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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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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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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2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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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3)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3.

바하르칼에는 던전공략팀이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 하지만 던전공략을 반복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용병들이 수차례 던전을 공략한다. 그 결과는 동영상으로 편집되어 제출되고, 이것에 점수를 매긴다. 고득점자일수록 던전공략에 적합한 자였다.

바하르칼에서는 그들만 따로 추려서 필요할 때마다 엮어서 내보냈다.

이들이 던전공략팀이다.

그런 자들이 불과 1시간도 안되어 도착했다.

“던전의 수준이 낮다고 고 레벨만 추려서 보낸 겁니까?”

위즈는 못미더운 눈길을 보냈다. 이들 개개인의 레벨은 자신보다 월등히 높아 보인다. 바하르칼 용병들은 의뢰를 받아 성장한다. 그 의뢰의 숫자는 일반 유저들이 받는 퀘스트보다 개수도 많고, 리스크도 크다. 당연히 바하르칼 용병들은 소수정예를 지향했다. 레벨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던전은 레벨만으로 정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이야 목표 던전의 수준이 낮아서 레벨로 극복할 수 있지만, 이들의 레벨에 걸 맞는 던전에 집어넣으면 실패할 것이다.

“급조된 팀이라면 배울 게 없습니다. 제 목적은 던전 공략이 아니라, 그 과정을 배우는 겁니다.”

힘세고좋은아침이 변명했다.

“하지만 이분들은 다들 던전 경험이 10회 이상인 분들입니다. 특히 리더분께는 배울 게 많을 겁니다. 저분은 벌써 30회를 넘겼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레비님?”

그의 지목을 받은 남자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양팔을 둘둘 감은 붕대가 인상적인 자였다.

‘레비라고? 그 유명한 던전정복狂? 그런 거물이 뜬 거야?’

더 오션이 레드 오션이란 이름으로 서비스 되던 시절, 레벨 올리기보다 던전 탐험에 열을 올리는 유저가 있었다.

그게 레비였다.

그는 자신보다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라 해도, 수차례 도전하여 끝을 보았다.

많은 유저들이 레비의 덕을 보았다.

레비는 완성된 지도와, 각종정보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한번은 유저 하나가 끊임없이 던전만 공략하는 이유를 물었다. 레비는 패기 넘치는 말을 남겼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건, 내 성격에 안 맞소. 내 목표는 이 게임의 던전을 모두 밟아보는 것이오.”

그의 관심은 언제나 새로운 던전을 찾아 끝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그는 트레저 헌터가 아니었다. 도둑이나 암살자도 아니었다.

전사-그것도 스킬에 의존하지 않고 싸우는 순수 무투계열 전사였다.

그런 그가 던전공략의 귀재가 된 것은, 타고난 센스와 근성 때문이었다.

“나만 믿으시오. 던전 공략의 정석이 뭔지 보여드리지.”

“진짜 레비입니까?”

“어허~진짜요.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벌금이라도 내놓겠소.”

“그럼 계약서 쓰겠습니까?”

“이리 주시오.”

인벤토리에서 펜을 꺼내며 손을 내미는 레비. 그 자신만만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위즈는 손을 내저었다.

“뭐…됐습니다. 레비 본인이 맞다면야.”


◇◇◇◇◇◈◇◇◇◇◇◇◈◇◇◇◇◇◇◈◇◇◇◇◇


원래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출발 하루 전에 손발을 맞춰야 했지만, 이들은 급조된 인원이었다.

심지어 오늘 처음 만난 자들도 있었다. 아무리 리더가 전설적인 던전정복狂이라 해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위즈는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던전까지 걸어가는 20분의 시간을, 레비는 허투루 쓰지 않았다.

“미리 진형을 연습해둡시다. 다른 분들의 전투 스타일이나, 공략기를 읽어보니 얼추 밸런스는 맞던데.”

레비의 말에 따라 용병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진형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주로 의뢰인인 위즈를 보호하는 형태였다.

“이번엔 진형을 바꾸는 도중에, 대칭되게 움직여봅시다. 거울에 비춘 것처럼 뒤집는 거요.”

