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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78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08 20:05
조회
2,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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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
12쪽

일대종사 (一代宗師)

DUMMY

“어이, 어이! 그쪽 방향이 아니라고”


마차에서 목을 길게 빼어 외치자, 대식이 워워- 하며 당나귀들을 멈춰 세웠다.


“도련님, 무림맹으로 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언제 무림맹에 간다고 했어?”


“네? 개봉으로 가신다면서요?”


“개봉은 가야지”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대식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봉하면 무림맹만 떠올리는 것을 보니, 이 녀석도 아버지와 스승에게 오랜 세월동안 제대로 세뇌당한 모양이었다.


“도련님, 개봉으로 가려면 이쪽 방향이 맞습니다”


“아니다. 이 몸에게 다 계획이 있노니”


몸을 날려 마부석 대식의 옆에 턱 걸터앉았다.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리는 그를 무시하고 품 안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내 품에서 나온 것은 꼬깃꼬깃한 서책. 수백번 뒤적거려 헤질대로 헤진 그 서책에는 중원의 지도와 함께 내가 깨알같이 적어놓은 글씨들로 가득했다.


“도련님, 이것들이 대체 다 무엇입니까?”


“에헴, 이것들은 말이지···”


그것은 중원 각 지역 모든 주요 상품들의 시세표였다. 어느 지역은 무엇이 비싸고, 어느 지역은 무엇이 넘치고, 또 무엇이 부족하고···


지난 몇년간 다른 지역에서 온 상인들이나 표사들을 만날 때마다 비싼 술값을 지불하며 털어낸 정보였다.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사서 어디에 팔아먹는지, 얼마나 이문을 남기는지 기록한 일종의 상권지도인 셈이었다.


아버지와 사부 몰래 이 책자를 만드느라 내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들었는지!


“자. 지도를 잘 보라고. 여기서 여기로··· 이 다음엔 저 마을로 갈 것이다”


“짧은 길을 두고 왜이리 멀리 돌아서 가십니까? 아하, 강호 유람같은 건가요? 도장깨기?”


“도장들을 왜 깨?”


대식과 나는 서로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그를 쳐다보던 나는 무언가 중요한 설명을 빠뜨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예니 강호니 하는 것 따위는 잊어버려. 나는 장사로 큰 돈을 벌거란 말이다. 일단 개봉이 목적지이긴 한데, 지금 자금으로는 그런 큰 도시에서 사업하기에는 부족해. 개봉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 돈을 세배 네배 이상으로 불려놓아야 한단 말이지”


“장사요? 도련님이요?”


대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나는 거상(巨商)이 될 것이다! 중원의 모든 보물과 재화를 박박 긁어주겠어!”


“도련님이 무슨 재주로 장사를 합니까? 게다가 스승님께서···”


대식이 뒤를 돌아보자, 나는 흠칫 놀라 그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혹여라도 저 수레 어디엔가 변노인이 숨었나 싶어 다시 한번 요리조리 살폈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이씨, 깜짝 놀랐잖아!”


“도련님, 스승님께서 아시면 가만히 있으시겠습니까? 저번처럼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요”


“어허··· 이제 우리는 큰 물에서 노는 사람이야. 네놈만 달려가서 고자질하지 않으면 그가 어떻게 알겠느냐? 이제 그 촌동네 늙은이는 잊어버려!”


“주인님의 유언은 어쩌시려구요? 가문을 꼭 일으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혀를 쯧쯧 차며 이 고지식하고 충직하기만 한 하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융통성 없는 녀석. 아버지의 유언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一代宗師. 일대종사.


무림을 휘어잡는 일류고수가 되어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라.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중원 세계의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한때는 꽤나 이름을 날렸던 무가의 후손이라던 늙은 노인의 꿈에 부채질을 한 것은, 그 본명(本名)도 출신도 알 길이 없는 정체불명의 늙은이, 변노인이었다.


나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꼬셔 아버지의 돈을 뜯어내고, 쓸데없는 잡기들을 얼마나 억지로 가르쳐대었는지!


그들은 내가 장래에 중원을 호령하는 무림고수라도 될 것 마냥 이야기하곤 했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달랐다. 시골 촌구석에 쳐박혀 지내는 돌팔이 노인네가 술마실 용돈 좀 얻자고 떠들어대는 말에 어찌 내 운명을 맡긴단 말인가?


애초에 나는 중원인이 아니니, 칼들고 설치다가 일찍 저 세상에 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이전의 생에서 못 이루었던 꿈- 천하를 발 아래에 두는 거부(巨富)가 되어 볼 생각이었다. 일대종사니, 무림일통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안전하고, 현실적이고, 짜릿한 꿈이 아닌가.


“가문을 일으키는데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만 믿으라고”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던 대식은, 결국 불끈 쥐여진 내 주먹을 보고 나서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마차는 내 주장대로 방향을 바꿨다. 이틀거리를 내리 이동한 끝에, 우리는 첫번째로 목적했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주인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부르던 대로 도련님이라고 불러. 어색하다”


“도련님. 이게··· 이게 맞나요?”


대식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수레를 바라보다가 울상을 지었다.


수레에는 내가 마을을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싹쓸이한 각종 약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비록 상등품의 인삼은 구하지 못했지만, 황기, 지황, 백작약, 백지, 감초, 계지, 형개, 당귀 등, 그야말로 요긴한 약재들은 빠짐없이 두루두루 모은 셈이었다.


“나만 믿으라니까. 뭐가 그리 걱정이야?”


“그 큰 돈을··· 처음부터 이렇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홀라당 써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자고로 투자라는 것은 과감해야 하는 법이다. 돈을 써야 돈을 벌 것이 아니냐?”


“도련님이 쫄딱 망하실까봐 그러죠. 고향의 집도 땅도 다 팔아버린 판국인데, 이 밑천마저 날리면 저희는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습니까?”


