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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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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64,721

작성
22.09.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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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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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15화

DUMMY

“연화 님.”

“아무도 없을 때는 그냥 누나라도 불러도 돼.”

“···누나.”


회의가 끝난 후, 연화와 아퀴넬은 복도를 걸어 방으로 들어왔다.

엘프의 나라인지라 왕국, 제국과는 다른 건축 방식이 엿보였다.


“일단 이쪽 방으로 들어가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전체적으로 토대는 비슷했다.

부지 위에 집을 세워둔다. 지붕이 있고 방이 겹겹이 존재한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통나무 그대로 집이 이뤄져 있다는 점이었다.


나무의 훼손을 최소화하려는 엘프들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통나무는 부러지거나 잘리기보단 기울여져 있는 경우가 더 많았고, 천장을 덮은 지붕은 이끼나 풀을 사용해 친화적인 모습을 일구어 냈다.


연화는 이런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 아퀴넬을 데리고 걸었다.

들어간 방에 자리를 잡듯 앉더니, 이내 아퀴넬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뭐 마실래? 차?”

“아니, 괜찮아. 지금은 별생각 없어.”

“그래?”


두 개의 잔을 집은 손에서 하나가 빠져나갔다.

연화는 잔 하나에 찻잎을 넣어 차를 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충분히 우려냈다는 느낌이 들 즈음, 후루룩-.

따뜻한 차를 넘기며 목을 축였다. 지붕을 덮은 풀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따스한 기운을 풍기며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미안해. 이른 아침부터 회의를 열게 돼서.”

“아니야. 괜찮아.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데, 안 열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내가 누나였어도 그랬을걸.”

“후후. 그래?”


후르륵-.


다시 찻잔을 입에 옮긴 후, 옅은 미소를 지은 연화의 말이었다.

방에서는 자그마한 소음이 퍼지고 있었다. 찻잔이 들어 올려지고, 다시 내려질 때마다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을 감쌌다.


플레임 왕국에서 수입해 온 찻잔이고 받침이었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기를 선택한 연나비와는 달리, 왕국은 발전과 개척의 길을 택했으니.

지금 보고 있는 찻잔도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연화는 엘프이나 왕국의 선택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어느 선택이든 간에 각자 장단점이 따르기 마련이었으니까.


연나비는 자연과 어우러져 엘프만의 특색을 살리길 바랐을 뿐이고,

왕국은 실용성과 편리함을 얻고자 개척의 길을 골랐을 뿐이다.


“회의 때는 고마웠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서, 조금 꽁해 있었는데.”

“꽁해, 있었어?”

“응. 나름 고심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말이야. 아무도 동조를 안 해줘서··· 조금 정도는 놀랐고 당황했달까?”


연화는 은은한 웃음을 머금으며 읊듯 말했다.

영주와 영주를 보필하는 보좌관의 관계가 아닌, 누나와 동생의 관계.

그렇기에 연화의 목소리에는 예의 근엄함보단 친근감이 느껴졌다.


“아, 그때···.”


아퀴넬은 연화의 말에 답하며 방금의 일을 회상했다.

불과 삼 분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어쩐지 기억이 희미했다.


아니, 희미하다기보단 꿈 같다고 해야 하나.

분명 자신이 겪고 한 일이 맞는데 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꿈을 꾼 기분이었다. 단지 생생해서, 하루를 웃돌아도 잊히지 않을 만큼 기억에 남는 꿈을.


‘이상하다. 분명···.’


연화의 말에 짧게 화답한 아퀴넬은 눈썹을 좁히며 생각을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현실보단 생생한 꿈에 가까운 기억이었건만, 여전히 방금의 회의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 있었다.


‘아닌가···? 그냥 착각인가?’


도대체 방금 무엇을 경험한 건지.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상황도 아니었다.


옅은 향에 취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퀴넬은 무심결에 손을 올려 머리를 긁었다. 손의 촉감도, 머리카락이 긁기는 감각도 모두 또렷이 느껴졌다.