마찬가지로 몇 번 반복하자 다들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스킬들을 점검했다.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레비가 제시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스킬명을 외치는 방식이었다. 다 큰 어른들이 그러고 놀자니 얼굴이 화끈거릴 법도 한데, 그 태도가 너무도 진지하다. 위즈도 정령강화를 몇 차례 외쳤다.

“창피해 할 일이 아니오.”

“하지만 기술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이러는 것은 좀…….”

“실제 장애물이 있는 곳에서 시뮬레이션을 한다면 좋겠지. 하지만 그건 일회용일 뿐이오. 던전이란 곳은 모두 똑같은 게 아니니까. 그러니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거요. 자, 이번엔 바닥이 꺼지는 함정을 누가 건드렸소. 바닥의 깊이는 5m. 그리고 3초 뒤, 전방에서 석궁이 발사되었소.”

위즈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꽥!”

이건 미리 약속해둔 것으로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을 때 외치는 말이었다.

여기저기서 꽥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비는 몇 가지 대처방법을 알려주고 다시 대응하게 했다. 하지만 위즈는 여전히 꽥을 외쳤다.

“흐음…아까 정령강화라는 스킬은 이동속도를 늘려주는 게 아니었소? 그걸로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숙련도가 낮아서 그렇게까지 빠르게 스킬을 걸 수 없습니다. 말하신 상황에서는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추락할 겁니다.”

“흠…정령강화는 제법 이름 있는 스킬인데 아쉽군. 발동속도만 개선하면 탈출기로서 손색이 없는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밧줄로 몸을 묶는 수밖에 없겠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목표로 삼은 던전이 나타났다.

“던전의 입구는 어디 있소?”

레비가 두리번거렸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던전정복狂이라 해도, 열리지 않은 던전을 알아보는 재주는 없다.

게임 속에서 던전이란, 겉에 드러나 있지 않는 숨겨진 요소이다.

지하 감옥일수도 있고, 성격 괴팍한 마법사의 비밀 연구소일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면 유명인의 무덤일 수도, 몬스터의 소굴일 수도 있다.

이곳들은 하나같이 위험하지만, 필드보다 많은 경험치를 주며 더 좋은 아이템을 드롭한다. 그러니 평소에는 당연히 숨겨져 있다.

단서를 얻은 자가 열지 않으면, 던전은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곳은 허허벌판인데다가 나무들만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몇몇 나무들은 수령이 오래된 듯 썩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잎사귀가 하나도 달려있지 않은 고목나무 앞에 다가선 위즈는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고목은 비바람에 시달려 바삭바삭한 상태였기 때문에 쉽게 부서져 나갔다. 거기에다가 건틀릿의 일종인 모자손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고목나무가 부스러기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여깁니다.”

“흐음……자연발생 타입 던전의 일종이군.”

고목이 부서지고 남은 밑동은, 시커먼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시계를 든 토끼가 튀어나와 이상한 나라로 데려갈 것 것만 같다.

레비는 구멍 언저리를 만졌다.

“인위적인 함정은 없지만, 매복한 몬스터가 짜증나는 타입이지. 아, 그렇다고는 해도 가끔은 스토리상, 누가 손본 곳일 수도 있소. 일단 먼저 들어가 보겠소.”

그러고는 다짜고짜 레비가 뛰어 들어갔다. 아무도 레비를 막지 않았다.

잠시 후 위즈의 옆에 레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멋쩍게 웃었다.

“어? 어떻게 빠져나온 겁니까?”

“한번 죽었소.”

“네에?”

“여긴……던전 입구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형태요. 바로 아래에 식인 식물 둥지라니.”

그 말을 들은 용병하나가 말없이 화염병을 내밀었다. 레비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다시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레비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또 죽은 겁니까?”

“하지만 놈들은 확실히 해치웠소. 들어가자마자 몬스터에 포위 받는 일은 없을 거요. 진입순서는 빙글뱅글, 그다음이 나, 뒤는 사쿠라님과 W님입니다.”

미리 말을 맞춰둔 대로 방패전사인 빙글뱅글을 시작으로 우르르 던전에 진입했다. 혼자 남겨진 위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죽어가면서까지 하는 공략이라니. 이렇게 독하니 狂이라고 부르지.”