“거 참.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로구나. 두고봐라. 조만간 네 손가락 열마디 전부에 금가락지 은가락지 끼고 다닐 수 있게 해줄테니. 그때가 되면 손가락이 무거워서 수저를 들기도 어려울 것이야”


“제 팔자에 무슨··· 아무쪼록 입에 곡기만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로는 툴툴거리면서도 대식은 금가락지를 낀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는지 입을 헤 벌렸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못미더운지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이 마을을 봐라. 규모가 크진 않지만 동서남북으로 길이 잘 뚫려있어 상인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그야말로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요지이지. 여기서는 뭘 구하더라도 다른 인근 마을보다 상대적으로 싸게 구할 수가 있어. 그런데 왜 내가 약재만 집중적으로 사댔을까?”


“아는게 그것밖에 없어서?”


호되게 머리를 쥐어박힌 대식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마부석에 올랐다. 마차 안에까지 약재를 밀어넣은 터라 자리가 없어진 나도 대식의 옆에 자리잡은 뒤 지도를 쫙 펼쳐보였다.


“자. 다음 목적지는 이곳이다. 그곳에서는 같은 약재를 구하려고 해도 이 곳 가격보다 최소 삼 할은 더 쳐줘야 한다고. 내 계획대로만 되면, 돈을 벌기란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기인 셈이지”


“흠···”


확신에 찬 나의 말투에도 대식은 의심을 걷어내지 못했다.


“거리가 멀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가격 차이가 나지요? 도련님 말고는 아무도 그쪽 마을에 약재를 가져다 팔 생각을 못했던 건가요?”


“이것이 바로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것이다. 나같이 냉철한 본능, 비범한 관찰력을 가진 상인만이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지”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피고 또다시 손가락을 저 먼 곳을 가리켜보았다. 내 원대한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첫번째 관문을 향해서.


“가자! 이제 돈버는 일만 남았다!”



***



완벽해보였던 내 계획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를 향한 여정의 사흘째가 되는 날...


‘아뿔싸! 산이 높구나!’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분명히 지도상으로는 마차가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되어있었는데, 그 경사가 범상치 않았다.


왜 중원의 지도에는 등고선이 없는 것인지!


언덕이 점차 가파라지자, 수레에 짐이 잔뜩 실린 탓인지 늙은 당나귀들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보다못한 내가 수레를 뒤에서 밀기 시작했지만, 경사가 더 가파라지거나 길이 끊기기라도 한다면 대책이 없을 것이다.


돌아가자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더 나아가자고 하기엔 무리인 상황. 복잡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식이 목소리를 외쳐 물었다.


“도련님, 이 이상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산 너머 마을 물가가 비싼 이유를 알겠는데요?”


고삐만 쥐고 있는 주제에 함부로 입을 놀리는 대식을 쥐어박고 싶었으나, 내가 손을 떼면 마차가 뒤로 굴러갈까 두려워 얼굴만 울그락불그락하던 때였다.


“어허! 곤경에 취한 나그네로구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 보이는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산을 울리더니, 어디선가 홀연히 무장한 무리들이 나타났다. 월도, 곤봉, 도끼, 도리깨, 채찍 등등 각기 들고있는 무기만큼이나 얼굴도 개성있게 생긴 이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누렇고 까만 이를 드러내며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히이익···산적!”


대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나는 반가운 마음에 크게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귀인(貴人)이로구나!”


“귀···귀인? 우리가?”


산적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껏 자신들이 나그네를 반긴 적은 있어도, 나그네가 자신들을 반가워하는 것은 처음일 터였다.


“선생님들, 잘 오셨습니다. 저 좀 도와주십쇼! 여기 여기, 네! 이리 오십쇼. 마차가 구르지 않게 고정만 시키면 됩니다”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자, 나에게 지목당한 이들이 머뭇대며 마차 쪽으로 다가왔다. 한 명은 머리가 벗겨지고 한 명은 멸치같이 마른 이들이었는데, 도움의 손길을 주러 나타난 이들 치고는 행동이 매우 굼떴다.


그들의 도움으로 마차바퀴를 고정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 돌린 나는 땀을 닦아내며 활짝 웃음지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한 인연입니다! 마침 기다리던 손님들을 이곳에서 맞이하게 되었군요!”


“우릴 기다렸다고요? 혹시 뉘신지···”


쫄개들이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자, 비탈길 맨 위에 서서 팔짱을 끼고있던 근육질 덩치가 입을 열었다. 울림통이 보통이 아닌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힘이 있었다.


“이 못난 녀석들, 산적이면 산적답게 굴어! 애송이가 내뱉는 헛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얼른 가진 것을 모두 털어내라”


“잠시만요!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는 정말 여러분들을 만나뵈러 온 것입니다!”


“...?”


흉흉한 기세로 무기를 뽑아든 산적들이 다시 한번 주춤했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마차를 넓게 둘러싼 십여명의 산적들을 한명 한명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거친 산생활을 하시느라 이곳 저곳 다치는게 일상다반사이시죠? 끼니도 들쭉날쭉이라 몸도 자꾸 허해지구요”


산적들은 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제각기 상처를 매만지거나 홀쭉한 배를 어루만졌다. 나는 수레와 마차에 빈틈없이 들어찬 약초와 약재들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보십시오! 제 수레에 실린 것이 무엇인지. 여기있는 약재들이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을 만날 생각이 아니었다면, 제가 바보도 아니고 이 산길을 이리 무식하게 짐을 쌓아서 넘으려고 했겠습니까?”


“설마 너는 우리에게 약재를 팔러 왔다 이 말이냐?”


근육질 대장의 질문에, 나는 뻔뻔하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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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87 24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1,014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70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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