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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희 님의 서재입니다.

퇴물 살수는 이능으로 살아남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사바희
작품등록일 :
2024.08.1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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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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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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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11화-운기조식

DUMMY



두 사람이 나간 뒤, 나는 동굴 바닥에 앉았다.

백무상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을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먼저 가부좌를 틀어 보기로 했다.

양반다리처럼 두 다리를 꼬고 두 발바닥이 하늘을 보게 하는 자세가 가부좌라는 건 무협지 몇 권 읽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내게는 생전 처음 해 보는 자세였지만 의외로 쉽게 다리가 고였다. 현실 세계의 나였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십일 호의 고관절과 무릎은 생각보다 유연했다. 그래도 한 때 잘 나갔던 살수의 몸이란 이런 것인가?


내가 가부좌를 튼 이유는 한 가지. 우두를 상대하며 느꼈던 그 반신욕 같은 느낌을 다시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운기조식(運氣調息) 해 볼 생각이다.


운기조식은 문자 그대로 기를 움직이고 호흡을 조절한다는 말인데, 일반적으로는 내공심법이라는 무공을 바탕으로 내공 또는 진기(眞氣)를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내공심법은 소위 토납법(吐納法)이라고 부르는 호흡법의 형태로 몸에 쌓인 탁기를 배출하고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단전에 쌓는 이른바, 축기(蓄氣)의 방법이라 하겠다.

대부분 각 문파마다 고유의 비전 내공심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무공을 사용하게 된다.

무협 세상에서 잘 나가는 문파에는 저마다 그들을 대표하는 내공심법이 있다.

소림사의 금강반야신공, 무당파의 양의무극신공, 화산파의 자하신공이나 마교의 천마신공 같은 것들 말이다.


“스읍······ 후우······.”

······.

“후우웁······ 푸후우······.”

······.

“스읍. 스읍. 후우. 후우.”

······.

“에이 시펄.”


나는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튼 상태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족히 한 시진 가량을 토납법 흉내를 내는 중이었는데, 야속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숨과 날숨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며 잠시라도 끊어지지 않게 이어 보기도 했고, 아예 중간에 숨을 멈춰 보기도 했다. 급기야는 마라톤 선수들 호흡법이라는 습습후후도 해봤다.

두 손을 포개 단전 앞에도 놓아 보고, 불상처럼 양손을 엄지와 검지만 붙인 채로 무릎 위에도 놓아 봤다.

하지만 내공을 느낀다거나 단전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경험 따위는 찾아오지 않았다. 애꿎은 숨만 가빠졌다.


운기조식의 운자는커녕, 토납법이라는 것 자체가 뭔지도 모르는 나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어릴 때 단전호흡이라도 배워 두었다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잡생각이 들었지만, 애초에 나는 십일 호가 어떤 내공심법을 익혔는지조차 모른다.

도가니에 막대한 무리를 초래하는 자세로 주저앉아서 호흡 속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운기조식이 가능할 리 만무한 것이다.

솔직히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기에 실망할 일은 아니었지만,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짜 난이도 빻았네.


“흠······.”


계속 짜증만 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일단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대한민국 속담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까딱 잘못했다가는 닷새 뒤에 진짜 돌아가실 수도 있기 때문에 태평하게 늘어져 있을 수도 없었다.

첫 걸음은 우두와의 비무에서 느꼈던 그 반신욕 느낌과 실 같은 기운을 다시 포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렇다고 다시 우두를 불러다가 솥뚜껑으로 처맞을 수는 없는 일.

일단은 최대한 그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우두의 솥뚜껑 공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느껴졌던 찌릿한 느낌. 마치 감전된 듯한 그 느낌과 함께 자동적으로 회피 동작이 펼쳐졌고, 그와 동시에 우두의 어깨에 떠오른 붉은 점을 찔러 갔다.

