 혈삼독귀가 흑갈방에 의탁했다는 걸 눈 감아 주는 조건으로 그는 꽤 많은 뒷돈을 받았다.

애초에 혈삼독귀가 자신의 관할에 들어왔다고 해도 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 고수를 잡겠다고 관병을 보냈다가는 막대한 희생을 각오해야 했고, 그랬다가는 상부의 문책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흑갈방에서 먼저 나서서 뒷돈까지 챙겨주었으니,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꼴이었다.

그런데 혈삼독귀를 곤죽으로 만든 자가 나타난 것이다.


“대체 그자가 누구요?”

“나도 처음 보는 놈이었네.”

“설마 요즘도 협객 놀이를 하고 다니는 자들이 있었나······.”

“협객은 아닐걸세. 얼굴에 눈뜨고는 보기 힘든 흉터가 가득한 자였네.”

“흠······.”

“호, 혹시 마교의 고수가 아닐까?”


흑갈방주가 두려움이 담긴 목소리로 묻자, 여구진이 짜증을 냈다.


“강호에서 마교가 사라진 지가 얼마나 오래 됐는데, 마교 타령을 하는 거요?”

“아직 마교가 곤륜산 너머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 않은가?”

“놈들이 아직 살아 있다 하더라도 우리 대명(大明) 제국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중원을 넘볼 수는 없을 거요.”


여구진의 핀잔에 흑갈방주가 목을 움츠렸다.


“아, 알겠네. 어쨌든 관병들은 보내 줄 거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런 자들과 시비가 붙은 거요?”


여구진의 목소리에 노골적인 짜증이 묻어났다.

흑갈방주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놈들이 경월루에서 본 방을 욕했다고 했네. 마침 거기 있던 우리 방도가 놈들에게 항의했는데,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더군.”

“그 반대가 아니고?”

“······.”


자신 없는 얼굴이 된 흑갈방주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어찌 됐든, 한 번만 도와주게. 내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네.”


여구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비록 상대가 고수라 할지라도 이쪽은 관병이다.

관무불가침이라는 불문율이 있다 하지만, 일단 관병이 개입한다면, 무림인들은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어디까지나 이 나라의 주인인 천자의 명을 받는 것이 관이었고, 지금은 황권이 강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도와주면 흑갈방주에게 거금을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지금 돈이 필요했다.

이런 촌구석의 지현으로 머물기에는 야망이 너무 컸다.

아직 삽십 대 초반인 여구진은 중앙 정계에 진출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그것이 속으로는 쓰레기들이라고 여기는 흑도들과 호형호제 하면서 뒤를 봐주는 이유이기도 했다.

심각하게 일그러진 흑갈방주의 얼굴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여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관병을 내어 드리겠소.”

“······.”

“형님. 내 말 듣고 있소?”


자신이 부르는 데도 흑갈방주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집무실 구석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또 무슨 잡생각을 하고 있길래 대답이 없는 거요?”


여구진이 짜증을 내며 흑갈방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집무실 한쪽 구석에 만들어진 어둠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


여구진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질렀다.


“자, 자객이다! 거기 누구 없느냐!”


찢어지는 목소리가 퍼져 나갔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반응은 없었다.

당황한 여구진이 다시 소리를 지르려고 했을 때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인영(人影)이 여구진의 턱 밑에 피 묻은 박도를 갖다 댔다.


“소리 질러도 아무도 안 올 거야. 괜한 헛수고를 하다가 목이 잘리기 싫으면 조용히 하라고.”


여구진은 갑자기 아랫도리가 축축해 지는 것을 느꼈다.

턱 밑에 칼이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그건 칼을 쥔 자의 얼굴이 괴기스러울 정도로 흉측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렸는데요.”


뒤를 돌아보며 말하자, 방 구석에서 걸어 나오던 점로대가 혀를 끌끌 찼다.


“다음부터는 복면이라도 여분으로 가지고 다녀야겠군 그래.”


짖궂은 농담이었지만, 반박할 순 없었다. 제기랄.


“어이. 방주. 예상대로 여기 와 있었군.”


흑갈방주를 향해 손을 들어 줬지만, 놈은 굳어 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근본 없는 흑도라도 수하들을 칼받이로 내세워 놓고 도망치는 놈이 어딨냐? 그래도 두목이라면서?”


갈구는 와중에 흑갈방주가 허리에 찬 가위로 손을 슬그머니 가져가는 게 보였다.


“어이. 손 잘못 놀렸다가는 손모가지 날아간다?”


내 위협에도 불구하고 흑갈방주는 기어코 쌍가위를 뽑아 들었다.


-철컥!


능숙한 엿장수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움직임과 함께 쌍가위가 내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죽어라!”