눈앞의 연화는 여전히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중이다. 후룩-. 내려진 찻잔이 다시 그녀의 손에 잡히고, 올라가 입가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서 놀아나기를 잠시,


“너도 놀랐어?”

“어?”


연화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다크 엘프와 싸우려고 한 것 말이야. 역시 너무 무모한 결정이었나, 싶기도 해서.”


전쟁을 일으킬 때면 항상 신중해야 했다.

당연한 말이었다. 전쟁의 여파는 항상 비극적이게 흘러가는 법이니.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사람이 죽고, 패배하더라도 사람이 죽는다.

생명만이 아니다. 건물도 재산도, 모두 궤멸적인 피해를 입에 된다.


“내 입장에선 나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는데 말이지.”


물론 연화가 아무 생각 없이 전쟁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회의 전. 세계수의 상태를 보고, 다크 엘프들의 행태를 보고 수없이 고뇌했다.

그런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바로 전쟁이었다.


다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급진적인 결정처럼 보인 모양.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충분한 생각 끝에 주장한 전쟁일지라도, 그들은 아무런 소식 없이 전쟁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당황하거나 놀라는 건 당연할 터.

그렇게 생각한 연화는 쓰게 웃었다. 아직 자신에게는 누군가를 이끄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만 있었더라면···.’


잠시 상념에 빠진 연화가 깨어난 것은 아퀴넬의 말에서부터였다.


“아냐. 나는 누나 말에 동의하고 있어.”


아퀴넬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오히려 이렇게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는데, 받아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야.”


생생한 꿈이라는 선입견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다시 현실임을 자각한 아퀴넬은 제 생각을 내뱉었다. 다행히도 그는 연화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세계수는 얼마나 훼손됐어?”

“아직 많이는 아니야. 그냥 가지랑 잎사귀 몇 개가 오염당한 정도···.”


가지랑 잎사귀 몇 개.

따지고 보면 그렇게 위협적인 일은 아니다.


세계수는 고귀한 나무. 고작 일부분이 오염되거나 물들었다고 해서 죽을 일은 없었다.

다만 중요한 건 ‘위협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한 번 당했는데도 가만히 있으면 그쪽에서 짓밟으러 올 거야.”

“역시, 그렇겠지?”

“응. 그러니까 나서야 해.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관계를 이어갈 순 없으니까.”


엘프와 다크 엘프는 오랜 악연으로 맺어져 있었다.

근 백 년.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물어뜯으며 성장해 왔다.


그걸 아는 아퀴넬이기에 관계의 종식을 선언했다.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싸움이 계속되게 놔둘 바에야, 차라리 끝내버리자고 말이다.


“아퀴넬···.”


연화는 아퀴넬의 말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전쟁을 제안한 건 연화지만, 어쩐지 그가 더 전쟁을 원하는 것 같아서.


“좋아. 그럼 일단···.”


고개를 끄덕인 연화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둥근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척-. 옆으로 펼쳐진 두루마리에는 연나비의 지도가 있었다. 연화는 펼친 두루마리를 아퀴넬과 함께 보며, 전쟁의 의논을 시작했다.


* * *


[56층에 진입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메웠다.

늘 봐왔고, 보고 있고, 앞으로도 봐야 할 메시지.


층 진입 메시지를 읽다 넘긴 설진은 손을 쥐락펴락했다.

아퀴넬에 빙의했을 때와는 조금 더 익숙한 감각. 그제야 설진은 빙의가 끝나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스윽-.


무망중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플레임 왕국이나 헤임 제국에서는 하늘보다 천장을 볼 일이 많았다면, 연나비는 조금 달랐다.


하늘. 하늘이 보였다. 오후조자 되지 않은 오전의 시간. 조금은 쌀쌀한 가을을 장식한 건 옅은 빛줄기였고, 세상을 덮듯 쓸어내리는 것은 바람이었다.

