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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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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8
추천수 :
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6.1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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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오랜만에 온 문자

DUMMY

한 달 후.


그동안 한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우리가 작업하던 종목을 이제는 남대문에서 대신 열심히 작업해주고 있으니, 이쪽은 그냥 매도할 날만 기다리면 되었던 것.


하지만 마냥 여유롭게 기다린 건 아니었다.

기한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


작업 초반 ‘과연 놈들이 속아 넘어갈까?’라는 의구심은 이제 ‘과연 기한 내에 도달할 수 있을까?’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기한을 2주일 남긴 오늘.


아침부터 크게 요동치는 비*산업의 주가.

가파르게 오르더니 오후 장에 이르러 드디어 4만 원을 돌파했다.


[비*산업]

[현재가: 40,500원 ↑22% 상승.]


남대문이 주구장창 매집해서 한 달 반 만에 1만 8천 원대였던 주가를 4만 원대까지 끌어올렸다. 계획대로 된 게 기뻐 놈들이 감사할 정도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역시 김막수.

오늘까지의 수익률을 보고받고는 평소답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괴물 수고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그래.”


괴물!··· 내가 그의 1, 2차 미션을 통과한 후로 놈으로부터 자주 들은 말.

이제는 그자만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었다.


“괴물 축하한다!”


이곳에서 나의 호칭이 그동안 편의점에서 어느새 괴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자못 겸손하고 진지한 척 그들에게 말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럼에도 들리는 사람에 따라서는 내가 마치 이 세력의 설계자인 양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슬슬 매도를 준비할 때입니다.”


회사에서 이 종목에 들어간 자금에 대한 수익률이 현시점으로 약 500%. 그래서 총평가금액은 대략 2,500억 원.

그러니 지금 당장 그대로 팔 수만 있다면 목표를 달성하는 거였다.

그러나 2,500억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한꺼번에 팔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해당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올라갔을 때 서서히 분할매도를 해야 한다.


“그건 나도 알아.”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던 설계자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는 나만큼이나 조바심을 갖고 한 달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이제야 안심이 됐는지 늘 HTS만 쳐다보며 줄담배를 피우던 자가 어느 순간 담배 대신 커피를 마시더니 요즘은 콧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까를 걱정하면서.


“이제부터는 매매팀 역할이 중요하다. 상대가 눈치 못 채게 적절히 매도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이곳의 설계자는 너희들이 괴물이라 부르는 저 애송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 보였다.

김막수의 신뢰를 듬뿍 받는 내가 혹여 돈 욕심으로 자신의 자리를 탐하기라도 하는 거처럼.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 세력에게 죽을 고비를 당했던 자가 지금은 이 세력의 설계자 자리를 탐하다니···.


나는 문득 궁금했다.


‘이놈들에게 당한 개미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주식으로 패망한 자의 아들이다.

그런 내가 세력이 되어 누군가를 망하게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복수를 하면 했지···.



***



다시 1주일 후.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개인 계좌를 확인하는 횟수 또한 늘어났다.

그리고 이 라스트인베스트라는 곳에서 화장실만큼 내 계좌를 확인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없었다.

작업 종목과 동일한 종목이라서 딱히 보지 않고도 내 수익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싶은 본능이야 어찌할 수 없었다.


화장실 변기에 앉은 나는 오늘도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


‘이제 지긋지긋한 이곳 생활도 이제 얼마 안 남지 않았군!’


볼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 숫자들이 보였다.


[비*산업]

[현재가: 44,200원]

[총매수금액: 6억 원]

[총평가금액: 25억 5천 500만 원]

[평가손익: + 19억 5천 500만 원]


총매수금액 6억 원 중에서 첫 투자금은 1억 원이었고 5억 원은 중간에 투입된 금액.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19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19억이라!······’


지난 1년간 세력 밑에서 남의 돈을 굴리며 제법 큰 숫자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문득 내 계좌에 찍힌 돈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20억을 넘기는 것도 시간문제.


이제 와 생각해보면 겨우 몇백만 원을 잃고 실의에 빠졌던 내가 아니던가!

그런데 채 1년도 안 돼서 ······.

격세지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그때였다.


-위이이이잉


‘앗 깜짝이야!’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갑작스런 문자 진동음에 움찔했다.

그리고 온 문자를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어?······’


-발신 번호 없음.

[HM건설]


그 문자였다.

한동안 오지 않던 발신 번호 없는 이상한 문자!


지난번 천둥이란 종목 이후 이번이 8번째인가?


‘그런데 웬일이지?’


게다가 이번엔 추천종목이 HM건설이다. 바로 김막수가 부회장으로 있는···.


‘그럼 이번엔 김막수와도 연관이 있다는 걸까?’


나는 종목 검색창에서 바로 HM건설을 입력하고 검색해 들어갔다.


[종목명: HM건설]

[현재가: 8,800원 ↓21% 하락중]


대형주치고는 오늘따라 지나치게 떨어지는 듯 보이는 주가.

종목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HM건설, 직원 횡령 사고로 주가도 급락!]


‘하, 그럼 한동안 빠질 거 같은데··· 그런데도 이걸 사라고?’


하지만, 그동안 내게 도움을 줬던 문자가 아닌가!

그러니 이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뭔 일인지 모르지만 일단...


