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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22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9.08 21:30
조회
380
추천
3
글자
12쪽

216화

DUMMY

똑-.


물방울이 떨어졌다.

잔잔하기만 했던 호수 속으로.


“···무슨 말이야?”

“이상한 점은 많았잖아요.”

“이상한 점?”

“게임에서는 서술하지 않았던 캐릭터들의 취미를 알 수 있었다는 점도 그렇고, 저희가 처음 보는 스킬이나 기술을 구사한 것도 그렇고···.”


떨어진 물방울은 호수의 중앙에 낙화했다.

잔물결이 퍼졌다. 둥글되 옅은 물결은 마치 파문을 보는 듯했다.


물결이 일으킨 파문.

상황과 경험이 만들어낸 의문.


지금 상황이 그랬다.

머릿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진 순간, 찬우의 말이 이어져 귓가에 꽂힌 순간, 설진의 뇌에서는 자그마한 잔물결이 파문이 되어 퍼져 나갔다.


‘엘리나···.’


게임에서는 알 수 없었던 캐릭터들의 취미는 엘리나에게 있었다.

술을 좋아했다. 애주가라고 했다.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입과 의지로 그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리아엘라.’


게임에서는 알 수 없었던 캐릭터들의 스킬은 리아엘라에게 있었다.

길티 실드. 적을 몰아내고 아군을 보호하는 가시의, 아니. 리아엘라만의 고유한 능력이었다. 설진은 길티 실드를 이용해 요한의 폭풍을 타개해냈다.


‘···.’


물론 이 모든 것이 단지 설진이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었다.

게임에서 찾지 못한 정보. 그러니까, 있되 드러나지 않은 정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토록 오래 플레이해온 게임이었다. 미친 듯이 도전하고, 미친 듯이 트라이했다. 감히 말하건대 모든 정보를 찾아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실제로 게임의 기록 보관소도 꽉꽉 채웠었다. 캐릭터들의 사소한 정보도, 스페이스 온라인이라는 세계에 모든 무기도, 적의 정보와 약점까지도.

전부 채웠다. 빈칸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생생하잖아요.”

“···.”


똑-.


한 번 더,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큰 물방울이었다.


잔물결 정도가 아니다. 물결이 일었다. 파동과 파문 또한 더더욱 커졌다.


“생생···.”


찬우의 말이 맞았다. 듣고 보니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지구에서 플레이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과 경험.

화면 속 2D 캐릭터가 아닌, 시야 너머 3D의 인물.


만질 수 있고, 대화에 응해주는.

설정된 매크로 따위가 아닌 진짜 사람의 반응.


설진이 느끼기엔 그랬다. 애당초 엔딩 스테이지에서 엘리나가 ‘이야기’에 대한 사실을 언급하기 전까지 이곳을 거의 현실이라 여겼었다.

아니, 실제로 현실이 맞았다.

감각이 있고 고통이 있었다. 이곳에서 죽으면 진짜 죽는 것이고, 이곳에서 무언가를 먹으면 진짜 먹는 것이었다.


고로 이건 이야기가 현실로 변한 것이다.

줄곧 설진이 해왔던 생각이었다.


“···오빠, 이건 추측인데요. 정말 추측에 불과한 말인데요.”


찬우의 말에서 쌓인 의문이 해결되기도 전에, 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턱을 괸 채 진중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집중하고 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드물게 좁혀진 눈썹이 보였다.


채린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연 건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아무래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


이윽고 채린의 말을 들은 설진은 또다시 새로움을 느껴야만 했다.


“우린 이곳을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잖아요. 이야기 속 세계가 현실처럼 만들어져서, 우린 그 안에 들어간 것뿐이라고.”


게임 속으로 들어왔다.

마우스를 움직여 캐릭터를 조작하고, 인벤토리와 상태창이 있는.


그렇게 플레이해온 게임이었다.

현실이라기보단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 채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설진이 생각해 왔던 모든 명제와 가설을 한 번에 뒤집어엎을 정도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는 건 어때요. 이야기 속 세계가 아닌, 진짜 있었던 일이 이야기가 된 거죠. 그러면 플라임과 엘리나의 반응도 설명할 수 있어요.”


순서의 뒤집힘.

예컨대 이야기-현실이 아닌, 현실-이야기.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 현실이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즉, 게임의 범주를 넘어선 주장이었다.


‘···.’


설진은 채린의 말에 또다시 생각이 뒤집히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만일 사실이라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는 말이 된다.

어느 세계에서, 어느 시간대에 벌어진 ‘진짜’ 이야기.


이야기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뭐했다. 허상과 공상이 섞인 이야기라기보단 진실과 사실에 가까운 역사라는 단어가 더 옳을 것이다.

역사가 영화나 만화가 되듯, 지금 같은 상황에선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생각이에요. 추측이긴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추측이라. 아무 정보도 근거도 없어요.”

“···정말 없는 거야?”

“있다고 해도 찬우가 얘기했던 것 정도예요. 인물의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거나, 처음 보는 스킬을 사용하거나, 같은 거 말이에요.”


만약 시간이 흐른다면.

탑의 100층 공략에 성공해,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때, 찬우와 채린의 말이 맞기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단지 그렇게 빌었다.


휘익-.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요?”

“어? 나?”


한동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시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둘의 이야기를 듣고서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복잡한 듯 보이기도 했다.


