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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희 님의 서재입니다.

퇴물 살수는 이능으로 살아남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사바희
작품등록일 :
2024.08.17 16:31
최근연재일 :
2024.09.15 12:1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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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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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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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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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3화-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네요

DUMMY



점로대와 이대로가 객잔을 떠난 후, 왕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뭔 질문이 이렇게 많은 건지······.”

“꽤 날카로운 질문들이었어요.”


장태보의 말에 이현이 말했다.


“어르신이 저렇게까지 밑천을 다 까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생각이 아주 깊은 것 같긴 하네요.”


장태보가 맞장구를 치자, 이현이 왕충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 정도로 몸이 상했으면, 아무리 천살지체라고 해도 답이 없는 거 아니에요? 게다가 나이도 너무 많잖아요. 아예 다른 후보자를 찾아보는 게 낫지 않냐는 말이에요.”


왕충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 친구의 몸이 심각할 정도로 상한 상태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몸보다 더 중요한 건 올바른 정신과 무엇에도 굴하지 않을 심지라고. 우리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들 들었을 거야. 아무리 평소에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는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주저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이 친구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어. 그건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냐. 평소에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올 수 있는 대답이었으니까.”

“맞아요. 저는 왕숙 말에 동의해요.”


장태보가 끼어들었다.


“그건 사전에 준비했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말이 아니었어요. 숨을 쉬는 것처럼, 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요.”


칠정객잔 식구들 중에서 사람을 상대한 것만 따지자면 장태보가 점로대에 이어 두 번째로 경험이 많았다.

이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르신은 정말 그 사람을 후계로 삼을 생각일까요?”


왕충이 턱을 괴며 말했다.


“현이가 걱정하는 게 뭔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내가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얼마나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하지만 말이야······. 어르신에게 남은 남은 시간이 이제 얼마 없어.”


순간, 이현과 장태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 졌다.

슬픈 눈으로 두 사람을 돌아본 왕충이 말했다.


“그보다. 어르신이 이미 봐 버렸다고 하시더라.”

“뭘요?”

“그 친구 머리에 찍힌 홍점(紅点)을.”


*


점로대가 반 나절을 걸어 나를 데려간 곳은 강가에 있는 삼 층짜리 식당이었다. 이런 걸 반점이나 주점, 주루 등으로 불렀던 것 같은데, 실제로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 입구에는 경월루(鏡月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아마 이곳이 점로대가 말했던 녹두활어 맛집인 모양이었다.


똘똘해 보이는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올라간 이 층은 꽤 넓었는데, 서너 무리의 사람들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 층 창가 자리에 앉자, 점로대가 주문을 했다.


“녹두활어 한 접시와 유채 볶음, 찐만두 한 접시를 주게.”

“네. 손님. 술은 안 하십니까?”

“이과두주(二鍋頭酒) 한 병 주게.”


이 시대에도 이과두주가 있었구나. 이과두주는 가끔 중국집에서 회식할 때 싼 맛에 마셨던 술이었다. 실망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소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일 층으로 내려갔다.


“여기 경월루는 근방에서 가장 고급 주루일세. 회수(淮水)의 지류인 저 현강(絃江)에서 잡히는 잉어가 이곳 춘양현의 특산품인데, 그 잉어로 만든 녹두활어는 경월루가 자랑하는 최고급 요리라네.”


나는 칠정객잔을 나올 때, 왕충의 적극적인 권유로 줄곧 쓰고 있는 챙 넓은 죽립을 슬쩍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렇게나 유명한 음식이라면 이과두주보다 두강주 같은 고급 술이 더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이런 고급 주루에 이과두주 같은 싸구려 술이 있다는 것도 의아하긴 합니다만.”

“그건 자네가 몰라서 하는 말일세.”

“뭘요?”

“이 집 녹두활어는 근방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 그리고 아주 비싸다네. 두강주 같은 명주와 함께 먹었다가는 음식 값을 감당하지 어렵지.”

“음식이 아무리 비싸다 한들 그 정도나 하려구요.”

“차차 알게 될 걸세.”


점로대의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값을 감당하기 힘든 비싼 음식이 있다 한들, 돈이 없으면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아무래도 이곳에 녹두활어와 관련된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채볶음과 이과두주 먼저 나왔습니다.”


점소이가 내온 유채볶음은 신선해 보이지 않았다. 이과두주를 담은 술병도 역시나 허름했다.


“일단 한잔 받게.”


나는 점소이가 내려놓은 술잔으로 이과두주를 받았다. 고량주 특유의 강한 주향이 날 법도 한데, 의외로 주향이 옅었다.