◇◇◇◇◇◈◇◇◇◇◇◇◈◇◇◇◇◇◇◈◇◇◇◇◇


던전의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레비가 3번이나 더 죽은 것만 빼면 말이지.’

죽음은 가급적이면 경험하지 않는 게 좋다.

사망 패널티로 스탯이 깎여 약해지기 때문이다.

몸으로 때우는 타입이라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희생을 자초하는 레비를 위즈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죽고 나서 곧바로 부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레비는 무려 다섯 차례나 죽음과 부활을 반복했다.

이는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

‘이게 오류가 아니라면……스킬일 확률이 높다.’

위즈도 망령화라는 패시브 스킬이 있다.

죽은 뒤 유령이 되어 활동할 수 있는 것으로, 에켈 요새에서 그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레비는 즉시 부활이다. 효용성으로 따지면 이쪽이 더 높다. 만약 자신을 죽이고 방심한 적의 뒤에서 곧바로 부활하여 공격하면 어찌되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위즈는 탐이 났다.

‘마음속의 성소가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볼까?’

던전을 탐사하는 목적중의 하나가, 유용한 스킬을 새로 얻는 것이었다.

이미 지도 제작에 관련된 스킬을 훔쳐 배웠기 때문에, 위즈는 자신감이 생겼다.

카피캣에 새로 추가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② 보조계열 스킬 카피 가능. [‘마음속 성전(聖殿)’ 획득]

- 20~100회의 따라 하기 찬스가 부여됩니다. 모두 성공하면 스킬을 얻습니다.

- 버프는 획득 조건만 제시됩니다.

- 액티브인 경우, 반경 5m 내에서 스킬의 효과를 알아내야 합니다.

- 패시브인 경우, 반경 3m 내에서 스킬의 효과를 알아내야 합니다.

====================================


레비가 사용하는 스킬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적이 사용하는 공격스킬이라면 몇 대 맞으면서 알아낼 수 있지만, 보조스킬은 대개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게 대부분이다. 게다가 간접 적용되기 때문에 눈치 채기도 힘들다.

‘지금의 레비처럼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타입이면 더 골치 아프지. 액티브인지 패시브인지 감도 안 잡힌다.’

그렇기에 위즈는 일단 패시브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3m내로 접근하려 했다. 하지만 간격을 좁히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레비가 주의를 준다.

“이 던전에서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너무 뭉치는 건 좋지 않소. 간격을 유지해 주시오.”

이곳에는 스티키 젤이라는 녀석들이 있었다.

다른 게임의 슬라임을 보다 악랄하게 변형시킨 몹인데, 부식성을 가진 산성액 같은 걸 뿜어내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이름처럼 매우 끈끈한 점액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점액질이 묻으면, 뭐가 되었든 달라붙어 버린다.

점액질이 묻은 상태로 벽에 기대면 벽에 붙은 채 떨어지지 못한다. 무기는 떨어지지 않으며, 신발에 묻으면 신발을 포기해야 한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동료끼리 달라붙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스티키 젤은 강력본드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떼어낼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힘 스탯이 최소 1000인 캐릭터라면 억지로라도 떼어내는 게 가능은 하다.

하지만 현재 유저 중에 그게 가능한 건 아무도 없다. NPC라면 몰라도.

마법으로 떼는 방법도 있다.

프로스트 핸드 같은 주문으로 접착면을 얼리는 건데, 이 과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물과 달리 스티키 젤은 잘 얼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스티키젤과 접촉된 신체 일부도 함께 얼려진다. 만약 손가락이 스티키 젤로 붙어버렸다면, 손가락은 동상으로 떨어져 나간다. 그렇게 떨어져 나간 신체부위는, 신전에 가서 치료받을 때까지는 절대 원래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레비는 절대 뭉쳐 다니지 말 것을 주문했다.

던전에 출몰하는 수많은 몬스터 중에서도, 레비는 스티키 젤을 특히 경계했다.

“스티키 젤은 공격 의지도 없고,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요. 하지만 뭣 모르고 뒤집어썼다가는, 주변 사람과 달라붙은 채 한 덩어리가 되어버리지. 그 상태에서 던전을 돌아다니다가는 죽기 딱 좋소.”

