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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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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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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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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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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6.0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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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내 서버가 되어줘

DUMMY

“일, 십, 백, 천, 만······십억?”


[입금 1,000,000,000원]


동그라미를 잘못 본 줄 알고 다시 세어보기를 수차례 반복.


‘십억이라니··· ’


로또를 맞았을 때 이런 기분일까?

설레면서도 동시에 무서운 기분.


생각해보면 회사 계좌로 백억이란 돈을 거래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저 은행직원이 돈을 만지는 듯한 무감각함.

그러다 문득 돈의 액수를 의식하고 나면 잠시 무서운 느낌이 들다가도, 다시 트레이딩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다시 무감각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순전히 내 돈이란 얘기. 느낌이 달랐다. 마치 꿈을 꾸는 듯···.


그러면서 한편으로, 왜 싸이코같은 김막수 밑에서 사람들이 충성을 다해 일하는지 알 거 같다.


‘그런데 이 큰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먼저 생각난 건 시골에 계신 엄마.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고 남편 없이 홀로 농사만 짓고 계신.


대학 졸업하면 돈 모아서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게 해드린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한동안 못 지킬 줄 알았는데···.


‘아, 그리고······.’



***



L 타워 서울스카이전망대.


중고등 학창 시절 수학여행 이후 처음이었다.

4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도 이런 곳에 올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자신이 참 안쓰럽기도 하다.


“오빠 어때?”


눈앞에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들떠있는 이혜림.

녀석이 걸치고 있던 두꺼운 코트를 벗으며 묻고 있었다.


“너? 아님, 여기?”

“아이참. 여기 분위기 말야.”


전석이 창가에 위치한 서울스카이 123라운지 레스토랑.

크리스마스 캐롤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눈앞에 놓인 와인 한잔과 창밖의 멋진 야경.

물론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더욱 아름다운 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춘 듯 에스닉한 롱드레스를 입고 있는 혜림의 모습.

아까는 코트에 가려져 있던 녀석의 갸날픈 어깨선과 잘록한 허리가 보였다.


“좋네.”

“단지 그거야?”


그러고는 창밖을 바라보라보는 혜림.

눈망울이 창밖 불빛을 죄다 끌어다 놓은 듯 더욱 초롱초롱 빛이 났다.


그런 녀석을 보며 여기를 처음 와봤을 때를 떠올렸다.


“혜림아, 난 수학여행으로 여길 처음 와봤어.”

“그때 어땠어?”

“뭐, 촌놈이 이런 데를 처음 와봤으니까... 여기서 최고 높은 곳이 내가 아까 내린 118층인 줄 알았어.”

“그래?”

“근데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봤더니 119층, 120층 계속 있더라고.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와서야 이 건물 최고층이 123층이란 걸 알았지.”


녀석은 두 손에 턱을 괴고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래서 여길 꼭 들어가고 싶었어. 어린 마음에 최고 층에서는 아래 경치가 어떻게 보일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고 자랑도 하고 싶어서··· 근데 못 들어가겠는 거야. 이곳이 레스토랑이라서.”

“아... 그럼 그 후에도 안 와본 거야?”

“응. 딱 봐도 비싸 보였거든. 그래서···”


그러자 혜림이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빠 근데, 122층이나 123층이나 거기서 거기야. 봐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는 게 우스웠다. 그동안 이 최고층에 오르지 못한 이유가.


“호호, 여기로 예약하길 잘했다.”


혜림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와인 잔을 내밀었다.


쨍~


“그건 그렇고, 축하해! 오빠 미션 달성한 거.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 줄 알아?”

“땡큐!”

“정말 통쾌하다. 미션도 달성하고 강희성한테 당한 것도 되갚은 셈이잖아.”

“그러게.”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세력에게 잡혔는데 그게 이전 세력에게 복수할 기회가 될 줄은···.


“그럼 오빠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앞으로 5개월은 여기 더 있어야 해.”

“김막수 정말 나쁜 인간! 아니, 나쁜 싸이코. 우쒸···.”


작은 주먹을 움켜쥐고 씩씩거리는 이혜림.


“오빠, 나중에 그 싸이코한테도 꼭 복수해 줘. 알았지?”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알았어.”


그러다 문득 김막수가 왜 이번 작업에 그렇게 열을 올리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근데. 혜림아. 요즘 그 싸이코 와인바에 들르니?”

“어? 그러고 보니 요즘 잘 안 오던데. 왜?”

“아니, 꼭 가까운 시일 안에 큰돈이 필요한 사람처럼 굴어서.”

“그래?”

“뭐 짚이는 거 없니?”

“···글쎄, 무슨 사고 쳤나?”

“그건 아닌 거 같다. 지금 만들려는 자금 규모가 엄청나게 크거든.”


주식으로 만들려는 유동자금이 2천 5백억. 게다가 라스트인베스트의 부동산과 대부업 쪽 자금까지 합하면 아마 조 단위일 것이다.

그가 혹여, 망나니짓하다가 남모르게 사고를 쳤다 해도, 그런 개인적인 사고 수습 비용을 뛰어넘는 돈이란 얘기다.

게다가 놈은 왜 가족들에게까지 숨기며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근데, 가족들이랑은 여전히 사이가 안 좋니?”