자신의 잔을 채운 점로대가 이과두주를 들이키는 것을 본 후, 나도 따라 마셨다.


“음······.”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는 맛이었다. 고급 주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맛 없는 술이었다. 이 술에 비하면 칠정객잔에서 삼겹살과 함께 마셨던 두강주는 최상품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술에 물을 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나온 나들이라 들떴던 마음이 찝찝하게 가라앉았다.


“술맛이 어떤가?”

“별로입니다.”


내 솔직한 대답에 점로대가 묘한 미소와 함께 말 없이 강 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 점소이가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여기 녹두활어와 찐만두 나왔습니다.”


녹두활어는 튀긴 잉어 위에 각종 채소와 녹두 양념을 뿌려 만든 요리였다.

전생 한국인인 나에게는 생소한 요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엄청 고급스럽거나 귀한 요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들게.”


점로대의 권유에 나는 젓가락으로 녹두활어를 떠먹었다.


“음.”

“어떤가?”

“그냥 그렇습니다.”


실제로 녹두활어는 평범한 맛이었다.

이게 왜 싸구려 술을 먹어야 할 정도로 비싼 고급 요리 취급을 받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녹두활어가 고급 요리 같아 보이는가?”

“솔직히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 입맛이 이상한 겁니까? 왕충의 개고기죽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만.”


내 목소리가 좀 컸는지,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내게 시선을 보내는 것 같았다.

내 대답을 들은 점로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를 보게.”


점로대가 가리킨 곳에는 고깃배 한 척이 포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고기를 잡아 오는가 보군요.”

“잉어잡이 배일세.”

”네.”


내가 시선을 거두려고 하자, 점로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계속 보고 있게.”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점로대가 시키는 대로 다시 시선을 포구 쪽으로 돌렸다.

잉어잡이 배가 포구에 정박하자, 주변에 있던 건장한 사내 서넛이 배를 향해 다가갔다.

잡아온 물고기를 내리는 걸 도와주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사내들이 어부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부는 낭패를 당한 사람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했고, 사내들은 어부를 때리려는 것처럼 손을 치켜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어부들과 주민들은 주눅 든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들이 누구길래 갑자기 어부를 겁박하는 겁니까?”


황당함을 금할 길이 없어 물었는데, 점로대는 고개를 살살 저으며 손가락으로 포구를 가리켰다.

어부는 결국 갑판 위에 놓여 있던 광주리 두 개를 사내들에게 빼았겼다.

사내들은 엽전 두어 개를 갑판에 던지더니 시시덕거리며 포구에서 멀어졌다.

어부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참이나 주저 앉아 있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백주대낮에 저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겁니까?”


점로대가 내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것이 바로 이 경월루의 녹두활어가 비싼 이유일세.”

“저자들이 저런 식으로 잉어를 강탈해가기 때문입니까?”

“그렇네. 이곳에서는 저들만이 잉어를 유통할 수 있지.”

“저자들은 누굽니까?”

“흑갈방(黑蝎幇). 춘양현을 장악하고 있는 흑도(黑道)일세.”


무협에서 흑도는 백도(白道)와 대치되는 의미로, 현대로 치면 조직폭력배와 비슷한 개념이다. 흔히들 광의적으로 보면 흑도와 사파가 한 묶음, 백도와 정파가 같은 다른 한 묶음으로 분류된다.


“흑도 방파가 이런 대낮에 저렇게 활개치고 다니는 게 가능한 겁니까?”


황당함을 담은 내 물음에 점로대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러고 다녀도 제지할 사람이 없으니,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거지.”

“여기는 관부가 없습니까?”


점로대가 고개를 살살 저었다.


“이 마을의 지현(知縣)이 흑갈방의 문주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일세.”

“하!”


황당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건 마치 조폭 두목과 경찰서장이 호형호제하는 것과 다른 바 없는 일이었다.


“백도 문파는요?”

“현령이 뒷배를 봐 주는데, 백도문파가 기를 펼 수나 있었을 것 같은가? 정파 출신의 속가 제자가 차린 무관이 하나 있었는데, 이 동네를 뜬지 몇 년 되었을 걸세.”

“무림맹은요? 불온세력 어쩌고도 하는 자들이 이런 일을 두고 보지는 않겠죠?”

“안타깝지만, 이 동네에 무림맹 지부는 아직 들어서지 않았네. 현령이 건재한 동안엔 무림맹이 지부를 만들고 싶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일 테지.“

”강호를 주유하는 협객들은요? 그런 협객들이 이곳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좌시하지 않았을 텐데요?”


