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을 구하라!
예상대로 주가는 꺽일 줄 모르고 상승했다.
[솔수바이오][현재가: 8,500원]
다시 한 달 만에 1,700원에서 8,500원으로 무려 5배나 상승한 것.
[솔수바이오 한 달 만에 5배 상승!]
기사에는 5배 상승이지만, 나는 이 종목을 3달 전 850원일 때 샀으니 내 기준으로는 10배 상승한 셈이었다.
그래서 내 계좌는.
[총평가금액: 88,500,000원]
꿈에 그리던 1억이 눈앞에 있다.
단타 실력 덕분에 종목이 오른 거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2주 전 한결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팔아. 수익 났을 때 팔아야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야.”
“너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들어봤니? 그게 네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큰일 난다.”
솔수바이오가 이렇게 시장의 관심을 가지며 오르지만 않았어도 녀석이 알고 전화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였다.
녀석은 내가 얼마에 샀는지, 얼마를 벌었는지까지는 몰랐다.
단지 지난번 내가 관심 있게 물어봤던 종목이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한 말이었다.
녀석의 말을 들을까도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맞았다. 그 후로 두 배 더 상승했으니까.
내가 아직 팔지 않은 이유는 하나. 세력들의 매도 타이밍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가창에서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난 오늘 기사를 다시 확인했다.
[신약 개발로 5조 시장 노리는 솔수바이오]
[혈액암 치료제 후보물질 미국 특허 취득!]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군!’
놈들이 몇 개의 긍정적인 뉴스를 뿌리면서 그동안 매집한 물량을 이제 서서히 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종토방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눈에 봐도 눈에 띄게 늘어난 찬티 게시글들.
- 오늘 판 놈들 다 호구다.
- 이 종목 1년 묻어두면 마누라가 바뀝니다.
- 임상 2상 거의 통과라던데···.
- 눈치만 보다 오늘 입성했습니다.
- 소문 듣고 왔다. 여기가 그 유명한 맛집 맞냐?
- 안티 말 듣고 팔았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중에는 분위기를 띄우려고 세력이 고용한 알바도 있을 것이라는 걸. 전의 그 남대문 외인부대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관성처럼 오르는 종목을 지켜만 보다가 이제야 갓 입성한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서 돈 좀 벌었다는 소문을 듣고 들어 온 개미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학 등록금을 넣었다는 대학생도 있었고, 어차피 팍팍한 삶에 도박하는 심정으로 전 재산을 올인한 가장도 있었다. 이들의 부푼 기대감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나도 댓글을 남겼다.
- 지금은 위험한 시기입니다. 다음번 양봉에서 욕심부리지 말고 바로 파세요.
그렇게 진심 어린 댓글을 남기고, 다른 게시글을 살피는데 또다시 누군가 올린 장문의 게시글이 보였다.
- 얼마 전 주식으로 재산 절반을 잃고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여기에 몰빵 할까 생각 중입니다. 딱 두 배만 벌고 본전이 되면 손 털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거까지 잃으면 정말 죽을 거 같네요. 저 좀 도와주세요. 이거 정말 가는 거 맞죠? 선배님들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얼마 후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겠군!’
안타까운 심정으로 글을 읽다가 나의 주제넘는 오지랖이 시작되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조심하라는 글을 남긴 것이다.
***
주말 오후.
“······구천구백구십칠, 구천구백구십팔, 구천구백구십구, 만.”
휴~!
오랜만에 숫자를 세며 걸었더니, 역시 걷기보다 힘든 게 숫자 세는 거였다.
그러나 잡생각을 잊게 해주는 데는 이만한 게 없었다.
다른 생각을 했다가는 금방 숫자를 까먹기 때문에 온 정신을 숫자 세는 데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호주머니 속에 든 스마트폰을 꺼냈다.
엊그제 새로 산 S사의 최신스마트폰이 보였다.
핸드폰으로 주식 거래하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큰맘 먹고 산 거였다.
“내 삶의 질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가?”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이다.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그래서 혹시 훗날 정말 큰 부자가 된다고 해도 이 만보걷기는 그대로 유지할 생각이다.
단지 100원을 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에도 좋을뿐더러 주식투자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도움이 되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 개구리 올챙이 적. 아니, 라면이 주식이던 때를 잊지 않기 위해서도.
화면 위로 활성화되어있는 만보기 앱이 보였다.
- 9999
“와!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데?”
지난번엔 오차가 컸었는데 오늘은 꽤 정확한 수치에 감탄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건.