“응. 그런 거 같아. 특히 큰형이랑 사이가 안 좋던데.”

“HM건설 김한수 회장 말야?”

“응. 늘 술만 마시면 형 욕을 하고 그랬어. 지 까짓 게 형이라고 자신을 무시한다면서.”

“음···.”


형이랑 상관이 있을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놈과 5개월을 함께 해야 하니.

남대문 강희성의 근황도 궁금했다. 나한테 당하고 열받아서 술 마시러 다시 바에 들르는 건 아닌지.


“그럼 강희성은?”

“왔으면 내가 오빠한테 얘기했겠지. 지난달에 VIP 고객 한 명 만나러 온 뒤로 못 봤어.”

“그래?”

“원래 그놈은 실적이 좋아야 자주 온다고요. 나기 자랑하러. 근데 요즘 별로인가 보지. 오빠 때문에··· 크크.”


쌤통이란 듯 웃는 혜림. 그게 정말 나 때문이라면 좋겠다.


“그럼 이제 그자한테서 오빠랑 한결 오빠가 당한 복수는 끝난 건가?”


사실 내가 여기서 나갔다면 그랬을지 모른다. 놈들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였을지도.

그러나 김막수가 말한 작업을 끝내려면 왠지 남대문 세력들이 다시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쎄.”

“······?”

“지금은 놈이 그저 상처만 입었을 거야. 놈들이 자랑하던 승률 100%에 두 번 연속 흠집을 낸 거뿐이거든.”

“그래서 어떻게 하게?”

“지금 분위기를 잘만 활용하면 놈들을 완전히 보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입맛을 다셨지만, 아직 구체화 된 계획은 아니었다.


“오빠야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몸조심해.”

“알았어.”

“그건 그렇고 오빠, 우리 너무 일 얘기만 하는 거 아냐? 아. 짜증나! 크리스마스 이븐데···”

“그러고 보니 그렇네. 미안. 그럼 우리 무슨 얘기 할까?”


그런데 막상 할 얘기가 별로 없어서 서먹해진 분위기.


“식기 전에 먹어.”


나는 앞에 놓인 로제파스타와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괜히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지금 마시고 있는 오렌지 쥬스 한잔이 18,000원짜리라니!

당연히 자리 탓이겠지만, 여전히 나에겐 적응되지 않는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 혜림이 서먹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에서 겪은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말하기 시작했다.

유명 남자 연예인이 묘령의 여자와 함께 몰래 데이트하러 들른 이야기며, 뉴스에 나와 근엄한 척하던 정치인이 실은 전날 바에서 술에 취해 코미디언처럼 군 이야기 등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호호호, 오빠 어디서 절대 이런 얘기 하지 마. 우리는 봐도 못 본 척해야 한단 말야.”


이래서 증권가 찌라시에 유명인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녀석의 어머니 안부가 궁금해서 물었다.


“···근데 참, 너희 엄마는 좀 어떠시니?”


그러자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 혜림.


“···아직, 요양원에 계셔. 요즘은 당뇨에 치매 끼까지 있으셔서 나오시면 더 위험하다고 해서···.”


녀석이 그동안 내 앞에서는 일부러 밝은 척을 한 건지도 모른다.


혜림이 엄마는 혜림이 7살 무렵,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웠다.

엄마 혼자서 자신을 키우며 뒷바라지한 게 늘 고맙고 안쓰러웠던 녀석.

그래서 지금은 거꾸로 엄마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잠시 후 녀석이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


“오빠. 난 세상이 좀 더 공평했으면 좋겠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차별과 수모를 당하고 살아왔을까?

애비 없는 자식이라며, 가난한 흑수저 출신이라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특히 녀석이 일하는 와인바에는 녀석과 정반대의 부류들이 자주 오는 곳이 아닌가.


내가 혜림이의 얼굴을 넌지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은 오늘 너한테 줄 선물 있어.”

“정말? 그게 뭔데?”

“벌써 갔을 거야. 네 계좌로.”

“······?”


그러자 의아해하는 녀석이 핸드폰을 들었다.


사실 나는 여기 오기 전 혜림이에게 말했다.


“비용은 내가 미리 낼 테니까, 너는 원하는 곳으로 예약만 해줘!”


그리고 녀석의 계좌번호를 보내달라고 했었다.

극구 사양하는 녀석에게 그럼 안가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면서.


잠시 후 녀석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오빠, 미쳤어?”


가뜩이나 큰 눈이 더욱 휘둥그레진 채였다.


“······억? 일억이라니, 이건 너무 많잖아. 그리고 오빠가 돈이 어디서 나서······.”

“혜림아!”


나는 녀석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서 돈을 보낸 이유를 설명했다.


“너 와인바 일 그만두고 이제 복학해서 공부해. 졸업반이잖아.”

“······.”

“공부해서 얼른 기자 돼라!”

“그래도 이 돈은 안 돼. 오빠 목숨 걸고 번 돈이잖아. 이 돈은 절대 못 받아.”

“그냥 주는 거 아냐.”

“······?”

“너 와인바 서버 하지 말고··· 내 서버가 돼주면 안 되겠니? 네가 원하는 경제부 기자가 돼서 말야.”


어느새 혜림이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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