이렇게까지 말하니 위즈는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너무너무 탐이 난다.

레비의 스킬이. 이렇게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핏스톤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도울 일이 있는 것 같군. 위즈여.』

핏스톤의 말은 오직 위즈에게만 들렸으므로 들킬 걱정은 없다. 다만 위즈는 그런 재주가 없으니, 입을 열어 답해야 했다. 핏스톤의 정체를 노출 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위즈는 망설였다.

『내 짐작엔 저들과 거리를 좁히려는 것 같은데 맞는가? 그렇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위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당장 가능할 것 같군. 기다려라.』

핏스톤의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잠시 후 땅이 갈라지면서 커다란 지렁이 같은 게 불쑥 튀어나왔다. 굵기는 사람 팔뚝만하고, 길이는 2m가 넘었다. 레비는 당황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라고 했다.

“빅웜이군.”

깊은 지하 속에서나 사는 것들이 기어 나오자, 흙내가 진동했다.

“뒤에도 나타났습니다.”

“완전히 포위됐어요.”

레비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던전의 깊이로 보아 이놈들의 영역권도 아닌데 어째서 나타났을까.”

“화염병을 쓸까요?”

“아니. 빅웜은 화염 내성이 있는데다가, 대지속성이라 방어가 튼튼하지. 그냥 지렁이처럼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요.”

그러면서 레비는 인벤토리에서 모닝스타를 꺼내들었다. 여유 있는 동작과는 달리 그의 입술은 속사포처럼 전투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벤다기보다는 두들긴다는 생각으로 공격하시오. 빙글뱅글님이 방패 찍기로 첫 공격을 하면, 뒤이어 내가 아이언 해머 스킬로 빗겨 칠거요. 그럼 녀석이 몸을 굳혀 경직을 일으킬 거요. 그 상태에서는 공격이 완전 무효니까, 5초 정도 쉬었다가 빙글뱅글님이 실드 차징을 하시오. 사쿠라님은 날려가는 녀석을 향해 에어로 버스터를 쓰시오. W님은 정령강화를 신발에 걸고, 비상식량을 섭취하시오. 이대로 그냥 뛰어야 할 것 같소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패전사인 빙글뱅글이 빅웜을 내리찍었다. 성이 나서 머리를 쳐드는 빅웜을 향해 레비의 모닝스타가 날아들었다. 희뿌연 빛이 일렁거리는 모닝스타에는, 바위라도 부술 것처럼 무시무시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빅웜의 몸을 찍은 모닝스타는 도로 튕겨 나와 버렸다. 빅웜의 머리위로 super armour 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레비가 숫자를 세었다.

“셋 둘 하나! 지금이오!”

빙글뱅글이 실드를 앞세우고 돌진했다.

“우오오오오!”

실드에 치인 빅웜이 튀어 올랐다. 역할을 완수한 빙글뱅글은 실드 차징을 강제로 캔슬하면서, 뒤로 몸을 뉘였다. 바닥을 긁으며 미끄러지는 빙글뱅글의 뒤에서 사쿠라의 주문이 날아들었다.

“에어로 버스터!”

화끈한 이름과는 달리 에어로 버스터는 빅웜을 크게 밀어 벽에 부딪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뛰어!”

그 말에 따라 모두가 앞 다투어 통로를 달려 나갔다. 이미 스티키 젤은 안중에도 없었다.

『전방에도 빅웜이 계속 튀어나올 것이다. 대비해라.』

핏스톤의 경고가 아니어도 위즈는 이상을 감지하고 있었다.

카피캣을 얻기 위해 올린 집중력이 쓸모없는 건 아니다. 빅웜은 바로 발밑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위즈는 막 머리를 내미는 빅웜을 힘주어 밟았다.

“진각!”

방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기본 데미지 50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효과는 좋았다. 빅웜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것 기발하군!”

위즈가 한 것을 본 사람들이 진각을 사용해 바닥을 꾹꾹 밟았다. 유원지의 두더지 잡기게임처럼 빅웜들이 맥을 못 추고 자취를 감췄다. 어느덧 빅웜들이 꾸물거리는 지역을 완전히 벗어난 일행들은 안전지대가 나타나자 뜀박질을 멈췄다.