점로대가 실소를 흘렸다.


“강호에 협객이 그렇게 많지도 않을 뿐더러, 혹여 협객이 이 마을을 지나갔다고 해도,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속속들이 알기에는 한계가 있을 걸세.”


점로대의 말대로라면, 이곳 춘양현의 민초들은 흑갈방의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명경루의 녹두활어도 옛날에는 이렇게 비싸지 않았네. 그런데 흑갈방이 이 동네를 장악한 이후부터는, 매년, 아니, 매달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지. 현강에서 잡아 오는 모든 잉어는 물론이고 웬만한 식재료는 흑갈방이 독점해서 고가에 팔고 있기 때문일세. 문제는 녹두활어의 가격이 비싸지면 비싸지는 만큼 흑갈방이 걷어 가는 상납금의 액수도 커진다는 것이라네.”

“아주 개새끼들이군요.”


흥분해서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그때 갑자기 이 층 객청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반대편 창가에 앉아 있던 건장한 사내 셋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님들 중에 흑갈방과 관계가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말은 이미 입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예상대로 사내들 중에서 뺨에 세로로 긴 칼 자국이 나 있는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걸음걸이가 느릿한 것이 거만하게 보이려고 잔뜩 힘을 준 모양새였다.


“어이. 거기.”


녀석이 우리 쪽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불렀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인상이 흉악했다. 인상만 본다면 무림 공적 명단에 오른 마두라 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흉터로 뒤덮인 평살수 십일 호의 얼굴에는 비할 바 못하지만.


“무슨 일이지?”


내가 앉은 채로 대꾸하자, 녀석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들이길래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가?”


생긴 것 만큼이나 걸걸한 입담.

나는 팔짱을 낀 채, 죽립 안에서 눈을 굴려 녀석을 노려보았다.

과연 이자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시골 흑도 방파에 소속된 자라면 무림맹 주작단의 조원들보다 강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강적을 만나면 늘 반응했던 목덜미의 저릿저릿함도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녀석은 둘 중의 하나였다. 내 몸이 반응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하수이거나, 종남파의 이대제자 급의 고수이거나.


나는 일단 점로대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짐짓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와 칼 자국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와. 이 영감님. 연기가 수준급이네.

점로대의 무위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구도문이라는 살문의 살수라면 이런 허접한 파락호는 찜 쪄먹고도 남을 정도의 실력자여야 했다.

만에 하나 무공이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하다고 하더라도, 일전에 종남파를 물러가게 만들었던 배짱과 기백의 십분의 일만 발휘하더라도 이런 놈은 선 채로 오줌을 지리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점로대가 능청스럽게도 시골 촌로처럼 잔뜩 겁 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무래도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보고자 하는 목적인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무협지에서 자주 보던 상황 같아서 나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 나왔다.


“훗!”


실소를 터트린 순간, 칼 자국 녀석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날린 비웃음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런 개 호로새끼가!”


녀석이 앉아 있는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상체를 뒤로 젖혀 피했다. 이쯤 되면 목덜미의 찌릿함이나 느껴지거나 붉은 점이 보일 법도 한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무림 공적 뺨치게 험악하게 생긴 이 놈은 이 세계에서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자들 중에서 가장 약한 자였다.

나는 휘둘러진 녀석의 팔꿈치를 움켜잡았다.


-우득!


손에 내공을 주입해서 인지 팔꿈치에서 뼈마디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너무 쉬운데.


“끄악!”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녀석의 정강이를 향해 내공을 주입한 발끝을 찔러 넣었다.


“커억!”


녀석이 이번에는 허리를 접으며 바닥에 풀썩 고꾸라지려 하길래 왼손으로 머리채를 붙잡고는 오른손으로 녀석의 뺨따귀를 후려 갈겼다.


-쫘악!


찰진 소리와 함께 칼 자국이 난 뺨이 반대로 돌아가고.

바람 빠지는 것처럼 괴상한 신음을 내뱉은 녀석의 머리가 아래로 푹 꺾였다.

혼절한 것이다.

와. 이 정도로 쉽게 기절한다고?

생긴 것과는 너무 다른 허약한 놈의 맷집에 어이 없는 실소가 흘러 나왔다.


“ 뭐가 이렇게 매가리가 없어? 흑도면 깡다구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물음에 연기대상 후보 점로대가 빙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흑도건 백도건 원래 분위기 험악하게 만드는 놈들 치고 실력 있는 놈이 없는 법일세.”