*


다음 날 오전.

설계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네? 지금 팔라고요? 하지만···”


잠시 후, 전화를 끊은 그가 급히 매매팀장을 불렀다.


“회장님이 오늘부터 매도 시작하라신다.”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뭔가 신호를 주고받듯 눈을 한번 찡긋하더니 말했다.


“···급하신가 봐, 일단 일부라도 팔고 HM 매입하래!”


매매팀장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네 알겠습니다.”


이후 매매팀원들이 팀장의 지시에 따라 비*산업을 일부 팔고 HM건설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군!’


다행히 나는 어제 받은 문자로 인해 이미 절반을 옮겨 탔다. 그리고 나머지는 추후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그것도 빨리 처분해야 했다. 조만간 있을 엄청난 매도 물량을 대비하니.


6개월 전 김막수가 급히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이 작업을 시작한 걸 떠올렸다.


그럼 그게 다 HM건설을 사려는 의도였어?

그런데 왜 하필 HM건설일까?

게다가 HM건설은 어제 날짜로 악재까지 터졌는데···.


‘그럼 혹시 자기만 아는 내부정보라는 있는 건가?’


그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정말 김막수가 자신만 아는 내부 호재라도 있다면 HM건설 주가는 앞으로 크게 오를 것이다.


그런데···


얼마지 않아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알고 보니 HM건설 주식은 라스트인베스트라는 법인 이름으로 꽤 오래전부터 매수하고 있었다.

게다가 설계자를 비롯한 여기 직원들 개인 명의로도 매집했다.


“이번에 넌 얼마나 샀냐?”

“월급 다 넣었어. 어차피 회장님이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준다고 하셔서.”


그들의 대화를 통해 문득 집히는 게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궁금해하던 것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이 라스트인베스트라는 회사가 김막수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있다는 걸 알았다. 여러 가지 결재 서류나 몇몇 직원들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김막수가 실소유주라는 사실은 여기서 일하는 일부 사람들, 그것도 은밀히 일하는 자들 이외에는 모르는 눈치였다.

그가 바지사장까지 두고 서류상 치밀하게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워낙 비밀스럽게 이곳을 드나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때부터 나는 김막수란 인간의 숨겨진 의중이 궁금했다.


‘HM건설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왜 가족도 모르게 이렇게 자신만의 제국을······?’


혜림이도 그랬거니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김막수는 회사 경영에는 관심이 없는 자였다.

그의 HM건설의 부회장 자리도 그저 형식적인 자리일 뿐이라고.

그러나 그가 몇몇 부하들에게 한 말을 떠올려 보면 뭔가 좀 이상했다.


“네가 나를 잘만 도와주면 나중에 HM건설 이사 자리 하나 줄 수도 있어!”


“······이놈 아녔으면 이사 자리고 뭐고 넌 죽었어!”


그리고 부하들이 김막수에게 했던 말.


“저희들의 회장님은 앞에 계신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서 그의 충직한 부하들은 그를 줄곧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게 이 라스트인베스트에는 있지도 않은 회장직을 말하는 건 아닐 터.


그렇다면······


‘HM건설이군. 미래의 HM건설 회장이란 얘기였어!’


지금 이 회사는 그저 김막수가 자기 자본을 키우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결국 HM건설 주식을 꾸준히 매집하던 거였고···.


그럼 결론은 하나였다.


*


다음 날 아침.


즐겨보는 인터넷 신문에는 HM건설 관련 새로운 뉴스가 보도되었다.


[HM건설 수천억 횡령 직원 스위스로 도피 중 잠적.]


HM건설의 주가는 이틀간 30% 넘게 하락했다.

더 떨어질 수도 있었다. 횡령 금액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스트인베스트라는 투자사는 김막수의 지시대로 떨어지는 HM건설을 아래에서 받아먹었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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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형제의 난 +2 23.06.15 217 4 9쪽
» 오랜만에 온 문자 23.06.14 215 5 10쪽
36 세력이 세력에게 작업을 걸다 +1 23.06.13 218 5 11쪽
35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3 23.06.12 219 5 11쪽
34 저 친구가 누군지 아십니까? 23.06.11 221 6 9쪽
33 설계자의 투자자 유치 23.06.10 219 5 11쪽
32 내 서버가 되어줘 +1 23.06.09 220 5 10쪽
31 이게 대체 얼마야? 23.06.08 221 5 11쪽
30 이게 바로 개미와 세력이 다른 점이야 23.06.06 22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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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세력과의 한판 승부! 23.06.03 22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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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23.06.02 237 5 10쪽
24 두 번째 세력으로 살아가기 23.06.02 225 5 11쪽
23 재벌 망나니가 세력이라 23.06.01 228 6 9쪽
22 너 마술사야 뭐야? 23.05.31 230 6 11쪽
21 불가능한 미션 +2 23.05.30 230 6 11쪽
20 댓글 보고 연락드립니다 +2 23.05.29 231 6 11쪽
19 개미들을 구하라! +2 23.05.28 230 5 10쪽
18 오늘 들어간 놈들 다 호구다 23.05.28 229 6 11쪽
17 나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23.05.27 230 6 12쪽
16 스캘퍼의 현란한 손놀림 +2 23.05.27 235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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