이게 정말 앱이 정확해진 걸까? 아니면 내 걸음이 정확해진 걸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새로울 것 없는 풍경들이 느리게 스쳐 지나갔다.
도심 속 허름한 연립주택들과 그걸 헐고 있는 공사판 인부들.
곡예를 하듯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고 있는 오토바이 배달부.
그리고 저 멀리 오늘도 힘겹게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리어카 한 대가 보였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그 폐지 줍는 할머니일 것이다.
언덕길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개미들!······
주식에서나 현실에서나 늘 부대끼며 사는 이들.
저들이 주식을 알까?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잠시 후,
“고맙기도 하지!”
“뭘요.”
문득 뒤를 돌아본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말했다.
“에구, 그 젊은이구먼!”
땀방울이 맺힌 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최근에 이 할머니가 주식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날도 내가 산책하다 말고, 할머니 리어커를 뒤에서 몰래 밀어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가 가던 길을 멈추고 편의점에 들르더니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주시며 말했다.
“청년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
“······그게 뭔데요?”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든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이걸루 내가 주식 어떻게 볼 수 있어?”
“······주식요? 할머니 주식을 아세요?”
“은행 이자보다 낫다고 해서 좀 샀는데··· 당최 볼 수가 있어야지. 누가 은행 안 가고 이걸로도 볼 수 있다던데.”
폐지 모은 돈으로 주식을 하시는 할머니가 계실 줄이야!
그날 일을 기억하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요즘 주식은 잘 되세요?”
“뭐 아직은 그저 그래. 그래도 기다리면 은행 이자보다야 낫겠지.”
“멋지셔요. 할머니!”
“그래? 호호. 내가 뭘 알아. 그냥 손주들 용돈이나 주려고 하는 거지.”
*
나는 늘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해왔다.
그리고 조금씩 실행에 옮기려 노력했다.
순도 높게 정제된 것들을···.
내 계좌는 어느덧 1억을 넘겼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터라 이번에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보다는 개미들을 위해 내가 올린 게시판 글들.
아직 내 주식은 팔지 않은 채였으니 어찌 보면 내게는 손해 보는 짓이었다.
하지만, 내 상대는 선량한 개미들이 아니라 바로 세력.
그리고 나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경험에 비춰볼 때 분명 세력들이 팔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갑자기 폭락했다가는 개미들이 되려 겁을 먹고 도망갈 수도 있으니, 그들은 다시 몇 번 올리는 척할 것이다.
나는 바로 그 타이밍에 최대한 수익을 내고 세력에게 팔아넘길 구상을 하고 있다.
문제는 뒤늦게 불나방처럼 따라붙는 개미들.
세력은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물량을 던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천국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불지옥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 몇몇은 실제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과거 우리 아버지처럼···.
나는 그걸 막고 싶었다.
하지만, 이 노력이 내게 다시 화를 불러일으킬 줄 몰랐다.
***
며칠이 지나 솔수바이오와 관련된 종토방과 동호회 게시판, 주식 카페 등에는 어느새 내가 올린 글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솔수바이오 신규입성 절대 금지!!! 보유자는 다음 상승장에 무조건 파시오!!! - 세력을 잘 아는 1인]
그러자 내 글에 줄줄이 달린 부정적인 댓글들.
- geul**** 너 알바냐?
- 미친놈 너나 팔아라.
- 안 떨어지니까 죽겠지? 싸게 사려고 별짓 다하네.
- 여기저기 글 도배하지 마라. 그러다 뒤진다.
- 그냥 놔두세요. 주식 한 주도 살 수 없는 그지 같은데.
- 튜길 노옴^^
하지만,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올렸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피해를 줄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느껴졌다.
‘어쩌면 한 사람의 목숨, 아니 한 가정을 살릴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망상에 가까울 정도의 사명감이었다.
내가 게시판에 글을 도배하다시피 하자, 내 아이디를 기억하는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리고 방금 올라온 댓글.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님께 꼭 상의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다행히 누군가는 내 얘기를 듣고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고민 끝에 전화번호를 남겼고, 그러자 잠시 후 다시 문자가 왔다.
-오늘 밤 직접 찾아뵐 수 있을까요? 저는 정말 심각한데··· 혹시 장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정말 죄송한데 주소 좀······.
뭐, 직접 찾아온다고?
몇 달 전 내가 겪은 고통을 정말 누군가 겪고 있을지 모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과연 누굴까?
오늘은 그와 만나는 날이다.
나는 몇 달 전 내 모습을 닮은 한 주린이를 상상하며 그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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