점로대가 턱짓으로 칼 자국 녀석이 앉아 있던 탁자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게. 눈치 빠른 녀석들은 이미 내빼지 않았나?”


점로대의 말은 진짜였다. 분위기 상으로는 칼 자국보다 상급자일 것 같던 두 놈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동료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데 도망친다고요? 이자들 정말 흑도 맞습니까? 뒷골목 왈패들도 이 정도로 의리가 없진 않을 텐데요.”


생각하면 할 수록 한심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를 안내했었던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손님들, 어서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요.”

“왜 그러느냐?”


내 물음에 점소이는 쭈뼛거리며 즉답을 하지 못했는데, 대답은 점로대에게서 나왔다.


“방금 내뺀 녀석들이 그냥 도망만 쳤을 거라고 생각하나?”

“패거리를 불러 올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자네 실력을 봤으니, 행동대장 급은 데려 오지 않을까 싶네만.”


점로대의 대답에 점소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며칠 전에 흑갈방이 데려온 식객이 있습니다. 섬서에서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낭인인데, 흑갈방주가 거금을 주고 초빙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데리고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요.”


점소이의 얼굴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 걱정이 자신이 받았던 손님들의 안위보다는 싸움이 벌어지면 망가질 주루의 집기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얼마냐?”


나는 가지고 있는 돈이 없지만, 여기서 나가려면 음식 값은 치르고 나가는 것이 인지상정.


“은자 두 냥입니다요.”


은자 두 냥의 값어치가 얼마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점로대의 목구멍에서 단말마 비슷한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아 하니 무척이나 비싼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또 가격이 오른 것이냐?”

“네. 잉어 값이 매 달 올라서, 저희도 별 수가 없었습니다요.”


점소이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손바닥을 앞으로 슥 내밀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녀석이었다.

점로대가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전낭을 열어 은자 두 냥을 건넸다.


“안녕히 가십시오!”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점소이를 뒤로 하고 경월루를 나섰을 때.

경월루 앞에 만들어진 공터로 너머로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칼자국과 함께 밥을 먹던 사내 둘이 앞장 섰는데, 그의 뒤에는 팔짱을 낀 가슴팍에 장검을 검집 째 꽂은 회색 장삼 사내가 뒤따르고 있었다.

족제비를 닮은 얼굴에는 귀찮음이 덕지덕지 뭍어 있었지만, 나는 그 사내를 본 순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목덜미에서 찌릿한 감각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놈일까요? 그 식객이라는 자가?”


내 중얼거림에 점로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걸세. 인상으로 봤을 때, 저자는 흑갈방의 행동대장 황서랑(黃鼠狼)일 걸세.”

“진짜 이름도 누런 족제비인 겁니까? 성질 더럽게 생겼네요.”

“잘 봐두게. 저런 자들이 바로 개백정이 상대해야 하는 자들이니까.”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네요.”


내가 히죽 웃으며 받아치자, 점로대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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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협객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1 24.09.09 287 14 16쪽
27 26화-밤새도록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1 24.09.08 308 11 14쪽
26 25화-그 잡놈이 대체 누굽니까? 24.09.07 352 12 17쪽
25 24화-당황과 분노, 그리고 공포 24.09.06 359 15 14쪽
» 23화-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네요 24.09.05 380 15 17쪽
23 22화-하늘을 죽인다 24.09.04 412 15 16쪽
22 21화-호의를 베풀어 주신 이유 24.09.03 414 14 16쪽
21 20화-뭐라고요? 24.09.02 447 15 13쪽
20 19화-삼계탕 24.09.01 493 13 14쪽
19 18화-점로대 24.08.31 536 16 20쪽
18 17화-개고기 잘하는 집 24.08.30 590 16 14쪽
17 16화-믿어라. 염라대왕 24.08.29 623 17 18쪽
16 15화-강해질 거다 24.08.28 672 19 14쪽
15 14화-비싼 거로 사 주십시오 24.08.27 695 19 14쪽
14 13화-코끝이 시큰해졌다 24.08.26 716 17 17쪽
13 12화-혼란의 도가니탕 +1 24.08.25 729 17 15쪽
12 11화-운기조식 +1 24.08.24 761 18 16쪽
11 10화-이번 작전명은 +1 24.08.24 813 15 18쪽
10 9화-이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1 24.08.23 909 17 20쪽
9 8화-과거의 기억 +1 24.08.22 1,001 17 17쪽
8 7화-구했다. 나도. +2 24.08.21 1,120 19 16쪽
7 6화-귀동(歸洞) +1 24.08.20 1,150 2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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