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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버서사이-미소녀 천재 대마법사 전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디귿(D)
작품등록일 :
2022.05.12 14:41
최근연재일 :
2023.04.19 19:10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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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4
추천수 :
176
글자수 :
76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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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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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4. 카델 침공(27)

DUMMY

* * *


바기라가 멀어질수록 옴짝달싹 못 하던 몸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왔다. 이윽고 검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되살아났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괜한 움직임으로 바기라의 시선을 끌어 다시 위기를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


‘후퇴 명령이다. 사령의 명령은 절대적! 그런데 후퇴 명령을 따르는 게 옳은 선택일까?’


세상을 울리는 뿔나팔 소리에 타쿤은 고민했다. 범접할 수조차 없는 바기라만 아니라면 눈앞의 인간들은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명령을 따르는 것보다 기회를 노려 성을 함락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럴 일은 없지만, 만에 하나 저자가 하비르 님을 제압하면? 그래.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내가 성을 함락해야 한다.’


결심을 굳힌 타쿤은 슬그머니 곁눈질로 바기라의 동태를 살폈다. 그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거나, 성에서 벌어지는 일에 신경 쓰지 못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냥 기다리는 것도 쉬운 건 아니었다. 불가항력으로 몸이 굳었을 때와 달리 긴장이 풀린 지금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은근슬쩍 자세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당분간 이대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언니, 언니! 정신 차려!”


피아는 거칠게 아현을 흔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적장은 완전히 얼어버렸고, 적들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나 겨우 찾은 평화는 아현을 챙길 유일한 시간일지 모를 일이었다.


“언니! 일어나라니까! 언니!”


아현은 보기 불쌍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멀쩡한 사람도 기절시킬 것 같은 피아의 거센 손길을 보다 못한 루리아가 나섰다.


“그만해. 마나를 무리하게 써서 잠깐 정신을 잃은 거야. 그렇게 무··· 무작정 흔든다고 깨어나지 않아.”


다급한 마음에 그만 ‘무식하게’란 표현을 그대로 뱉을 뻔했지만 다행히 꿀꺽 삼키고 적당히 둘러댔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금방이라도 주르륵 눈물을 흘릴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바라보는 피아가 안쓰럽게 보였다.


‘애는 참 착한데······.’


“일단 기다려봐. 목숨이 위급한 건 아니니까 기다리면······.”




누군가 피아의 머리를 세게 쳤다. 피아는 머리를 울리는 충격에 울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분타 교수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피아를 내려보고 있었다.


“비켜!”


“그치만··· 언니가······.”


“그러니까, 치료할 테니까 비키라고. 이 얼빠진 제자 년아. 그렇지 않아도 마나 과 운용으로 기절한 애를 그렇게 무식하게 흔들면 어쩌자는 거야? 마나 흐름만 조금 만지면 되는데 너 때문에 어디 상하지나 않았나 걱정이다.”


“저, 정말요? 저 때문에 더 다쳤어요? 그러면 안 돼요. 우리 언니 다치면 안 돼요. 으아앙.”


분타의 매몰찬 말에 피아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누구 하나 피아에게 다가가 달래는 학생이 없었다. 감정이 격해진 피아 곁에 있다가 괜히 불통이 튀진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컸다.


‘휴우··· 다행히 심각하진 않군.’


분타는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피아에겐 별거 아니란 식으로 말했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아현의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었다. 마나 과 운용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보통은 정신력이 버티지 못해 중간에 쓰러지거나 과 운용되기 전에 마나가 바닥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무리 마정석이 있어도 보통은 그전에 정신이 견디지 못했을 텐데. 도대체 이 아이의 정체는 뭐지? 아니야.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분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치료에 집중했다. 시전자의 한계를 벗어나 과 운용된 마나는 결국 시전자의 생명력을 갈취한다. 다행히 그 직전에 마법을 멈춰 생명이 위독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휴우······.”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 같던 마나를 안정시키자 창백했던 아현의 혈색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분타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대로 편히 쉬게 두면 금방 깨어날 거야.”


“정말요? 정말 우리 언니 이제 괜찮은 거예요?”


피아가 눈물을 훔치며 다가왔다.


“그래. 그러니까 그만 훌쩍거려. 평소엔 성난 들소 같던 애가 뭘 이런 거 가지고 질질 짜고 있니?”


“그치만··· 아현 언니는 언니인걸요.”


‘뭔 소리야?’