설진은 시연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질문을 건넸다. 그녀는 이 세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채린과 마찬가지로 시연의 말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틈 사이의 짧은 침묵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하늘은 여전히 맑은데, 꼭 시간이 흘러 밤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시연의 생각도 앞선 둘과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길 잠시,


“나도 찬우와 채린이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시연은 서론을 열 듯 짧게 문장을 만들어 던졌고,


“하지만.”


잠시나마 밝아진 설진의 얼굴이 바뀐 건, 반전을 주듯 부정적인 접속어를 섞어 본론에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나는··· 솔직히 말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누나.”

“설진아. 그동안 우리가 해온 스페이스 온라인은 어떤 게임이었어?”


스페이스 온라인.

여느 RPG 게임과 다르지 않았다. 레벨이 있고, 공략해야 할 스테이지가 있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항상 행복이 가득하고, 해피 엔딩만이 남는 감동적인 게임이야?”


그러나 차이점 또한 존재했다.

대중성이라는 큰 파이를 갉아먹을 만큼 치명적인 차이점이.


“아니면 해피 엔딩을 달성하기 힘들고, 아니. 해피 엔딩이란 게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암울한 게임이야?”


바로 게임의 분위기.

어둡다거나 진지하다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비극.

비극의 연속이었다. 어딜 가든 행복은 없으며, 있는 거라곤 사람이 죽고 죽어나가는 배드 엔딩.


가히 비극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페이스 온라인은 암울한 게임이다.

희망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랭킹 1위에 다다른 설진마저 해피 엔딩을 보지 못한 게임이었다.


설사 채린과 찬우의 생각이 맞다고 한들,

플라임과 엘리나가 가짜가 아니라고 한들.


그런 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방법이란 게 존재하는 것일까.

시연의 눈동자는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암울하디 암울한 세계에서 괜한 희망을 품는 건 아닐까.

시연의 입술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후자에 가깝죠.”


설진은 시연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스페이스 온라인은 암울한 게임이고, 설진조차도 해피 엔딩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에서 플라임은 자살했고, 헤임 제국 에피소드에서조차도 완전한 해피 엔딩을 이뤄냈다고 보긴 어려웠다.


“미안. 괜히 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네.”


다시, 시연이 작게 말했다.


궤도에 올랐었던 희망찬 분위기가 다시금 추락했다.

앞서 말했던 찬우의 표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잠시지만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마치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채린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기야 긍정적인 방향이 거꾸로 되어버렸는데, 그 상황에서 분위기가 유지되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괜찮아요. 그리고, 차라리 이편이 좋을지도 몰라요.”


설진이 말했다. 다그치진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 상황이었다.

단지 그것이 조금 부정적인 방향이었을 뿐.

그리하여 잠시 분위기가 침체되었을 뿐이었다.


“정말로 우리가 100층을 클리어해 엔딩을 보게 된다면, 그렇게 돼서 플라임과 엘리나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버린다면.”


혹여 그것이 시연이 말한 대로 부정적인 방향이라면, 긍정적인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다 못해 말라 비틀어버리질 터.

그러니 시연 같은 사람이 있어야 했다. 긍정 대신 부정을 말하는 사람이.


그래야 사무쳐 다가오는 비극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플라임과 엘리나가 행복을 거머쥐지 못해도, 슬픔이 덜할 테니.


“···멋대로 좋게 생각하다가, 완전히 부서지는 것보단 낫잖아요.”


조금은 무미건조한 설진의 말이었다.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사실 설진의 생각도 시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탑에 들어와서도···.’


해피 엔딩을 이뤄내지 못했다.

이쯤 되니 한계에 봉착했나 싶기도 했다. 아무리 트라우마를 극복해도,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려도 해도 나아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험했다.


매 순간이 가시밭길이었다. 뾰족하다 못해 날카로워서,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금세 몸이 꿰뚫릴 것 같았다.


지쳤다, 라는 말이 뇌리를 감싸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벌써 두 번이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젠 하겠다는 의지보다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더욱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짝!


“자자! 여기 좀 봐요!”

“채린아?”

“오빠. 우리 지금 너무 다운되어 있다고 생각 안 해요?”


분위기의 추락.

확실히 엘리나가 남긴 말은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연나비에 들어온 지금까지 마음에 걸려 있을 만큼.


“시연 언니 말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암울한 세계인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죠.”

“그런데요. 조금은 희망적이게 변해도 된다고 전 생각하는데요.”


채린의 말이 이어졌다.


“플레임 왕국에서는 완전한 실패를 겪었어요. 근데, 헤임 제국에서는 어때요? 전쟁에서 이겼고, 엘리나도 살아남았잖아요.”


플라임은 죽었다. 플레임 왕국 또한 멸망했다.

그러나 엘리나는 살았다. 살아남았으며 제국 또한 존속했다.


“처음은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어때요. 해피 엔딩이라곤 하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배드 엔딩이라고 하기에도 뭐하잖아요.”


채린의 말이 맞았다. 완전무결한 해피 엔딩은 아닐지라도, 엘리나는 분명 설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함은 분명 행복에 가까운 감정일 터. 채린은 그 점을 강조하며, 다운된 분위기를 풀어내고자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실패. 두 번째는 성공도 실패도 아닌 애매한 결말.

확실한 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채린이 말했다.


“조금 정도는, 마음 편하게 먹자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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