내가 펼친 일련의 동작은 솔직히 회사원이었던 나에게는 전광석화 같이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상대는 훨씬 더 빨랐다.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리는 것으로 내 손가락 찌르기를 피한 우두는 오함마에 버금가는 왼쪽 팔꿈치로 내 머리를 찍어 왔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었다. 설마 우두가 내 머리를 터트릴 정도로 세게 때리진 않을 테지만, 그 동작은 팔을 내어주더라도 머리를 보호하겠다는 본능에 따른 반응이었다.

바로 그때, 예의 그 반신욕 느낌이 났다. 그와 동시에 실처럼 가는 기운이 오른발을 향해 달려 나갔고, 나는 마치 미국 농구 선수들처럼 높이 점프했다.

음. 이 세계에서 쓰기에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표현이긴 하네.

뭐 여하튼 나는 공중으로 뛰어 올라 오함마를 피한 것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우두의 어깨를 찔렀던 상황.

만약, 발을 향해 뻗어 갔던 실 같은 기운이 내공이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기운을 손가락에 실었다면 우두를 제압할 수 있었을까?


나는 가부좌를 튼 채로 우두와의 비무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복기했다.

어떻게든 반신욕 느낌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결국 이미지 트레이닝.

솥뚜껑과 오함마를 피하는 장면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무수히 반복되었을 때.

색다른 느낌이 찾아왔다.

그건 지금까지 겪었던 감전이나 반신욕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마치 내 몸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

아니. 육신은 존재하고 있었으나, 영혼이 육신의 바깥으로 빠져나온 듯한 경험.

이런 걸 유체이탈이라고 부르는 건가?

나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주변은 온통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상태였는데,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나는 가사상태에 빠진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건 마치 우주의 한 가운데에 내가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내가 죽어서 영혼이 육신에서 분리된 것이 아닌가 하고 덜컥 겁이 났는데, 미약하게나마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아 하니, 죽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와. 식겁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때였다.

내려다보고 있던 내 육신에 일어난 변화에 나는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등을 말고 웅크리고 있는 내 몸의 중심부. 정확하게는 배꼽에서 손가락 하나 정도 아래, 정확히 단전이라고 부르는 위치에 예의 그 붉은 점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저게 저기에 있는 거지?

저건 상대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 아니었나?

흠. 내공을 쓸 수 없는 몸이니 단전에 저게 찍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일인가?


틀린 말이 아닌 거 같아서 살짝 납득이 될 것도 같았는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저게 정말 약점을 보여주는 거라면, 왜 머리에는 찍혀 있지 않는가?

정기적으로 해약을 먹지 않으면 뒈지거나 백치가 되는 그 빌어먹을 고독이 망가진 단전보다 더 심각한 약점 아닌가?

말을 잃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됐던 심맥이나 끊어진 혈맥 또한 약점으로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저 몸뚱아리는 시뻘건 점으로 뒤덮여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어째서 유일하게 단전에만 저게 찍혀 있는 것일까?

순간, 나는 저 붉은 점이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만약 저게 약점이 아니라, 내가 살 수 있는 길, 무협식 표현을 빌리자면 생로(生路)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문득 한 가지 가정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설마 저거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단전에 찍힌 붉은 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응?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변화였다. 저게 또 무슨 조화를 부리려는 건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때였다.


‘!!!’


또 하나의 붉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배꼽과 명치 사이, 흉터로 뒤덮인 십일 호의 복근 중앙에 떠올라 있었다.

설마 저거······?

순간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 가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세 번째 점이 나타났다.

그건 젖꼭지 사이. 우리가 명치라고 부르는 곳, 내 무협 지식으로는 아마 중단전에 해당하는 곳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내 시선은 이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네 번째 점이 쇄골의 정중앙에 찍혔고. 다섯 번째 점은 입술 밑에 찍혔다.


저건 혈자리였다.

무협 세상에서 혈도(穴道)라고도 부르는 혈자리는, 사람을 강시처럼 뻣뻣하게 마비시키는 마혈(麻穴), 찍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사혈(死穴), 말을 못하게 만드는 아혈(啞穴), 기절시키는 수혈(睡穴) 등등 종류가 실로 다양했다.

다만, 무협지를 수백 권을 읽은 나도, 그 혈자리들이 실제로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른다. 어디까지나 동양 의학을 베이스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것일 테니까.