“그럼 성천은? 성천까지 단짝 아니었어? 성천 걱정도 좀 하지 그러니?”


그제야 피아의 눈이 바쁘게 성천을 찾았다. 평소엔 죽이니 살리니 싸우면서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걱정이 눈에 가득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피아의 시선에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늘어진 성천이 들어왔다.


“꼴 보니까 이제 좀 걱정되니?”


피아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성천이 걱정되긴 했지만, 직접 안부를 묻는 건 왠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괜찮아. 저래 보여도 그냥 지쳐서 쉬고 있는 것뿐이야. 정신도 깨어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뭐··· 걱정까지는 아니에요.”


“그래. 그럼 그렇다고 치자. 아무튼, 아현은 괜찮으니까 이제 나랑 같이 다른 애들이나 좀 살피자. 아직 치료받을 애들이 많아.”


다행히 당장 생명이 위급한 학생은 없었다. 그래도 우선순위를 정해 치료하느라 아직 돌보지 못한 학생이 많았다. 피아는 하는 수 없이 아현을 잘 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때 바싹 마른 아현의 입에서 얇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 으······.”


“언니! 언니! 괜찮아? 정신이 들어?”


피아는 다시 아현 곁에 주저앉았다.


“피··· 아? 너··· 괜찮아?”


“뭐야. 왜 언니가 내 걱정을 해. 내가 언니 걱정을 해야지. 언니 쓰러져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으앙.”


피아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분타도 피아를 말리지 않았다. 한 명이라도 부족한 마당에 아현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피아를 잡아끌어야 했지만, 꼴을 보니 억지로 끌고 가도 아현만 신경 쓰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게 뻔했다. 분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른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치료를 미루지 마라. 멀쩡한 사람은 부상자를 도와. 언제 다시 전투가 시작될지 모르니 치료가 끝난 학생은 경계를 늦추지 마라.”


분타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동이 가능한 환자는 스스로 모여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고, 부상이 심한 학생은 도움을 받아 후방으로 물러났다. 경미한 부상이나 멀쩡한 학생은 무기를 쥐고 성문 너머를 주시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왜 울고 그래. 나 괜찮··· 윽!”


“왜? 왜 그래? 어디 아파?”


아현이 말을 잇지 못하고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피아는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아현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통을 참아냈다.


“괜찮아. 참을만해. 근데 나 왜 쓰러진 거야?”


“마나 과 운용이래. 너무 무리해서 마나를 운용한 반작용이라나? 근데 어디가 아픈데? 머리? 가슴? 응? 어디가 아파? 분타 교수님께 봐달라고 할까?”


“아니. 머리도 조금 아프긴 한데··· 볼이 아파. 얼굴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파.”


아현은 빨갛게 부푼 얼굴을 어루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아까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혔나 봐. 심각하진 않으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야.”


피아는 아현이 상처를 확인하지 못하게 서둘러 손을 거두고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지금은 맘 편히 쉬어. 바기라 아저씨 덕에 위험한 상황은 지나갔어.”


“바기라 아저씨?”


“응. 아저씨가 나타나니까 다들 도망갔어. 저기 봐. 저 무식하게 생긴 괴물도 아저씨 보더니 저렇게 굳어버렸다니까.”


아현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피아가 가리킨 방향을 봤다. 피아의 손끝이 가리킨 곳엔 검을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굳은 타쿤이 있었다. 성문 밖은 후퇴하는 도라마들이 일으킨 모래 먼지만 가득했다.


“성천은? 다른 애들은?”


“저기 말아놓은 멍석처럼 자빠져있어. 지쳐서 그런 거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다른 애들도 대부분 괜찮아. 그런 것보다 언니 걱정이나 해.”


“아니야.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얼굴 아픈 것만 빼면······.”


피아는 모른 척 성 밖으로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어디 보는 거야? 그러고 있지 말고 나 좀 일으켜줘.”


“어? 어.”


피아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킨 아현은 성문 밖 가득한 먼지바람 속 어렴풋한 푸른 기운을 봤다. 온통 회색 먼지만 가득한 세상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기운은 마치 홀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듯 이질감을 풍겼다.


“너도 저거 보여?”


“어떤 거? 아, 저 푸른 기운? 응. 바기라 아저씨야.”


“바기라 아저씨라고?”