던전의 중간에는 피로를 풀 수 있는 장소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몬스터와 함정이 전혀 없고, 진입 시 safety zone이란 문구가 뜬다.

“5분만 쉽시다. 피해를 확인하고, 장비도 점검하시오.”

다들 물약과 음식을 챙겨먹으며 장비의 내구도를 살폈다. 위험한 일은 레비가 직접 지휘해서 빠져나갔기 때문에, 먹는 것들은 스테미너 회복용 밖에 없었다. 위즈는 이름 없는 여신상의 효과로 스테미너 회복이 +5 상태이기 때문에 따로 챙겨 먹지는 않았다.

위즈의 옆으로 레비가 다가와 앉았다.

“어떻소? 던전 진입의 소감이?”

“생각보다 안전하게 온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습니다.”

“이 던전이 쉬운 탓도 있지만, 지금 인원 조합이 적절한 게 더 크오. 방패전사 하나와, 그를 보조하는 버퍼나 마법사를 베이스로 삼는 게 핵심이지. 이렇게 통로가 좁은 곳에서는 전방과 후방만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소.”

“빅웜이나 흡혈박쥐는 위아래에서 공격하는데, 이에 대한 방비는 없습니까?”

“이 경우는 트레저헌터처럼 던전에서 능력이 향상되는 버프를 가진 자가 수시로 정찰을 하는 게 좋소. 은신스킬을 가진 암살자 계열의 전사도 좋지. 이제부턴 주의하는 게 좋겠소. 수준이 낮은 던전이라고 생각해서 그 역할은 내가 담당했더니, 조금 전의 빅웜을 보니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소. 그런데 진각을 배운 걸 보면, 전사 계열 같은데 무기를 전혀 들고 있지 않구려. 설마 그 건틀릿이 전부요?”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보여주었다.

“예전엔 몽둥이를 사용했는데, 전투를 하면서 깨먹었습니다. 이번엔 날붙이를 사용해볼까 해서 일단 이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 단검을 매만진 레비가 입을 열었다.

“흠……한 가지 충고하자면, 초보 때는 무기가 묵직할수록 이득이오. 이 게임은 초반엔 리얼계 요소가 크게 작용하오. 근수가 나갈수록 파괴력이 큰 법. 심지어 마법사들도 초반엔 무거운 쿼터 스태프를 사용하오. 주문의 데미지가 낮아서 마무리는 때려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오.”

레비가 자상하게 이런저런 충고를 해주고 있지만, 위즈는 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레비와 접촉하자, 눈앞에 한 줄의 메지시가 출력되었기 때문이다.


<카피캣 발동! ‘거짓죽음’을 목격하였습니다.>

<‘거짓죽음’은 오리지널 스킬(패시브)입니다.>

<‘거짓죽음’을 따라하시려면, 일단 자동 레벨업 기능을 끄셔야 합니다.>

<현재 0/70회>


메시지의 설명만 듣고도 위즈는 레비의 ‘거짓죽음’이 어떤 스킬인지 알아내었다.

사실 이 스킬은, 네메시스가 권해주었던 스킬이기도 했다.

‘흠…설마 경험치를 희생하여 사망패널티를 극복하는 스킬인가? 그렇다면 레비가 실제로 쌓은 경험치의 양이 어마어마하겠군.’

광렙이 가능하다면야 충분히 유용해 보이는 스킬이다. 하지만 다름 아닌 경험치를 대가로 치러야 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은 보류해야겠군.’


◇◇◇◇◇◈◇◇◇◇◇◇◈◇◇◇◇◇◇◈◇◇◇◇◇


safety zone을 빠져나온 일행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손님이 있었다.

바로 흡혈박쥐들이었다. 던전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몬스터이지만,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비행형이라 공격이 힘들고 재빠르다. 작아서 발견도 어렵다.

무엇보다 짜증나는 건 행동 패턴이다.

“또 Hit and run이군요.”

흡혈박쥐들은 진득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놈들은 자신들이 약한 존재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타 게임의 박쥐들처럼 날아서 공격하지 않았다.

벽을 타고 몰래 기어와서 다리를 물고는, 날개를 펼쳐 후닥닥 달아나버렸다.