그런데 내 눈으로 직접 혈자리에 찍혀 있는 붉은 점들을 보고 있다니.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십일 호의 몸에는 더 많은 점들이 찍히고 있었다.

정수리에서 시작해 등뼈를 타고 번져 가는 점들. 마지막으로 꼬리뼈 부근에 나타난 점은 심지어 어깨와 팔, 다리, 손과 발끝까지 뻗어나갔다.

마치 컴퓨터로 3D 모델링을 하는 것처럼 전후좌우, 아래위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붉은 점을 떠올리고 있던 십일 호의 육체가 마침내 멈춰 섰을 때.

아무 것도 없는 암흑 속에 홀로 떠 있는 상태로, 몸의 전면과 후면에 찍힌 붉은 점들은 마치 야간 비행을 위한 활주로처럼 순서대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신기한 광경을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나는, 이제는 끝없이 진동하고 있는 단전의 붉은 점을 향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꿈틀.

순간, 붉은 점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반응을 보이더니 더욱 붉게 빛을 뿜어냈다.

나는 십일 호의 육신을 향해 앞으로 뻗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하나로 모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에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가볍게 감싸쥔 채, 나는 하나로 모은 손가락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붉은 점이 내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이게 진짜 된다고?


붉은 기운은 점멸하는 활주로를 따라 올라가며 점점 더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운기조식이 이런 식으로 가능한 거였나?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어쨋든 수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만든 결과라 생각하니 뭔가 뿌듯한 자긍심 같은 것도 조금 느껴졌다.

물론 다른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내 노력으로 어떻게든 운기조식 비슷한 걸 하고 있다는 거다.


명부동의 늙다리 평살수 십일 호는 무협 세계관에서 기피 대상 1, 2위를 다투는 3D 직종 종사자에, 얼굴은 흉터 투성이였고, 말을 잃은 걸로도 모자라 단전까지 망가진 비참한 운명의 캐릭터였다.

그런데 빙의인지 전생인지 뭔지, 어찌됐든 내가 십일 호의 몸으로 들어온 이후, 그는 잃었던 말을 되찾았고, 이제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운기조식을 하며 망가진 혈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십일 호가 무공을 되찾게 된다면?

명부동의 봄이 성공할 확률도 조금은 더 올라갈 수 있을 터였다.


난이도 빻았다는 말은 취소하려다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취소는 살아남고 난 뒤에 할 생각이다.


*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다면, 역으로 큰 기회가 되어 돌아온다는 뜻이다. 아마 손자병법에도 비슷한 말이 나올 것이다. 아님 말고.

어쨌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열두 척의 배로 열 배가 넘는 왜놈들을 때려 잡고 왜란의 판세를 완전히 뒤집은 불멸의 이순신 장군 같은 경우 말이다.

다른 건 당장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열두 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으로 향하는 충무공의 심정으로 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 등 뒤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흑의를 입은 평살수들이 서 있었고, 그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는 회의를 입은 일꾼들도 모여 있었다. 최소한의 경계 병력을 제외하고는 명부동의 인원들이 죄다 모인 느낌이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벽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동주나 사대 사자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나를 데려온 총관만이 공손한 자세로 벽 아래에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총관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끄덕였을 때였다.


“많이도 모였군.”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벽면에 난 다섯 개의 구멍 중, 중앙에 있는 구멍이었다.

그곳에서 걸어나온 그림자는 우두보다 덩치는 작았지만 머리통은 조금 더 긴 외팔이 사내였다.

그는 마면이었다.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제외하고는 십일 호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말대가리가 나를 보더니 히죽 웃었다.


“또 무슨 책 잡힐 짓을 한 거냐?”


내 눈으로는 처음 보는 마면이었지만, 십일 호의 기억을 엿보았기 때문인지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어깨를 으쓱거린 나는 과거의 기억을 참고해 일부러 건들거리며 대꾸했다.


“다시 말을 하게 됐다고 이 지랄을 떠네.”

“이런 미친! 너 이 새끼, 진짜 말을 되찾았구나!”