“응.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정체가 뭔지 모르겠어. 마주한 것만으로도 적을 못 움직이게 하고, 바글바글하던 적들도 후퇴하게 했다니까. 그리고 저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기운의 정체는 또 뭐람? 기는 저런 식으로 형상화할 수 없는데··· 마난가?”


마나는 아니었다. 기가 아니라는 말에 정신을 집중했지만, 마나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마나는 아닌데··· 뭔가 좀 더 근원적인 느낌이라고 할지······’


“마나는 아닐 거야. 느낌이 너무 달라. 저건 차라리··· 응?”


“왜? 어디 안 좋아?”


말을 잇지 못하고 동그랗게 커진 아현의 눈은 피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나··· 거대한 마나······.”


“뭐야? 깜짝 놀랐잖아. 역시 마나가 맞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마나가······.”


아현의 흔들리는 눈은 성문 밖 후퇴하는 도라마들이 일으킨 먼지 너머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 * *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직접 움직여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의지에서 벗어나 얼음처럼 굳었던 세포가 완전히 돌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기라의 기운도 제법 멀어졌으니 적당한 순간이 오기만 기다렸다.


‘또 저런 괴물이 있을 리 없다. 그랬다면 이렇게 힘겨운 전투를 벌일 리 없다.’


타쿤이 걱정하는 유일한 상황은 갑자기 나타난 바기라처럼, 감당 못 할 적의 출현이었다. 그러나 잠자코 상황을 살핀 결과 변수는 없었다. 이제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단숨에 처리한다. 인간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성을 함락한다.’


결심은 굳힌 타쿤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나저나 저 괴물은 언제까지 저러고 있는 거지?’


부상자를 치료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분타의 신경 한 부분은 타쿤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돌처럼 굳어있지만, 만약 다시 움직인다면 전멸을 피할 수 없었다.


“저··· 교수님.”


학생 하나가 조심스럽게 분타를 불렀다.


“왜? 할 말 있니?”


“그··· 확실하진 않은데······.”


“무슨 일인데? 중요하지 않은 거면 나중에 얘기하자.”


“그게··· 저 괴물이 조금 움직인 것 같아요.”


“뭐?”


분타는 치료하던 손을 멈추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타쿤은 처음 그 자세로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제외하곤 처음과 그대로였다. 시선, 표정, 손끝에서 발끝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쉽게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만에 하나 학생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상황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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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01. 작별 인사(1부 마지막) 23.04.18 12 0 23쪽
102 #101. 전후(戰後) 사정(5) 23.04.17 31 0 12쪽
101 #100. 전후(戰後) 사정(4) 23.04.16 17 0 14쪽
100 #99. 전후(戰後) 사정(3) 23.04.15 19 0 15쪽
99 #98. 전후(戰後) 사정(2) 23.04.14 19 0 14쪽
98 #97. 전후(戰後) 사정(1) 23.04.13 19 0 16쪽
97 #96. 카델 침공(29) 23.04.12 23 0 16쪽
96 #95. 카델 침공(28) 23.04.11 17 0 14쪽
» #94. 카델 침공(27) 23.04.10 21 0 12쪽
94 #93. 카델 침공(26) 23.04.09 21 0 14쪽
93 #92. 카델 침공(25) 23.04.08 20 0 14쪽
92 #91. 카델 침공(24) 23.04.07 16 0 13쪽
91 #90. 카델 침공(23) 23.04.06 17 0 14쪽
90 #89. 카델 침공(22) 23.04.05 25 0 12쪽
89 #88. 카델 침공(21) 23.04.04 18 0 11쪽
88 #87. 카델 침공(20) 23.04.03 15 0 14쪽
87 #86. 카델 침공(19) 23.04.02 16 0 11쪽
86 #85. 카델 침공(18) 23.04.01 19 0 13쪽
85 #84. 카델 침공(17) 23.03.31 15 0 13쪽
84 #83. 카델 침공(16) 23.03.30 15 0 12쪽
83 #82. 카델 침공(15) 23.03.29 19 0 16쪽
82 #81. 카델 침공(14) 23.03.28 18 0 14쪽
81 #80. 카델 침공(13) 23.03.27 18 0 11쪽
80 #79. 카델 침공(12) 23.03.26 18 0 12쪽
79 #78. 카델 침공(11) 23.03.25 18 0 14쪽
78 #77. 카델 침공(10) 23.03.24 18 0 14쪽
77 #76. 카델 침공(9) 23.03.23 19 0 13쪽
76 #75. 카델 침공(8) 23.03.22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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