음. 이걸 피해야 하나, 아니면 막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점로대를 믿어 보기로 했다.

그의 머리 위해 붉은 점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무조건 생문이군.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흑발방주의 다리 사이로 점로대가 발을 집어 넣었다.


-빠각!


다리를 거는 줄 알았는데,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흡!”


짧은 신음과 함께 흑갈방주가 다리를 잡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발목이 희한한 각도로 돌아가 있는 걸 보니 이미 부러진 것 같았다. 흑갈방주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어, 어디서 오신 고인이시오?”


지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줌을 지렸을지언정, 나름 분위기 파악은 했는지, 태도가 공손해져 있었다.

나는 박도 끝으로 지현의 턱을 툭 치며 대꾸했다.


“고인은 무슨. 방금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 자객이라고.”

“자, 자객이 대체 무슨 일로 여기를······.”


나는 손가락으로 흑갈방주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놈이랑은 언제부터 이렇게 막역한 사이였나?”

“······.”


입을 꾹 다무는 지현의 얼굴에 내 얼굴을 들이밀며 나직히 속삭였다.


“대답을 하지 않는 건 당신 자유지만, 지금부터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을 잘라 줄 거야.”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어 줬더니 지현의 젖은 바지가 더 축축해졌다.

이번 입사 전 사외 면접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나쁜 놈들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놈들보다 더 악랄하게 대해 주는 것 말고는 말이 통할 방법이 없다는 것.


“사, 삼 년 전에 처음 지현으로 부임했을 때부터요.”


다시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이 자동으로 나왔다.

이래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소리가 있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저놈의 악행을 눈감아주고 받아 먹은 뇌물은 어느 정도냐?”

“한 달에 은자 천냥씩 받았소.”

“그건 정기 상납일 테고, 다른 건?”

“두 달에 한 번씩 비단과 곡식을 받았소. 가끔씩 부탁을 들어주면 따로 금자를 받기도 했소.”

“완전 개새끼들이네 이거.”


목소리를 낮게 깔자, 지현이 목을 자라처럼 짧게 말았다.

그 모습이 더 한심해 보여, 나도 모르게 놈의 멱살을 잡았다.


”과거에 급제해서 지현이나 되었으면, 백성들이 어려움 없이 잘 살 수 있게 돌봐야 하는 거 아니냐? 저놈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먹는 놈들은 네가 나서서 잡아들였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이 개새끼야.”

“······맞소.”

“그걸 아는 놈이 그래? 남들보다 공부 좀 잘해서 얻은 권력으로 백성들을 살피기는커녕, 흑도 놈들의 뒤나 봐주면서 사리사욕을 취해? 너 같은 놈을 뭐라고 부르는 줄은 아나?”

“······.”

“대답 안 하냐? 손가락 하나 날아간다.”


나는 지현의 얼굴을 코 앞까지 당겨서 으르렁거렸다.

놈의 대답을 들으면 들을 수록 화가 치솟고 있었다.

마치 흑갈방의 연무장에서 느꼈던, 분노가 분노를 부르는 자가발전 상태가 재연되는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타 ,탐관오리······.”


-쫘악!


지현의 입에서 나온 탐관오리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놈의 귀싸대기를 날려 버렸다.

마지막에 힘 조절을 해서인지, 지현은 입술이 다 터졌을지언정, 기절은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기절했으면 더 못 갈굴 뻔했다.


“자. 탐관오리 나으리. 잘 들어.”

“데, 뎁!”


터진 입술 때문에 발음이 샜지만, 지현은 기합이 바짝 들어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 안 듣는, 특히나 이놈처럼 먹물임에도 나쁜 길로 빠진 놈들에게는 물리적인 지도가 가장 잘 통하는 법이다.


“지금부터 우리 탐관오리 나리께서 알고 있는 흑갈방의 죄목을 낱낱이 고한다. 실시.”

“······.”


탐관오리가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되려 하길래 오른손을 살짝 치켜들었더니, 만두처럼 부은 입술이 자동으로 열렸다.


“흑, 흑갈방은 저잣거리 상인들로부터 매달 보호세를 걷었습니다. 상납을 거부하거나 반항하는 자들은 장사를 못하게 깽판을 치거나 밤에 불을 지르는 등의 방법으로 쫓아냈습니다.”


나는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흑갈방주를 향해 혀를 차주고는 다시 탐관오리를 노려보았다.


“또.”

“흑갈방은 춘양현의 특산물인 잉어와 쌀, 포목을 매점매석하여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으로 팔았습니다. 또한, 양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을 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빚더미에 앉았고······.”


탐관오리의 입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행각까지 흘러 나왔다.

개중에는 흑갈방에서 빌린 고리대금 때문에 온 가족이 노예로 팔려간 일까지 있었다.