좀 험하긴 했지만, 마면의 말은 우두의 것보다는 훨씬 더 알아듣기 쉬웠다. 그의 말투에도 십일 호를 향한 호감이 담겨 있었다.

마면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여 줬을 때였다.


“저렇게 유창하게 말을 할 줄 알면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구나. 음흉한 놈.”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거북한 목소리와 함께 가장 오른쪽에 난 구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저놈이 흑무상이군.

흑무상은 그 이름에 걸맞은 시커먼 낮빛을 가진 사내였다. 십일 호와 비슷한 연배처럼 보였지만, 낮빛이 너무 시커매서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목구비의 생김새로 보아, 흑인은 아닌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작은 키와 짙은 쌍커풀, 펑퍼짐한 콧망울을 가진 것이 동남아 쪽 피가 섞인 게 아닌가 싶었다.

무협 세상에서 금방이라도 ‘동주님 나빠요’라는 말을 뱉을 것 같은 면상이라 살짝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저놈은 동주, 백무상과 한통속, 즉, 나를 죽이고자 하는 놈이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노골적인 적대감을 담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흑무상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찬 마면이 물었다.


“우두는 어디 간 거야?”

“여깄다.”


동굴이 울리는 대답과 함께 우두가 자신의 거처에서 걸어 나왔다.

그가 마면의 옆까지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자, 새삼 우두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느껴졌다. 마면은 나보다 한 뼘은 컸지만, 우두는 그런 마면보다 두 뼘은 더 컸다.


“언제?”

“오늘 아침에 도착했다.”


마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우두는 나를 힐끔 바라보고는 총관에게 물었다.


“동주는?”

“곧 나오시겠지요.”


총관의 대답이 떨어짐과 동시에 백무상의 음침한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동주님께서 나오신다. 모두 예를 갖추도록!”


내공을 담은 외침이 동굴 안에 퍼져나갔다.

등 뒤에 있는 평살수와 일꾼들 쪽에서 긴장이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동주의 존재는 존경과 선망이 아닌 위압과 두려움이었다.

회사에서 사장단이나 임원들이 대부분 그러한 것처럼.


이 층 구멍 밖에서 흰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백무상의 재수 없는 면상이 나타나고, 뒤를 이어 붉은 장포를 걸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나이는 삽십 대 초중반으로 보였는데,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에 왠지 느끼한 인상을 주는 얼굴은 십일 호의 기억에서 보았던 전대 동주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녀석은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주의 옆에 있던 백무상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명부회를 시작한다!”


나는 백무상과 동주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작전명, 명부동의 봄을 시작할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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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협객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1 24.09.09 287 14 16쪽
27 26화-밤새도록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1 24.09.08 308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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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당황과 분노, 그리고 공포 24.09.06 359 15 14쪽
24 23화-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네요 24.09.05 379 1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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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뭐라고요? 24.09.02 447 15 13쪽
20 19화-삼계탕 24.09.01 493 13 14쪽
19 18화-점로대 24.08.31 536 16 20쪽
18 17화-개고기 잘하는 집 24.08.30 590 16 14쪽
17 16화-믿어라. 염라대왕 24.08.29 623 17 18쪽
16 15화-강해질 거다 24.08.28 672 19 14쪽
15 14화-비싼 거로 사 주십시오 24.08.27 695 19 14쪽
14 13화-코끝이 시큰해졌다 24.08.26 716 17 17쪽
13 12화-혼란의 도가니탕 +1 24.08.25 729 17 15쪽
» 11화-운기조식 +1 24.08.24 761 18 16쪽
11 10화-이번 작전명은 +1 24.08.24 813 15 18쪽
10 9화-이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1 24.08.23 909 17 20쪽
9 8화-과거의 기억 +1 24.08.22 1,000 17 17쪽
8 7화-구했다. 나도. +2 24.08.21 1,120 19 16쪽
7 6화-귀동(歸洞) +1 24.08.20 1,149 20 16쪽
6 5화-빨리 죽어 +2 24.08.19 1,184 1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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