흡혈당한 곳은 출혈효과가 발생해, 지속적으로 체력이 깎였다. 이미 일행들의 팔 다리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들 한 번씩 물린 탓이다. 하지만 다들 불평 없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레비의 충고 때문이다.

“놈들을 잡겠다고 날뛰는 것보다 놈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게 더 현명하오. 경험치도 짠데다가, 놈들을 후려잡고 있으면 다른 놈들이 나타나오. 흡혈박쥐는 던전의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기나 마찬가지요.”

그의 말이 맞았다. 사람 머리만한 쥐들이 찍찍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대략 스무 마리.

“시궁쥐 1단계짜리요. 역병은 퍼트리지 않지만, 방심하지 맙시다. 숫자가 늘어나 에워싸이면 끝장이오. 화염병은 가급적 아끼시구려. 불이 붙은 채 이쪽으로 돌진해 피해가 커질 거요. 전위는 내가 맡겠소.”

인벤토리를 뒤적이던 레비가 무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숏소드만 두 자루였다.


<카피캣 발동! ‘제국 무투술’을 목격하였습니다.>

<‘제국 무투술’은 레전드 스킬(패시브)입니다.>

<‘제국 무투술’을 따라하시려면, ‘도·검·도끼·창·채찍’의 숙련도와 ‘맨손 격투술’의 숙련도가 동일해야 합니다.>

<현재 0/100회>


위즈는 눈을 부릅떴다. 자그마치 레전드 스킬이다.

이건 더 오션에 전승되는 이야기 속 영웅들이 사용하던 기술로, 그걸 얻었다는 말은 그 계열 내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라는 뜻이다.

‘더 오션이 서비스 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레전드 스킬을 익혀? 대체 이 사람의 정체가 뭐지?’

레비는 숏소드를 휘두르며 파죽지세로 시궁쥐들을 유린하고 다녔다.

“소드 댄스!”

활짝 날개를 편 것처럼, 칼날이 너울지며 이리저리 그어졌다. 그때마다 시궁쥐들은 잡템을 남기고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쥐새끼들아! 숨어 있기만 할 것인가!”


<카피캣 발동! ‘도발’을 목격하였습니다.>

<‘도발’은 노멀 스킬(액티브)입니다.>

<‘도발’의 시전 조건은 없습니다.>

<현재 0/20회>


찍찍찍! 복도 저편에서 시뻘건 눈동자가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전부……시궁쥐?”

레비가 재빨리 뒤로 물러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빙글뱅글이 방패를 세웠다. 뒤에서는 사쿠라가 주문을 외웠다.

“대지의 탄식!”

이쪽으로 달려오던 쥐들은 다시 방향을 바꿔 왔던 방향으로 도망쳐버렸다. 사쿠라는 스태프를 내리며 땀을 훔쳤다.

“다행히 먹혀들었네.”

“어째서 시궁쥐들이 공격하려다 도망친 겁니까?”

“대지의 탄식은 마력으로 인근의 암반을 자극해서 저주파를 일으키는 주문이에요. 당연히 짐승들이 싫어하지요.”

“그렇다면 흡혈박쥐가 나타났을 때는 왜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이 주문을 쓰면 대지의 정령이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정령에게 밉보이면 마법사는 정말 귀찮아져요. 지금도 어쩔 수 없어서 사용한 거라고요.”

위즈는 레비를 바라보았다.

“끝까지 간다면 저 시궁쥐들과 마주치겠지요?”

“100%요. 돌아가고 싶소?”

“아뇨. 가능하다면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흐음……역시 화염병 밖에 답이 없나…….”

레비가 턱을 잡고 고민했다. ‘거짓죽음’으로 인한 부담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이번엔 내가 나서야겠다.’

다른 사람에게만 너무 의지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제게 맹독 스크롤이 있습니다. 좁은 통로를 이용해서 트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작가의말

super amour(강력한 바람기)를 super armour(강력한 방어)로 고쳤습니다.

' r ' 하나 빼먹었더니 엉뚱한 뜻이 되었네요.

아이 창피해 >////<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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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51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20 24 34쪽
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7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8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3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7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8 3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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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8 3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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