나는 죄목을 모두 털어 놓은 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탐관오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런 걸 다 알고 있었으면서······ 우리 지현 나리께서는 지금껏 뭘 하셨소?”

“사, 살려 주십시오.”


탐관오리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줄줄 흘리며 굽신거렸다.


“모든 건 다 저자, 흑갈방주, 저놈이 저지른 일입니다. 제가 나서서 사전에 바로잡지 못한 것은 죽어 마땅하나, 한 번만 선처해 주시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놈은 당장 참수하고 흑갈방 놈들도 모두 잡아 넣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


탐관오리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흑갈방주는 그의 사업 파트너를 쉽게 빠져나가게 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여가 놈아! 네놈이 어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 보호세를 올리라고 한 것도 네놈이고, 잉어를 독점하자고 한 것도 네가 먼저 제안하지 않았느냐? 고리대금을 해보라고 한 것도 너였다는 것을 잊었느냐! 그래놓고 뭐가 어째? 나를 참수하겠다고? 내가 참수를 당해야 한다면 네놈은 오체분시를 당하고도 쌀 놈이다!”

“닥쳐라!”

“네놈이나 닥쳐라!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두 사람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나와 점로대가 없었으면 이미 칼부림이라도 났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만.”


점로대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둘이 질러대는 고함소리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점로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이것이 심후한 내공의 힘이라는 건가?


어느새 흑갈방주와 지현도 상호 비방을 멈춘 상태.

겁에 질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차례로 내려다본 점로대가 혀를 차며 말했다.


“둘 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는가?”


차분한 점로대의 목소리는 마치 저승사자의 선언처럼 들렸다.

와. 어떻게 갑자기 저렇게 분위기가 바뀌지?

점로대의 말에 지현이 암담한 얼굴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쿵하고 찧었을 때.


-슛!


지금껏 줄곧 웅크리고 있던 흑갈방주의 품에서 뭔가가 쏘아졌다. 전갈의 독침 같은 것인가?

궤적의 끝에는 점로대의 미간이 있었지만, 나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따앙!


예상대로 경쾌한 금속성과 함께 흑갈방주가 날린 암기가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오. 글로만 보았던 탄지신통이 점로대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푹!

“컥!”


자신이 쏜 암기에 맞은 흑갈방주가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를 내더니, 다급하게 품속을 뒤졌다.

아무래도 해약을 찾는 것 같았는데, 그의 얼굴은 급속도로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참이나 해약을 찾던 흑갈방주가 품에서 비취색 자기병을 꺼내 들었다.

어둡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스쳤지만, 그의 몸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도, 도, 도와······.”


도와달라는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흑갈방주의 목이 아래로 푹 꺾인 순간, 비취색 자기병도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허무한 죽음이었지만, 연민의 감정은 티끌 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점로대의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가, 지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는데, 내가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사, 살려 주시오. 협객 나리! 아니! 살려 주시오. 대협!”


뒤로 물러나던 지현이 벽에 가로막히자, 큰 절을 하듯 넙죽 엎드리며 흐느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탐관오리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협객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나는······ 자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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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협객과 자객 +2 24.09.10 270 13 16쪽
» 27화-협객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1 24.09.09 287 14 16쪽
27 26화-밤새도록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1 24.09.08 308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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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당황과 분노, 그리고 공포 24.09.06 358 15 14쪽
24 23화-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네요 24.09.05 379 15 17쪽
23 22화-하늘을 죽인다 24.09.04 411 15 16쪽
22 21화-호의를 베풀어 주신 이유 24.09.03 414 14 16쪽
21 20화-뭐라고요? 24.09.02 447 15 13쪽
20 19화-삼계탕 24.09.01 492 13 14쪽
19 18화-점로대 24.08.31 536 16 20쪽
18 17화-개고기 잘하는 집 24.08.30 589 16 14쪽
17 16화-믿어라. 염라대왕 24.08.29 623 17 18쪽
16 15화-강해질 거다 24.08.28 672 19 14쪽
15 14화-비싼 거로 사 주십시오 24.08.27 695 19 14쪽
14 13화-코끝이 시큰해졌다 24.08.26 715 17 17쪽
13 12화-혼란의 도가니탕 +1 24.08.25 729 17 15쪽
12 11화-운기조식 +1 24.08.24 760 18 16쪽
11 10화-이번 작전명은 +1 24.08.24 812 15 18쪽
10 9화-이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1 24.08.23 908 17 20쪽
9 8화-과거의 기억 +1 24.08.22 1,000 17 17쪽
8 7화-구했다. 나도. +2 24.08.21 1,118 19 16쪽
7 6화-귀동(歸洞) +1 24.08.20 1,149 2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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