뺨을 스친 바람에 설진은 검집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참 바람과 연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도 그렇고, 50층의 엔딩 스테이지에서도 그렇고.

알 수 없다는 듯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설진은 허리춤의 검을 동여맸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았다.


“시작이네요.”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인원.

이 또한 여느 때와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설진은 마지막 에피소드의 시작을 알리듯 심호흡하며 말했다.


25층의 플레임 왕국과 50층의 헤임 제국을 넘어 도달한 곳이다.

연나비. 엘프의 세계. 연화의 얼굴을 떠올린 설진은, 불현듯 잊혀지지 않았던 또 다른 주인공의 이름이 떠올랐다.


‘엘리나.’


정확히는, 주인공임을 자각한 엘리나.

엔딩 스테이지에서 그녀가 보였던 모습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단순히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닌, 생생하다 못해 틀어박혔을 정도로 깊게.


“그런데 그 전에···.”


이야기에는 여운이 있다곤 하지만,

여운이란 게 쉽게 가시진 않는다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개념이었다. 이야기의 끝에 남은 여운이라기보단, 끝이 나지 않은 이야기에 잔류한 미련이라고 하는 것이 옳아 보였다.


“조금 앉을까요?”


시연, 채린, 찬우의 얼굴을 한 번씩 훑은 설진은 휴식을 제안했다.

이야기의 엔딩 후 급작스럽게 진행된 다음 에피소드였다. 좋으나 싫으나 어느 정도 기운이 빠져 지쳤을 터.


재보충을 위해 한숨 돌리자는 뜻이었다. 그리고, 꼭 그것만은 아니기도 했다.


“저기 의자 있네요. 공원인가 봐요.”

“여기에도 공원이 있구나.”

“그러게요. 게임할 땐 안 보여줘서 몰랐는데.”


시연의 말에 답한 설진은 걸었다.

시연과 설진이 앞에, 그 뒤를 채린과 찬우가 뒤따랐다.


그렇게 걷기를 잠시, 넷은 곧바로 의자에 앉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토록 함께했고, 알아온 사이임에도 오가는 말은 없었다.

침묵. 장시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그만큼 네 사람이 느낀 감정은 격렬했다.


세계선을 삐져나온 이야기라니, 캐릭터임을 자각한 캐릭터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고 이야기여서.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


설진은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양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엘리나가 했던 말이 귓속을 타고 들어와 끊임없이 반복됐다.


-“저는 앞으로 일기를 쓸 겁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그 일에 어떻게 반응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역사를 요약하기보단 제 개인적인 소견을 쓸 겁니다.”


엘리나는 말했다.

앞으로 일기를 쓰겠다고.

개인적인 감정을 가득 담아 서술하겠다고.

다시 설진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엘리나가 했던 말. 기억나요?”


다만 설진이 보기에는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계획이었다.

아니, 애초 엘리나가 이야기임을 깨달았을 때부터 모든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이야기 속 캐릭터는 결국 캐릭터일 뿐이며, 그걸 알아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니.


막말로 일기를 썼다는 기억마저 조작당한다면.

그리하여 다시 만날 때, 엘리나는 그저 설진을 구원자라고만 인식한다면.


이뿐만이 아니다. 엘리나의 계획이 막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세기조차 쉽지 않을 지경이다.

그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정체성을 부정당한 인간은, 아니. 캐릭터는.

무엇을 해도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그 어떤 성취를 이뤄도, 행복을 찾아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 일부. 진실이 아닌 허상 속 세계일 뿐이니까.


“다들 그 말에 대해 어떻게···.”

“형!”


해결법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입을 열었다.

그런 설진의 말을 가로챈 건 찬우의 목소리였다.


드물게도, 큰 목소리.

성대가 울릴 정도로 컸다. 순간 귀가 찌르르 울릴 만큼.


대체 무슨 일이냐 묻는 듯한 설진의 표정에, 찬우는 재차 말을 보탰다.


“정말, 가짜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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